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다.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당신이 지금 찾는 것은 무엇이기에 떠나려 합니까’ 라고. 이에 『떠나는 이유』는 아홉 개의 단어로 대답한다. 행운, 기념품, 공항과 비행, 자연, 사람, 음식, 방송, 나눔, 기록. 이것들은 작가 밥장이 여행지에 만나고 매료된 모든 것인 동시에 여행이 끝난 후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든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는 여행 큐레이터로서 EBS의 <세계테마기행>과 다수의 다큐멘터리 취재에 동행하며 세계 곳곳을 누볐다. 『떠나는 이유』는 그 시간들과 공간들의 기록이다.
그림에 갇힐 뻔했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는 작가의 말은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지금 발 디딘 이곳에서 ‘떠나는’ 행위 자체가 위안이 되는 순간이 누구에겐들 없을까. 그러나 밥장의 여행기에는 ‘낯설기에 새로운’ 모습들이 가득하다. 빼곡한 일정들로 채워진 여행을 지양하면서 우연히 만나게 될 행운을 기대하고 “카페에서 슬쩍한 메뉴판, 설탕 봉지, 냅킨”과 같은 소소한 물건들로 여행을 기억하며, 사진이 아닌 그림과 손 글씨로 순간을 기록하는 방식들이 그러하다.
먼 곳에서 만난 인연에 부여하는 의미도 남다르다. 작가에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우리와 연결된 채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미니토에서 만난 ‘탱고 할아버지’는 또 다른 여행자를 통해 소식을 전해왔으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한국인이 아닌 한인으로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에 눈뜨게 해줬다. 그렇게 작가는 다른 곳에서의 삶이 이곳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눔으로 이어졌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남수단의 보르 지역을 찾아 아이들에게 그림으로 꿈을 가르쳐주고 학교의 벽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이후 발생한 내전으로 학교는 반군의 기지가 되었고 벽화에는 총알이 박혔지만, 그 슬픔으로 작가는 멀리 떨어진 곳의 비극이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행운에서 나눔에 이르기까지 『떠나는 이유』안에 담긴 여행의 단면들이 다양한 이유는 밥장 작가의 떠남이 개인적인 이유에만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 큐레이터 유성용의 웃음에 이끌려 그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고 고백한 작가는 덕분에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세계테마기행>의 촬영을 위해 떠났던 인도네시아에서는 야생 오랑우탄과 코모도왕도마뱀을 만났고, 유럽의 경제위기에 대한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방문한 도시에서는 희망이 사라져버린 시대의 자화상과 마주했다.
이렇듯 다채로운 빛깔의 여행 이야기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에 잠길 무렵 밥장 작가를 만났다. 그가 직접 ‘믿는 구석’이라 이름붙인 작업실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주인을 닮아 감각적이고 유쾌한 분위기를 간직한 그 공간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의미를 잃는 듯 했다. 밥장 작가가 직접 애용하면서 나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 몰스킨의 노트들은 지난 여행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그 길 위를 다시 걷는 우리의 대화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여행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나는 방법
『밤의 인문학』에서도 들려주셨던 여행 이야기를 이번 책에서 더욱 본격적으로 들려주셨는데요.『밤의 인문학』을 집필할 때부터 『떠나는 이유』의 출간을 계획하셨던 건가요?
『밤의 인문학』이후에 다음 책을 고민하다가 여행 이야기를 새롭게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기존의 여행 책은 장소 위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의 여행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여행지를 가든 자신이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느냐에 중점을 두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여행의 장소가 아닌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여행자가 느끼는 감정들 혹은 주제들로 재구성을 해본 거죠.
여행에 관한 책은 오래 전부터 구상하셨을 것 같습니다.
<세계테마기행>이나 다큐멘터리 촬영을 통해서 많은 여행지를 방문했는데, 혼자 다닐 때와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혼자 여행을 갔을 때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나 가볼 수 없었던 장소와 만나게 되는 거죠. 그런 부분들이 저에게 너무 많이 도움이 됐어요.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부분 외에 그곳에서 제가 느낀 것들을 모아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떠나는 이유』는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로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무엇이었나요?
