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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석지영, “한국인들의 관심 이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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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매서운 한국의 겨울 날씨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익숙함이 묻어나왔다. 비록 추억조차 많이 만들지 못한 어린 나이에 떠난 조국이지만, 그래도 성장기에는 2~3년에 한번 꼴로 한국을 찾았다는 그녀. 더구나 최근에 들어서는 2년 동안 세 번을 방문했다. 바로 자전적 에세이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가 출간됐기 때문이다.

대개의 성공한 미주 한인 2세의 경우가 그렇지만, 그녀의 삶은 유난히 남다른 과정을 거쳐 왔다. 한때는 발레리나를 꿈꾸었던 시절도 있다. 미국 예일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꽤나 드라마틱한 선택이지만 그 다음이 더 놀랍다. 법학을 공부하고 하버드 법대 교수, 다시 종신 교수로 임명 된 것. 이 모두가 채 나이 마흔도 되기 이전에 이룩한 것들이다.

그런 그녀의 삶은 한국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동경, 세계적 명문인 하버드를 향한 선망과 맞물려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런 관심을 보이는 이들 중에는 그녀를 향해 ‘엄친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는 것을 일종의 예의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잔잔한 호수 위 백조의 여유가 수면 아래 끊임없는 발길질 덕분이라는 것을 간과한 편협에 불과하다. 지금의 삶을 살아가기까지 그녀는 어린 나이에 전혀 다른 세상과 직면했던 두려움, 부모의 선택에 의해 발레리나의 꿈을 접어야 했던 시련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하버드 종신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단순한 성공 지향이 아닌 학문과 인간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 덕분이다. “자서전을 쓰기에는 이른 나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적 에세이를 발표한 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동기 때문이다. 성공의 진정한 목적을 알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고 싶었다는 그녀. 이를테면,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는 그녀가 자신의 삶과 철학을 가감 없이 담은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의 관심, 이해하지만…

나의 하버드대 종신교수직 임명은 한국에서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인들의 문화적 상상 속에서 하버드가 차지하는 매우 독특한 상징적 중요성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라면, 학자에게 일어날 법한 일은 아니다.『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프롤로그 中
처음 자신을 향한 한국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에 직면했을 때 그녀는 어리둥절함과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전역의 한국인들이 보낸 메일을 확인하게 되면서, 또 남다른 학문적 성취에 대해 큰 의미를 두는 한국적 정서를 알게 되면서 그 감정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책을 출간하고 만난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질문은 여전히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했다.

한국 방문 중에 다양한 질문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대부분이 성공을 할 수 있었던 요인, 성공 공식에 대한 질문들이었어요. ‘당신은 천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당황스러웠죠(웃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를 통해 한국인과 한국 사회, 그들의 가정에서 가지고 있는 가치관들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한국인의 의식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어떤 시사점을 주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했고요. 사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성공에 대한 비결이나 비법은 없는데 그런 질문이 많다는 것이 좀 의아했어요. 한편으로 한국 사람들이 어떤 해법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이번 책 집필은 교수님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관심이 영향을 줬다고 알고 있는데요. 집필 과정에서 새롭게 느낀 감정적 경험은 없으신가요.

제게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해서 석지영 개인의 방식으로 대답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고민 끝에 제대로 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에 이야기를 담은 책을 써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하지만 단순히 교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제가 경험한 삶에 대해서 담담하게 기술함으로서 그 안에서 독자들이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기를 바랐죠.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특별했어요. 자서전을 쓰는 것은 제가 자주 쓰는 법학 논문이나 신문 기고와는 다르게 사적인 이야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또 어떤 면에서는 강제적으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떠올리는 과정이기도 했고요. 성장 과정을 다시 복기하는 건 즐거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재미있기도 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어린 시절에 느꼈던 고립감과 쓰라린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단순히 되새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경험의 느낌이 다시금 현실화되는 수준으로 다가오기도 하더군요.




