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신을 모시는 무당이 있다. ‘ㄱ’을 사고팔아 유명해진 상인도 있다. 전자의 이름은 억조창생, 개명 전에는 이진솔이었다. 후자의 본명은 박치국이지만 배치 크라우더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프라이스 킹’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구천구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다. 억조창생의 아들이자, 배치 크라우더가 개업한 ‘킹 프라이스 마트’의 유일한 직원이다. 억조창생이 구천구를 ‘킹 프라이스 마트’에 취직시킨 이유는 ‘베드로의 어구’ 때문이다. 어떤 선거에서든 53퍼센트의 득표율로 승리한다는 전설의 성물을 손에 넣으려고!
『프라이스 킹!!!』에는 요상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한다. 이름도 하나같이 요상하다. 그러나 아주 강력한 힘으로 독자를 끌어당기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달려간다. 속도는 빠르고 리듬은 경쾌하다. 이야기가 끝이 날 때, 즐거움은 증발하지 않고, 무게감이 더해진다.
이 소설에 대해 은희경 작가는 “현란한 동시에 날렵하며, 어이없고 싱거우면서도 한편 묵직한 작품”이라고 했다. 박서련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新話를 만들어내는 것이 문학의, 작가의 본령이라고 할 때 또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김홍은 이 작품으로 ‘제29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
니가 래디칼을 알기나 알아?
이번 소설에 대한 독자들 반응을 보셨나요?
예전에 낸 책은 ‘황당하다’에서 끝날 때가 있었는데요. 제가 원하는 반응은 ‘황당한데 웃기다’인데, 이번 책은 그런 반응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은 소설 속 여러 설정들에 대해서 작품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으시죠. 그런데 독자들이 이탈하지 않고 계속 따라가요. 왜 그럴까요?
쓰다 보면 ‘너무 산으로 가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여기에서 좀 웃긴 이야기를 할까?’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독자들을 웃게 해서 마음을 풀어줘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문체의 매력이 강력하고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도 힘이 세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계속 읽는 것 같습니다. 시쳇말로 ‘떡밥’이 어떻게 회수될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떡밥을 말끔하게 회수하시더군요. (웃음)
다 적어놓고 쓰기 때문에...
이야기 전체의 틀을 정해놓고 쓰세요?
그런 건 아니에요. 소설마다 다른데, 이 소설은 이름부터 시작했어요. 이름이 나오면 등장인물이 나오고, 등장인물이 나오면 설정이 나오잖아요. 설정을 다 써 놓은 게 있기 때문에 인물들의 이상한 설정 같은 게 있으면 나중에 해명을 해야겠다 생각하죠. 스토리 전개에서도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그렇고요. 저는 사실 수미상관이라는 게 되게 재밌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이 수미상관을 좋아하는 게, 미학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자기 효용감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앞에 본 게 뒤에도 나오는데 내가 아는 거니까 자기가 똑똑해진 기분이 드는 거죠. ‘이거 내가 아는 건데? 기억하고 있었어!’ 하고. (웃음) 약간 쾌감을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에 나온 게 뒤에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편이에요.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이 동네에서 나는 평생을 살았다”입니다. 마지막 문장과 수미상관을 이루나요?
그렇죠.
“이 동네”는 전국구 무당이 많고 전출입이 거의 없는 곳입니다. 어떤 모습의 동네를 그리고 싶으셨어요?
제가 소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겪으면서 변화해야 된다는 거예요. 정체가 많이 돼 있어야 변화의 낙차가 크니까, 구천구가 탈출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공간에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천구가 답답함을 느끼는 공간,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하고 생경한 환경 속에 놓이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동네도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도 천구를 옭아매고 있어요. 왜 이런 가족을 만들어 주셨나요?
그런 가족이요...?
왠지 ‘원래 가족은 다 그런 거 아닌가요?’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 표정인데요? (웃음)
네, 그런 생각이 들고요. (웃음) 사실 제일 먼저 탈출해야 될 데가 가족이잖아요. 가장 처음 속박된 데가 가족이고. 처음에는 어쩌다 보니까 구천구라는 이름을 생각했고요. 그 뒤에 구이구, 구칠구라는 이름을 떠올리면서 둘(구이구와 구칠구)이 형제로 묶였어요. 그리고 엄마(억조창생)가 나오고 가족이 나왔고 ‘그럼 나가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런 순서로 생각했어요.