‘행운’이에요. 작년에 <세계테마기행> 촬영차 인도네시아를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오랑우탄과 만난 건데요. 오랑우탄의 서식지에 간다고 해도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 불가능해요. 그야말로 야생이기 때문에 오랑우탄에게 가까이 다가가거나 먹이를 주면 위험하다고 주의를 받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취재하고 살갑게 대하니까 오랑우탄이 먼저 저에게 다가왔어요. 함께 촬영하던 PD가 이런 게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처음 여행을 간 사람의 마음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예상치 못한 행운이 따라온다는 거죠. 그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너무 와 닿았어요. 예전에 갔던 여행지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됐고요. ‘초심자의 행운’처럼 여행을 생각할 때 마음을 움직이는 키워드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나머지 8개의 단어도 떠올랐죠.
여행마저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은 만날 수 없는 행운이 있는 거군요.
그렇죠. 우리는 여행을 갈 때 여지를 많이 두지 않으려 하잖아요. 호텔도 정확하게 예약을 해야 하고, 프로그램도 미리 짜놓고, 몇 시에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식사 일정까지도 빡빡하게 정해 놓죠. 그렇다 보니까 때로는 주변에 더 좋은 곳들이 있는데도 그냥 놓쳐요. 우연히 들른 음식점이 너무 맛있고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도 좋잖아요. 그런데 다음 일정을 위해서 성급히 떠나는 거예요. 결국 행운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거죠. ‘그렇다면 여행은 왜 가는 걸까’ 라는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여유를 누리고 분위기와 호흡을 바꿔보고 싶어서 갔는데, 똑같은 호흡으로 일하는 방식처럼 시간을 보낸다면 느닷없는 행운을 만날 기회를 스스로 줄이는 거라고 볼 수 있죠.
방송 외에 개인적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계획 없이 떠나는 편이세요?
저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패키지여행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거죠. 여행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진화한다고 할까요. 『떠나는 이유』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그런 거예요. 저 역시도 보통 사람들처럼 똑같이 여행을 시작했고, 거기에서 느끼는 아쉬움들을 개선하면서 발전한 거라는 거죠. 그리고 여행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 자신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새로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저는 어떤 기회로 여행을 떠났든 많이 관찰하려고 해요. 부딪혀 보고, 물어 보고, 섞여 보는 거죠.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발 닿는 대로 가요. 여행하는 데 있어서 진짜 중요한 건 여행지가 아닌 것 같아요.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서로 다른 장소를 경험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여행지보다 중요한 건 ‘과연 내가 이번 여행을 왜 가느냐’ ‘어떤 관점으로 갈 것이냐’ ‘무엇을 느낄 것이냐’를 생각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곳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많이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대부분 사진을 많이 찍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촬영해도 나중에는 찾아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제 경우에는 그 시간에 뭔가를 적어서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남기는 게 더 와 닿더라고요. 저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몰스킨 노트를 가지고 가서 그림도 그리고 메모도 하고 비행기 티켓이나 안내 책자, 레스토랑의 메뉴판 같은 것들을 붙여놓기도 하는데요. 이런 기록들을 보기만 해도 그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라요. 사진으로만 찍으면 그 느낌이 덜하더라고요.
‘여행’과 ‘나눔’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그렇게 카메라를 내려놓고 연필로 기록을 해 오셨는데 “다음에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어보려고” 한다고 적으셨어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거죠. ‘여행은 이런 거다’라고 스스로 규정짓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같은 여행지라 하더라도 다시 찾아 갔을 때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을 거예요. 저도 변했을 테니까요. 이렇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상대도 호기심을 갖고 제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고, 스스로도 여행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새로운 방식으로 여행해 보고 싶다고 적은 거예요.
여행지를 느끼고 그것을 새기는 작업에서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시는 거군요.
그렇죠. 결국 그 순간이 쌓여서 저의 시간이 되는 거잖아요. 일상에서는 너무 익숙하다 보니까 스스로 동기부여하기가 어렵죠. 하지만 낯선 환경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원해서 그런 부분도 있지만 원치 않아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도 찾아오게 되고요. 그게 또 여행의 맛이기도 하죠.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까 여행을 갈 때는 새로운 방식과 테마를 잡고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장소를 다시 가더라도 휴양으로써의 여행, 취재로써의 여행, 생각 혹은 책읽기를 위한 여행, 그렇게 나름대로 색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는 거예요.
