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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강인욱, 진정한 기원은 살아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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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유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고대인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복원하는 학문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은 그것을 처음 만들거나 발견해서 사용한 누군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고학 연구로 인해 옛사람들의 삶과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의 삶이 유리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테라 인코그니타』『유라시아 역사 기행』 등을 쓴 강인욱 교수는 이번에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제목처럼 일상에서의 사물과 문화의 기원을 파고든다. 술, 음식, 놀이, 여행 등 인간의 욕망이 담긴 기원들이다. 



기원을 알려주는 유물 이야기

<차이나는 클라스> 출연하신 걸 봤습니다. 외부에 고고학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서 하고 계세요. 

고고학 중에서도 제 전공은 소수예요. 시베리아랑 몽골, 북방 중국 쪽을 연구하는 국내 고고학자가 10명이 안 되거든요. 북쪽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참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누구든지 들어주면 알려야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대학 교수는 일반 과학원에 소속된 연구원과 달리, 끊임없이 자신의 지식을 확대 재생산해서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순수한 연구자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적어도 확대 재생산이 저 자신을 강화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많은 기회를 통해 알리려고 합니다.

‘덕업일치’를 하고 계시는군요.

그렇죠. 저도 학생들한테 대학원 올 때 가장 먼저 이거 가지고 행복할 수 있으면 하라고 해요. 행복하다는 게 다른 게 아니잖아요. 내가 이걸 하면 밤새도록 즐겁다, 그 점에서는 덕업일치가 맞죠. 요즘 같으면 오타쿠라고 말할 텐데, 제 친구들도 어릴 때부터 저를 그런 특이한 친구로 기억하더라고요.

예전에는 마니아라고 했죠. 

저희 때는 그냥 역사 도사라 했죠. (웃음) 옛날부터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길 좋아했어요. 이번 책도 그런 콘셉트예요. 남들은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인데 그걸 이렇게 이어 붙일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들 안 하시더라고요.

역사를 좋아하는 것과 고고학은 또 다른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역사학과 고고학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둘 다 역사, 우리의 과거를 안다고 하는 건 같아요. 기자님의 과거를 누가 알고 싶을 때 기자님이 썼었던 일기장만 가지고도 파악할 수 있겠죠. 오늘 내가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같은 정보가 나오니까요. 하지만 사진이나 동영상을 본다면 당시 옷과 풍경 등 그 사람의 일기에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죠. 고고학은 역사학이 보여주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줘요. 또, 문헌으로 쓰여진 역사는 무한히 자료가 늘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옛날 모습들은 계속 발굴될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바라보는 과거가 계속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과거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문자 시대 이전의 자료를 본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겠네요.

고고학 하면 역사학을 보조한다고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하나의 봉우리를 두고 서로 다른 루트로 올라가는 등산과 같다고 비유해요. 다른 길을 가다가 만날 때도 있어요. 더 큰 문제는 뭐냐 하면, 인간 역사에서 99.9%는 문자가 없었어요. 문자가 있었던 시간은 기껏해야 5천 년밖에 안 되거든요. 100년 동안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 한 달만 가지고 그 사람을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적어도 고고학도 역사학 못지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원을 알려주는 유물 이야기를 책의 주제로 삼으신 것 같은데요. 어떤 기원을 생각하셨나요?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제목은 좋아하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세상의 모든 아침>이라는,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 영화가 있어요.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문장에서 제목이 유래했더라고요. 다시 과거를 알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본모습을 되짚어가는 과정입니다. 즉 기원을 찾아가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그 과정이에요. 매일매일 바뀌는 아침처럼 그 기원도 바뀌어 나가고 그 기원을 찾아가는 그 모습이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을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기원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전작에서도 기원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언제나 우리 한민족의 기원이 제 평생의 화두였거든요. 고고학 공부를 하는 것도, 그 이후 시베리아 유학도 결국은 같은 목표였어요. 처음에는 하나의 기원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 제 인생이 되어 가고 있더라고요. 계속 기원을 이야기 하지만 내용을 보면 사실 다양한 화두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유라시아 역사 기행』에서는 지역적으로 넓어진 한국의 이야기를,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은 과학을 찾아가는 과정, 이번 책에서는 생활의 형성, 문화의 형성을 다루고 있죠.

여러 가지 생활상을 돌아보면서 현재와 과거의 상을 엮어냈어요. 