“많은 것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졌다. 아무리 부딪쳐도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은 주로 그런 것에서 왔다”라는 문장이 있죠. 작가님은 언제 이 사실을 아셨어요?
그건 그냥 살면서 깨달았고요. 저는 원래 이름이 홍석원인데 등단하면서 김홍으로 바꿨어요. 그때도 ‘성을 갈아버리자’ 생각했어요. 이제까지 있던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교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도 금방 벗어났고, 어딘가에서 벗어나는 것에 항상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반골 기질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소설 쓰기에도 영향을 주나요?
네. 그리고 반골 기질을 좀 좋아하거든요. 제가 05학번인데, 그때 운동권이 많지 않았잖아요? 물론 지금도 그런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저는 막 찾아서 활동하고 그랬어요.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도 하고.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세례를 받았는데 영주 바오로예요. 저희 가문의 성인이에요. 『임꺽정』의 홍명희 선생님도 직계는 아니지만 저희 가문이시고, 저희 집안에 서학쟁이들도 많고 월북한 분들도 많은데, 약간 기분이 좋아요. 핏줄에 그런 게 있다는 게.
소설 속 한 마디가 떠오르네요. “니가 래디칼을 알기나 알아?” (웃음)
그러니까요. 래디칼한 게 좋아요. (웃음) 래디칼하게 사는 것.
가족 분들도 천주교 신자이세요?
저희 부모님도 늦게, 나이 드셔서 세례 받으셨어요.
이 소설을 읽으셨겠죠?
예, 읽으셨죠.
베드로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무당의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웃음)
저희 어머니 아버지는 그렇게 신앙이 깊지 않으셔서 별 말씀 없으셨는데, 사실 신부님한테 아직 못 드렸어요. 저희 신부님이랑 친한데, 뭐라고 말씀하실지 몰라서, 만나서 설명을 하고 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소설에 신부님이 등장하기도 하죠. (웃음)
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소설은 등장인물의 이름에서 시작이 됐어요.
이름의 어감으로 시작했어요. 구이구, 구칠구, 구천구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름이잖아요. 억조창생도 그래요. 억 씨가 없거든요.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름이죠. 그리고 저는 몰랐는데, 제 친구가 소설을 읽고 그러더라고요. 구칠구 구이구의 이름에 나오는 숫자 729가 9의 3승이래요.
소설 속에 ‘구의 3승’이 나오잖아요?
맞아요. 저는 몰랐는데, 그런 우연도 마치 계획한 것처럼 주장해 보고 싶기도 해요. (웃음)
억조창생은 ‘수많은 백성’이라는 뜻의 고사성어이기도 합니다. 억조창생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해 보면, 배반되는 이름 같기도 해요.
그렇죠. 사실 무당이 사람도 달래고 귀신도 달래야 해야 되잖아요. 억조창생 씨도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기도 열심히 하면서. 그런데 삶이 그렇지 않고 세상이 그렇지 않으니까, 어느 순간 좀 지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자본주의나 정치라는 현실에 맞닿은 상황들이 조창생 여사를 화나게 하고 지치게 하지 않았을까.
억조창생이 개명하기 전의 이름이 이진솔이라는 것도 반전이에요.
진짜 진솔한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대대로 신을 모시는 집안이었고, (신이) 자기한테 왔을 때 순응해서 마니산에 들어가서 수행했고, 저는 그 삶이 굉장히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무당이 되는 그 일이. 사실 무당에 대해서 찾아보면 세속적인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은 되게 순수하고 진솔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결국 억조창생 씨에게 제일 큰 좌절이었던 것은 사랑이죠. 각자 모시는 신이 다르니까 이어질 수 없었잖아요. 그래서 ‘나는 내가 원했던 걸 한 번도 얻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거죠. 그런 것에서 이 사람이 지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처음에는 참고 기도했겠지만.
배치 크라우더, 박치국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배치 크라우더라는 이름부터 생각을 했는데요. 많이 생각하고 지은 건 아니고,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배치’라고 하잖아요. 거기에 크라우더를 붙였고. 한국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생각하고 낙차가 큰 한국적인 이름을 찾다 보니까 박치국으로 정하게 됐어요. 좀 강하고 전통적인 이름으로 짓고 싶었어요.
