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세계토론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하고 하버드대학교 토론팀의 코치를 역임한 서보현 저자. 그의 이야기를 담은 『디베이터』는 침묵을 선택했던 소년이 토론을 만나 목소리를 찾게 된 성장담이자, '좋은 토론'이 사라진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다. 여덟 살에 부모님과 함께 호주로 이민 간 저자는 언어 장벽에 부딪히며 '잠자코 있는 법'을 터득해갔다. 우연히 토론반에 가입하게 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고, 토론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가 배운 '토론 잘 하는 법'은 단순히 이기는 기술이 아니다. 나와 상대의 시야를 넓히고 지속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 곧 지금의 우리가 구하고 있는 해답이다.
서보현 저자는 2013년에 열린 세계학생토론대회(WSDC)와 2016년의 세계대학생토론대회(WUDC)에서 우승을 거뒀다. 이후 호주 국가 대표 토론팀과 하버드대학교 토론팀의 코치로 활동했다. 하버드대학교 인문학부에서 정치 이론을 공부했고,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공공정책 석사학위를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언 파이낸셜 리뷰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뉴욕타임스, 애틀랜틱, CNN 등 다수의 언론에 글을 기고한다. 현재 하버드 로스쿨에서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왜 토론을 해야 되나?
집필의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면서요?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진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토론을 지켜보면서 책을 쓰기로 결심하셨다고요.
네, 제가 2016년 1월에 세계대학생토론대회(WUDC)에서 우승했어요. 2005년에 디베이트를 시작했으니까, 10년 이상 노력해오면서 클라이맥스에 이른 거였죠. 그래서 '이제 나는 토론을 마스터했구나' 하는 뿌듯한 느낌이 있었어요.(웃음) 그때 출판사에서 집필 제안도 받아서 책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9월이 되니까 트럼프-클린턴 사이에서 토론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중요하지만 조금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처음에는 한 뉴스 웹사이트로부터 '트럼프-클린턴의 첫 번째 토론을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래서 제 디베이트 파트너인 파넬레와 같이 TV로 토론을 봤어요. 그런데 결국 그 기사는 못 쓰게 됐어요. '지금 우리가 보는 건 토론이 아니구나, 아니면 토론의 다른 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토론이 좋은 면도 있지만 나쁜 면, 위험한 면도 있으니까 내가 그 점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요?
다음 해에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 석사 과정을 하러 갔는데요. 미국과 중국, 서양과 동양을 연결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으로 갔는데, (중국에 머무는 동안) 무역 전쟁이 시작되고 (미중) 관계가 얼어붙고,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그때도 의견 충돌(disagreement)이 세계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또 다음 해에는 호주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했는데, 트럼프-클린턴과 비슷한 양극화와 분열의 문제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 순간에 저도 '내가 왜 토론을 해야 되나? 나랑 의견이 다른 사람과 왜 이야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제가 처음 목소리를 찾았던 토론이라는 활동, 거기에서 배운 방법들과 교훈들을 다시 찾게 됐어요. 희망이 없는 순간이었으니까 해답(answer)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토론에 거는 기대는 점점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토론을 왜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걸까요?
토론을 포기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포기한 것 같기도 해요. 어떤 때는 논쟁과 의견 충돌을 피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토론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그렇게 피하는 이유에는 '저 사람과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문제인 것 같은데요. 원인은 다양하겠죠. SNS나 미디어 환경도 이유 중에 하나일 것 같고요. 제 생각에는 서로 의견이 다를 때 필요한 스킬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런 교육도 많이 없어진 것 같고요. 그 교육은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하는 게 아니고 (모든)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인데, 많이 없어졌어요. 조금 희망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말할 권리와 플랫폼을 갖고 있고, 서로 더 연결(connect)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있어왔던 차이들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 같아요. 이제 '어떻게 하면 이런 다양성을 잘 관리(manage)하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까'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시나요?
아뇨. 기자로 일할 때 트레이닝도 받았지만 전혀 인기 있지 않아요.(웃음)
SNS를 못 하시는 게 아니라, SNS가 가진 어떤 속성을 안 좋아하시는 거 아닌가요?
