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후 한국에 유행한 것이 있다면? 먼저 코로나19가 있었고, <환승연애> 등의 TV 프로그램도 있었다. 모두가 탕후루를 먹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제일 꾸준한 유행을 꼽으라면 푸바오가 아닐까. 2016년 한국에 온 판다 아이바오와 러바오 사이에서 태어난 푸바오는 특유의 귀여움으로 사람들에게 어느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자랑했다. 아쉬운 소식이지만 4월, 푸바오는 협약에 의해 중국으로 간다. 한국 출생이지만 소유권은 중국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뒹굴거리며 마냥 행복한 에너지를 전파하는 판다 뒤에는 강철원 사육사가 있었다. 국내 최초로 판다 자연임신분만을 성공시킨 ‘판다 할부지’이자, 37년 동안 백호, 오랑우탄, 황금머리사자타마린 등 수많은 야생동물의 삶을 책임졌던 역량 높은 사육사이기도 한다. 푸바오를 사랑하고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강철원 사육사가 『나는 행복한 푸바오 할부지입니다』로 남은 말들을 전한다.
“이별은 없어. 우리는 영원한 가족이니까.”
스스로 노력한다는 자부심
『푸바오, 언제나 사랑해』나 『푸바오, 매일매일 행복해』는 사진이 많았다면, 이번 책은 글 양이 많은 편이에요. 책을 내보자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푸바오가 태어나기 전부터 제가 동물원에서 37년 동안 일하면서 든 생각들을 책으로 써 보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야생동물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보통은 학교에서도 반려동물이나 산업동물 위주로 가르치고 야생 동물을 가르치지 않고요. 푸바오가 태어나고 포토북이 나오면서, 동물 전체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판다가 성장하는 과정만이라도 일단 엮어서 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유튜브나 책 모두 제가 먼저 시작하자고 해서 한 경우가 많아요.
책 집필, 유튜브 출연, 방송 출연 등 사육사 일 외의 활동도 많이 하고 있어요.
일과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바빠요. 제 생각에 바쁜 사람들은 늘 뭔가를 새롭게 하려는 의욕이 있어서 바쁘거든요. 그리고 한가한 사람들도 자기가 한가하다고 별로 이야기 안 해요. 나름 바쁘죠. 그래서 저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지 시간을 만들고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천성적으로 새로운 걸 찾고 노력하는 성정이 있는 것 같아요.
늘 그렇지는 않은데, 그러려고 노력하죠. 스스로 노력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제가 편히 쉴 수도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노력할까 하면, 저는 되게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쉬는 날 늦잠 자면 하루가 그냥 흘러가버리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쉬는 날도 출근 날처럼 일어나서 운동하고 뭔가를 하고 계획을 세워요.
그런 걸 우리는 성정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웃음)
그래서 저를 피곤해 하는 분들도 있죠. 같이 사는 가족들도 그렇고요. (웃음)
다른 사육사분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아무래도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자기가 안 챙겨도 되는 일인데 작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관여하고, 어떻게 보면 싫죠. 하지만 후배들도 결국은 그렇게 따라오더라고요. 저와 같이 일하는 송영관 씨, 송바오가 15년 넘게 저와 같이 일하고 있거든요. 제가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서 해요. 레포트를 쓰면서 활동하면 자기도 레포트를 써보고, 제가 강의를 나가면 그 친구도 원숭에 대해 강의하고, 유튜브도 출연하고요. 선배들이 가는 길이 어찌 보면 후배들에게는 같은 방향을 보고 따라갈 수 있는 길이잖아요.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가면 누군가에게는 그게 본이 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게 될 수도 있죠. 그렇게 가는 게 저는 좋습니다.
사육사는 “관찰하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규칙을 만드는 사람”(320~324쪽)이라고 정의했어요. 사육사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직업 윤리로도 읽힌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기본적으로 동물 이야기이지만 전반적인 사람에게 다 해당될 거예요. 관찰하고 기록하는 게 어느 직업에나 필요하잖아요. 제가 흔히 제인 구달 박사를 예로 드는데,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를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영장류를 연구하기 위해서 아프리카로 보내졌는데, 처음에는 침팬지를 따라다니면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밖에 없었어요. 자꾸 보니까 개체가 구분되잖아요. 기록을 보니 특징이 보이고, 학계에서 발표를 했더니 사람들이 유인원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알게 된 거죠. 다른 직업도 결국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꼼꼼히 기록하고 기록을 종합해 보면 새로운 게 보이고 나만의 방법이 생기고 자기 강점이 돼요. 주인 정신과도 연관되겠죠. 동물은 에버랜드 소속이고 나는 직원으로 있지만, 주인 정신으로 동물들을 돌보는 것과 먹이와 물 챙겨주고 퇴근하는 건 다르거든요. 딸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해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하지만 네가 밝게 웃으면서 맞이하면 손님은 기분이 좋아질 거고 친절한 직원이 있다고 이야기하게 될 거라고요.
