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성에 대한 묘사만 있고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 20세기 초반 여성 예술가를 통해 '돌봄'과 '작업'이 양립 가능한지를 탐구하며 쥴리 필립스는 이렇게 질문한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엄마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보거나 편견에 가두고는 한다. 그렇다면 진짜 엄마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탐구의 결과물인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는 끊임없는 방해와 분열을 용감하게 가로지른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수전 손택 등 여성 예술가들이 겪은 혼돈의 시간들, 그리고 그것이 창조성으로 변하는 순간들. 박재연, 박선영, 김유경, 김희진 네 여성 번역가는 그 복잡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함께 토론하고 옮겼다.
작업을 마치며 박재연 번역가는 '별자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고 했다. 여성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육아와 작업을 저울질하며 분투했던 일상이 모여 별자리를 이루는 듯했기 때문이다. 에세이 앤솔러지 『돌봄과 작업』에서 밝혔듯, 박재연 번역가 역시 공부하는 엄마로서 '돌봄'과 '창조성' 사이에서 여전히 실험 중이다. 그 끝없는 '엄마됨'의 경험이 이번 번역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엄마의 삶에 이야기를 부여하다
최근 성평등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빼라는 일부 학부모 단체들의 민원이 논란이 됐는데요. 번역하신 그림책 『줄리의 그림자』가 리스트에 포함됐죠.
성평등, 인권 관련 그림책을 주로 번역해서, 제가 번역한 그림책이 소위 '불온서적' 리스트에 많이 들어갔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불온한 사람이 됐어요.(웃음)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를 공동 번역하셨어요. 돌봄과 창작을 이어온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방대한 전기인데요.
돌고래 출판사에서 에세이 앤솔러지 『돌봄과 작업』부터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그리고 곧 출간될 여성주의 상징 사전까지 총 3권을 기획했어요. 처음 번역 의뢰가 왔을 때는 한 번 고사를 했어요. 그전까지 프랑스어로 쓰인 책을 주로 번역했기 때문에, 영미권 책을 번역해 오신 분이 맡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원서를 보니 대표님이 왜 제게 의뢰하셨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이 책이 여성주의 텍스트인 동시에 역사, 예술 텍스트잖아요. 여성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1, 2차 세계 대전이나 식민지, 인종 문제 등 다양한 역사적인 맥락이 쏟아져요. 전문 지식이 있으면서도, 양육의 경험을 잘 이해하는 번역자가 필요했던 거죠.
여성 번역가들과 함께 작업한 경험은 어땠나요?
모든 번역자들이 몇 번이나 서로의 원고를 돌려보며 교정지를 검토했어요. 번역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 편집자의 역량이 참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번 책도 편집자님이 처음부터 번역의 톤과 용어를 잘 조율해 주셨어요. 특히 '모성', '돌봄' 등 흔히 우리가 특정 뉘앙스로 반복해서 사용해온 단어들을 세심하게 번역해야 했죠. 편집자님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그 의견을 적극 반영하면서 작업했어요.
'모성'에 대한 풍부한 단어들이 책 전체에 제시됩니다. '돌봄'에 대한 사전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마더'라는 단어도 엄마와 어머니, 한자 '모(母)'의 느낌이 각각 다르잖아요. 이 책에서는 주로 '엄마'로 많이 번역했는데요. 책을 읽을수록 작가들 당사자의 이야기로 읽어도 좋지만, 자녀의 입장에서 읽으면 완전히 다르게 읽힐 만한 대목들이 보이더라고요. 작가의 아이들은 엄마에게 기대를 품었다가 배신도 당하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겠죠. 이런 친밀한 관계들을 '모(母)'라는 한자에 다 담을 수 없어서 친근한 '엄마'를 많이 사용했어요.
한국어판 제목은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인데요. 'The Baby on the Fire Escape(비상계단에 방치된 아기)'라는 원제도 재미있습니다.
