가수에서 미국 변호사로, 국제기구 부의장으로, 변화를 거듭해온 이소은. 그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발견한 메시지들을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에 담았다. 삶의 무대가 바뀐 뒤 시작된 정체성의 고민과 그 끝에서 찾은 ‘나다움’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시기를 지나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셀프케어’에 이르게 된 경험을 들려준다. 도전 앞에 움츠러들 때, 스스로의 자격을 의심하게 될 때, 무엇보다 자신 안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용기’와 ‘응원’을 말했다.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므로.
용기의 먼지를 털어내며
첫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가끔 방송에서 뵙기는 했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셨겠지만, 저도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팬데믹을 겪어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변했다고 해야 할까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이렇게 우리 삶에 들이닥치는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굉장히 큰 전환의 시간이었어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안식년을 가질 무렵이었는데, 뭔가 활동 개시를 할 그 타이밍에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그래서 전환의 시간이 됐던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되게 필요했던 시간 같아요. 그 소용돌이 안에 있었을 때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돼요. 불안하기도 했고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그 힘든 시기에 쓴 글들은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와 닿고 지금도 보면 눈물이 나요. 그 시간을 안 겪었으면 이렇게 정리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한테는 불행을 가장한 큰 행운이라고 생각돼요.
처음 집필을 결심하셨을 때,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어요?
처음에는 뉴욕에서 일의 강도가 센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서, 동양인으로서, 이방인으로서, 소수 인종으로서, 이 길을 걸어가면서 도전하고 이겨내면서 나답게 살아낸 이야기를 쓰자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훨씬 더 구체화되더라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졌고요. 그리고 팬데믹의 시간을 거치면서 날것 그대로 써놨던 원고들이 소화가 됐어요. 밥 짓는 일에 비유하자면 뜸 들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까 같은 이야기 안에서도 다른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되게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모든 경험들이 고맙고, 저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한테도 고마움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삶이 나에게 무엇을 주든 나를 돌보면서 이겨낸다면 다 좋은 걸로 돌아오겠구나, 다 고마운 경험이 되겠구나, 그런 믿음이 생겼다고 할까요.
이전에는 어땠나요?
예전에는 단순히 ‘내 사람에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라고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볼 계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 사는 데 집중하다 보니까.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진짜 멈추게 됐잖아요. 그래서 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음악에도 쉼표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너무 필요했던 쉼표였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나름대로 지금까지 만들었던 하나의 음악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앞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봐도 눈물이 나는 글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글인가요?
「끝까지 해보는 건 어때?」라는 챕터가 있는데요. 제가 되게 두려움이 많을 때 쓴 글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 앞에 있는데 ‘이건 안 될 것 같아’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이뤄놓은 것들은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혼란스러운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때 우연히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수 데뷔했을 때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데서 공개가 됐어요. (알려진 대로) 정말 축복 받은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 진짜 포커스를 맞춰야 되는 부분은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음악 공책 쭉 찢어서 오려가지고 악보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두고 ‘이거 좀 허접하지 않나?’ ‘누구한테 보여주기 창피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글을 쓰면서 ‘맞아, 나에겐 생동감 있는 무모함과 용기가 있었지’ ‘나는 그런 사람이었어, 그런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잃은 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했어요. 제 안에서 먼지에 쌓여 있던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계기가 돼줬던 것 같아요.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해보겠어?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신 뒤에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아요. 그 시간들 속에서 깨달으신 것도 있겠죠?
