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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영 “이야, 근사하게 망쳤구먼. 그래도 어제랑 다른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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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퉤퉤퉤.’

책을 쓰고, 번역을 하고, 웹드라마의 각본을 쓰기도 한 “이토록 버젓한 잡상인”(29쪽) 황국영은 자신이 내는 첫 에세이의 제목으로 이 말을 내세웠다.

글자도 특이하고, 소리도 방정맞은 『퉤퉤퉤』를 책의 제목으로 삼았을 정도로 좋아한다는 황국영은 이 말이 “생각의 브레이크이자 악셀이자 부적”이라고 말한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달려나갈 때도, 뭔가를 함부로 단정해버리려고 할 때도 이 말 덕분에 멈춰 서서 돌아볼 수 있었다. 물론 실언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나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서. 그래서 오늘도 가만히 말해보는 것이다. ‘퉤퉤퉤.’


자신 없는 일들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 없는 일도 하며 사는 것이 어른이잖아. 적어도 난 자신감 없는 나를 인정하고 어찌어찌 살아나갈 자신감은 있으니 최악은 아닐 거야. 그렇게 믿자.(중략) 

야, 다 괜찮을 거야.

내가 아는 너는 울면서도 뚜벅뚜벅 걷는 사람이야.””



소심하고 어설픈 사람의 ‘퉤퉤퉤’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썼다는 말씀이 흥미로웠어요. 책을 쓰면서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은데, 어떤 걱정이었나요? 

너무 많이 걱정했어요. 일단 작가의 꿈이 있던 것도 아니고, 책을 쓸 자신이 있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나를 보여주거나 드러내는 일, 흔적을 남기는 일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도대체 내 얘기를 누가 들어줄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죠. 갑자기 진지한 얘기일 수 있는데요. 저는 세상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이름도 특이하고, 이미 작업한 것이 있어서 검색하면 나오기는 하지만요. 세상에 훌륭하지 않은 흔적을 남길 수 있겠다는 불안이 있어요. 그래서 SNS도 안 하고, 어떤 일이 들어와도 제가 투영되는 얘기는 해본 적이 없던 거예요. 별로 즐기지도 않고, 재능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책은 모든 것이 제가 의도하고 예상했던 것과 반대로 가야 하는 것이라서, 그것이 제일 큰 걱정이었어요.

그렇다면 책이 나오고 나서 새롭게 갖게 된 마음도 있을 것 같거든요. 

책이 나온 날 편집장님과 편집자님께 사인을 부탁드렸어요. 글은 제가 썼지만 책은 두 분이 만들어주신 거니까요. 거기에 편집장님이 ‘이 모든 과정을 즐기세요’라고 써주셨어요. 제가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셨기 때문일 거예요. “안 될 것 같아요” “못 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계속 했거든요. 그런 저에게 해준 말씀이어서 이것이 어른의 자세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일이 터지고 나면 나 몰라라 하는 경향이 있기도 해요.(웃음) 처음에는 ‘이거 진짜 책이 되어버렸잖아? 어쩐다?’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편집장님의 말씀을 듣고 초점을 바꿔보기로 했어요. 실제로 새로운 일을 하니까 고마운 사람들의 존재가 확 드러나더라고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응원을 해 주는 사람이라든지, 생각보다 훨씬 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거나 축하해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진짜 귀하고 알록달록한, 인생의 끝내주는 기념품이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퉤퉤퉤』는 나로 살아가는 것과 나로 잘 살아가는 것 사이의 압박감과 잡념이 가득한 책이거든요. 그러는 와중에 아주 유쾌하고요. 힘이 차오르는 책이에요. 누가 읽어줄지 몰라 고민하셨다고 했지만 그래도 쓰면서 어떤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지는 않았나요? 

어떤 책이 되었으면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못 미쳤던 것 같아요. 그저 최대한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퉤퉤퉤’를 말할 정도로 소심하고 어설픈 사람이니까요. 사실 사진을 찍을 때도 입술에 경련이 오는 건 잘해야 할 것 같으니까, 힘이 들어가서 그런 거예요. 동시에 나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책을 쓰면서 분명히 비겁하게 색칠하고 덧씌울 것 같더라고요. 무의식적으로 그런 부분이 들어갔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적어도 그렇게 쓰지는 말자는 의식은 하고 썼어요. 나를 보이는 대로 그냥 쓰자고요.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최대한 솔직하게 쓰자는 마음이었던 걸까요? 