부모와 갈등 경험하며 성장한 유년기

그녀의 가족이 미국으로 떠난 것은 한국이 민주화가 되기 이전이었다.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외국계 제약회사 사장의 특별비서관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가정이었지만 엄혹했던 시대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민 초기, 어린 그녀가 직면한 미국사회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책에서 엿볼 수 있었던 것 중에는 교수님 세대와 부모 세대가 미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 꽤 달랐다는 점인데요.

맞아요. 부모님이 적응하신 방식과 제가 적응한 방식은 굉장히 달랐어요. 직면한 상황 자체가 달랐죠. 물론 언어장애와 문화적 충격은 다르지 않은 경험이었을 테지만, 같은 시기에 부모님의 동료나 친구 분들이 많이 이민을 오셔서 한인사회를 형성했기 때문에 한인들 간의 유대가 남달랐어요. 그런 점이 부모님 세대 이민의 뚜렷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낯설고 두려운 경험이지만 친구, 지인들과 함께한다는 의식이 부모님을 강하게 한 요소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제 경우는 모국에서 오래 살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한 경험이나 추억 없었어요. 또 자의와 무관하게 모국에서 새로운 나라로 가게 된 상황이었어요.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나는 누구인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환경의 변화를 겪게 되는 경험은 그야말로 현기증이 날 정도였죠. 어린 나이에 미국의 학교 시스템에 편입한다는 것 역시 힘겨운 경험이었고요. 익숙한 문화에 편안함도 얻지 못했고, 어린 시절에 엄청난 변화를 감당해야 했다는 점이 부모님 세대와 큰 차이점이죠.

힘겨운 과정이었지만 책을 통해서는 꽤 완만하게 표현을 하셨는데요. 많은 이민 2세들이 인종차별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교수님의 경우는 어떠셨나요.

그런 생각을 눈치 채 주시니 고맙네요(웃음). 하지만 똑같은 일을 당해도 받아들이고 걸러내는 것은 각자 상황이나 배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제 경우는 상황적으로 화가 나거나 짜증스러웠던 경험은 그다지 없었어요. 인종차별이라기보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면서 소수 인종이 경험할 수 있었던 감정적인 어려움은 다 겪었지만요. 심한 차별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당시, 그녀의 부모님은 꽤 깨어있는 지식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관습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아이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으로 간주하는 부모의 교육방식에 적잖은 저항감을 느꼈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시절, 탈출구가 됐던 것은 다름 아닌 발레였다. 그러나 조심스레 키워온 첫 번째 꿈은 다시금 부모와의 의견차로 인해 좌절되고 만다.

삼십대가 될 때까지 나는 링컨센터의 공연을 눈물 없이 볼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무대 위의 몸짓들이 내 안에서 순간 살아났지만, 영혼의 환상통에 불과한 운명을 깨닫고 이내 사그라졌다. 계속 있다가는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만 같아 나는 인터미션 때 극장을 떠나야 했다.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유년기 시절 가장 큰 상처로 무용을 관둔 것을 꼽으셨는데요. 지금의 의지를 가지고 그 시절로 돌아가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용을 선택할 거예요. 도중에 막히는 것은 절대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니까요. 적어도 스스로 ‘충분히 경험했다.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지속했을 거예요. 지금도 부모가 자녀의 꿈을 막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머니와의 일화를 어머니께서 약간 타이거마더 경향이셨던 것 같은데요. 꿈이 좌절된 상실감을 털어놓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좀 복잡해요. 제가 처한 상황은 한 문화에서만 사는 게 아니었거든요. 두 가지 문화의 가치관이 공존했고 상황에 따라 한쪽의 가치관에 따라야했어요. 그래서 더욱 부모님에 대한 제 감정을 명확하게 감지하기 힘들죠. 사실 한편으로 부모님이 이민을 와서 겪게 되는 심정적인 혼란에 대해 동정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성공은 달랐어요.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부모의 말을 따르자면 불가능한 것이었죠. 그런 점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게 되고, 접근을 거부하게 되더군요. 그런 뒤섞인 양상을 띠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이에요. 보통 자녀들은 ‘부모가 모든 것을 안다. 부모가 옳다’고 믿어야 하는데, 이민자 가정의 상황은 좀 다르기도 했고요. 자녀가 부모 보다 언어도 빨리 익히고 상황을 빨리 파악하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부모보다 더 많이 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것이 어린 나이에는 문화적인 충격으로 다가 왔어요. 조금 힘겹기도 했고요.