네, 저는 답답한 면도 많아요. SNS는 한편으로는 동의(agreement)에 굉장히 주안점을 두는 것 같거든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나에게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받고 인기를 얻는 측면이 있잖아요. 이미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feeling good' 하는 면이 있어요. 그렇게 한 쪽에는 동의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나쁜 반대 의견(bad disagreement)'이 있죠. 그런데 제 책과 제 프로젝트는 '좋은 반대(good disagreement)가 뭘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SNS와는 대비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자님이 배운 토론은 어떤 건가요? 우리가 SNS와 미디어에서 보는 토론과 무엇이 다른가요?
일단은 대화입니다. 제 책의 처음 다섯 챕터에서 토론의 기술(skill)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논제, 논증, 반론, 수사법, 침묵에 대한 거예요. 제 생각에는 이것들이 다 듣기의 다양한 방법들이에요. 논제는 '지금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듣는 것이고, 논증은 '내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는 것이고, 반론은 '다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수사법은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들리는지' 듣는 거예요. 침묵은 '하지 않은 이야기, 하지 않아야 될 이야기'를 듣는 거고요. 결국 토론은 '같이 만들어가는 대화'라고 생각해요. 내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고,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죠. 그 점에서 크게 다른 것 같아요.
대화로 세상을 바꾸다
사람들이 토론에 대해서 오해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것 같아요. 하나는, 토론에서는 이기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토론을 해보면 많이 져요. 거의 져요.(웃음) 세계대회의 경우 500팀이 참가하는데 그 중에 한 팀이 이기는 거니까요. 거의 다 지는 거잖아요. 그렇게 많이 져보면, 때로는 내가 맞았는데도 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내가 정확한 답을 내놓았지만 청중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내 팀이지만 '우리는 그날 졌다, 우리가 맞았지만 청중을 설득하는 것에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지면서도 계속 토론을 하면서, 이긴다는 것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대팀을 이기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도 이기는 것이지만,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상대에 대해서 더 배우는 것도 이기는 거거든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도 이기는 거고요. 그렇게 이긴다는 것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 같아요.
'토론대회'에 대한 오해도 있겠죠? 대회에서는 토론자가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과 다른 주장을 펼 수 있으니까 '그저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어요.
그런 비판이 있죠. 그런데 저는 그 점에 굉장한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우리의 정치적 견해가 우리의 아이덴티티와 결합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그 생각만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거부하는 것과 비슷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디베이트(토론 대회)에서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견해에 대해 언쟁(argue)하면서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또는 '아,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고요.
'나는 살아오는 내내 갈등이 두려웠다'고 쓰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갈등을 회피하던 내성적인 아이가 처음 토론이라는 세계에 들어섰을 때,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궁금해요.
그때까지 언어(영어)도 많이 어려웠고, 대화가 어려웠고, 학교에 아시안 아이들도 없으니까, 제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면들은 다 숨기고 싶었어요. '그냥 나는 너희랑 똑같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었고요. 그러니까 굉장히 외롭고 작아졌던 것 같아요. 나 자신의 생각을 배신하는 느낌도 있고. 그리고 많이 숨기면 결국 침묵하게 되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이민자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어려서 힘이 없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세상은 살아남아야(survive) 하는 곳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세상에서 나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생각하면서 자랐어요.
그런데 5학년 때 토론 대회에 처음 나갔는데, 강당에 모인 5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제가 말을 하기 시작하니까 아이들 표정이 변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나만 바뀌는 게 아니고 대화를 통해서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겠다'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토론을 잘 하려면 공부도 해야 되고 자료 조사도 해야 되고 연습도 해야 되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배워야 되고... 열심히 해야 될 부분이 많은데요. 목적이 생긴 거죠. 토론이 그냥 하나의 과목이나 활동으로 생각되지 않았고 인생을 사는 방법, 배우고 생각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어요.
