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리는 건 마음을 세어보는 것"이라고 임지은 작가는 말했다.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고 찬찬히 가늠해본 마음들이 두 번째 에세이 『헤아림의 조각들』에 담겼다. 가족과 타인과 그리고 나, 그 사이에 고였다 흘러간 시간과 마음과 말과 기억에 대해, 헤아리고 또 헤아렸다. 그리고 더없이 솔직하게 적어 내려갔다. 작가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요즘 나는 이런 것들을 헤아리고 있어"
어쩌면 그건 물음이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헤아리고 있나요? 라는. 마음의 안부를 묻고 전하는, 다정한 인사다.
나는 그만 고고해져 버린 것이다
며칠 전에 '작업책방 씀'에서 북토크가 진행됐죠. 이번 책을 읽은 독자들과의 만남이 시작됐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책이 나온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읽으신 분들이랑 이제 좀 만나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어주시는구나'라는 생각에서 오는 감흥이 조금씩 들고요. 온라인에서 독자 분들을 만날 때도 너무 기쁘지만 실감이 안 될 때가 있는데, 직접 보면 실감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표정도 보고 그러면서 만나는 게 되게 즐거워요.
첫 책 『연중무휴의 사랑』이 나왔을 때는 코로나 때문에 독자들과 못 만나셨나요?
그때는 진짜 거의 못 뵀어요. 첫 북토크를 출간 1년쯤 지나서 했던 것 같아요. 그것도 어떤 서점에서 불러주셔서 했었는데, 그 전에는 독자를 실감할 일이 없었어요. 서점에 가서도, 거기에 제 책이 있으면 '이게 여기 있네?' 하면서 되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은 조금 더 빨리 독자분들을 만나게 돼서 신기하고 좋아요.
책이 나오고 나면 우울하다고 말씀하시는 작가님들도 계시던데요. 요즘 어떠신가요?
제가 방금 팟캐스트 <비혼세>를 녹음하고 왔는데, 거기에서도 너무 우울하다고 이야기했어요. (웃음) 그런데 단순히 우울한 것보다는,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이 모든 게 다 섞여 있어요. 말하자면, 롤러코스터는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드는 기분을 느끼려고 타러 가는 거잖아요. 무섭지만 '무섭다'로 다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해요. 약간 불안한 양상이 우울함과 닮아 있어서 우울하다고 말은 하는데, 단일한 우울만은 아닌 것 같아요. '괜찮나? 어떡하지?' 하면서 어쩔 줄 모르는 느낌이 있는 것 같은데요. 어쩔 수 없죠. 이겨내야죠.(웃음)
출간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이번 책에서 "첫 책을 낸 뒤, 나는 그만 고고해져 버린 것이다"라고 쓰셨어요.
그러려고 노력을 한 것 같아요. 제가 허영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웃음) 책을 내고 계속 '이게 쉽지 않다'고 느꼈어요. 첫 책은 책을 낸다는 것의 의미 자체를 모르고 낼 수밖에 없잖아요. 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까요. 저도 책을 낸 다음에 그 의미를 여러 방면으로 알게 됐어요. 나의 말을 타인에게 가 닿게 할 수 있고 오래오래 어떤 이야기가 읽힌다는 건 좋은 것인데, 그렇다고 이게 막 부유해지는 길은 아니고...(웃음)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겨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누가 이런 거 좋아하니까 이걸 써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런다고 써지는 건 아닌데도. 그리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잘 진행이 안 되고 엉망이 되더라고요. 귀가 팔랑거리는 성격이라 '이럴 거면 아예 다 닫아놔야겠다, 덜 흔들릴 때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찾아봐야지' 생각했어요. 고고해졌다는 말에는 그런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너무 웃긴 거예요.
왜요?
