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는 르포 작가로 여러 책을 내온 은유 작가가 한영, 한일, 한독 시 번역가 7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산문이다. 인터뷰는 늘 어렵지만, 특히 시집과 인터뷰집 저자분을 인터뷰할 때마다 더욱 어려움을 느낀다. 인터뷰에 대한 메타 인터뷰, 규명되지 않는 시 언어를 향한 질문. 양쪽 모두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를 두고 시작한 인터뷰 역시 어려움이 두 배일 거라 생각했다. 시를 번역한 사람들의 인터뷰집이라니.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흘러가는대로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다. 시와 번역의 세계로 풍덩 빠져들자 새로운 것이 보였다.
다시 시를 읽고 싶다
르포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작가님의 첫 책 『올드걸의 시집』은 시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다시 시로 돌아간 기분을 여쭤보고 싶어요.
어떤 사람은 휴식을 취할 때 자연스럽게 TV 채널을 돌리듯이, 저는 시를 읽어요. 시가 '정신의 우물'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식상한 말이긴 하지만 정말로 저에게 쉼과 힘을 주는, 세상 속에 빠지지 않고 정신과 감각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비밀 약 같아요. 인생을 돌아봤을 때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는 질문을 들으면 늘 시 세미나를 했던 장면이 생각나거든요. 시를 읽었던 2년 동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후로 르포 작업을 하던 와중에 사회적으로는 문단 내 성폭력 공론화가 일어나면서 시와 멀어졌어요. 시 장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시인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 자체가 시를 멀리하는 한 요소가 됐었어요. 다시 조금씩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인터뷰 제안을 받아서 해야겠다 생각했죠. 저도 작가 생활이 10년이 지나면서 글을 쓸 때의 첫 마음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고 돌아가보고 싶더라고요.
'시는 낮은 곳을 살피는 언어이고, 르포는 가리어진 존재를 드러내고 인간의 고통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내겐 뿌리가 같은 일'(11쪽)이라는 문장이 있어요.
영한 시 번역이 아니라 한영 시 번역가 인터뷰잖아요. 방향이 바뀌는 번역이라는 점에서 확 꽂혔던 것 같아요. 제가 르포를 하는 것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은 이야기,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이야기를 알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시도 그렇고요. 그 시를 또 번역해서 불모지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매혹적으로 느껴졌어요. 우리가 획일적으로 상상하는 삶의 모습을 벗어난 다른 삶의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 그게 이 사회의 견고한 프레임을 흔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존의 권위에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고요.
인터뷰이 선정은 출판사 쪽에서 먼저 제안을 주셨어요?
같이 선정했어요. 이미 이름을 들어봤거나 작업을 같이 했던 번역가들도 있고요.
인터뷰이 퀴어 비율이 높았는데 그것도 상당히 놀라웠어요.
이번이 여섯 번째로 낸 인터뷰집인데, 그동안의 인터뷰이는 이성애자 비율이 월등히 높았어요. 그게 이상하지 않았는데 퀴어 비율이 높았을 때는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책은 일부러 퀴어 책이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어요. 모든 사람이 다 이성애자일 때는 아무 거리낌이 없고 이상함을 못 느끼는데, 퀴어만 이렇게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죠.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데 우리가 안 보거나 안 보이는 존재잖아요.
제 가설은 이래요. 출판계 관계자나 독자 모두 대부분 어떤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고, 자기의 소수자성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를 찾아나가는 거라고요.
맞아요. 자기 안에 뭔가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이 문학이라든지, 외국어를 더 찾아나서는 것 같아요. 언어에 대한 갈구와 갈망이 있는 거죠. 내 삶이 설명되지 않고 내 언어가 설명되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끼잖아요. 그래서 저도 항상 자기 언어가 없는 자는 누구나 약자이고, 그래서 우리가 자기 언어를 만들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는 해요. 퀴어가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존재 설명이 안되고 부정당하니까 문학을 통해서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으며 언어를 확장하는 거죠.
한국어로 나눈 깊은 대화
책에 실린 인터뷰 모두 독립책방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 콘셉트는 편집자 분들이 정했는데, 어떻게 보면 작은 책방이라는 게 한국 사회에서 시적인 공간 같거든요. 작은 책방을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간에 따라 인터뷰의 느낌이 달라지기도 할까요?