여행 큐레이터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유성용 씨의 웃음을 잊을 수 없어서”라고 하셨어요.
그 분은 여행지에서 굉장히 잘 스며드는 것 같아요. 저도 촬영을 앞두고 여행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많이 했거든요. 방송에 나온 여행 큐레이터들이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하는지 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유성용 씨만큼 여행 장소나 사람들한테 잘 스며드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곳의 문화를 체험할 때 하는 척만 하거나, 어설프게 하거나, 나는 관광객이고 당신은 현지인이라는 선을 긋지 않는 거죠. 현지인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도 공감할 수 있게끔 잘 끄집어내시더라고요. 무엇보다 그 순간을 본인이 즐기고 있다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나도 저렇게 스며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일이 되어버린 그림에 갇힐 뻔해서 “숨통 틔울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고 하셨는데, 여행이 어떻게 일상에 숨통을 틔워줬나요?
여행을 다녀보면 우리가 굉장히 잘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돼요. 일상에서는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 더 앞서 있는 사람들만 보다 보니까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우리가 많은 걸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데, 떠나보면 알게 되죠. 그리고 세상은 참 넓다는 것, 모두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먼 나라의 얘기가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는 거죠.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야 한다거나 기부해야 한다는, 말로만 느꼈던 것들을 직접 체감하게 돼요. ‘세계 속의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말도 그렇죠. 조선족, 연변 사람, 고려인, 이렇게 나누는 건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틀에 너무 갇혀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을 한인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국적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분들을 여행을 통해서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일상에 대한 생각, 한국에 대한 생각, 세계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눔’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셨나요?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일을 꾸준히 했었지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실제로 현장이 어떤지는 몰랐던 거죠. 그런데 가보니까 우리가 왜 그들을 도와야 되는지, 이런 일에 왜 전문가가 필요한지 알겠더라고요. 제가 하는 기부 활동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게 됐고요. 이런 내용을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저도 여행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에『떠나는 이유』에도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실은 거죠. 저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많은 분들이 실제로 자신이 후원하는 곳으로 가셔서 직접 현장을 보시더라고요. 그런 여행을 다녀오면 편안한 관광지에 가서 누리는 것보다 느끼는 게 훨씬 더 많을 거예요. 그 강렬함을 다른 것과 바꾸고 싶지는 않을 거고요. 그런 여행에 대해서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떠나는 이유』 통해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냉장고 자석부터 편의점 쿠폰까지 다양한 기념품을 간직하고 계신데요.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상에서 식당의 냅킨을 보면 그냥 흔한 냅킨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여행지에 가면 달리 보인단 말이죠. 그게 여행의 매력인 것 같아요.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의 경우에도 색다른 시각으로 우리 일상을 바라보잖아요. 그러면 서울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일상에 또 다른 색이 입혀지는 것 같아요. 저도 여행을 가면 무료하고 재미없는 공간을 다채롭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거죠. 그곳의 사람들은 평범하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이게 특별한가? 의외로 재미있네’라는 생각을 하겠죠. 특히 저는 그림을 그리고 표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뭔가를 발견하는 훈련이 되는 것 같아요. 기념품으로 만들어서 판매한다고 해서 그 물건이 나에게 기념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특별하게 느꼈기 때문에 특별한 물건이 되는 거죠. 지금 우리는 내 시간이 없이 살고, 누군가가 짜 놓은 일정대로 살게 되니까 일상이 스트레스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념품마저 정해진 대로 사는 건 정말 재미없지 않나요?
‘자연’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박쥐들만 살고 있는 섬, 거대한 파랑으로 기억되는 파타고니아의 빙하에 대해 들려주기도 하셨습니다. 가장 강렬하게 이끌렸던 곳은 어디였나요?