절대 사고 팔 수 없는 것은
『프라이스 킹!!!』은 블랙코미디 정치 우화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와 정치라는 두 개의 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죠.
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떤 이유로 정치를 공부하게 되셨어요?
첫 직장이 기자였어요. 그냥 기자할 생각으로 학부에서 경제, 통계, 행정, 정치외교 중에 정치외교를 선택했어요. 사실 학부 때는 공부 많이 안 하고, 말하자면 좌파 서적 같은 거 읽었어요. 어쨌든 그것도 정치 공부이기는 하죠.
“한국 정치에 대해 냉소와 회의가 많다”고도 하셨습니다. 학부 때부터 그러셨어요? 그래서 진로를 바꾸셨나요?
학부 때 공부한 걸 생각하면 오히려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비교정치학 안에서 정치 제도라는 걸 생각했을 때, 어떻게 하면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고 대의제가 어떻게 작동해야 되는지 공부했는데, 사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그런 제도적인 개선을 만들어나갈 수 없잖아요. 그 의사결정을 해야 되는 사람들이 자기 기득권을 재조정해야 되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요원하다는 생각을 하고, 제헌적 상황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요. 완전히 제헌적 상황이 되지 않으면 재조정되기 힘든 고착화된 기득권들이 저를 힘들게 해요.
소설 초반에 배치 크라우더라는 인물을 설명할 때부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살 수 없는 것, 사고파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옵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나요?
제가 생각한 이 소설 안의 메시지는 그거거든요. 모든 걸 사고 팔 수 있지만 ‘모든 걸 사고 팔지 않게 하는 것’은 사거나 팔 수 없다. 어떤 걸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인 것 같은 거예요. 자본주의는 모든 걸 사고 팔 수 있는 것 같지만, 아주 많은 자본을 가진 사람이 ‘내가 돈을 줄 테니까 너희는 아무것도 사거나 팔지 마’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메타적으로 봤을 때 가장 본질적인 것은 사거나 파는 것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배치 크라우더가 ‘킹 프라이스 마트’를 개업하죠. 그런데 돈으로 살 수 있는 물질을 원하는 사람들은 다 돌려보내요.
맞아요.
돌려보낸 사람 중에는 ‘독재자’를 사려는 사람이 있었어요. 배치 크라우더는 ‘독재자는 중고나라에 많다’면서 돌려보냈고요. (웃음)
진짜 중고 독재자들이 너무 많잖아요. 미국에서도 지금 중고 독재자를 다시 사려고 하잖아요.
배치 크라우더가 딱 한 번, 베드로의 어구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말해요. 어구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했고, 그리고 누군가 죽었다고요.
사실 그 이야기는 『엉엉』하고 연결이 돼요. 『엉엉』에 볼리비아에서 갓 돌아온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사람의 어떤 일화하고 연결되는 거예요. 지시적이지는 않지만. 그 이야기를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아요.
『엉엉』과 『프라이스 킹!!!』을 합쳐서 ‘위원회 3부작’을 쓰고 싶다고 하셨죠. 마지막 이야기는 구상하셨어요?
구상은 안 하고 이미지만 갖고 있어요. (세 작품이) 따로 읽어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예요. 쓰려는 소설도 『프라이스 킹!!!』에 나온 어떤 요소들만 공유하고, 그냥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거예요.
결국 배치 크라우더는 ‘킹 프라이스 마트’에서 세 가지를 판매하기로 합니다. 복수, 라면, 견딜 만한 불행이에요. 왜 이 세 가지일까요?
복수라는 건 조금 전에 이야기한 ‘사고 팔 수 없는 것’하고 연결되는데요. (의뢰인의 요구대로) 대상도 없고 뭣도 없는 복수를 하는 것은 인과율을 깨버리는 거잖아요. 자본을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를 무화시키는 것처럼. 아마 누군가 원하더라도, 저도 원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는 회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의와 냉소죠. 그리고 견딜 만한 불행은, 사실 배치 크라우더가 파는 건 아니고 저번에 팔았던 게 있는 거잖아요. 결과적으로 망각과 불행 안에서 계속 순환하는 걸 그냥 놔두는 건데요. 그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견딜 만한 불행이 오면 버티다가, 그걸 또 망각하면 마치 자기가 불행을 앓아본 적 없던 것처럼 희희낙락하다가, 다시 불행이 오면 막 미칠 것 같은 거죠. 또 망각이 오기 전까지는 견뎌야 되고.