그런 생각도 있었죠. 그냥 이랬어, 라고 하면 되는데 ‘너희들은 모르는 세계가 있지만 이런 결과가 나왔다’ 하는 식으로 쓰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제일 무서웠던 것이, 제 나름의 믿음을 가지고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마치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 거였는데요. 저는 전혀 그럴 능력도, 생각도 없는데 제 말투가 워낙 다정하거나 살갑지가 않아서 그대로 쓰다 보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솔직하자는 건 원래부터 가졌던 생각이고요. 더 나아가서 겉멋을 부리거나 누구를 흉내 내고 싶진 않았던 거예요. 어차피 못했겠지만요.(웃음) 그런 게 무의식적으로 들어갈까 봐 걱정했던 것 같아요.



‘퉤퉤퉤’는 브레이크이자 악셀이자 부적

『퉤퉤퉤』라는 과감한(웃음) 제목에 대해 들려주세요. 어떻게 갖게 된 생각이에요?  

일단 책을 생각하면서 떠올린 단어는 아니고요. 진짜로 자주 쓰고 생각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책에 나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단어였어요. 제가 뭔가 우당탕탕 살아요. 소심한데 무모하고, 아는 게 없는데 말이 많고, 전혀 깊이가 없는데 생각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행동과 말과 생각을 어지간히 하고 사는데 그게 되게 피곤하죠. ‘퉤퉤퉤’는 그런 제가 살려고 하는 말이기도 해요. 잘못하면 잘못한 대로 뭔가를 걷어내고 싶을 때 하나의 맺음말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잘못을 했을 때 ‘내가 그런 말을 했네’ 하고 그냥 지나가면 계기가 없잖아요. 그 대신 ‘그러지 말아야지, 퉤퉤퉤’ 하고 나면 반성해야 하겠구나, 조심해야겠구나, 생각할 수 있어요. 또 제가 제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그럴 때 역시 그만 해야겠다는 식으로 ‘퉤퉤퉤’를 생각해요. 결국 이 말은 생각의 브레이크이자 악셀이자 부적 같은 느낌이에요. 나쁜 건 끊어내고 너무 빠져 있을 때는 나아가게 하고요. 이걸로 뭔가가 나아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데요. 그래도 퉤퉤퉤, 하면서 반성하고 인식했다는 것에 안심하면서 불안감을 줄여가는 것 같아요.

많이 공감이 가요. 내가 나인 것이 버거울 때가 있으니까요. 

자신을 버거워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저만 그런 줄 알았거든요. 사실 책에 대한 감상을 듣기 전에는 제가 어떤 글을 썼는지도 잘 모르겠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는데요. 지금처럼 말씀해 주시니까 정말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하고 비로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을 낸다는 건 책을 읽은 사람들을 통해서 제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야, 근사하게 망쳤구먼. 그래도 어제랑 다른 사람이야. 넌 적어도 스스로 망쳐본 사람이잖아.”(125쪽) 같은 문장도 너무 좋잖아요. LED 전구를 직접 갈다가 고생한 뒤 한 얘기였어요. 

진짜 많이 망쳐봐서 그래요.(웃음) 시도 때도 없이 망치니까요. 망친 건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요. 열심히 안 했거나 내 태도의 문제로 망쳤다면 물론 혼내야죠. 그렇지만 LED 같은 건 솔직히 처음 해보는 일이고요. 돈을 주고 교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해보려고 한 일이었어요. 망친다 해도 밑져야 본전인 일이었죠. 그러면서 사실은 자주 망쳐봐도 괜찮을 때가 있다는 걸 조금은 눈치 챈 것 같아요. 망쳐도 별일 안 생긴다는 걸 다년 간의 망침을 통해서 알게 된 거죠.(웃음) 그리고 어차피 고생했는데 망쳤다고 스스로 구박해서 뭐하겠어요. 더구나 해봤다가 망치면 나는 다시는 이걸 할 엄두는 안 내도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되게 소심한데 묘하게 긍정적인 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망치기 싫어서 시도도 안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저는 다른 사람과 관계가 없으면 저 혼자 해보고 망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 기대하는 게 별로 없어요. 네가 뭐 얼마나 잘하겠냐 그냥 한번 해봐라, 이 정도 수준인데요. 다른 사람들이 얽힌 일이면 망칠까 봐 무서워지기 때문에 도망을 가기도 해요.

사실 알고 보면 남다르게 단단한 면이 있는 거 아닐까요? 

