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건축 여행』에서 30일 동안 후쿠오카부터 도쿄까지 1,600㎞를 달리며 일본의 여러 건축을 탐방했던 건축가 차현호가 이번에는 세토내해(???海)를 선택했다. 일본 혼슈와 시코쿠 사이의 바다와 주변 해안지역을 가리키는 세토내해. 이곳에서는 2010년부터 3년마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라는 국제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이 특별한 예술제는 ‘베네세’라는 한 기업에서 시작되었다. 소외되고 멀어진 섬 지역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만들자는 기업의 아이디어에 지역 주민들이 호응했다. 여기에 안도 다다오와 야마자키 료 등 유수의 예술가들이 참여를 한 것. 봄부터 가을까지 108일 동안 개최된 2016년 예술제에는 무려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나오시마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예술제가 3회째를 맞이한 2016년, 건축가 차현호가 봄과 여름, 가을에 걸쳐 예술제가 열리는 섬 곳곳을 체험한 이야기를 담았다. 안도 다다오의 아름다운 미술관, 세상에 없는 수신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우체국, 조용하게 자리 잡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까지 건축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달력을 뒤지며 나오시마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차현호는 “사진으로 보는 작품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꼭 한 번 가서 느껴보셨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섬의 복권, 세토우치 트레엔날레
부제를 ‘어느 건축가의 예술 섬 순례기’라고 적고 있는데요. 예술은 물론이고 건축과 지역 재생 등이 고루 버무려진 책이에요. 책으로 전하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듣고 싶습니다.
2000년대 중반, 회사에서 나오시마(直島)에 갔었어요. 제가 있던 팀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만나러 갔던 건데요. 안도 다다오가 프로젝트를 하게 된 팀들에게 자신의 건축 투어를 시켜줬거든요. 그런 기회에 나오시마를 보게 됐어요. 그때는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죠. 다만 굉장히 새로웠어요.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이나 혼무라(本村) 마을의 ‘이에 프로젝트(家project)’ 같은 것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때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에는 미술관 등을 중심으로 써보려고 했는데요. 조사를 하다 보니 나오시마도 그렇고,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예술제가 열리게 된 배경이 보였어요. 쇠퇴한 섬들의 복권이라는 목적이 있던 거죠. 단순히 미술 이야기만 하는 예술제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과 같이 예술과 지역 재생 등의 이야기가 함께 섞이게 되었어요.
기록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죠. 이야깃거리도 무척 많고요.
그렇죠, 누구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곳이에요. 열두 개 섬마다 상황도 다르고요. 주민 연령대도 다르거든요. 마을의 영광을 되찾자는 마음으로 모인 젊은이들이 있는 섬도 있고요. 가서 봤을 때 십 년 더 있으면 미술관만 남는 이상한 섬이 될 수 있겠다 싶은 곳도 있거든요. 세토우치 지역은 6, 70년대에 임해공업단지가 생긴 곳이에요. 지역 경제는 발전하는데 환경오염이 문제가 됐죠. 나오시마 북쪽에는 지금도 미쓰비시 제련소가 있거든요. 그런 상황에 더해 도시화가 진행되어 주민들이 섬을 다 빠져나갔어요. 이런 큰 두 가지 이유가 전반적인 세토우치 지역의 쇠퇴를 가져왔죠. 나오시마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던 거예요.
베네세 그룹 덕분이었죠.