라면은 어떤가요?
배치 크라우더가 대중 소비재로서 무언가를 판다면 라면이 어떨까 생각했어요. 또 마침 (의뢰인) 기우란 할머니가 분식집을 하시니까 라면으로 정하기도 했고요. 상품이라는 것이 가진 원형이라는 걸 우리가 소비할 수가 없잖아요. 말하자면 캠벨 스프도 그 아우라에서 얼마나 벗어나서 변형되는지를 이야기한 거죠. 라면도 결국 우리가 자본주의 안에서 소비하는 그 대상에 대해서 온전한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복수와 관련해서 코끼리 아저씨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코끼리 아저씨는 정말 현자 같은 인물이에요. 이 캐릭터는 어떻게 만드셨어요?
코끼리 아저씨는 삶의 과정에 있어서, 순수하게 도를 깨달았든 도를 닦았든, 도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천구가 마지막에 같이 갈 수 있게 했고요. 코끼리 아저씨랑 같이 가야 천구도 방황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잖아요.
코끼리 아저씨는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가 떠돌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초기 불교에서 소유를 제한하고 계속 탁발을 시킨 건 가진 게 없어야 뭔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인데, 코끼리 아저씨도 탁발하듯 전 세계를 다니면서 벌어먹고 살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굉장히 험한 자리에서 자고 먹고, 또 돌아다니고. 그리고 어쨌든 베푸는 일을 했잖아요. 사람들한테 기쁨을 주고. 그런 데서 뭔가 조금씩 깨닫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시대정신은 선글라스처럼 팔리고
작가님에게 베드로는 어떤 인물인가요?
(예수의) 열세 제자 중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제일 처음 만난 제자고, 제일 사랑해줬고, 또 예수님을 심약하게 부정한 존재죠. 베드로를 생각하면서 ‘베드로의 어구’도 생각하게 됐어요. 베드로가 그물 던진 이야기를 좋아하는데요. 예수님이 와서 ‘오른쪽에 던져라’ 했더니 그물 가득 물고기가 잡혔다는 이야기 있잖아요.
말씀하신 성경 속 일화에서 베드로가 어구를 던져서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죠. 이 소설에서는 베드로의 어구를 가진 사람이 53퍼센트의 표를 얻고 선거에서 승리합니다. 선거 이야기는 왜 넣으셨어요?
사건들의 발단이 정치적인 것하고 연결돼 있기도 하고요. 베드로가 카톨릭이라는 보편 종교의 권위를 부여하는 존재이기도 하거든요.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도 갖고 있고, 교황들이 끼는 베드로의 반지라는 것도 있고요. 결국 정치적인 인물을 만드는 것도 우리가 어떤 피규어(fugure)를 세워서 권위를 부여하는 거잖아요.
『프라이스 킹!!!』에서는 백종원 씨가 대선에 출마해요. 우리가 아는 그 백종원 씨가 말이죠. (웃음) 그 분이 어떤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세요?
백종원 씨가 가진 의미가, 너무 좋은 사람이잖아요. 현명하고, 많은 사람에게 솔루션을 주고, 이끌어주고, 따뜻하기도 하고. 이를테면 일제강점기의 지식인이라고 하면 기자 하면서 소설 쓰고 시 쓰면서 신문사의 편집장인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그 시대의 천재였는데, 이 시대의 천재들은 솔직히 글은 안 쓰는 것 같고 스타트업 하는 것 같거든요. (웃음) 그런데 백종원이라는 분을 보면, 저는 그 분을 좋아하는데, 이 사회의 멘토 같은 것이 자본가에게 넘어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적인 인간상 같기도 하고요.
