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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나를 자꾸 반성하게 만드는 산 - 박원순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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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깨달음을 얻었다. ‘끝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타는 것’이었다. “조금만 가면 종착지가 나타난다”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런 날은 결코 없었다. 무조건 걸어야 했다. 정량을 이행하지 않으면 절대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조건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내디뎌야 했다. 고통스럽다. 스스로 고통을 선택한 것은 운명이다. 산 위로 돌을 굴려 올라가면 다시 떨어지고, 그것을 다시 굴려 올라가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봉우리를 걸어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고, 또 다시 올라가야 한다. 계속되는 이 고난을 ‘운명’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 기분 나쁜 축축함, 가쁜 호흡과 땀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대간 길.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것은 내 운명의 일부가 되었기에 이제 도망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희망을 걷다』 p.98~99)

박원순 서울시장, 그는 왜 백두대간을 종주해야겠다고 결심했을까. 박원순 시장은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휴식이 필요한 전환기를 맞이했을 때, 박원순 시장은 어김없이 휴식을 가졌다. 그 시간이 자신을 변모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1,92년 유학생활을 통해 인권변호사에서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서의 변화가 이뤄졌고, 1998년 미국 아이젠하워재단 초청으로 떠난 여행과 2000년 세 달 동안 머물렀던 독일여행, 2005년 방문 교수 자격으로 머물렀던 미국 스탠포드대학 생활이 박원순 시장으로 하여금 ‘희망제작소’를 만들게 했다. 그는 “전환기의 휴식은 아주 정직하다”고 말한다. “억지로 의미 부여를 하거나 거짓으로 멋진 일정을 만들어 꾸며댈 수가 없어요. 그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결과도 뜻도 만들어내지 못하니까요. 사람의 전환, 휴식이라는 것은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그렇게 흘러가게 됩니다. 백두대간 종주도 그러했습니다. 제게는 신체적으로도 큰 도전이었지만 당연히 그렇게 해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서울시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기 전, 박원순은 백두대간 종주에 앞서 일기장에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두 달 간의 이 백두대간 종주도 또 다른 전환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그리고 종주 41일째가 되는 날, 그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박원순에게 산이란, ‘최후의 막후’였다. 시장 출마를 결심하고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실존적인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고 그 일이 가능하게 해준 배경이 산이었기 때문이다.




꼴찌로 걸으니 저절로 명상과 성찰이 되더라

전환기를 맞아 특별히 ‘백두대간 종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민족의 삶을 의탁해온 이 땅의 등줄기가 백두대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라고 멋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지만(음) 제가 워낙 산을 좋아하고 지리산은 아내와도 여러 번 올랐습니다. 주변 분, 최창남 목사님으로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권유를 받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게 주말마다 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욕심에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말처럼 쉽지를 않더라고요. 주말에만 오르는 것,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고 성에 차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뭐든 한 번 하면 집중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 희열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 또 다른 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떠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리산 종주를 많이 하셨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산이 지리산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산이 맞을까요? 익숙하고 만만하게 생각하여 7개월 된 둘째 아이를 태중에 둔 아내를 데리고 갔다가도 크게 혼쭐 난 적이 있습니다. 책에도 나와 있는데 새삼 되짚어 말하려니 아내에게 또 미안해지네요. 지리산이 좋은 산은 좋은 산인가 봅니다. 자꾸 반성을 하게 만드니까요(웃음).

가장 어려웠던 구간, 심리적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곳은 어디였나요?

모든 구간이 샅샅이 힘들었고, 돌아보면 힘들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의 거리 계산을 믿고 한참을 걸어가 닭계장 한 그릇을 먹을 때도 그랬죠. 그 작은 가게에 TV에서 뉴스가 나오는데 외국 주주들과 기관 투자자들이 64조를 빼내 주식 대공황이 왔다는 소식과 연이은 자살한 개인 투자자들의 아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예전부터 우리나라는 소기업 천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안정된 경제와 삶을 누릴 수 있다 주장해왔던 것도 떠올랐습니다. 백두대간 종주 시작 무렵, 가장 큰 화두가 사회적 경제에 관한 것이었으니 더욱 그러했지요. 그런데 백두대간 안에서만 용을 쓰고 있는 제 모습에 제 스스로가 힘들기도 했습니다. 또 어느 밤엔가는 아버지 생각에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마당에 평상을 펴고 누워 있으면 아버지는 왕겨에 약쑥을 넣어 불을 피우셨거든요. 그러면 모기들이 도망을 갔습니다. 하늘에 총총한 별을 헤다 잠들었지요. 그 때는 왜 그렇게 별이 많았는지. 백두대간을 베고 누워 또 많은 하늘의 별을 보자니 마음이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하나도 힘들지 않지요. 그런 것입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떠나기 전, 다섯 손가락 대원들과 한 약속이 있었나요?