따님들은 아마 싫어하셨을 것 같아요. (웃음)
싫어하죠. 아빠 또 잔소리한다고. (웃음) 그래도 고민이 있으면 아빠한테 이야기하고 그래요.
책에 사적인 부분도 나와있어요. 중국 판다 기지에 가면서 결혼 기념일을 챙기고 싶어 후배에게 부탁해 아내분에게 편지와 꽃다발을 전달해 줬다고요. 아내분한테 하는 것도 그렇고, 애정을 표현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으신 것 같아요.
인색한 편이죠. 평소에 막 표현하고 살갑게 대하거나 다정다감하게 대하는 건 부족해요. 그냥 보면 무뚝뚝하고 표정은 항상 인상 쓰는 것 같죠. 하지만 잔정이라는 게 있다면 챙기고 싶어요.
야생동물과 사육사가 할 수 있는 일
책에서 처음 리리와 밍밍 판다가 한국에 오던 날이 나와요. 이동 과정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항온 항습 기능이 있는 버스로 이동했다고요.
동물용으로 만들어진 차는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일반 트럭으로 동물들을 이동시켰는데, 지금은 가급적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하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예민한 반도체를 흔들림 없이 운반하기 위해 개발된 차라고 들었어요. 온습도와 진동을 제어할 수 있으니 동물에게는 훨씬 스트레스가 덜하죠.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동물의 복지가 개선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더라고요. 죽순을 급속냉동시키는 에피소드도 나오고요.
야생동물 관리 기법은 아직 많이 발전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방법들은 계속 찾으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잘 쓰는 말 중 하나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변명이 보인다’가 있는데, 우리가 습관화되고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답인 줄 알고 그냥 할 때가 많은데 이걸 바꾸려고 생각하면 답이 있을 거거든요.
동물들에게 먹이를 준비하는 과정도 나와 있어요. 먹이 준비를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동물원에서 나비와 반딧불이를 키우고 있어요.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거기서 그치지만, 반딧불을 키우려면 그 종이 먹고 사는 다슬기가 있어야 하고, 나비를 키우려면 나비마다 먹이 식물이 달라요. 큰줄흰나비는 십자나무과 식물을 키워서 먹이를 줘야 하는데, 그러면 배추나 유채, 미나리를 키워야 하고, 호랑나비를 키우려면 탱자나무가 있어야 해요. 하나의 생명체를 키우려면 그 생명체의 먹이나 주변 환경을 다 관리해줘야 하죠.
그러다 보니 동물원에서 유채를 키우고 있는 거군요.
나비를 키우면서 항상 여유분이 필요하니까 남는 것 중 일부를 판다한테 쓰자고 한 거죠. 판다들의 고향에도 유채꽃이 많으니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으니까요.
동물이 좋아서 대부분 사육사를 꿈꾸지만, 사실상 사육사가 하는 일들은 그 동물이 싫어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요. 이제까지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제가 어찌할 수 있는 동물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결정한다고 해서 방생하거나, 넓은 공간을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요. 그래도 제가 사육사이기 때문에 제한된 영역 안에서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이 있거든요. 동물이 좋아서 사육사가 되지만 밖에서 생각하던 것과 달리 막상 동물원에 오면 현실이 다를 수 있어요. 그 상황에서 동물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제 업의 방향이에요. 해줄 수 있는 선에서는 동물들에게 최선을 다 해주고 싶어요.
판다를 담당하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지 않나요?