‘엄친딸’ 지칭은 난감, 비결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는 것

종신교수가 된 뒤 한국에 온 그녀에게 가장 익숙지 않은 지칭은 ‘엄친딸’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출중한 엄마 친구의 딸’이라는 의미다. 낯선 단어에 어리둥절했지만 그 의미를 알게 된 후 전혀 기쁘지 않았다는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 ‘모든 면’에서 출중한 것도 아닐 뿐더러 누군가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비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대단한 삶은 아니라고 겸손한 표현을 하셨지만 교수님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은 대단한 삶, 놀라운 성과로 보고 있는데요. ‘엄친딸’이란 지칭에 대해 난색을 표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엄친딸’이라는 말이 사실 부모가 자녀를 비교를 하는데서 나온 말이잖아요. 내 아이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느꼈어요. 제가 ‘엄친딸’이라고 불리는 것은 다른 분들의 딸들이 저와 비교되면서 부모에 의해 저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되는 건데 왜 부모가 자녀에게 그렇게 대하는 거죠? 사실 저 자신도 어머니에게 다른 친구 분의 딸과 비교를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웃음) 그런 것이 상처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좋아하지 않죠.

두 아이를 키우고 계신데, 교수님 스스로 자녀를 키우시면서 적용하는 방식이 궁금하네요.

자녀 양육 방식은 한순간에 결정하기보다는 발견의 과정을 거쳐 자리를 잡는 것 같아요. 제 경우 아이들을 키우기 전에는 어머니처럼 개입을 많이 하고 엄격하게 훈육을 하는 부모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한국에서는 ‘극성’스러운 엄마라고 하죠(웃음)? 그런데 막상 자녀를 키우다 보니 제가 그런 타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그런 차이는 한국과 미국의 양육방식 차이라기보다는 세대차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지금 현재 한국의 부모들 역시 제가 적용하고 있는 양육방식과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양육을 하는데 집중하는 것은 자녀와 보다 밀접하게 관계를 가지며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는 거예요. 제가 자랄 때 부모님과 저는 상대적으로 그런 경험이 적었거든요.

교수님을 엄친딸로 칭하는 부모들 중에는 그러한 성취를 추구했던 근본적인 취지, 즉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간과한 채 ‘성공’에 대한 동경만 가지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데요. 아마 서두에서 교수님이 느끼셨다는 시사점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모들이 정말 생각해야 하는 건 '자녀 성공을 위한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에요. 제가 성공을 통해 성취하고 싶은 것은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었어요. 일종의 자유의 확대를 통해 주변 사람에게 좀 더 베풀고,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죠. 제 목표에 부모님들이 동의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자녀들이 좀 더 폭넓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에 맞춰 자녀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지금 세대 간의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돼 있습니다. 정치적인 견해차를 비롯해 사회전반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큰데요. 부모 세대와 의견차 혹은 다른 인생관으로 힘겨워하는 젊은이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점에 대해 단호한 편이에요. 물론 부모의 역할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것은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끝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따질 필요 없이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어요. 부모의 방식은 과거의 방식이니까요.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젊은 세대잖아요. 부모의 방식에 대해 답답해하고 고민하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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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석지영 저/송연수 역 | 북하우스
‘세기의 수재’ ‘엄친딸 종결자’ ‘최고의 여성법학자’…. 거기에 아메리칸발레학교, 줄리아드 예비학교, 예일대 학부, 옥스퍼드대 대학원, 하버드법대 대학원 학력까지. 한 사람의 것이라기엔 너무도 화려한 이력이다. 이 모든 수식어가 석지영 교수 한 사람을 가리킨다. 북하우스에서 펴낸『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는 석지영 교수의 삶의 과정과 생각, 열정을 담고 있는 첫 에세이다. 석지영 교수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처음으로 쓴 에세이집인 이 책에는, 인문학ㆍ예술ㆍ 법 등 석지영을 만든 지식과 교양의 커리큘럼이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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