뭐 대단한 청탁이나 받았다고 혼자 막 흔들리고 그런 마음가짐을 준비하는지, 스스로 약간 꼴 같지 않은 느낌도 있고.(웃음) 그럴 때 '아, 나 너무 고고하네. 그냥 쓸 수 있는 건 다 써야지' 생각하는 거죠. 동시에 '남의 말에 너무 흔들리지 말자' 혹은 '잘 될 방향을 생각하면서 쓰면 될 것도 안 된다. 쓰고 싶은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 같으니 거기에 집중하려면 다른 것에 귀를 닫아 놓을 필요가 있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던 것 같아요. 쓸데없이.(웃음)
꼴 같지 않다거나, 쓸데없다거나, 왜 그런 말로 스스로를 깎아내리세요?
약간 그런 식으로 하는 게 버릇이 되어 있는 유의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사람인 게 이번 책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고요.
스스로에게 가혹한 면도 있는 건가요?
그런데 그럴 때 보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관심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주변에서 '그거 한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영향 받은 거야'라는 말, 하지 않나요?
맞아요. 제가 스스로한테 그런 이야기를 할 때도 많아요. 그것도 일면인 것 같고, 그게 극복되지 않은 채로 저의 일부로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그것이 이미 어느 정도 제가 돼버린 상황에서, 극복해야 되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있어요. 그냥, 제가 약간 그런 걸 좋아한다고 느껴요.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톺아봐도 '결국 나는 이런 식으로 사고하고 이런 식으로 말하고 이런 식으로 보는 걸 좋아하나 보다'라고 결론이 날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자꾸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내 자체의 모습에 이런 것도 섞여 있구나'라고 생각해요.
『연중무휴의 사랑』에서 말씀하셨듯이, 내 안의 무언가를 페미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거죠.
맞아요.
조금 더 어려운 선택을 할 기회
『헤아림의 조각들』에서 '있음을 내버려두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누군가 밑줄 그어주거나 좋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는데요. 저는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고, 그게 글을 쓸 때의 태도와도 맞닿는 것 같아요. '그게 없었으면 내가 이걸 시작했을까?'라는 물음이 항상 있어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누군가 페미니즘을 거부할 때도 똑같은 마음이 들거든요? 누가 페미니즘의 태도에 대해서 말할 때 여자들이 괜히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없는 걸 지어내는 것처럼 말할 때 '이거 실재하는 거야, 왜 있는 걸 없다고 해?'의 마음이 들거든요. 그런데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이것을 없애려고 할 때 그 마음이 똑같이 생기는 거예요. '여기에서 나는 이 태도를 지키고 싶다, 있는 건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불화하나?(웃음)
불화하지 않는다면 헤아리지도 않겠죠.(웃음) 『헤아림의 조각들』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요즘 나는 이런 것들을 헤아리고 있어」라는 제목의 꼭지가 있어요. 그 글에서 '헤아림'이 좋아서 계속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 단어로 지을 만한 제목이 없을까. 그러다가 효인 님(서효인 대표, 시인)이 '조각들'을 말씀해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두 번 세 번 곱씹어볼수록 좋더라고요. 조각난 것들이 다 같지 않잖아요. 크게 조각난 것도 있고 작게 조각난 것도 있고, 뾰족한 것도 있고 잘게 부서진 것도 있고. '조각들'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약간 뾰족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게 '헤아림'이라는 말의 다소 느슨한 것들에 긴장감을 주면서, 두 단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볼수록 마음에 들더라고요. 역시 시인이다!(웃음)
'요즘 나는 이런 것들을 헤아리고 있어'라는 문장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궁금해지는데요. '헤아림'의 많은 유의어 중에서 왜 이 단어를 고르셨어요?