특별한 약속은 없었습니다. ‘다섯 손가락’ 대원들 서로가 마음속으로 한 다짐은 ‘함께 걷자’는 것이었겠지요. 모두 약점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그것은 산행에 익숙한 석대장도 마찬가지, 보급 대장을 맡은 신 팀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함께 걷자’는 것이 가장 큰 약속이었을 것입니다.

종주를 하면서 대원들과 꼴찌 경쟁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시장님께서 1등을 했던 구간은 없나요?

거의 꼴찌였습니다(웃음). 그런데요. 아주 꼴찌로 가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일등만큼이나 부담이 심한 일이지요. 하지만 종종, 혹은 주로 꼴찌로 가면 느긋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일행과 크게 안 떨어지면서 맨 뒤로 걷다 보면 명상과 성찰을 할 수 있습니다.

혼자 종주를 했다면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함께 걸어준 대원들에게 어떤 마음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실패했을 겁니다. 아니, 시작도 못했을 테니 실패도 없었겠네요. 함께 걸어준 대원들에게는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여전히 생생히 갖고 있습니다.




산이 마음을 움직여 서울시장 출마 결정

종주 41일째, 출마를 결정하셨습니다. 김수진 교수님의 설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 교수님의 이야기 중에 마음을 움직인 말은 무엇이었나요?

말보다는 친구의 우정이, 시대를 그냥 둘 것이냐는 학자의 호통이 함께 다가왔습니다. 친구는 마치 진지의 좌장처럼 제 곁에 든든한 사람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소중한 친구, 동료, 선후배와 급물살을 탄 듯 만났습니다. 윤석인 부소장은 ‘모든 정치 세력이 힘을 합해 도와줄 꽃마차’같은 것은 애초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도 하였습니다. 언감생심, 꽃마차가 웬 말이겠습니까.

백두대간에서 받은 정치 참여 권유는 서울에서 받은 권유와는 사뭇 달랐을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의 권유였다면 그 때도 어렵더라도 물리쳤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산이 저를 그렇게 움직인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운명이 빙 도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산에서 받은 권유는 멀리서 쏜 화살이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치에 참여하겠다. 무엇을 이루든 나를 버리겠다, 결심하고 나니 이제는 방향이 바뀌더군요. 운명의 활시위는 당겨졌고 저라는 실존은 화살이 되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며 몇몇 사람들과 산신각이나 성황당의 음식을 나눠먹었기에 산신령이 벌을 내리셨다는 농담도 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삶을 의탁해 사는 우리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산신령 아닙니까? 벌도 대단한 벌이었지요(웃음).

대원들에게 바로 결심을 말하지 않으셨는데, 종주에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설명하기 힘든 마음이지만 미안한 생각이 컸습니다. 그냥 가능한 끝까지 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한 명의 대원으로서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종주 중에 많은 분들을 만나셨는데 그리운 사람들도 많겠습니다.

모두 차고 시원한 석간수 같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가끔씩 유독 아이들이 눈에 삼삼합니다. 선생님들과 산을 오른 영주 중학교 아이들도 생각이 나고, ‘백두대간 자연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슈퍼마켓 사장이 되면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을 줄 알고 있던 영길이나 꿈이 아주 많았던 미영이 생각도 납니다. 떠날 때 ‘왜 허락도 없이 떠났느냐’ 전화도 했던 기특한 아이들. 산에 있을 때는 산에 없는 사람이 그립고, 산에 없으니 산에 있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희망을 걷다』에서 신충섭 팀장을 이야기하면서 셰르파를 언급하셨습니다. 지금 시장님에게 셰르파 같은 존재는 누구입니까?