한국에서는 명백한 다수에 속해 있다가 미국으로 가니까 소수가 됐고, 또 한국에서는 무대에 서고 주목 받는 삶을 살다가 (미국에서는)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뒤에서 일해야 되는 상황이 됐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이 되게 컸어요. 익명이 주는 자유로움도 분명히 있지만, 허전함과 그리움도 컸거든요.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는 후회도 드는데, 후회하면 자존심 상하니까, 그 후회를 다른 걸로 채우려고 ‘여기에서 끝까지 해서 성공해야 돼’ 하고 스스로를 약간 닦달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혼란스러움이나 의문들을 해소하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정리가 됐어요. 이제는 정체성의 경계에 있는 것도 편하고 좋아요. 삶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도 속하지 않고 저기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걸쳐져 있으니까 ‘그냥 둘 다에 속할 수 있는 거잖아’ 하면서 제가 좀 더 확장되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좋더라고요.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건 한 손에 꼽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지나가면 희미해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고 쓰셨어요. 이 또한 시간이 가르쳐준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나간 삼십 대는 어땠던 것 같으세요?
삼십 대는 진짜 치열했어요. 새로운 일을 하면서 되게 잘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직업에 대한 열망이나 열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되게 이기적으로 ‘그냥 난 잘해야 돼’ 그런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제 성향상 변호사는 맞는 부분도 있고 안 맞는 부분도 많았거든요. 변호사를 계속 하기에는 좀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뭐든 잘해내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저를 돌보지 않고 끝까지 밀어 넣었던 것 같아요. 조금 못하면 ‘그래, 다음에 또 하면 되지’ 생각하면 되는데 ‘아, 왜 그랬어’ 하고 자책하고요. 그래서 저희 엄마가 그건 오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왜 네가 다 잘해야 되냐고요. 그때는 서운해 하고 상처받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오만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더라고요. 나는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좀 웃기잖아요.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어야 사람이지.
그래도 그때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웃음) 노력한 만큼 결과도 나쁘지 않았고요.
네, 거기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데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되게 혼란스러웠어요. 뉴욕이라는 너무나 터프한 사회에서 뭔가를 일궈나가는 자체에서 느끼는 피로감이 있었어요. 가끔은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너무 지쳤던 거죠. 그래서 삼십 대는 정말 치열한 시간이었고요. 또 ‘내가 이런 걸 또 언제 해보겠어’라는 경험을 정말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가수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UN 회의에서 연설을 한다고 하면, 예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고 기회니까, 두려우면서도 되게 큰 에너지로 작용했어요.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해보겠어’라는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하면 갑자기 용기가 샘솟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이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고, 그러니까 한번 해봐도 되고, 해봤는데 결과가 나쁘면 다른 걸 해봐도 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유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어차피 인생은 여러 문을 두드렸다가 가까스로 열린 문에 비집고 들어가서 악착같이 내 길을 파면서 나아가는 것이니까”라는 문장은 큰 위로가 됐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되게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누군가 문을 활짝 열어줘서 레드카펫을 걷듯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안간힘을 쓰면서 뭐라도 해보려고 하다가 비집고 들어가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자신감이 되고, 거기에서 길러진 근육 때문에 다른 문을 좀 더 빨리 힘차게 열 수 있게 되고요. 그렇게 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전에는 몰랐던 다른 창문 밖도 볼 수 있게 되죠. 지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대학교 때 언니가 한국을 방문했었어요.
저희 언니가 피아니스트인데, 그때 저한테 ‘소은아, 내 음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기회가 잘 열리지 않아서 힘들다’고 말했어요. 발만 하나 들여놓으면 열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언니의 커리어를 보면 그렇게 비집고 들어가서 하나씩 하나씩 쌓아서 지금은 너무 멋진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것도 하나의 증거가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는, 증명인 것 같아요.
이번 책을 쓰시면서 가상의 독자를 떠올리기도 하셨나요?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안 한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어떤 구미에 맞춰서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실 (책 속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잖아요. 그런데 보편적으로 하는 고민들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요. 그 보편적인 고민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 있겠다, 라는 바람은 있었죠.