저도 문장을 쓰다가 고민을 했어요. 왜 헤아리는 것을 썼을까. 그때 제가 메모에 '헤아리는 건 뭘까? 아, 마음을 새어보는 것'이라고 써놓은 게 있는데요. 그런 의미로 썼던 것 같아요. 아까도 '출판 블루'를 이야기하면서 (그 감정에) 우울만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잖아요. 그런 식으로, 저는 뭔가 여러 개가 있으면 그걸 새어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번 책에도 작가님의 솔직한 면모가 드러나는데요. 이를테면 「아무튼, 싫음」이라는 글에서 '싫어하는 거 천지인 나'를 보여줘요. 사실 나는 싫어하는 게 이렇게나 많다, 라는 고백을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러니까요. 요즘은 더 그런 것 같아요. 요즘 트렌드가 다 좋다고 말해야 될 것 같잖아요. '좋아요' 버튼도 있고.(웃음) 그런데 사실 누가 저한테 '싫어요' 버튼을 누르면 너무 신경 쓰일 것 같기는 해요. 그래서 '싫어요' 버튼은 있으면 안 되겠다 싶은데요. 그런데 저는 '모든 걸 좋아한다는 건 사실 무언가를 속여야만 가능한 일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누군가가 뭔가를 되게 애정하는 것만 봐도 속이 상할 때가 있고, 누가 되게 행복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힘들 때도 있잖아요. 나는 그러지 못하는데, 이런 마음이 들고요.
인스타그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어떤 때보다 비교를 하기 좋은 환경이잖아요. 그런 환경에서 모든 게 좋기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저로서는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게 용기가 더 필요한 일인데, 원래 이런 건 누군가 먼저 싫다고 해야 '사실 나도 싫었어'가 나온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웃음) 책을 쓸 때마다 저한테 '조금 더 어려운 선택을 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아서, 그런 마음으로 썼던 것 같습니다.
책의 후반 작업을 하고 계실 때 할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책이 나온 걸 보여드리지 못해서 아쉬우셨을 것 같아요.
양가적이었어요. 이미 원고가 있었으니까, 묶으면서 '이걸 할머니가 봐도 괜찮나? 속상하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게 너무 궁금했어요. 동시에, 그때는 할머니가 너무 취약해지셔서 책을 거의 못 읽으시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차피 (원고를) 드려도 못 보시겠다'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두 마음이 되게 부딪혔던 것 같아요. '나 자신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저도 늘 그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글 쓸 때나 책이 나올 때 (내가) 할머니가 원하는 삶을 대리하고 있다는 느낌도 많이 받아요. 엄마도 그렇고요. 누군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리하는 것에서 그렇게 멀 수 없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혼자서 잘 될 수 없잖아요.
누군가 나한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서 밀어주지 않으면 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보면 (자신에게) 욕망을 투영한 사람들의 삶을 조금은 대리해서 살고 있는 것 같고, 그게 다 합쳐진 게 나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 책도 할머니가 원하는 어떤 여성의 모습, 저희 할머니는 예체능에 관심 많고 지적 허영이 많은 여성이셔서, (웃음) 책도 쓰고 내 이야기도 하고 그런 모습이 담기지 않았을까... 다음주에 할머니 모신 곳에 가는데, 책 갖고 가야죠.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마음을 솔직하게 쓰셨잖아요.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감정까지도. 말씀하신 것처럼 할머니께서 속상해하셨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작가님은 이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으셨을 것 같습니다.
뭔가 믿었던 것 같기도 해요. '손녀가 이런 생각했는데도 나 사랑하지?' 이런... 동시에 할머니가 상처 받을까 봐 보여주기가 좀 그렇기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쓴 데에는 저희 엄마랑 제 친구 덕이 제일 컸어요. 친구의 아버님이 되게 오래 투병을 하시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친한 친구들이 같이 있었거든요. 그 과정을 다 봤는데, 제가 책에 쓴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그 친구도 했었어요. 지금 저희 엄마도 할아버지를 계속 돌보시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고요. 두 사람을 보면서 그런 감정을 말할 곳이 있다는 게 너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같은 마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이 사람들한테 힘이 되는지 느꼈고요. 그래서 '오히려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건 중요하죠.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좀 껄끄러울 수 있는데, 누군가 눈 딱 감고 말하면 '사실 나도 그랬어'라고 하기가 좀 쉽잖아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게 필요했던 것 같고요. 저희 엄마도 가끔 '내가 너무 나쁜 딸 같다'고 우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 저희 엄마 같은 딸은 정말 없거든요. 그게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이라는 걸 알면 엄마의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엄마한테 '내 친구는 그랬대, 나도 이번에 그렇더라'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엄마가 한결 나아지는 걸 봤을 때 '이 이야기를 써도 되겠다, 써야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삶이 책을 따라가는 느낌이 있어요
'작가의 클리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그건 제가 느꼈다기보다는, 오히려 저는 '이런 식으로 살아도 작가라고 해도 되나?'라는 느낌이 들 때가 훨씬 많은데, 친구들이 당연하게 '지은이는 작가니까 이러고 있겠지'의 모먼트로 물어볼 때가 많아요. '지은이는 글 쓰느라 바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소름이 쫙 끼치면서...(웃음) 물론 바쁜 것도 맞고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맞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안 쓴다'를 되게 많이 포함하고 있잖아요?(웃음)
그래야 또 쓸 수 있죠.(웃음)
맞아요. 빈둥거리고 있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 어...' 하고 있어요.(웃음) 그리고 저는 진짜 아무 말이나 막 하는데 제가 한 말에 의미를 붙이기도 하고요. 어떤 상황을 봤을 때 제가 그걸 되게 의미 있게 볼 거라고 생각하고 '지은이가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눈빛으로 볼 때마다 속으로 '아, 어떡하지...' 싶어요.(웃음) 그 와중에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스믈스믈 올라와서 '아, 그거...' 하고 말을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이게 바로 클리셰구나' 생각해요.