일반 카페나 인터뷰를 위한 장소보다는 마음가짐이 확실히 달라지는 것 같아요. 작은 책방마다 개성이 다르잖아요. 일단 저는 작은 책방에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정이 고조돼요. 또, 인터뷰에 공간 이야기가 조금씩 들어가는데, 가령 알차나와 인터뷰한 곳은 '어쩌다산책'이었거든요. 작은책방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좀 있는 곳이에요. 그때그때 제 정서와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갈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닌 인터뷰이가 있었어요. 인터뷰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알차나 번역가가 제일 걱정이었어요. 한국 체류 기간이 제일 짧은 인터뷰이였거든요. 그런데 말을 너무 잘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한국어가 제일 서툰 사람인데 제일 깊은 곳까지 교감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역시 소통에는 그렇게 많은 어휘가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툴기 때문에 더 꾸며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지 않으니까 직관적으로 와닿는 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박술 번역가가 독일어랑 섞여서 그런 건지 한국어 문장 구조를 굉장히 복잡하게 말씀하더라고요. 녹취를 풀면서 많이 어려웠어요.(웃음)
차별에 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하지 않아야 될 말 중 하나가 '한국 사람 다 되셨네요'라든가 '외국인인데 한국말 너무 잘하시네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내가 한국인으로서 무지를 드러낼까 봐 걱정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알차나 때 인터뷰가 특히 (그랬어요). 인터뷰는 사실 조심스러워요. 친한 사람이면 내가 실수를 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인터뷰는 일로 만나는 일회성 만남이어서 항상 긴장이 되죠. 또한, 제가 영어를 능숙하게 못하는 게 처음에 걱정이었어요. 내가 영어를 잘하면 이분들이 번역한 부분을 원문 대조를 하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책이 평론집도 아닌데 거기까지 가면 너무 복잡해지잖아요. 다른 언어는 못 해도 한국어로 깊은 대화를 나누면 된다고 위안했습니다.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으로 소수성, 자기 돌봄, 감탄하는 능력, 운동으로서의 예술 능력을 꼽았습니다.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한 건 내 노력과 운으로 만회할 만한 부분이 있지만, 퀴어성과 인종은 노력으로 바꿀 수 없죠. 그런 면에서 인터뷰이 모두 소수성을 갖고 있다는 점, 그래서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나를 설명해야 하는 절박함을 안고 산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보통 자기가 괴롭고 피폐해지면 남을 해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 문학으로 삶을 인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좋았고요. 감탄하는 능력도 놀라웠어요. 사랑하고 있는 거죠. 계산 없이, 목적 없이, 물에 풍덩 빠져서 자기 속성이 바뀔 때까지, 하염없이 그 안에 동화될 수 있는 건 엄청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소제 번역가가 번역 콜렉티브를 만들었잖아요. 기존의 문단 권력에 끼려고, 포함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기가 무언가를 만들어서 판을 흔들어 놨다는 게 정말 멋있었어요. 그게 진짜 예술 아닐까요? 어떻게 이렇게 보석 같은 사람들이 나타났을까, 되게 좋은 삶의 참조점이 되어주는 사람들이다, 혼자 감동을 하면서 작업했어요.
번역가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었다면요?
정리되지 않은 하나의 차이점이라면, 번역가로서의 기득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시간이 조금 필요했어요. 일단 한국에서 두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쓴다는 것 자체가 문화 권력이에요. 그야말로 교차성이죠. 박술 번역가는 독일에서 비트겐슈타인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독일 사람들은 늘 자기한테 한국 관련한 것들만 물어보고 자신이 한국의 대변인처럼 되는 게 싫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한국이라는 벗어버리고 싶었던 국적이 자기 삶으로 통합됐거든요. 자기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작업들이 생긴 거예요. 우리가 다 벗어버리고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내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정체성이나 찢어버리고 싶은 것들을 삶으로 통합해내는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어요.
시를 읽으면 겸손해져요
인터뷰하면서 이 사람들이 정말 시와 문학을 사랑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의 가중을 굳이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보통 사람에게 상처 받고 세상이 꼴 보기 싫으면 책을 읽어요. 책은 내가 어떻게 다시 사랑을 하면 좋을지 다른 방향을 제시해 줘요. 그래서 책을 보고 나면 또 사랑할 힘이 생기고, 내가 몰랐던 사람을 향한 관심이 일어나면서 상호 작용하는 것 같아요. 사람을 사랑하려면, 잘 사랑하려면 문학을 꼭 읽어야 해요. 글쓰기 수업할 때도 항상 시를 하나씩 읽거든요. 그러면 다들 괴로워하고 못 읽겠다 해요. 이해가 안 되니까요. 하지만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거라고 말하죠. 시를 읽으면 사람이 겸손해져요. '나는 어떻게 해도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거죠. 우리가 세상과 사물과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자신의 논리 체계 안에 들여오는 건데, 세상은 더 크고 나는 너무 작은 존재여서 나라는 존재의 사고와 감각의 틀이 얼마나 좁고 편협한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돼요. 저는 시 읽기가 명상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는데 뭔가를 하는 그 시간이 존재가 회복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시 바깥에서는 효율성과 합리성의 체계인데, 시는 다른 원리로 돌아가는 세계라고 할까요?