고유한 방식으로 풀어내면 되니까. 제가 생각할 때 이 책의 메시지는 ‘제가 이렇게 했으니까 당신도 이렇게 해보세요’가 아니라 ‘제가 저만의 방식을 찾아서 했듯이, 당신도 당신의 방식을 찾아서 하면 괜찮아요’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열심히 하고, 하루를 꾹꾹 눌러 살고, 스스로한테 잘하고, (내가) 자격이 있나 없나 고민하지 말고, 그냥 용기를 가지자고 말하는 거죠. 그런 마음으로 쓰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잖아요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새롭게 계획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외국에서 영어로 책을 써보는 것도 작은 꿈이에요. 사실 이번에 에세이를 공모 해봤는데요. (웃음) 저한테는 되게 두려운 일이었어요. 비즈니스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쓰는 것과 소설, 에세이를 쓰는 건 다르잖아요. 나한테 과연 그런 능력이 있을까 고민이 돼서 늘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있었는데, 1월에 제가 좋아하는 문학 매거진에 공모를 했어요.
이번에도 ‘끝까지 해보는 게 어때?’라고 생각하셨나요?(웃음)
그 에세이를 쓰는 자체로 너무 행복을 느꼈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도 문장은 만들 수 있네’ ‘좀 더 많이 읽고 배우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한 단계 높은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과랑 아무 상관없이. 저로서는 아주 작은 걸음마를 하나 뗀 거예요.
준비하고 계신 또 다른 일이 있다면요?
지금은 클라이언트를 위해 대변하고 자문하는 일은 안 하지만, 제가 가진 법률 지식과 경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요즘 미국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문화와 정치의 영역을 떠나서 법률적인 각도에서 분석해볼 수 있는 이슈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발전시켜보면 또 하나의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계획하고 있어요.
예전에 인터뷰하신 기사에서 읽었는데, 언젠가 픽션을 쓰고 싶으시다고요.
언젠가 소설 한 권을 꼭 써보고 싶어요. 사실 소설 쓰는 게 너무 힘든 일잖아요. 제가 작년에 보그(VOGUE)와 함께한 프로젝트로 인터뷰 연재를 했었는데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님을 인터뷰 했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우리 각자에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고, 그걸 쓰면 된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 모두에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면 (나에게는) 그게 뭘까, 그걸 한 번 써내려 가는 것도 되게 의미 있는 삶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한번 해보고 싶은 거죠. 그리고 동화책에도 관심이 되게 많아요.
엄마가 되기 전부터 동화책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네, 동화책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예전에 BBC에서 진행하는 동화책 입문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수업 진행하신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동화책을 쓰는 건 너무 의미 있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예술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이고 언어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다.’ 너무 멋진 일 아니에요? 우리 딸한테 엄마가 너무 좋아하는 예술의 한 종류를 소개해줄 수 있는데 심지어 나의 언어로 소개해준다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습작 해놓은 것들도 꽤 많아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웃음) 계획을 잘 짜서 하나씩 해보려고 해요. 저는 되게 설레요. 어딘가에 소속돼 있으면서 쫓기느라 여러 가지를 못했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자유로워요. 다양한 관심사를 하나씩 충족시키면서 저만의 어떤 걸 구축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되게 솔직하게 쓴 글이에요. 그래서 사실 겁이 많이 났어요. 나를 많이 드러내면 ‘이래도 되나?’ 싶은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독자 분들한테 메시지를 많이 받고 있거든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냥 온전히 나였다’고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게 되게 울컥 하더라고요. 나의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유했구나, 라는 생각에 되게 고마웠어요. 그냥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잖아요. 그걸 늘 중심에 두고 용기 있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응원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소은 아티스트이자 미국 변호사. 중학교 2학년 때 EBS 청소년 창작 가요제를 계기로 가수로 데뷔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앨범 〈소녀〉를 발표했고, 이후 네 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 위에서 진실했지만, 음악 이외의 세상이 궁금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에 있는 노스웨스턴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받았다. 로스쿨 졸업 후 뉴욕 변호사 시험에 합격, 뉴욕에 소재한 로펌에서 소송과 중재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의 뉴욕 지부 부의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뉴욕에서 문화예술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며, 글과 곡을 쓰고, 법을 다루며, 다양한 미디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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