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의 최종후보 6인에 이금이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2년마다 글, 그림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해 시상하는 이 상의 글 부문에 한국인 작가가 최종후보로 선정된 것은 이금이 작가가 최초다. 장편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 역사소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동화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망나니 공주처럼』등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온 이금이 작가는 1984년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해 올해로 작가 생활 40주년을 맞이했다.
그런 뜻깊은 때에 최종후보 선정 소식을 들은 이금이 작가는 “한국의 어린이, 청소년 문학이 경계 없이 읽히는 책이 되도록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차 독자를 어린이나 청소년으로 염두에 두는 것이지, 모든 책을 성인이 같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면서 쓴다”는 작가는 이 소식을 계기로 한국의 아동청소년 문학이 국내를 넘어 세계에 더 널리 퍼지기를 바라고 있다.
“요즘 아동청소년 문학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그 책을 읽는 성인 독자도 많아졌지만요.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그냥 어린이나 청소년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시거든요. 제 책의 몇몇 리뷰도 보면 ‘이건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 성인 소설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그런 말에서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 어떤 경계나 허들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하지만 저는 늘 어린이 독자와 성인 독자를 모두 생각하면서 쓰고요. 쉽게 쓰면서도 유치하지 않은, 다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글을 쓰거든요. 그것이 아동청소년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언젠가는 아동청소년 책도 성인들이 아무 경계 없이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야기로 즐겁게 살았어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 글 부문 최종후보 6명에 오르셨습니다. 가장 먼저 소감을 여쭙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최종후보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되니까 남다른 기분이에요. 후보가 되기까지, 신청 과정에서부터 정말 많은 분들이 고생을 하시거든요. 국내에서 먼저 후보를 선정하고, 그 후보에 대한 자료를 엄청나게 준비해서 보내는 과정이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많은 분들의 수고가 들어간 거죠. 때문에 최종후보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과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어요. 최소한의 보답은 했구나, 싶어서요.
개인적으로도 기쁘고 영광이고요. 그동안 한국의 그림책이 많이 세계에 알려진 것에 비해 문학 작품들은 번역이라는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한국의 아동청소년 문학을 알렸다는 것이 기뻐요. 오랫동안 이 분야의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제 몫을 조금이라도 했다는 생각에 많이 기쁩니다.
“보답은 했구나”라는 말씀이 좋아요. 주인공은 작가님이지만, 여기까지 온 데에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이라서요.
제 책 중에 미국에 번역이 되어서 출간된 책도 있지만요. 그렇지 않은 책들도 많아요. 그 가운데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번역하기도 했고요. 또 출판사에서 개별적으로 번역을 하기도 했어요. 정말 다들 적극적으로 애를 써주신 덕분이거든요. 그러니 보답이라는 말을 안 할 수 없어요.
1984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셨으니까 올해로 꼭 40주년이 돼요. 오랫동안 써오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최종후보 소식이 더 뜻깊었을 것 같거든요.
뜻밖의 선물을, 깜짝 선물 같은 기분도 들어요. 그러고 보니 저 자신에게 또 보답을 했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웃음)
40년 동안 정말 꾸준히,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셨잖아요. 이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만 고생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누구나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이 있잖아요. 상처도 있을 테고요. 제게는 그런 것들이 글을 쓰면서 많이 치유가 됐고요. 어렵게 겪은 일들을 글로 쓰면서 승화도 했어요. 때문에 고생했다, 힘들었다는 생각보다는 나한테 문학이 있던 덕분에 즐겁고 행복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죠.
이제 저의 삶에서 작가로 산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더 길어요. 더 이상 삶에서 문학과 저를 분리할 수도 없고요. 그냥 문학이 곧 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는 게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인 거죠. 어떻게 보면 힘들거나 고생스럽거나 지루했을 수 있는 삶을 이야기로 승화시키면서 즐겁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망을 말하는 이야기
글을 쓰면서 힘든 일이 승화되기도 했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씀에서 작가님이 변함없이 써가는 힘이랄까요, 그런 것이 느껴집니다.