어떤 때 한 유물을 보면 술자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갑자기 제가 좋아하는 음악의 한 소절이 떠오르기도 해요. 집필 과정은 영화 음악, 재즈 같았어요. 재즈는 다양한 음악들이 개성 있게 계속 변주하면서 애드리브 하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자료들이 막 머릿속에서 섞여 있다가 예상치 못한 내용이 나오죠. 처음부터 어떠한 결론을 의도하고 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진정한 기원은 살아남은 것

논쟁적인 지점이 있었어요. 김치와 인삼 얘기였는데, 중국이 요즘 동북공정을 벌이면서 김치와 인삼의 기원이 중국이라고 하기도 하잖아요. 책에서는 그런 기원을 찾는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주셨는데요. 

기원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은 기원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기원은 물건이나 문화의 본질을 아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그냥 ‘기원은 중국 것’. 거기서 끝을 맺으려고 해요.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아니야, 우리가 기원이야!’라고 하는 게 답이 아니에요. 왜 우리 것이 유명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누가 더 필요 있게 만드느냐에 따라 진정한 원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북반구 전체는 다 야채를 절이는 문화가 있었으니까 김치의 기원이 어느 한 지점이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렵죠. 진정한 기원은, 원조는 살아남은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에 기원이 있다고 생각해요. 약효가 좋아서 한국 인삼이 유명한 것이지 누가 처음 최초로 인삼 재배를 개발했다고 한들 필요가 없으면 아무도 인삼을 주목하지 않겠죠. 동북공정도 마찬가지예요. 중국이 어떤 유물이나 역사의 기원이 자신이라고 외치면 그제야 우리 거라고 말하는 게 진정한 대안이 아니라, 저 사람들 또 치졸하게 억지 부린다고 말해야 하는 거죠. 햄버거 기원이 미국입니까, 독일 함부르크입니까? 중요하지 않아요. 저희가 중국과 똑같은 식으로 논쟁을 벌이면 저희가 중국처럼 어리석어져요. 기원이라는 키워드를 우리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어떠한 고고학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 누가 원조냐는 결론이 되어버려요

책에서 기후 위기를 언급했는데요. 기후 위기가 고고학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지금 수많은 유물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있어요. 땅속에 있으면 다 똑같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유물이 통째로 나오는 게 있는가 하면 흔적도 없이 흙밖에 안 남은 경우도 많아요. 유물이 얼음 속에 있으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거든요. 고고학의 원칙 중의 하나가 ‘땅속에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예요. 땅속에서 몇천 년 있었으니까 앞으로 몇백 년 더 있는 건 문제도 아니에요. 하지만 온난화로서 그 룰이 깨지고 있어요. 소리 소문도 없이 빙하가 땅속에서 녹고 있어요. 빨리 얼음 속에 있는 유적을 미리 건져내지 않으면 다 사라져 버리고 없어요. 또 하나는 침식 작용이 심해지고 있어요. 지구 온난화가 홍수 해일을 일으키면서 강가에 있는 유적들을 다 쓸어버립니다. 서울 시내 롯데월드에 있는 석촌동에 백제 고분 몇백 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안 남았어요. 한강이 물이 바뀌면서 계속 강가에 있는 유적은 없어지고 사라지거든요. 물이 천천히 흐르면 없어지기 전 조사할 수 있는데, 한 번에 물길이 들이치고 없던 강이 생기면 유적은 하루아침에 없어져요.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이라 유적지까지 찾자는 소리에는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겠지만, 과거의 유적을 우리가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주는 건 우리의 의무입니다. 

고고학 연구에서 요새 제일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제 주 연구가 러시아와 시베리아 쪽인데 코로나와 전쟁으로 인해 관계들이 멈춰 있어요. 발굴 조사를 할 수 없다는 게 제일 큰 안타까움이고요. 또 하나, 전반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지원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사실 제가 이렇게 대중서를 자주 쓸 수 있었던 것도 코로나와 연관되어 있어요. 발굴 현장에 직접 가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이걸 이용해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고고학과, 점점 나이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느끼는 고고학의 모습이 달라진 게 있나요?