그렇죠, 진짜 이상적이잖아요. 가정, 사업, 동료, 어떤 면에서도 이상적이잖아요. 그 롤을 우리가 자본가에게 맡기는 것에 이제 거리낌이 없구나, 그만큼 우리에게 일상화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 사람이 정치를 했을 때는 또 다른 이야기이고, 그래서 대선에 출마하는 것으로 썼죠.
예전에는 그런 인물이 정치인일 때가 있었죠.
그렇죠.
이제는 사람들이 정치인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죠. 시대정신이 이제 자본가에게 있는 거죠.
“시대정신이 고속도로 무인 매점에 염가로 납품되는 시절”인 거죠.
맞아요.
마치 팔토시처럼 팔리는 거예요. (웃음)
선글라스처럼. (웃음)
결말에서 천구는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 같아 보여요. 변화의 동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원래 천구 안에 있던 것을 배치가 끄집어낸 걸까요?
사실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아요. 재료가 특별히 있는데 억눌렸다기보다는. 천구가 처한 상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조금 확대하면, 체계화된 학습된 무력과 학대의 상황이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있으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잠재돼 있지 않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것만 되찾아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힘들죠. 워낙 체계적이고 일상적인 환경 속에 있으니까. 그래서 천구에게는 그것을 변화시킬 계기가 필요했는데 찾아왔던 것 같아요. 천구가 처음 ‘킹 프라이스 마트’에 갔다가 퇴근하고서 그걸 느끼잖아요. ‘아, 이게 회사 다니는 기분이구나. 이게 누군가와 같이 속해서 뭔가를 하는 기분이구나.’ 천구한테는 그럴 기회가 없었던 거죠.
책에 강보원 시인과의 대담이 실려 있습니다. 어렸을 때 즐겨 읽은 소설을 이야기하시면서 “소설이란 으레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새겨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어떤 작품을 만날 때 재밌으세요?
소설을 쓰기 전에 소설을 읽고 소설을 좋아하긴 했지만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마르케스를 보면서예요. 마르케스나 남미 마술적 리얼리즘을 보면 맨날 독재자 얘기 나오고 독재 얘기 나오고, 그런데 환상적이고, 사실 저는 그걸 뿌리로 삼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거랑 하루키의 냉소랑. (웃음)
‘난해한데 재밌는 소설이라는 말이 제일 듣기 좋다. 앞으로도 계속 이상하게 쓰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독자들이 ‘소설이 난해해요’라고 말하면서 소설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질문하기도 하잖아요. 오늘 제가 작가님께 여쭤본 것처럼요. (웃음) 그런 일에 피로를 느끼지는 않으세요?
없어요. 우리 아빠가 그럴 때만 싫어요. 우리 아빠가 그렇게 물어보거든요. ‘이건 무슨 의미인데 이렇게 썼냐?’ 이상하게 아빠한테는 설명하기 싫어요.
(웃음) 왜 그럴까요? 아버님과 일 이야기를 하는 게 머쓱한 걸까요?
그런 것 같아요. 아빠가 내 일기장을 보고 체크해서 물어보는 그런 느낌? 그런데 아빠를 제외하고는 대중 독자에게 쓴 거니까 관심 갖고 물어봐 주시면 그런 건 좋아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완전한 설명을 하지 않잖아요. 약간 불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불친절한데 그냥 저냥 읽혀서 어느 정도의 감정을 남긴다’ 그러면 저의 목표는 성공이거든요. 만약에 독자들이 그 밑에 있는 이야기를 궁금해 하면 같이 이야기하는 거 좋아요. 모든 내용을 다 소설에 쓰면 그냥 다른 이야기, 다른 톤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설은 그냥 이 정도 걷어낸 걸로 읽히는 것도 좋고요. 만약에 그 밑의 서사가 궁금해서 나름대로 짐작을 하시거나 제 이야기를 찾아보시거나 저에게 물어보시면 제가 또 이야기 해드리면 좋아요. 『프라이스 킹!!!』에도 『엉엉』이랑 연결되는 것도 있고, 다른 단편이랑 연결되는 것도 있고,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꼭 그걸 알리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물어봤을 때 감추고 싶지도 않아요. 그 정도가 저는 편하고, 그냥 괜찮은 것 같아요.
*김홍 1986년 서울 출생.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장편소설 『스모킹 오레오』가 있다. ‘힐사이드 클럽’에서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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