그런 존재,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울 시장이라는 자리는 엄청난 조직의 수장입니다. 그 수많은 동료들이 서울 시민의 행복이라는 목표를 두고 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생각해보면 보통 일이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도 전부 시장의 이름으로 나옵니다. 실상은 공동 작업인데 말입니다. 시장은 일단 잘 얻어먹고 다니고 맨 앞자리에 섭니다. 시장이 움직이면 카메라가 따라오고 사람들이 깍듯이 대하여 줍니다. 때로는 참 공정하지 못하다 제 스스로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힐러리경보다 그의 세르파였던 텐진 노르게이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신충섭씨라는 세르파가 없었다면 저는 백두대간 종주를 못했을 것입니다. 3일이 멀다 하고 과일과 영양가 있는 식사, 심지어 가끔은 아이스크림이라도 챙겨다 준 최고의 동료였습니다. 함께 종주한 다섯 손가락 동료 모두 마찬가지이고요.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셨던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지금 저의 제일 가는 세르파는 우리 서울시 직원들입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새로운 전환과 답이 필요하다면, 백두대간 종주를

서울시청산악회와 도봉산도 오르셨는데, 요즘에도 가끔 산행을 하시나요? 산행을 할 때 백두대간 종주 생각이 많이 나실 것 같은데, 그 때와 지금. 어떻게 다른가요?

요즘은 북한산 둘레길 산책 정도가 생각해볼 수 있는 계획입니다. 한 번, ‘현장 시장실’ 운영으로 매우 바쁠 때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금요일 밤에 10시에 출발해 밤새 올라 일출 보고 내려오는 일정이었지요.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그 맛이 어찌나 달든 지요. 백두대간 종주 생각은 많이 납니다. 큰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도 합니다. 마음은 다릅니다. 그 때는 전환기의 휴식이었다면 지금은 짧은 산행이라도 또 다른 동력이 됩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한 선배로서, 앞으로 떠날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계획과 준비를 철저히 하십시오. 그리고 초행일수록 동료를 잘 만나셔야 합니다. 산을 만만히 여기지 마시고요. 모든 태산준령으로부터 잘 허락을 받으십시오. 그럼 큰 선물을 받으실 겁니다 (웃음). 뭔가 새로운 전환과 답이 필요하신 모든 분께 백두산 종주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2011년 12월, 예스24 독자들이 선물한 책(http://ch.yes24.com/Article/View/18877) 중에 어떤 책을 가장 인상 깊게 읽으셨나요?

『꾸리찌바 에필로그』는 이전에도 감명 깊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꾸리찌바’를 방문하면서 더욱 새롭게 내용들이 살아났고요. ‘사회적 기업 창업 교과서’는 서울이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꾸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더 반갑게 내용을 기억하며 읽었지요. 『도시의 승리』같은 경우도 도시에 대한 시각을 폭넓게 하는데 새롭게 읽었습니다. 50권을 또 선물해주시면 더욱 새롭게 읽겠습니다(웃음). 이건 농담입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은 무엇인가요?

제가 답답한 것 중에 하나가 산에 갈 시간, 책 읽을 시간이 많이 안 납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행복의 경제학』을 모 지면에 추천해드린 적도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사회적 경제에 관한 책들을 모아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주제를 정하고 여러 권을 집중해서 읽으면 사고의 틀을 정립하고 응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 시장님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신년,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최대 관심사는 ‘서울’, ‘서울 시민의 삶의 행복’, ‘시민의 삶에 구체적으로 시행정이 힘이 될 수 있는 다양하고 종합적인 방법’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도 같습니다.

『희망을 걷다』저자로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 책이 나오기까지, 백두대간을 걸기 시작할 때와 마칠 때에도, 돌아보면 제 생의 전부에 걸쳐 ‘함께 걷는’ 동료가 가장 소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걸음도 서로가 서로의 걸음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었고요.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걸음을 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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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걷다박원순 저 | 하루헌
이 책은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박 시장과 그의 동료들이 흘린 땀 냄새가 가득하다. 발톱이 빠지고 신발은 닳아 해지며 어렵사리 걸은 여정의 기록이다. 이 힘든 여정을 통해서 박 시장이 본 것은 한반도의 역사와 민족의 운명과 우리 앞의 현실이었다. 한 발자국, 하루, 한 문장, 한 페이지에 그 생생한 기록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독자는 책 속의 문장을 통해 박 시장이 느꼈던 백두대간의 자연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가장 생생한 백두대간 종주 안내서이며, 현실에 대한 냉정한 기록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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