현장에 갔을 때 첫 번째 느낌은 ‘육체적으로 힘들다’였어요. 진짜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는, 속칭 3D 업종이라는 느낌이 있었죠. 실제 고고학에 종사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차이는, 박물관에서 본 유물들은 그나마 아름답고 완형으로 잘 구현이 되어 있는데요. 현장에서는 다 흙빛으로 덮여 있어요. 색깔이 모노톤이에요. 자잘한 흙빛 조각밖에 안 나옵니다. 박물관에서 지나가면서 보는 유물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십 명이 몇년의 기간 동안 엄청나게 노력한 거라는 생각을 나중에야 했어요. 하지만 장점도 있죠. 유물 앞에서 무한한 상상력이 생겨요. 박물관에서 유물을 봐도 신기하다, 저거는 누가 썼을까 생각하겠지만 현장에서 손에 딱 걸려서 건져 올리면 유물이 나온단 말이죠. 그러면 그 유물은 전 세계에서 제가 처음 보는 거예요. 그 느낌은 발굴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그런 생생한 느낌을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책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가 느끼는 과거는 변한다

인간의 기원, 인간의 욕망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인간의 본능이 계속해서 변하지 않는다면, 고고학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 걸까요?

우리는 우리를 몰라요. 제 본성이 어떤지 누가 과연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르거든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했을 때 제가 『테라 인코그니타』에서 과거 인간들이 팬데믹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고고학으로 설명한 부분이 있어요. 처음 겪는 것 같고 기록도 제대로 없지만, 사실 인간은 대부분 일들을 다른 스타일이지만 어떻게든 겪어왔었고요. 인간의 본질은 우리도 모르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고고학이 밝혀나가는 인간의 모습이 추상적일 수도 있고 단편적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고고학이 밝히는 인간의 본성은 다른 어떠한 학문이나 역사나 철학이나 어떠한 학문에서도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인간에 대한 본질을 추구하는 데 고고학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 강연이나 대중적 글쓰기를 하면서 영향을 받았던 작가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대학원 때 학과 사무실에서 도서실 조교를 했는데, 그때 김원용 선생님 책이 많았어요. 그중에 가장 제가 인상 깊었었던 건 『삼불암 수상록』에 수록된 ‘생선, 바다, 지석묘’라는 수필인데요. 제 책에도 그 부분을 한 꼭지 넣었어요. 제 나름대로의 감사 표시죠. 

고고학을 더 깊이 볼 수 있는 다른 책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제 책에 많은 영감을 준 책인데요. ‘황제의 기린’(The Emperor's Giraffe)이라는 책이 있어요. 특정한 유물 하나를 놓고 거기에 대한 고고인류학적인 해석을 하는 책이고요.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라는 책이 있거든요? 실크로드에서 수많은 물건들이 중국 당나라로 가는 이야기를 읽으면 입에 침이 고여요. 두꺼운 책에 그림이 한 장도 없어도 텍스트가 주는 상상력이 끝이 없죠. 러시아의 아르세니예프는 ‘데루스 우잘라’라는 책을 썼는데요. 쿠로사와 아키라가 영화로도 만들었죠. 세상을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많이 배웠습니다. 

‘객관적인 과거는 변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대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느끼고 배우는 과거는 변합니다.’(346쪽)라는 문장이 있어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 

매일 새로운 유물이 나옵니다. 박물관을 예로 들면, 50년 전 국립박물관 유물이 지금 얼마나 전시되어 있을까요? 20%도 안 될 거예요. 같은 과거이지만 매일 업데이트가 되고 있어요. 계속 우리 과거에 대한 새로운 유물이 나옵니다. 객관적인 과거는 변한다고 볼 수 없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과거는 변하고 있어요. 제 책이 가진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네버 엔딩 스토리’예요. 고고학은 하나의 이야기 같아요. 이 안에서 새롭게 밝혀지는 인간의 본질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계속 전달하는 거 아니겠어요? 매일 인물이 바뀐다는 점에서 저희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다. 10년 뒤에 쓰면 또 다른 새로운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이야기가 튀어나오겠죠. 




*강인욱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고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살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및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소장이다. 유라시아와 고조선의 고고학을 주로 연구하며 우리의 과거를 좁은 한반도의 틀을 벗어나서 넓게 보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강인욱의 고고학 여행』『테라 인코그니타』『유라시아 역사 기행』 등 다수가 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BS 〈클래스ⓔ〉에 출연하고, 「한겨레」,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고고학의 진정한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세상 모든 것의 기원
강인욱 저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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