공부하는 게 싫지 않아요. 저는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나 되게 가난했었어요. 겨울에는 거의 고구마로 주식을 이어가는 집이었는데, 공부한다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어요. 공부는 나중에 제가 하고 싶을 때 돈 벌어서 하자고 생각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죠. 취업 설명회에서 자연농원을 소개받고 에버랜드에 오게 됐는데, 10년 정도 일하니 경험은 쌓이는데 이론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일을 먼저 하고 공부하니까 제가 부족했던 걸 바로 배우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동물들에게 잘해줄 수 있는 걸 생각하다 보니 식물 요소를 적용해야겠다 싶어서 조경을 배웠고요. 조경을 하고 나니 생물 번식과 보존에 관심이 생겨서 번식학을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중국어도 판다 때문이 아니라 우연찮게 중국어가 재밌어 보여서 했던 거고, 판다뿐만 아니라 동물들과 함께하면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기왕이면 제가 좋아하는 쪽으로 하려다 보니 모든 게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야생동물이 작가님의 인생을 규정짓는 큰 요소가 되었군요.
동물원에 와서 얼마 안 됐을 때 인도표범 새끼가 태어났는데, 엄마가 돌보지 못하고 사육사가 키워야 했었어요. 담당은 아니었지만 자원해서 국내 최초로 인공 포육을 성공시키고, 그 아이를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서 새로운 관점이 생기더라고요. 야생동물과 사육사가 할 수 있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이 굉장히 많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 때문에 지금도 사육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계기가 없었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면, 인간 강철원은 뭘 하고 있을까요?
세 가지를 생각해요. 중학교 때부터 목장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목장을 한다면 말 한 마디를 꼭 구입해서 말을 타고 목장 언덕에서 소떼를 바라보는 게 저의 꿈이었거든요. 아니면 사진 쪽으로 뭔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동물, 식물 사진을 찍다 보니 참 재미있어요. 류정훈 사진작가가 근 20년 동안 에버랜드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거든요. 강연을 나가면 저는 푸바오 이야기를 하고 류정훈 작가가 렌즈를 통해 본 푸바오를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제안도 하고요. 그게 아니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운전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94년도부터 운전을 해 왔는데, 지금도 운전하는 게 좋아요. 사육사가 아니라도 저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살았을 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거든요.
푸바오를 만나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요즘 시간을 내서 추가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취미생활로 텃밭 가꾸는 데 심취해 있어요. 그린대학이라고 농협 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농촌 기술 수업이 있는데, 그런 것도 한 번 해보고 싶고요. 지금 새로운 스포츠로 클라이밍에 도전해보고 싶고, 검도를 다시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그러면서 푸바오, 아이바오, 러바오 친구들도 돌봐줘야 하고요.
하고 싶은 게 많고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게 재미있게 사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삶이 무료해지거든요. 사는 게 지친다고 표현하는 현상이, 뭔가 새로운 의욕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정년까지는 ‘판다 할부지’로 계속 일하시게 될 텐데, 사육사로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아이바오나 러바오는 저보다 오래 이곳에 있을 거예요. 2031년까지 한국에 있기로 했고, 저는 2029년이면 정년퇴임을 해야 할 나이거든요. 판다를 다시 맡게 되면서 국내에서 판다를 처음으로 번식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그 꿈은 이루었지만, 꿈 너머의 꿈이 더 중요해요. 사육사로서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그걸 이용해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싶어요. 방송이든, 책이든, 강연이든 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고 싶어요.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나요?
푸바오가 태어나고 감사 편지를 많이 받았어요. 자식도 손주도 다 키워 내보내고 우울증에 빠졌는데 푸바오를 만나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는 노인, 생활을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푸바오를 만나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수험생도 있었어요. 대인 기피증에 시달리다 푸바오를 통해 밖으로 나왔고 희망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그런 분들에게 읽히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주는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강철원 1969년 7월 18일 전북에서 태어나 깊은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뒤로는 대나무밭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자연스럽게 동식물과 친구로 지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게 되면서 야생 동물과의 진정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동물에 대한 전문 지식에 목마름을 느껴 대학에서 동물학을 공부했고, 동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식물도 알아야겠기에 조경학을 공부했다. 유인원을 담당하면서는 번식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어 대학원에서 번식학을 공부했다. 2016년 아이바오와 러바오를 맡게 되면서 판다 아빠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실력 있는 여러 사육사, 수의사 들과 한 팀이 되어 자이언트판다 번식에 성공하게 되었고, 그렇게 태어난 아기 판다 푸바오로 인해 이제는 판다 할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지금까지 다양한 개성과 특징을 가진 동물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보듬는 마음가짐을 배운 그는, 오랜 세월 함께한 야생 동물들에게서 배운 선한 영향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탄생 1호 아기 판다 푸바오와의 추억을 담아 《아기 판다 푸바오》, 《푸바오, 매일매일 행복해》를 집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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