한국 독자들이 과연 '비상계단(Fire Escape)'을 듣고 유사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미국에서 비상계단은 1900년대 초반의 건물 야외에 있는 공간의 이미지거든요. 결국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원제와는 완전히 다른 제목을 택했죠. 어떤 독자분은 제목에 굳이 '사랑스러운'을 넣어야 했냐고 하시더라고요. 저희는 '사랑스러운'이라는 단어에 애증이 모두 섞인 반어적인 의미까지 담고 싶었거든요. 텍스트를 번역할 때, 독자에게 온전하게 의미를 전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죠.(웃음)
부제는 'Creativity, Motherhood, and the Mind-Baby Problem(창조성, 엄마됨, 마음과 아이의 문제)'인데요.
책을 맡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부제였어요. '몸과 마음의 문제(Mind-Body Problem)'를 살짝 비틀어 'Mind-Baby Problem'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그걸 눈여겨보면서 다시 읽으니까 결국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더라고요. 1장부터 피임과 낙태,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나의 일부이기도 했던 아이가 떨어져 나가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는 이야기. 그게 이 책이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 중 하나인데, 그 느낌을 제목에 못 담은 것이 아쉬웠어요.
재미있는 건, 저자 쥴리 필립스도 육아를 하면서 이 책을 완성했다는 거예요. 2011년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처음 집필에 착수해 10년간의 자료 조사와 정리, 집필을 거쳐 2022년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서야 책을 완성했는데요.
저자를 만나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이걸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당신 너무 순진했어요.(웃음)" 여성 예술가들의 역사를 그려보겠다는 기획이 절대 금방 끝날 리 없잖아요. 쥴리 필립스도 서문에서 말해요. "엄마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요" 하면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는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몇 번이나 말해줘도 주제를 기억하지 못한다고요. 그런 반응을 잘 아니까, 번역가인 저도 이 기획이 얼마나 방대하고 야심 찬 것인지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위대한 작가들도 다 아이를 키우면서 성공했어" 하는 단순한 메시지로 축소되지 않도록요.
여성의 삶을 서술하는 방식도 좋았어요. 이런 고난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교훈이 아니라, 여성 작가들이 겪은 좌절과 혼란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죠.
화가 앨리스 닐이나 작가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귄 등 제가 한 번쯤은 공부했거나 들어본 인물이지만, 연애, 결혼, 육아 같은 복잡다단한 개인사를 이토록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어요. 대부분의 서적에서는 이들을 작품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니까요. 물론, 전기의 특성상 이 책은 '작가가 이런 힘든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어요. 미술 사학자로서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어요. 학계에서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일대일로 연결 짓는 것은 오래된 방식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자가 정말 몰입감 있게 여성들의 삶을 쓰잖아요. 마치 타임 슬립을 해서 당시의 앨리스 닐을 만나면 "언니, 그 남자는 정말 아니야"하고 이야기해주고 싶을 정도로요.(웃음)
각 장 사이사이에 '불안지대'가 있어요. 양육과 창조성을 오가는 사이에서 여성들이 경험한 방해와 분열의 여러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 책의 미덕은 윤리적인 판단을 유보하고 다면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거예요. 여성의 삶을 두고 "왜 이렇게 살았어, 왜 그때 아이를 낳았어" 책망하기는 쉽죠. 그렇지만 저자는 최대한 판단을 내려놓고 여성들의 삶을 써요. 그래서 읽다 보면 앨리스 닐의 선택이 수긍이 갔다가 도리스 레싱의 엄마가 이해됐다가 계속 공감의 대상이 확장되더라고요. 불완전한 모습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있으니까요. 긴 시간 번역 작업을 하면서, 저도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됐어요. 같은 여성인데도 '저 사람은 나와 비슷한데 왜 이렇게 일을 잘하지? 난 이만큼 하는데 왜 저 사람은 저것 밖에 못 하지?' 쉽게 판단하는 심리적 유혹에 빠지잖아요. 그런데 책 속 여성들처럼 모두에게 겉으로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장면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설자, 매개자로서의 번역가
책이 출간된 후, 북토크도 많이 열렸는데요. '엄마'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고요.