그런데 저도 동경하는 작가님들이 있다 보니, 그 분들의 인터뷰 같은 걸 읽을 때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 딱 해서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면, 되게 도시 괴담 같으면서도 좋거든요.(웃음) 저도 모르게 그 분들한테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 정말 클리셰란 무섭다'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작가 클리셰라고 하면 뭔가 항상 의미 있는 걸 생각하고, 말할 때도 우아하게 논리적으로 잘 말하고, 책도 다 꿰고 있고,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멋있는 문장 툭툭 튀어나오고... 약간 그런 느낌이 있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고요.(웃음) 그런 걸 기대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클리셰'는 작가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저는 '내가 작가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책을 쓰는 것도, 사실 저는 제가 쓴 책보다 괜찮은 사람이 아닌데 괜찮은 척 가공해서 쓰고 내 삶이 책을 따라가는 느낌이 있어요.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결국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 '작가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일축해놓은 표현은 아닌가 생각하고요. 에세이가 솔직함을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 말이 반만 맞다고 생각해요. 솔직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고, 솔직함을 표방해야만 나올 수 있는 태도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 태도 때문에 사람들이 '솔직하려고 한다'라고 말하는 거지, 글은 결국 가공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것과 비슷하게, 나는 작가라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나오게 되는 태도들이 있다고 느껴요.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종류의 글쓰기'를 도전해보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소설 스터디도 열심히 해왔다고요. 에세이 아닌 다른 종류의 글도 쓰실 계획인가요?
네. 써서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너무 궁금해요. 그리고 저는 잘 모르는 채로 갑자기 책을 내게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약간 굶주려 있는 게 있어요. 소설도 정말 즐겨 읽고요. 요즘 시를 너무 즐겁게 읽고 있어서 시도 배워보고 싶어요. 저는 배우면서 파고드는 행위 자체를 되게 좋아해서, 배워야 직성이 풀려요. 시나리오도 배워보고 싶고, 전방위적으로 '해보고 싶다'에 굉장히 열어둔 상태예요. 제가 원래 그림을 그렸었는데, 몇 달 전부터 다시 엄청 그리고 싶은 거예요. (글과) 같이 만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려면 손을 푸는 기간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해보자, 할 수 있는 거 다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에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해보자고 생각하고요. 다듬다 보면 또 뭐가 되겠지, 어디에 가 있겠지, 그런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안온북스 사랑해주세요.(웃음) 매번 책은 같이 쓰는 거라는 걸 느끼지만, 이번 책은 더 많이 느꼈어요. 띠지에 제가 쓴 문장이 적혀 있는데 "나 혼자서는 원하는 모습에 가닿을 수 없다는 게 언제나 커다란 위안이 된다"라는 문장이에요. 책을 쓴다는 것도 그런 것 같고요. 두 분(서효인, 이정미 대표)이 없었으면 못 썼겠다는 생각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런 고마움을 덧붙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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