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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진심인 편] 은유X최현숙, 두 여자가 삶의 진실을 질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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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계는 터져버릴 것이다.” 

르포 작가 은유와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의 작업 앞에서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의 이 말을 이렇게 고치고 싶어졌다. ‘두 여자가 삶의 진실을 질문하면 세계는 터져버릴 것’이라고. 은유와 최현숙은 인터뷰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전하는 일을 한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슬픔과 고통이 쓸모 있어지는 곳으로 만들려는 갈망이 있다.

“구술생애사는 나와 세상에 대한 반역의 갈망”이라는 말처럼, 최현숙의 작업은 세상이 낙인찍고 배제하는 사람들을 향한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건 꼭 사회적인 기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십이 넘어 시작한 구술생애사 기록은 돌봄 노동 현장의 노인들, 여성 홈리스 등을 만나고 자신과 타인의 상처와 욕망을 발견하는 길로 이어졌다. 

무작정 가슴이 뛰어 인터뷰에 뛰어든 건 은유도 마찬가지다. 사보 인터뷰를 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지만, 기업의 입맛에 맞게 삶을 재단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 후 르포 작가로서 그는 현장실습생, 미등록 이주아동, 한국 시 번역가 등 주목받지 않았지만 꼭 알려져야 할 이야기를 전해왔다. 한 사람은 ‘욕망’에서 한 사람은 ‘슬픔’에서 출발해 엇갈리고 만나는 대화의 현장을 담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최현숙 작가님은 2013년, 은유 작가님은 2012년 거의 비슷한 시기 첫 책을 출간하셨죠. 구술 기록과 르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어요.

최현숙 : 2008년이 제게는 굉장히 중요한 전환기였어요. 그동안 했던 진보 정치 운동을 접으면서, 어디서 뭘 할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마침 사회적으로는 ‘돌봄의 사회화’가 중요한 의제여서 요양 보호사, 장애인 활동 보조 노동자 등 50~60대 제 또래 여성들이 조직에 많이 들어왔어요. 저 여자들과 뭔가 같이 하고 싶어서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노인 복지 현장에 가장 말단 노동자로 들어갔죠. 

그런데 정작 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긴 건 노인복지 현장에서 만난 노인들의 자기 살아온 이야기들이었어요. 저는 집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재가 요양을 주로 했는데요. 요양 등급을 받은 노인들은 혼자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서, 몸과 정신이 굉장히 안 좋고 가족 관계가 단절된 분도 많았어요. 근무하면서 친해지면, 할머니들이 제 뒤꼭지에 대고 주절주절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해요. 누가 이걸 재미있어 했겠냐고. 자식이나 친구 붙잡고 해도 핀잔이나 듣던 그 이야기를 또 나한테 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가 굉장히 귀하고 사회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진보 정치, 여성주의 운동을 해왔기 때문이었겠죠. 마침 이매진 출판사에서 제안이 와서, 제가 노인들의 구술 기록을 써보고 싶다고 했죠. 처음에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다만 사회적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은유 : 저는 2005년부터 사보 기자로 활동했어요. 기업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하니까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담으로 가공하려고 하죠. 그때 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리는 거예요. 최현숙 선생님도 늘 강조하시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힘이 있잖아요. 평범한 사람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그 이야기에 매료됐어요. 점점 이 사람들을 시혜의 대상으로써 바라보는 글을 쓰는 게 양심에 찔리더라고요. 사회적인 약자를 무기력하게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만 기록하는 일이 제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보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먹고 살길이 막막했어요. 사보 일이 수입이 괜찮거든요. 

그때 저한테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인터뷰집 『폭력과 존엄 사이』 제안이 왔어요. 그 전에 제가 한겨레에서 나온 월간지 <나들>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을 하니까,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지금 여기에’에서 요청을 한 거죠. 처음엔 국가 폭력 가해자들이 얼마나 악랄한지 알고 싶지 않은 마음에 거절했는데, 사무국장님이 피해자분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일상을 살아온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고 거듭 제안하셔서 수락했죠. 