그랬으면 정말 좋겠어요. 워낙 소심하고, 많이 지치고, 그래서 많이 피곤하기는 한데요. 쉽게 우울해지거나 비관적이 되지는 않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 단단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저를 끌고 가면서 어떻게 하면 나라는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나와 사는 노하우를 익혀가는 중 

자신의 단점을 잘 파악하는 것도 작가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습관이 되지 못한 상식들을 입력시키는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고도 쓰셨잖아요. 그 부분도 인상적이었거든요. 일단은 나에게 어떤 상식이 없는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계속 의식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사실 모르는 게 더 많을 거예요. 다만 진짜 몰상식하면 티가 나잖아요. 내가 알아챌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알아챌 수도 있겠죠. 어쨌든 그렇게 눈치챈 것들 중에서 만만한 것들은 해볼 만하지 않나, 생각해요. 저는 딱히 꿈도 없고 목표도 없는 사람이긴 한데요. 알면서 안 고치는 것도 생각보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결국 다 제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긴 해요. 기본적으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위로가 없으면 무서우니까요.

그 역시 나를 돌보는 행위일 수 있겠군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하여튼 저를 안심시키고 진정시키는 데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쓰는 것 같고요. 저를 좀 재미있게 살게 하려고 애쓰는데 실제로 재미있게 살려면 일단 안정이 돼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불안정한 저의 마음을 잘 달래야 해서 저랑 사는 노하우를 익혀가고 있나 봐요.

예를 들어 의자 잘 넣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 밖에 열심히 하는 것 있으세요?

의자 잘 넣기 역시 참 오랜 시간 의식을 안 하고 살았던 일이에요. 아직도 적응 기간이라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지 못하기도 해서요. 그것이 현재 저의 주요 프로젝트예요.

한 가지 더 있다면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예요. 요즘 번역하는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와서 하게 된 생각인데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듣는 건 정확히는 듣는 게 아니잖아요. 그것이 실은 상대의 이야기를 내 말의 땔감으로 쓰는 것일 때가 많다는 것,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는 것이라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해가 안 되거나 생각이 다르더라도 일단은 그냥 들어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죠. 진짜 멋있는 건 그렇구나, 하고 다 들어주는 것 같아요.

프리랜서로 사는 삶에 대해서도 얘기해볼까요. 작가님은 스스로를 “재미와 자유에 묶여 사는 노예”(25쪽)라고 말해요.  

저는 진짜 왜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일정을 정말 열심히 짜는데요. 그게 남들 보기에는 일을 잘하려고 하는 것 같겠지만, 저는 그 외의 시간에 최대한 자유롭고 싶어서 그러는 거거든요. 제가 하는 일이 자유와 재미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할 만해지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걸 위해서 일하는 것 같기도 해요. 프리랜서는 표면적인 자유는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건 진짜 표면적인 자유라서요. 진짜 자유를 얻으려면 표면적인 자유는 어느 정도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경험적 결과가 나오기도 했어요.



꿈은 같이 술 한 잔 마셔보고 싶은 할머니 

자유야말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걸 언제 알게 되신 거예요? 

역설적이게도 제가 자유에 굶주려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어요. 사람들이 여행을 가서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많이 봐요. 그런데 저는 부모님과 살면서도 무척 자유로웠었나 봐요. 저를 여행지처럼 다른 곳에 내놓는다고 특별히 자유로워지지 않더라고요. 그렇다는 건 내가 지금껏 크게 자유를 억압당하며 살지 않았던 거고, 때문에 이게 조금만 억압되면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라도 나에게는 큰일처럼 느껴지는구나, 알게 됐어요.

10대나 20대 때 다른 친구들은 엄마, 아빠 없으면 이런 걸 하고 싶다거나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요. 저는 그런 게 정말 없었거든요. 제약으로 느끼는 조건들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생각보다 자유를 잘 누리고 살았구나, 그래서 이게 억압되면 숨 막히겠구나, 생각을 했던 거죠. 한번은 일정이 많이 잡히면 왜 힘든지 생각해 봤어요. 사람들 만나는 걸 어려워하거나 딱히 체력이 약하지도 않은데 말이에요. 결국 그만큼의 시간 동안 자유가 없어진다는 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유롭기 위해서 자유를 통제하면서 지내고 있어요.(웃음)

출퇴근을 의식하기 위해 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잠옷에서 출근복으로 갈아입는 일을 애써 하시는 이유도 그 맥락이겠어요. 