아르헨티나는 나라가 굉장히 크고 또 세로로 길기 때문에 기온의 변화가 뚜렷해요. 이과수 쪽은 끈끈하고 후끈한 한 여름 날씨인데 북쪽 지역으로 가면 겨울 날씨가 펼쳐지거든요. 한 나라에 안에서 푸른 녹지대와 파란 빙하를 모두 볼 수 있는 거예요. 왼쪽 지역으로 가면 붉은 사막 지대가 펼쳐지고요. 그렇게 자연을 색으로 한 번에 볼 수 있었던 건 기막힌 경험이었어요. 특히 빙하 같은 경우는 압도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자연의 숭고함, 저항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느낌이 확실히 있더라고요. 빙하의 스케일이 너무 크니까 규모가 가늠도 되지 않았어요. 떨어지는 빙하 조각의 크기가 다세대 건물 5충 높이 정도 되는데 상상하기도 어렵죠. 그리고 떨어질 때 천둥과 같은 소리가 나요. 빙하의 색이 가짜처럼 느껴질 정도로 새파랗기도 하고요. 그 모든 풍경이 너무 강렬했죠.
코모도왕도마뱀과의 만남은 어떠셨어요?
코모도왕도마뱀을 찾으러 가는 건 원래 촬영 스케줄에 없었는데,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가게 됐어요. 제가 PD에게 적극 추천한 거였죠. 예전에 더글러스 애덤스와 마크 카워다인의 책 『마지막 기회라니?』를 읽은 적이 있거든요. 세계의 멸종 동물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첫 번째 주인공이 코모도왕도마뱀이에요. 만약 제가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봤다면 그림만 기억될 텐데 책을 읽으면서 상상을 하다 보니까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어요. 코모도 섬까지 가는 여정도 엄청났지만 섬의 풍광도 정말 독특했죠. 직접 만난 코모도왕도마뱀의 인상도 정말 강렬했고요. 코모도왕도마뱀의 침에는 바이러스와 독성분이 있어서 물리면 피가 응고되지 않아서 죽는다고 하잖아요. 섬에 가보니까 진짜로 도마뱀에 물린 사슴이 있었는데 다리를 절뚝거리더라고요. 코모도 섬에서는 정말 모험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떠나는 이유』에서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셨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장을 마련하셨죠.
중간에 쉬어가는 코너로 기획한 페이지예요. 여행지에서 음악을 들으면 감칠맛이 나잖아요. QR 코드를 첨부해서 『떠나는 이유』를 읽으면서 음악을 듣는 재미도 느낄 수 있게 했죠. 무엇보다 음악 자체에도 스토리가 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예전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조지 해리슨의 다큐멘터리를 봤는데요. 조지 해리슨이 정말 대단한 뮤지션이더라고요. 특히 「Here comes the sun」은 그가 굉장히 힘들 때 만든 곡이라고 하는데,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까 노래가 새롭게 들리더라고요. 알아봤더니 그 곡이 NASA의 무인 탐사선 ‘보이저 1호’에 실릴 뻔한 음악이었다고 해요. 결국 저작권 문제로 실리지는 못했지만요.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음악에도 이런 스토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런 부분이 여행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돼서 소개한 거예요.
‘기록’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기록으로 기억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작가님의 경우에는 『떠나는 이유』라는 기록을 통해서 어떻게 기억될 것 같으세요?
재미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진부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산다는 건 허무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과연 그 허무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돈이나 물질은 아닌 것 같고요. 그 상태를 그냥 남겨 놓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아가고 부여하고 궁금해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답이 없는 질문을 물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일상인데,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남기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해야 흘러가고 있는 시간 안에서 그나마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저만의 얘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공통의 과제잖아요. 독자 분들도 나름의 답을 찾으려고 애쓰고, 생각하고, 뭔가를 남기려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늘 고민하는 문제들, 가령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불행할까’하고 생각할 때 작은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고요. 저는 그저 작은 팁을 하나 던져 놓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떠나는 이유밥장 저 | 앨리스
여행으로 삶을 촉촉하게’를 기치로 여행에 필요한 아홉 단어를 중심으로 밥장 식 여행을 풀어간 책이다. 밥장이 여행에서 늘 강조하는 것은 기록이다. 그는 보기보다 담기, 찍기보다 쓰기 그리기를 권한다. 사소한 것도 내 느낌을 간직하고 기록하다 보면 여행 작가 태원준의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리는 순간”도 새로운 여행이 될 수 있고 “카페의 냅킨 하나로도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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