최현숙 : 은유 선생님의 『폭력과 존엄 사이』가 저한테도 참 각별해요. 저도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천주교 쪽에서 사회운동을 했어요. 거기서 주로 맡은 일이 장기수 가족 후원이었는데 장기수는 대부분 간첩 조작 사건으로 억울하게 갇힌 분들이라,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진상 규명을 계속 요구했거든요. 은유 선생님이 책을 내는 걸 보면서 이 문제를 싸우는 방식으로 다루는 사람도 있고, 구체적인 서사로 풀어내는 사람도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죠. 

은유 :선생님, 사실 제가 사보 일을 할 때 하고 싶었던 건 민중 자서전이었어요. 블로그를 개설하고는 떡 하니 ‘21세기 민중 자서전’이라고 걸어두니 친구가 웃으면서 “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민중 타령이냐고 아무도 안 오겠다. 간판 좀 바꿔라.” 그랬죠. 그때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에 엄청나게 빠져들었어요.

최현숙 :지금도 유효해요. 누가 오건 말건 무슨 상관이에요.



두 분 다 투쟁 현장 중심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하셨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일상에 깊게 들어가 상처나 슬픔까지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요. 인터뷰 상대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시나요?

최현숙 : 인터뷰 상대와 여러 번 만나서 충분히 관계를 맺고 나서 작업을 제안해요.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할배의 탄생』 등의 경우에는 노인복지 현장에서 제가 서비스 제공자로 있었으니까 2~3년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속을 아는 분 중에 침을 발라놨다가 어느 날 옆구리를 찔러서 넘어오는지 봤죠. 전문 용어예요.

은유 :선생님 책마다 ‘침 발라 놨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웃음)

최현숙 :그럼에도 어디까지 속을 보이느냐는 그 사람 마음인데, 사실 뭔가 더 나올 것 같은데 선뜻 꺼내지 않은 이야기가 중요하잖아요. 사회의 정상 이데올로기에 의해 자기 낙인이 되거나 비난을 받아 감춘 부분. 그걸 끄집어내 스스로 재해석할 기회를 주고, 사회적으로도 이야기를 던지는 게 구술 생애사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친밀감도 중요하지만, 왜 당신의 상처를 풀어내는 게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한지 계속 설득해야 하고요. ‘이걸 꺼내서 세상에 알리면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힘을 얻을 거다. 그 과정에서 만에 하나 생길 2차 피해는 내가 최선을 다해 가공하겠다.’ 고통의 쓸모를 가지고 설득하는 거죠. 

은유 :저도 선생님과 비슷해요.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어요. 답답하고 이해받고 싶으니까 말하려 하지만, 또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죠. 그래서 신뢰를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당신의 슬픔과 고통이 그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자양분이 된다.’ 인터뷰가 필요한 이유와 당신의 고통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는 거예요. 또 하나 제가 강조하는 건, 말을 했지만 거둬들이고 싶다면 나중에 빼달라고 요청하거나 대답을 안 할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그 분의 삶이지 책이 아니니까요. 그다음은 그저 잘 듣는 일이죠. 

최현숙 :‘상대방이 정말 내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느끼고 공감하고 있구나.’ 그걸 느끼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가난하거나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정말 예민하거든요. 인터뷰어는 듣고 나서 집에 오면 끝이지만, 당사자는 한바탕 말을 털어놓았더라도 ‘그 얘기 왜 했을까’ 하면서 혼자 앓거든요. 그럴 때는 다시 연락하거나 찾아가서 “지난번에 이야기해 줘서 고마웠는데, 그래도 많이 힘들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라고 해요. 그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한 번 더 말하면서요. 그러면 인터뷰어가 나를 계속 챙겨주고 있다는 마음이 들면서 라포 관계가 더 깊게 형성돼요.

은유 :네, 선생님 말씀대로 진심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중요하죠.


타인의 삶을 난도질하지 않고 바라보기

두 분의 인터뷰는 개인의 이야기에서 적극적으로 사회적 의미를 밝혀내는 일인데요. 인터뷰를 글로 옮길 때 어떤 과정을 거치시는지 궁금합니다.

은유 : 책 읽고, 영화 보고, 공부하는 것.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쓸 때는 청소년 노동과 현장실습생 제도의 문제에 대해 관련한 책을 읽고, 행사나 포럼, 집회에 가서 귀동냥하고. 정말 계속 발로 뛰면서 자료를 수집했어요. 제가 가장 많이 의지하는 건 역시 책과 현장이죠. 