맞아요, 저는 마인드만으로는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자극을 줘야만 해요. 진짜 저를 6살짜리 조카라고 생각하고 사는데요. 이 애는 내가 옷을 입혀야 정신을 차린다, 세수를 해야 잠이 깬다, 항상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제 6살 조카들은 훨씬 저보다 성숙하지만요. 그래서 스케줄대로 밥 먹으라는 시간에 먹고, 세탁하라는 시간에 계획을 지키고, 놀 때는 기분 좋게 놀죠. 그런 하루를 보내면 잠잘 때 ‘녀석 기특하구나’(웃음) 싶어지는데요. 그런 재미와 자유의 순간을 만들려고 나머지 하루를 계획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 칭찬받는 걸 좋아하는 거죠. 그래서 자잘한 계획을 많이 세우는 거예요. 칭찬받을 일을 많이 만드는 거예요. 그럼 밥 제때 먹은 것으로도 칭찬받을 수 있거든요.  

프리랜서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노동으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 것 같거든요.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가 곧 나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작가님의 글에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이기도 했어요. 여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동으로 나를 설명하는 건 약간 오늘 먹은 식단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져요. 오늘 입은 옷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책임감 같은 면에서는 분명히 의미가 더 크겠지만요. 저한테는 그 자체가 주는 의미는 비슷한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문제는 제가 한 가지를 깊숙하게 하지 못하다 보니까 일로 나를 설명하려면 진짜 너무 번거롭고 구차하고 얇고 넓어져서요. 결국 설명할 수가 없게 돼 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일을 하는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일이 그것이 나의 하루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어떤 게 재미있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신 거죠.

그런 것도 같고요. 그냥 각각을 저의 일부, 조각들로 생각하고 있어요. 직업도 분명히 저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는 한데요. 그게 곧 나인가, 생각하면 잘 모르겠는 거죠.

같이 술 한 잔 마셔보고 싶은 할머니를 대외적인 꿈이라고 공표하셨어요.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꿈이에요. 

진짜 큰 이야기를 한 건데 사람들이 모르더라고요.(웃음) 제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꿈을 얘기한 건지 말이에요. 진짜 욕심 낸 꿈이거든요. 저는 진짜 멋있고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와, 저 사람이랑 술 한 잔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술이 중요하다기보다 그렇게 편안한 자리에서 얘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사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그것도 나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과 한번 놀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더 어려울 거예요. 그것이 굉장한 기대와 설렘과 호감이 담긴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고요. 그걸 꿈으로 삼은 거죠.

실제로 그러려면 술 사줄 여유도 있어야 할 거고, 경험도 많아야 하고, 좋은 가게도 알아야 하고, 건강도 해야 하고, 마주 앉은 사람에게 지지 않을 만큼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러면서 동시에 저도 재미있어야 하니까 새롭고 낯선 사람들의 얘기에 꾸준히 호기심도 갖고 있어야 하고, 그들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지식도 있어야 하죠. 이건 정말 원대한 꿈이에요.



*황국영

정체성이 모호한 것이 유일한 정체성 같다. 활동성 높은 집순이. 낯가림을 경험한 적 없는 내향형 인간. 게으르게 살 궁리를 하느라 바쁜 생활인. 안정 추구형 모험가. 취미는 취미 찾기, 특기는 아직 찾는 중이다. 

혼자로도 거뜬히 풍요로우면서 함께일 땐 더 넉넉한 ‘어엿한 1인자’가 되고자 어설픈 설계도를 가지고 우당탕탕 나를 조립해 나가는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사소한 일에 너무 오래 허우적대지 않도록, 도망치지 않을 만큼만 단단하도록. 완벽하지 않은 날에도 조금만 더 포근한 마음과 근사한 태도로 살아 낼 수 있길 기대하며 혼잣말처럼 ‘퉤퉤퉤’의 주문을 왼다.

말과 글을 짓고 옮기는 일을 한다. 『미식가를 위한 일본어 안내서』, 『クイズ化するテレビ T V, 퀴즈가 되다』를 출간했고 『그렇게 어른이 된다』, 『외국어 공부의 감각』, 『어떡하지? 이럴 때 펼쳐보는 그림 사전』 등을 옮겼다. 원서 함께 읽기 클래스 <아소비고코로스 @asobi_gokoros〉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했고, 일본 와세다대학원에서 표상 미디어론을 공부했다. 기획자 및 문화 마케터로 활동하다 책과 이야기에 관련된 일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TV, 퀴즈가 되다』(クイズ化するテレビ)를 출간했고, 아이디어 북 『MY BIG DATA』를 기획했다. 웹드라마 「게임회사 여직원들」 「오! 반지하 여신들이여」의 각본을 썼으며 『그렇게 어른이 된다』 『이대로 괜찮습니다』 『오늘도 중심은 나에게 둔다』 『외국어 공부의 감각』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퉤퉤퉤
퉤퉤퉤
황국영 저
책사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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