이야기의 힘 같아요. 어디에선가 이야기의 씨앗이 날아다니다가 제 마음에 앉는다 해도 그게 다 새싹을 틔우는 건 아닌데요. 일단 제 가슴 속에 뿌리를 내린 것은 계속 생각해요. 그렇게 자라나는 이야기가 여러 개 있고요. 그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제 삶과 어우러지면서 각자 자기 이야기를 발전시켜요. 그러다 보면 마음 속에서 제일 많이 완성된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죠. 자연스럽게 순번이 정해지는 거예요. 다음에는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 하고요. 그 마음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를 준비해요.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낸 어떤 이야기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세상에 꺼내 놓아야 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그것이 무거운 짐 같은 게 아니고요. 즐거운 의무겠죠. 저는 쓰고 싶은 게 계속 있으니까 쓰는 거예요. 본질적인 원동력은 그 힘인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책이 세상에 나와서 독자들을 많이 만나고 잘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언제나 늘 다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나서 쓰는 것이 언제나 먼저였어요.
그렇다면 세상의 무수히 다양한 이야기들 가운데 특별히 더 관심이 가는 주제가 있을까요?
아이들의 삶이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심지어 저는 아이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일을 겪었을 때도, 만약 그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작품 속에서 아이들의 일로 바뀌어요. 그렇게 쓰여요.
“내가 어린이문학을 선택한 게 아니라 어린이문학이 나를 선택했다”고 하실 만큼 아이들의 이야기를 쓸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하시죠. “동화책이 어떻게 보면 가장 흥미롭고, 위대한 분야라는 생각을 어린 시절에 했던 것 같다”고도 하셨고요. 어린이문학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작가가 꿈이었는데요. 성인이 되어서 습작을 하는데 제가 자꾸 어린이 이야기를 쓰는 거예요. 물론 성인소설 중에도 어린이가 주인공인 소설도 있죠. 그래서 의식을 못하고 쓰다가요. 뒤늦게 알았어요. 나는 어린이 이야기를 쓰고 싶을 뿐더러 나의 독자들, 그러니까 1차 독자가 어린이였으면 좋겠다고요. 뒤늦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동화라는 걸 깨달은 거죠.
아동문학이 나를 선택했다고 말한 데에는 그런 생각도 있던 것 같아요. 물론 작가들은 다 책을 좋아했겠죠. 저도 그랬고요. 성인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겠어요. 그런데 그 중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준 것은 어려서 읽은 동화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사실 외국 동화들이 대다수였는데요. 그렇더라도 그 안에 담긴 보편적인 인간의 삶 같은 것이 저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어린이 책은 희망을 얘기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이야기들이 어려서부터 좋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의 힘으로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위로 받은 것처럼 어린이들도 제 책에서 그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래서 아동청소년 문학이 좋아요. 물론 그 안에도 어려운, 슬프고 힘든 상황이 당연히 있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구가 열리는 듯한 이야기 방향이 항상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맞아요, 심지어 쓰면서도 그래요. 저 스스로도 세상을 다 알아서 글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은 글을 통해서,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서 저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고요. 쓰면서 위안을 받고 치유를 받는 거예요.
개정판 작업을 하는 이유
작가님의 작품에는 부모의 이혼, 가출, 죽음과 같은 사례가 드물지 않게 등장하고요.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등 다양한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또한 환경문제나 노인문제까지, 우리 사회의 낱낱한 현실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잖아요.
아픔이나 슬픔이 없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죠. 그런데 문학 작품이 사실은 인간의 삶, 그러니까 상처나 어둠을 그리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힘든 상황에 놓인 어린이들을 그리게 되고요. 그들의 아픔을 깊이 그리면 독자들 역시 꼭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그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어린이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삶의 질곡이 있겠어요. 그런 어린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등장인물과 마음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저도 어릴 때 그랬으니까요.
그런 현실을 담으실 때 의식하는 것, 갖고 있는 기준이 있나요?
항상 주의는 해요. 대상화하지 않으려고 애쓰죠. 사실 제가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지금처럼 인권감수성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때도 조심은 했어요. 내 책을 읽는 어린이들, 등장인물과 같은 상황에 놓인 어린이들이 내 책에서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럼에도 지금처럼 예민하고 세심한 감수성은 아니었기 때문에요. 여러 부분들이 지금의 시선으로 봤을 때 걸리는 부분들이 많아요.
지금 개정판 작업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저는 20년, 30년 전에 쓴 동화지만 읽는 것은 요즘 어린이들이잖아요. 만약 성인이 읽는 문학이라면 그 시대는 이랬어, 하겠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 책을 그대로 읽히는 게 되게 부끄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개정 작업을 하고 있죠.
따지자면 작가도 시대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어쩔 수 없이 지금과는 다른 과거의 모습이 발견될 텐데요. 과거의 나를 의식하고, 변화하려고 애쓰는 중이신 거군요.