가령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인터뷰를 할 때는, 제주도에서 간첩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아버지는 제주 4·3사건 때 빨치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경찰이었음을 알게 됐어요. 두 세대가 좌우 양쪽에서 한국 현대사의 피해자인 거예요. 너무 서글프고 기가 막힌 인생이잖아요. 그런데 그분이 말할 때는 “우리 아버지는 4·3 사건 때 그렇게 당했어.” 단 한 줄이었어요. 그런데 듣는 사람은 그 한 줄에 담긴 깊게 맺힌 한과 기막힘을 알아야 하는 거죠. 그렇게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삶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가 같이 보이도록 많은 노력을 해요. 

최현숙 :저도 은유 선생님과 방법이 비슷해요. 조금 다른 측면을 이야기하자면, 어쨌든 인터뷰 상대가 갖고 있는 인식에 제가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거든요. 나도 사회의 한계 속에서 살지만 그의 말을 전부 수용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자식이나 서방의 온갖 지랄에도 불구하고 용서한다고 하면 도저히 동의할 수는 없거든. 그런데 그분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시대적인 한계가 있고, 그건 자신의 보람이자…

은유 :긍지요!

최현숙 :나는 긍지라는 말은 안 하려고 했어. (웃음)

은유 :자부심이죠. 내가 이렇게 참고 고생하고 용서했다는.

최현숙 :그렇지. 자기 삶의 가치죠. 이걸 내가 싸그리 부정해 버릴 수는 없다고. 그분 안에서는 일종의 자기 정당화 방식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개인의 삶을 난도질하지 않는 동시에, 머리를 차갑게 두고 구조를 분석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돼요. 엄마와 할머니가 다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을 뒤집고,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렇다면 우리가 얻을 건 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해야죠. 

『할배의 탄생』을 쓸 때, 저는 50대 후반이고 인터뷰 상대는 70대 초반의 가난한 할아버지들이었어요. 첫 번째 주인공은 남성성이 과잉된 사람이고, 두 번째 주인공은 반대로 남성성이 거세된 사람이었어요. 두 번째 분은 항상 정상적인 남성성에 도달하고 싶었지만 매번 탈락하면서도 끝까지 그걸 놓지 않더라고. 박정희가 남자다워서 제일 훌륭하대. 근데 김대중도 훌륭해서 김대중을 찍었대. 왜 그랬냐고 물으니 박정희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소신을 지켜서 남자답다고. (웃음) 충분히 이해되죠. 우리 사회가 남성성을 강요해왔을 때, 한 사람은 과잉의 방식으로 다른 한 사람은 선망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거니까. 그렇다면 남성성을 강조하고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이분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이 됐죠. 사실 할머니들의 삶은 시대와 계층이 달라도 척하면 척이야. 다 이해되는데, 가난한 남성의 삶을 어떻게 볼지, 여성주의자로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결국 인터뷰 상대는 제가 프러포즈한 사람이니 근본적인 옹호를 가지고 그 말을 쉽게 난도질 하지 않되, 글은 정확히 독자를 향해 써야 하는 거죠. 

은유 :정말 『할배의 탄생』은 선생님 아니면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까지 제 신념과 충돌하는 인터뷰 상대를 만나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못 할 것 같아요. 



인터뷰하다 보면 자신의 편견을 마주하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은유 : 인터뷰를 하는 이유는 제게 공부가 되기 때문이에요. 

최현숙 :진짜예요. 인터뷰를 통해서 자기 확장, 혹은 자기 꼬락서니 확인.

은유 :나이 들면 비슷한 집단만 만나니까 제 무지를 확인할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러 가면 저를 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 시 번역가 인터뷰 산문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에서 호영 번역가와 인터뷰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사실 인터뷰를 아무리 해도 매번 긴장되거든요. 이상하게 평소에는 그런 말을 안 하는데 “젊은 여성 직업인으로서”라고 한 거죠. 그랬는데 “정정하고 싶어요. 여성은 아니에요.” 말씀하시더라고요. 시작부터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어요.