10년 넘게 토론에 빠져 지냈어요. 주말도 없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뒤로 하고요. 토론을 하면 할수록 재미를 느끼셨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어떤 활동은 세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같고, 어떤 활동은 세상에 전적으로 소속되게 하는 것 같은데요. 토론은 후자인 것 같아요. 그래서 토론을 하면 한군데에 있으면서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어떤 때는 호주에 대한 이슈를 다루고 미국, 유럽, 아시아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제 시야가 훨씬 더 넓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릴 때는 시스템이나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동기를 잃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토론에서는 꼭 '너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는 게 느껴져서 목표를 잃지 않았던 것 같아요.
토론의 목표는 '끝장' 아닌 '유지'
세계 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하셨어요. 누가 봐도 뛰어난 디베이터인데요. 저자님이 생각하는 '내가 토론을 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토론에 꽂힌 것도 있고요. 제 스타일의 독특한 점이 두 가지 있는 것 같은데요. 하나는, 언어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제가 영어를 못했으니까, 단어 하나하나를 배우면서 '이 단어는 단어랑 조금 다르다' 생각하면서 공부했어요. 그리고 '언어는 사람에게 힘을 줄 수도 있고 뺏을 수도 있다', '언어는 사람을 합류(include)시킬 수도 있고 배제(exclude)시킬 수도 있다'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이해했던 것 같아요. 그냥 말이 되는 문장이 아닌 창의적인 문장, 나만의 독특함과 고유함이 보이는 문장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고요. 두 번째는, 제가 아웃사이더로서 '말하기 전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배우고 그런 태도를 취한 것 같아요. 토론을 하면서 주장을 세게 할 수도 있는데, 저는 '내가 이 대화를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먼저 들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책을 '대화하듯' 읽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책을 굉장히 즐겨 읽으세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북클럽 같은 활동도 해봤고요. 호주에 가니까 우리 둘 다 친구도 별로 없잖아요.(웃음) 그래서 책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했어요. 어머님이 항상 "너는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물으시고요. 그런 대화를 통해서 읽기는 굉장히 액티브한 과정이라는 걸 배웠을 수도 있어요. 지금도 책 읽을 때는 여백에 '난 지금 이것과 관련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써요. 작가와 대화한다는 생각으로요. 그냥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런 대화를 통해서 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에서 토론의 기술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일상에서 토론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도 이야기해주셨고요. 저자님의 경우에는 토론 경험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었나요?
네. 일단은 제 개인적인 삶에서 논의에 참여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정치적인 논의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제일 중요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름을 잘 다루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한데, 그 일에 기꺼이 참여하게 됐고요. 그리고 이 책에 있는 테크닉들도 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토론하는 법을 많이 배우고 나서는 어떤 때에는 침묵을 택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고요. 모든 논쟁에 뛰어들지 않고 '어떤 논쟁에 함께할 것인지' 아는 지혜를 얻게 됐어요. 그리고 너무 많은 부분에서 동의하지 않을 때 '지금 우리는 이 이슈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고 범위를 정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도 어떤 포인트에 대해 논쟁하고 어떤 포인트는 그냥 넘어갈지 판단하는 것, 그런 스킬도 발전된 것 같아요.
'좋은 토론'과 '좋은 반대'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한국에서 '끝장 토론'이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토론의 목표는 끝장을 보는 게 아니고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토론이 끝나고 나서 양측이 모두 "한 번 더 (대화) 할 수 있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거잖아요. 관계도 유지되는 거고요. 그리고 나도 그 이슈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보는 거죠. '결국 우리는 같이 사는데, 대화보다 좋은 연결이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디베이터』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 것 같으세요?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 유용하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저는 한 명의 디베이터이지만, 디베이팅 안에서 제일 즐거워한 건 코칭이었어요. 코치의 역할은 나 같이 되라거나 내 목소리를 흉내 내라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학생의 목소리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전해주고 그 사람의 목표를 서포트하는 거잖아요. 이 책도 그래서 쓴 거예요. 사람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보현 세계를 제패한 디베이팅 챔피언. 하버드대 상위 1% '주니어 24'에 선정된, 미국 최고 권위의 우등생 클럽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 회원. 하버드대학교 인문학부에서 정치 이론을 공부하고 최우등 졸업했다. 그후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슈워츠먼 장학금으로 공공정책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하버드 로스쿨에서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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