그렇죠, 개정 작업은 엄청나게 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해요. 그때 나의 생각이나 사회를 보는 시선이 이 정도였구나, 싶어서 고치면서도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하지만 그때는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썼지만 편집자의 편집도 거치고, 독자들이 읽었음에도 그런 것들이 다 넘어갔던 거죠. 결국 사회가 용인했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요.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서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 문학을 하는 작가들은 좀 더 날카롭게 그런 부분들을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거듭 하게 돼요. 왜냐하면 자라는 어린이들이 읽는 거니까요. 문학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서 대상화하지 않으려 애쓴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특별히 조심하려고 하는 부분은 뭔가요?
제일 우선 하는 건 제 책을 읽는 첫 번째 독자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기 때문에요. 말씀드린 것처럼 감수성 낮은 표현이라든가 전체적인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 주의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또 지금은 저와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 사이에 물리적인 나이 차가 꽤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또래의 독자들이 제 책을 읽고 나서 “이건 우리 삶이나 우리 현실하고 너무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잖아”라고 말할까 봐 정말 겁이 나거든요. 책을 펴낼 때마다 “우리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썼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겁이 나서요. 점점 유행이나 문화가 빨리 변해서 참 어렵기는 하지만, 적어도 제가 그들의 본질적인 것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독자들이 우리 마음도 모른다고 하는 소리는 듣지 않도록 말이에요. 그 부분이야말로 제가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할 부분 같아요. 그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맞아요, 본질적인 인간의 마음은 어린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잖아요.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좀 유치한 존재로 보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결국은 아동청소년 문학을 유치한 거라고 생각하게 하는데요. 저 자신의 어렸을 때만 생각해 봐도 결코 그렇지 않거든요. 초등학교 5, 6학년 때를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마음이 복잡하고, 얼마나 여러 갈래의 생각들을 하고 그랬나요. 성인들이 어린이더러 철이 없다고 하는데요. 사실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생각하는 마음도 굉장하거든요. 특별히 조숙한, 성숙한 어린이만 그런 게 아니고요. 그들이 각자 가진 표현력 때문에 다르게 표현될지는 몰라도 그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은 다 같아요. 충분히 깊이가 있고요. 우리처럼 동화나 청소년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들인 거죠.
어린이는 완전한 인격체죠
어린이문학이 놓쳐선 안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린이가 완전한 인격체라는 것이요. 물론 미성숙한 면이 있겠죠. 그렇지만 그것이 유치한 것이 아니라 그 나이로서는 완성된 존재라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어린이가 아직 어려서, 세상의 경험이 부족해서 적게 표현하는 것이지 그 마음 속에는 그 나이에 맞는 완전한 인격이 갖춰져 있거든요. 근데 그저 성인이 되지 않으면 미성숙하다고만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어린이란 그때 그만큼, 그 시기에 맞게 완성된 존재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나의 등장인물을 그릴 때도 미성숙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가정 환경이라든가 다른 상황에 따라 어떤 인물은 정말 모범적이고 예의 바르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고, 어떤 인물은 거칠게 반항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어떤 인물은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잘 표현하지 못하기도 하겠죠. 그렇지만 그것은 제가 만든 캐릭터에 담아서 표현하는 거고요. 결코 인물을 그릴 때는 얘가 미성숙해서 모를 거야,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아요.
작가님 작품의 인물들이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말씀을 들으니까 알겠어요.
복합성, 그것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세상에 착하기만 한 사람은 없죠. 누구나 오만 가지 생각을 하고요. 어린이들 역시 선과 악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잖아요. 저는 그래서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해요.
물론 저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약간은 덜 입체적인 인물들도 있어요. 제가 20대 초반부터 글을 썼으니까요. 인간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 역시도 성장해 나가면서 달라진 것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 역시 캐릭터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다층적이고 다면적으로 그리는 게 재미있거든요. 인간의 마음에 오욕칠정이 다 들어 있고, 선과 악이고 공존한다는 것을 쓰면서 인간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자신도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런 인물들을 그리면서 ‘그래, 사람은 이런 거야’ 하는 생각에 저 자신이 위안을 받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 작품에 담긴 ‘돌보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차대기를 찾습니다』에서 주인공들은 길고양이를 돌보고요.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소희’는 할머니를 돌봐요. 그밖에도 많은 작품에서 돌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어떤 생각으로 이런 인물들을 만드시나요?