요새 제가 하는 고민과 비슷한 것 같은데, 세상이 점점 더 빨라져서 사람들이 문학을 안 읽게 되는 것과, 문학과 시를 읽지 않기 떄문에 더 사람들이 빨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시가 안 팔리는 건 아니에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시장이 있고 유명한 시인들은 몇 쇄씩 시집을 찍어요.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로는 아닐 거예요. 시는 독서 효능감이 없어요. 시간 투자 대비 효과와 효능이 있어야 하는데 그거랑 대척점에 있는 게 문학이거든요. 이해 안 되는 시를 읽느니 조금 더 유명하고 쉬운 시를 찾아 가는 경향은 있는 것 같아요.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글쓰기 강의에서 사람들이 책을 더 안 읽는다거나 문학과 멀어지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실 때가 있나요?
피부로 느끼는 게 하나 있다면, 사람들이 훨씬 바빠졌어요. 예전에는 글쓰기 수업을 하면 수업이 길어져도 이탈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로 나가요. 책도 읽을거리가 많아지니까 더 빨리 많이 읽으려고 하고, 두꺼운 책을 힘들어하고요. 저만 해도 예전에 『쓰기의 말들』을 냈을 때 가장 큰 고민이 '이렇게 얇은 책을 내도 되는가'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쓰기의 말들』이 얇다고 할 수 없더라고요. 더 얇은 책도 많이 나오고요. 어떤 책과 더 깊게 만나려면 한 책을 여러 번 봐야 하고 그게 내 성장과 사고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무리 없이 읽어내고 독서 효능감을 주는 책을 많이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번역가의 인터뷰가 내 삶과 유리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안 읽고,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 안 읽게 되고요.
나와 거리가 먼 것 같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읽어서 나와 상관이 있는 걸 알아내는 게 독서 같거든요. 제가 작업할 때도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걸 했을 때 제일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조금 더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 경험을 했어요. 가령,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인터뷰를 할 때 간첩은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 이후로는 제가 몰랐던 한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고 그 뒤로 굳어 있고, 멈춰 있고, 자족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의지적으로 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다른 분들도 한 번 경험해 보면 좋겠어요. 자기랑 가장 먼 이야기인 것 같은 이야기로 뛰어들어서 거기서 나도 몰랐던 자기 이야기를 만나는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그게 전 독서의 재미 같아요.
시와 번역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번역과 인터뷰는 되게 닮아있어요. 번역은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는 것이고, 인터뷰도 어떤 삶과 삶을 연결하는 거죠. 전달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자기 안에 많이 들어올수록 우리는 좀 더 자유로운 존재가 돼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게 자유죠. 누군가를 이해 못 하면 내가 괴롭잖아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저는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훌륭한 작가 되고 싶었는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남에게 상처만 안 줘도 훌륭한 사람 아닌가, 이 생각을 진짜 많이 하거든요. 편협한 세계관으로 한 작은 말 한 마디 때문에 상처를 많이 주면서 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인간이 많이 배워야 한다는 걸 느껴요. 저에게는 인터뷰가 배움의 수단이에요. 번역을 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제가 번역가라고도 생각해요. 삶의 번역가. 누구는 이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제 언어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일을 하잖아요. "우리는 신이 만든 세상에서 태어나지만 언어가 만든 세상에서 살아"(『은유가 바꾸는 세상』 중)가잖아요. 언어가 없으면 내 아픔을 표현할 수 없어요. 시도 삶과 사람,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고, 인터뷰도 노력이고, 번역도 노력인 것 같아요. 삶의 상황 계속 바뀌잖아요. 우리가 매일 힘든 이유가 달라지죠. 매일 유연하게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도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곘나요?
어느덧 제가 50대예요. 꼬박 기성세대가 됐고 제 주변에도 저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구와 선배들이 있는데, 이 책을 보내줄 때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언론에 나오는 모습은 한정적이에요. 세대 간의 언어들이 서로 섞이는 게 중요한데, 그 기회가 진짜 많이 없어요. 그럴수록 이런 책도 읽어보고 타인의 언어를 서로 공부하면 좋잖아요. 글쓰기 수업을 계속하는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다양한 세대가 와서 서로 배움이 일어나는 상황이 좋아요.
*은유 글 쓰는 사람. 누구나 살아온 경험으로 자기 글을 쓸 수 있을 때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여기저기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한다. 성폭력·가정 폭력 피해자, 시민 단체 활동가 등과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 내는 일을 돕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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