최현숙 :그렇게 실수를 해야지 감수성이 확 박혀. 그렇게 생겨난 건 절대로 안 잊어버리죠.

은유 :그 순간 당혹스럽고 죄송하기도 했지만, 마음은 편해졌어요. 이렇게 터놓고 말해주시는 분이라면 좋은 인터뷰가 되겠다 싶어서요. 글쓰기 수업을 할 때 나이, 성정체성, 직업이 다양한 사람들이 오거든요. 모여서 삶을 나누는 일이니까 제가 실수하지 않으려고 평소에 여러 분야의 책도 많이 읽는데, 그 공부라는 것이 삶의 현장에서 하등의 쓸모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일을 겪어야 확 박히죠. 그래서 인터뷰는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것만 알아도 최소한 망가지지 않을 수 있다’ 그걸 확인하는 자리 같아요. 인생 수업이죠. 

최현숙 :요즘 홈리스 현장에 집중하고 있는데, 여기는 빈곤, 질병, 장애, 폭력 등 소위 사회가 말하는 비정상성이 집약된 곳이에요. 3년 반 넘게 드나들며 인터뷰하고 인권 활동을 하는데, 정말 이 판에서야말로 내 밑바닥에 아직도 남은 혐오와 자기중심성을 매번 확인해요. 구체적인 공격이나 욕, 비난이 나를 향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자기방어를 했다가도 계속 머리 한쪽에 남아요. 그 여자는 왜 그랬을까도 있지만, 우선 나는 왜 그걸 혐오했을까 하는 생각. 

여성 홈리스 생애사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에서 ‘영주’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그 여자는 나와 친하면서도 자주 싸우고 욕도 많이 했어요. 내게 잘 보이고 싶어 하다가도 내가 잔소리 좀 하려고 하면 전화를 뚝 끊어. 처음에는 험한 말도 많이 해서 위협을 느꼈다가, 이 여자에게는 그냥 습관인 걸 아니까 두려움은 없어졌어요. 나도 질적 변화를 하는 것 같아요. 그전에는 ‘시발X’ 하면 또 그러냐 했지만, 이제는 나도 ‘저 여자의 언어 속으로 들어가버릴까?’ 싶고. 나도 “시발X!”하면 속도 시원하고. 나는 내 문화적 한계상 그걸 못 하고 사는데, 이 여자랑 사귀면 욕도 같이 배우고 해야죠. 

은유 :언어를 섞는 거죠. 다른 이야기도 끌려 나올 것 같아요. 같이 욕하면 마주 보게 돼서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최현숙 :처음에는 내가 사는 사회의 기준으로 봤을 때, 염치없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계속 빈곤과 폭력, 배제를 경험해 온 사람들에게 우리가 염치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하는 질문도 찾아오고요. 



두 인생이 섞여 나오는 글

최근 두 분의 글을 보면, 인터뷰 상대와 자신의 삶이 섞이는 지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느낌이 들어요. 일방적인 관찰이 아니라, 두 삶이 충돌하고 연결되는 과정을요.

최현숙 : 구술 생애사 작업은 남의 인생을 듣는 것이니까, 내 인생을 계속 떠올리게 돼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으니까 내 인생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그래야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 이런 이야기를 해도 나를 싫어하지 않겠지’ 믿으면서 속 이야기를 하죠. 

홈리스 판에 오기 직전까지 나에 대한 의문이 있었어요. ‘나는 왜 계속 가난한 사람, 소수자들을 쫓아다닐까?’ 물론 사회의 공공성을 위한 일이었지만, 그게 전부라고 하기엔 풀리지 않은 게 있었던 거죠. 2019년에 엄마의 죽음을 기록한 『작별 일기』를 마치고 어디로 갈까 하다가, 홈리스 야학 교사 웹자보를 봤는데 무조건 마음이 설레더라고요. 이유도 몰라, 왜 이렇게 설레는지. 그렇게 몇 개월 하니까 여기야말로 내가 죽을 때까지 할 자리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더 깊이 들어가니 내 아픔이 나오더라고. 이번 산문집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에서 털어놓았던 액취증, 도벽, 중독, 혼란의 상처들. 그런 것들을 품고 있으니 내 바깥에서 비슷한 존재를 끊임없이 찾았던 거죠. 