저는 북토크 행사를 많이 하는 역자 중 한 명인데요. 번역이란 작업이 단순히 언어를 홀로 옮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화 코드를 적극적으로 번안하는 일이잖아요. 책 바깥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독자들의 독서 경험을 확장시키는 것 또한 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와 달리 번역가는 해설자, 매개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북토크 행사에서는 책에 다 담지 못한 그림, 사진 자료도 보여드리고, 생생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문화사적 배경을 알려 주기도 하죠. 행사가 끝나면 독자분들이 '혼자 읽기 너무 어려울까 봐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 세미나를 듣고 바로 읽으니까 30분만에 한 챕터가 지나가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번역가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잖아요. 번역하는 내내 경험이 떠올랐겠어요.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다 보면, 남성 동료로부터 "어떻게 다 해내냐"는 경탄 섞인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럴 때마다 "저도 다 잘하고 있지 못해요" 하고 넘어가는데요. 이 책의 한 문장을 보고 정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엄마의 삶은 너무 묘사적이었다" 엄마도 디테일한 사정이 있고, 개별적인 관계들이 있는데, 다 지워지고 헌신적인 모습이거나 우울한 모습 두 가지로만 묘사되는 거죠.
돌봄과 작업은 물리적으로 공존하는 게 아니라, 화학적인 작용처럼 일상에 뒤섞여 있어요. 여성들이 마주하는 구체적인 장면들을 정확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령,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 회의를 할 때 아이가 저를 찾으니까 한 남성 선생님이 "아이가 칭얼대는구나"라고 하시더라고요. 거기에 제가 "일곱 살 아이는 칭얼대지 않아요, 선생님"하고 말씀드렸어요. 그분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공감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그럴수록 저는 구체적으로 아이의 상태와 제가 해주어야 하는 일을 설명하죠. 구체적인 일상의 언어로 양육의 과정을 전달하는 건, 서로를 위한 일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야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을 편견의 시선으로 보지 않을 테니까요.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 선언문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부터 『모두의 미술사』, 그래픽 노블 『비비안 마이어 : 거울의 표면에서』등 다양한 책을 작업해 오셨어요.
프랑스에서 미술사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제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학회에 갔는데 "전공이 서양이냐 동양이냐, 시기는 현대냐 아니냐" 물어보시더라고요. 아, 여기는 나를 기존의 틀에 맞춰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구나 막막함이 들었어요. 그런 시기에 마침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번역해 보지 않겠냐는 의뢰를 받았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요?" 되묻는 소심함이 있었거든요.(웃음) 저는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고 여성 문제에 관심 있을 뿐인데 제가 맡아도 될까요? 그런데 프랑스 혁명 시기 여성들의 선언문이니 당시 정치사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훨씬 생생하게 번역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다양성의 가치를 일깨우는 그림책도 많이 번역하셨는데요.
아이의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직업병 탓에 "이건 어떤 화가가 생각나네, 이건 어떤 스타일이네" 이야기를 해주고는 했거든요. 그런데 동네 책방에서 강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이 온 거예요.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는 선생님만 해주실 수 있어요"라고 많이 지지해 주셨고, 용기를 얻어서 강연을 하게 됐죠. 그 강연을 들으신 편집자님이 오랫동안 묵혀 둔 그림책의 역자를 이제야 찾은 것 같다고 연락을 하신 거예요. 그게 『줄리의 그림자』였어요. 보통 어린이책의 경우 잘 팔리는 시기가 있어서 출간을 서두를 때가 많은데, 하나의 책을 그렇게 오랫동안 묵혀 두고 고민하신 것이 참 좋았어요.
현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 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세요. 학자로서 번역 작업을 병행하는 어려움은 없나요?
학계에서 번역은 연구 실적으로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이에요. 번역서 한 권을 옮겨도 학술지 논문 한 편을 써서 받는 점수의 절반도 안 되거든요. 번역이 언어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맥락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한데, 학술 노동으로 인정해 주지 않으니 많은 분들이 선뜻 나서기가 어렵죠. 특히 저처럼 학술서가 아니라 그림책, 그래픽 노블을 번역한 경우에는 더 인정받기가 어려워요.