흔히 어린이를 돌봄을 받는 존재라고만 생각하죠. 제 작품 속 어린이들도 물론 어리고 약하고 힘이 없으니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데요. 그들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다른 존재를 돌보거든요. 저는 어린이 역시 이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돌보고자 하는 그런 순수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성인과는 달라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겠지만요. 어린이도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능력만큼은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많이들 얘기하죠. 아이들이 너무 이기적이라고요. 그런 면에서도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수 있을 거예요. 그 대상이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일 수도 있고요. 몸이 불편한 아이일 수도 있겠죠. 심지어는 어린이지만 선생님을 도울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꼭 나보다 약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존재를 찾아보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고요. 또 그렇게 뭔가 돌볼 수 있는 것은 용기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것들을 동화에서라도 많이 보여주고 싶은 거죠. 우리도 돌봄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고 도와줄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을 때 어린이가 더 당당해지고 자기 자존감도 더 커질 거라 믿어요.
어린이문학을 하는 남다른 행복
40년이라는 시간을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동안 독자의 성장을 보는 즐거움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아동청소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 같아요. 제가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작가의 말’에도 썼는데요. 이제는 강연을 가거나 지금처럼 기자님 같은 분을 만나면 제 초기작품들을 읽고 성장하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돼요. 되게 인상적이었던 분은 선생님이셨는데, 임신을 하셨더라고요. 그분이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옛날 판본을 가지고 오셨어요. 사실 그 책은 저한테도 없거든요.(웃음) 초등학생 때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면서 아이의 태명으로 사인을 받아 가셨죠.
또 사춘기 때 제 책 읽으면서 그 시기를 지났는데 작가님은 지금도 꾸준하게 그 자리에서 그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 걸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는 메시지를 주시는 분도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때 정말 이건 정말 다른 글을 쓰는 분들은 느낄 수 없는 남다른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죠.
지금도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몸집을 불리고 있을 텐데요. 어떤 이야기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곧 책으로 나올 예정인 것은 ‘밤티마을 시리즈’ 4부예요. 곧 나올 거고요. 일제 강점기, 사할린을 배경으로 그 땅에서 살았던 동포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고 있어요. 그 땅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요. 예정대로라면 시작을 했어야 하는데요. 요즘 외부 활동이 많아서요.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서 빨리 쓰고 싶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글 쓰는 데만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커요.
40년을 쓰셨는데 변함없이 새로운 재미를 찾으시고,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시네요.
그렇지 않으면 못 쓸 것 같아요. 재미가 없으면 못 쓰죠. 책이 나왔을 때는 독자들의 반응도 다 다르고, 평론가들의 평도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글을 쓸 때 흠뻑 빠져서 쓰는 것이 아니라면 계속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그저 지난한 작업이 되겠죠. 저는 늘 제가 만든 세계 속에서 내가 만든 인물들이 겪는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꺼내놓을 이야기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금이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 1962년 충북 청원군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유년기부터 이야기꾼 할머니와 라디오 연속극, 만화책 등과 함께하며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며 작가 되기를 꿈꿨다. “내가 어린이문학을 선택한 게 아니라 어린이문학이 나를 선택했다.”라고 말할 만큼 아이들의 이야기를 쓸 때 가장 행복하다는 작가는 1984년에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으로 새벗문학상에 당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작가는 1990년대와 2000년대로 이어진 우리 어린이문학의 폭발적 성장과 청소년문학의 태동 및 확장을 이끈 작품을 펴내며 독자와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어린 독자들의 오랜 요청으로 후속작이 거듭 나온 동화 ‘밤티 마을’ 3부작, 우리 어린이문학의 문학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장편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 ‘지금 여기’의 청소년이 품은 상처와 공명한 이야기로 본격 청소년문학의 출발점이 된 『유진과 유진』 등이 어린이, 청소년, 어른 모두의 큰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이 밖에도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 『망나니 공주처럼』 『내 이름을 불렀어』 등의 동화와 『허구의 삶』 『알로하, 나의 엄마들』, 『벼랑』 『소희의 방』 『청춘기담』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안녕, 내 첫사랑』 등의 청소년소설을 썼다. 50여 권의 책을 냈지만 아직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으며,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이가 되는 것이 작가의 바람이다. 그동안 1985년 소년중앙문학상, 1987년 계몽사아동문학상, 2007년 소천아동문학상, 2012년 윤석중문학상, 2015년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2020년, 2024년엔 작가의 업적 전반을 평가해 수여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어린이청소년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한국 후보로 선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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