은유 :가슴이 떨린다는 건 이성의 영역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게 제일 정확한 것 같아요.

최현숙 :그 흉터들이 여전히 나의 정체성인 거죠. 상처를 극복한 게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진 지금의 나 속에 그 정체성이 들어있는 거고 나아가 정체성이 비슷한 사람들, 사회적 관점까지 다 포함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내 삶과 인터뷰 상대의 삶이 섞이죠. 

은유 :저도 강연을 나가면 질문을 많이 받아요. “왜 작가님은 사회적 약자의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세요? 좋은 분 같아요.” 그런데 제가 좋은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몸이 반응하고 너무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그게 왜인지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가령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제안서를 받았을 때 벌떡 일어나서 “나 이거 해야 돼”라고 밑도 끝도 없이 내적인 응답이 올 때가 있거든요. 한번 인터뷰 단행본을 하고 나면 힘들어서 당분간 안 해야지 하는데, 이번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제안이 들어오니까 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첫 책 『올드걸의 시집』이 시를 쓰고 산문을 덧댄 에세이인데요. 제가 작가로서 알려지기 전에 혼자 시 읽고 좋아서 글을 쓰던 때가 있거든요. 그 행복을 한동안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딱 제안이 온 거예요. 그런데 한국시를 번역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런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웃음) 저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을 늘 동경해요.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 감정들 그런 게 너무 듣고 싶거든요. 

그동안 작업에서는 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쓰지 않았고, 본문은 인터뷰 상대의 육성을 오롯이 전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어요. 인터뷰어가 너무 나서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요. 그런데 이번에는 번역가들의 이야기와 함께, 문학이 어떻게 나를 살리는지 그 애정을 섞어서 썼어요. 인터뷰라는 건 인터뷰어의 삶과 인터뷰 상대의 삶이 융합해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나오는 글이거든요. 서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욕망’과 ‘슬픔’이 이끄는 곳

두 분 다 메일에 한 줄 서명을 남기시더라고요. 최현숙 작가님은 ‘욕망에서 시작한 변혁’, 은유 작가님은 ‘슬픔이 슬픔을 구원한다’인데요. 

최현숙 : ‘욕망에서 시작한 변혁’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성소수자로서 나를 정체화하고 진보정당 내 성소수자위원장을 맡을 무렵이었어요. 가부장제 안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배반하고 남자랑 살다가 어떻게든 그 안에서 해보려던 걸 깨고 나와서 여자와 살기 시작했을 때죠. 그전까지는 여러 사회적 의제에 동의를 해서 싸웠지만, 내 삶과 몸에 밀착된 주제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내가 여자랑 산다는 건 굉장히 다른 거죠. 순전히 내 욕망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걸 지지하지 않았고, 나와 가까운 사람이 더 난리를 치고. 거기서부터 “난 나 원하는 대로 산다” 하고 ‘욕망에서 시작한 변혁’을 썼어요. 예전에는 사명감, 대의로 출발했다면,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내 몸, 욕망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예요. 지속적으로 나를 여기에 있게 하는 것, 실패하고 깨지더라도 여전히 그 존재로 남는 것. 

은유 :선생님이 욕망에서 시작한 변혁이라면, 저는 슬픔에서 시작한 변혁인 것 같아요. ‘슬픔이 슬픔을 구원한다’는 예전 수유너머에서 열린 강연에서 성공회 신부님이 하신 말씀인데 그 말이 저한테 확 박힌 거예요. 당시 삶의 슬픈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 이 말이 내 삶의 열쇠 말이 되어줄 것 같았나 봐요. 고통이나 슬픔을 없앨 수는 없는데, 우리가 서로의 슬픔을 알아보고 나누다 보면 이것이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로 드러나고 함께 더 나은 사회적 토대를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진정한 자기 구원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게는 슬픔이 중요한 키워드예요. 드러내어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많아야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닌가 싶어서, 글쓰기를 계속해 왔죠. 제가 바라는 건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 고통을 알아주는 세상이에요. 