한 번은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학교 도서관에 그림책과 그래픽 노블을 신청했는데 자동 반려가 된 거예요. 도서관에 연락을 했더니, 글자 수가 너무 적어서 규정에 맞지 않기 때문이래요. 결국 총장님께 문의를 했더니 '그건 말이 안 되죠' 하시면서 관련 규정을 없애 주셨어요. 제가 놀랐던 건, 다들 그 규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아무런 시도를 안 했다는 거였어요. 현재의 대학생들은 영상과 이미지,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창작하는 세대잖아요. 그런데 업무 현장에서는 아직도 경직된 규정과 분류를 맞닥뜨리게 돼요. 그게 참 서글프죠.
최근에는 프랑스에 다녀오셨다고요.
번역 작업이 하나 둘 쌓이다 보니, 출판사에서 번역 시리즈를 함께 기획하자는 제안도 많이 주시거든요. 이번에 프랑스에서 책방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책들을 둘러봤는데요. 프랑스의 경우에는 박물관, 미술관에 딸린 아트북 숍이 굉장한 큐레이션 공간이에요. 역사적인 장소에 맥락이 딱 맞는 책이 올라 있을 때, 완벽히 동기화되었다는 느낌이 들죠. 마침 얼마 전 새로 개관한 현대미술관에 들렀는데, 거기서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책이 진열되어 있어서 '와, 운명이다' 했죠.
앞으로 출간될 책이 기대되는데요.
제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정체성'인 것 같아요. 곧 출간될 『모든 공주는 자정 이후에 죽는다』도 90년대 프랑스 가족 이야기인데, 배경이 파리와 같은 중심부가 아니라 프랑스 변두리 도시예요. 가족 구성원 모두 저마다의 고민이 있어요. 엄마는 바람이 난 남편과의 결별에 놓여 있고, 큰 딸은 사춘기인데 사랑하는 남자친구와의 감정이 진짜 사랑인지 혼란스러워하고, 막내아들은 남자아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성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다이애나비의 죽음과 엮어서 공주 서사로 풀어내요.
이번에 프랑스에 갔을 때, 책방지기의 소개글을 보니 '자기를 찾는 고민은 10살이나 18살이나 38이나 똑같다'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나'는 누구인지 질문하면서, 대안적인 삶을 발견해가는 이야기요. 제가 프랑스에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삶의 모습이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 고민을 번역 작업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박재연 번역가가 아끼는 문장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27쪽
쥴리 필립스 지음 / 박재연, 박선영, 김유경, 김희진 옮김 | 돌고래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저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어요. 쥴리 필립스가 남성 예술가와 여성 예술가를 비교하잖아요. 프루스트는 코르크판으로 방의 모든 틈을 막고 글만 썼고, 비트겐슈타인은 음식 냄새마저 몰입을 방해할까 봐 샌드위치만 먹었다고요. 그런데 여성 예술가들은 아이들의 저녁밥을 고민하면서 틈틈이 창작을 했잖아요. 토니 모리슨은 출근길 운전을 하면서 차가 정차할 때마다 메모를 했고, 나오미 미치슨은 유아차에 판을 깔고 글을 썼어요. 이 책을 작업하는 내내 텍스트와 저의 경험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시야가 확 트였어요. 위대한 예술가들도 이렇게 끊임없는 방해를 견디면서 멋진 것을 만들어냈구나.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면, 내 시간은 왜 이렇게 누더기지, 저 사람은 아이를 안 키우니까 저렇게 글을 잘 쓰는 거겠지 온갖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이 책을 작업하면서 그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됐어요. 그래, 토니 모리슨도 그랬지. 나도 너무 좌절하지 말자 하면서요.
(장소 제공: 앤헤이븐)
*박재연 (번역가)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서울에서는 불어불문학을, 파리에서는 미술사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뒹굴거리며 그림책을 즐기는 엄마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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