최현숙 :저도 은유 선생님의 문구를 딱 보면서 내가 고통이 있는 곳을 쫓아다니는 것과 만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사실 나는 슬픔과 눈물 이런 말 좀 이상해. (웃음) 제가 굉장히 무디고 거침없는 사람이어서일 수 있겠죠. 나에게 감수성은 현장에 가서 같이 뭉개면서 실수하면 야단맞고 화내고 싸우면서 배우는 거야. 『작별 일기』를 봐요, 엄마가 죽음에 다가가는 3년을 보면서도 관찰과 해석 욕망으로 눈물 하나 흘리지 않았다고 써대는 여자야.

은유 :감수성의 질감이 다른 것 같아요. (웃음)



최현숙 작가님은 홈리스에 대한 구술 기록을 이어오고 있고, 은유 작가님은 첫 출발점이었던 문학으로 돌아오셨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가고 싶으신지 궁금해지는데요. 

은유 : 항상 계획 없이 사는 게 계획이에요. 또 제가 모르는 세계가 찾아오면 저를 벌떡 일으켜 세우겠죠. 현재의 관심사 중 하나는 작가의 노동권이에요. 프리랜서 작가부터 자유기고가, 단행본 작가 생활까지 하면서 수많은 동료 작가를 보는데 너무 처우가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혼자 임금 투쟁 중이거든요. (웃음) 그나마 저는 목소리라도 내지만 기반이 더 취약한 작가들은 원치 않는 조건의 일을 맡을 수밖에 없고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이 불안정한 사회에서, 죽기 전에 작가 노조를 못 만든 게 한이 될 것 같은 거예요. 때마침 작가 노조 준비위원회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집담회에 참여해달라고. 거기에 가보려고요. 

최현숙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오래 품었어요. 어쩌다 보니 구술 생애사 작업을 이어왔지만 사실 제 중학교 때 꿈은 소설가였어요. 그 후 사회 운동을 하고 마흔쯤에 잠시 글에 매달렸지만 안 되더라고요. 그냥 ‘내 인생에 문학은 없다’ 하고 깔끔하게 포기했어. 한동안 사회 운동을 했으니까 글이라고는 맨날 성명서, 보도자료, 규탄서, 기획안만 써대고 살다가 정말 난데없이 나에게 글쓰기가 온 거죠. 

소설을 쓰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구술생애사가 남의 삶을 원재료로 삼는 일이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필자로서 쓰고 싶은 글이나 의제를 충분히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어요. 여기서 약간의 픽션을 넣으면 훨씬 더 많은 의제를 다루거나 이야기가 풍성해질 수 있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장편소설 『황 노인 실종사건』과 이번 9월에 출간된 단편소설 『창신동 여자』를 썼는데, 앞으로도 소설화 작업에 관심이 있어요. 특히 홈리스 판은 현장 그대로를 드러내기엔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기 어렵지만, 가공을 거치면 의제가 무궁무진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 『광장의 미친 여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정신장애, 발달장애, 수집증 등 여러 가지 증세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업하고 있어요. 여전히 내 삶의 방향에 소설이 남아 있는 거죠.

은유 :선생님, 그 많은 걸 언제 다 쓰세요? 못 주무시는 거 아니에요? 

최현숙 :아냐, 맨날 쌓아두고만 있어. 맨날 녹음하고 모으면서 내가 어디 가서 5년만 있다 나오면 이거 다 쓰고 죽을 텐데 하지. 이러다가 어느 날 콱 죽겠죠.




*은유

글 쓰는 사람. 누구나 살아온 경험으로 자기 글을 쓸 수 있을 때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여기저기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한다. 성폭력·가정 폭력 피해자, 시민 단체 활동가 등과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 내는 일을 돕고 있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소설가. 2000년부터 약 10년간 진보 정치에 몸담았다. 이후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노인 돌봄노동을 하며 개인의 역사를 생생히 기록하는 구술생애사 작업을 해왔다. 2020년부터는 홈리스 현장에서 활동하며 주로 늙음과 죽음, 빈곤에 대해 관찰하고 느낀 바를 글로 써오고 있다. 




채널예스의 두 기자가 진행하는 크로스 인터뷰 '진심인 편'은
같은 키워드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는 두 사람을 인터뷰합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두 가지 깊은 관점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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