세토우치 지역 위쪽에 오가야마(岡山)라는 도시가 있는데요. 그곳에 기반을 둔 기업이 베네세 기업이에요. 어린이 위주의 교육 문화 사업을 하던 기업인데요. 노년층, 장년층을 대상으로 해서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나오시마를 선택한 거예요. 처음에는 누구나 의아했을 거예요. 만일 통영 어디 오염된 지역의 섬에 세계적인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우리도 그렇겠죠. 안도 다다오도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예술 향유 주체들은 다 도시에 있는데 이렇게 먼 지역까지 누가 오겠느냐고요. 결국 그것을 민간 기업과 관의 도움으로 성공시켰죠. 관에서도 주민과의 마찰을 중재하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상상력에 놀랄 수밖에 없어요. 한 기업의 의지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베네세 그룹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국내 기업도 사회공헌 차원의 투자를 되게 많이 하거든요. 큰돈을 투자해서 공원을 조성하기도 하고, 공연장도 만들고 하잖아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단발성에 그친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지역 활성화에 어떤 촉매가 될 만 한 규모의 사업을 기획해서 추진하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려면 기업이나 관의 의지 못지않게 현지 거주 주민들과의 공감대가 중요할 거예요. 그런 면에서도 세토우치 지역들의 행보가 주목할 만합니다. 오기지마(男木島)의 ‘온바(乳母) 팩토리’ 같은 경우가 그렇잖아요.
온바(乳母)는 일본말로 ‘유모, 유모차’를 말한다.(중략) 차량이 통과할 수 없는 길, 계단, 비탈길, 좁은 골목길이 이어지는 오기지마에서 온바는 간단한 물건을 담고 종횡무진 다닐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다. 온바팩토리는 이들의 수레를 멋지게 수리, 디자인해서 주민들에게 돌려주거나 새로운 스타일의 온바를 만들기도 한다.(139쪽)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목적 자체가 섬들의 부흥에 있으니까요. 트리엔날레가 열리기 전에 작 품 공모를 하는데요. 선정된 사람들은 작품을 만들어서 갖고 오는 게 아니라 현지에 와서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만들거든요. 그 과정에서도 주민들이 자기가 찾지 못했던 섬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기도 해요. 2013년 예술제에서 선보인 야마자키 료의 간장 프로젝트가 그렇죠. 스튜디오에 간장을 유리병에 담아서 전시를 했어요. 8만 개의 농도가 다른 간장을 그라데이션이 지도록 쭉 담아 전시한 거예요. 주민들도 매일 보던 간장이 그렇게 아름답게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병에 간장 담는 작업을 주민들과 함께 하기도 했거든요. 대단하죠. 한편 2016년에는 그런 프로젝트가 적어서 아쉬웠다고 하기도 하더라고요.
몸으로 느끼는 것
2016년 봄부터 여름, 가을 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트리엔날레를 다녀오셨어요. 실제로 가서 보니 어떻던가요? 생각과 달랐던 부분도 있었나요?
저도 처음에는 트리엔날레 이전에 제대로 만들어진 뮤지엄 몇 군데를 봤어요. 베네세 기업에서 투자한 미술관들을 먼저 봤죠. 그 미술관들, 굉장히 좋거든요. 그래서 가기 전에는 섬마다 화려한 미술관들과 재미있는 볼거리가 굉장히 많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사실 그렇진 않았어요. 200개 정도의 작품이 나왔다고 하는데 작은 집 안에 들어 있는 작품 같은 것이 대다수를 차지하거든요. 생각했던 것보다는 섬마다의 편차가 조금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사람이 거의 안 올 것 같은 곳에서도 주민 분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고, 설명을 하려고 하시더라고요. 열정이 대단했어요. 자랑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도시의 미술관과는 다르죠. 어쩌면 트리엔날레를 즐긴다는 건 편안함, 휴식 같은 것 같아요.
전체적인 느낌이 그랬거든요. 한적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데 나오시마 같은 곳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웃음) 미술관에 오전 9시 반에 도착했거든요. 개장이 11시니까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요. 그런데도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반면 조그마한 섬들은 고즈넉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많았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카페도 있고요. 대도시 여행도 괜찮은데요, 각 섬마다 느낌이 달라요.
특별히 좋았던 곳을 꼽아본다면 어떨까요?
기억에도 남고,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은 니시자와 류에(西?立衛)가 설계한 ‘데시마 미술관(豊島美術館)’이에요. 말했듯 근사한 미술관들이 많죠. 돈을 많이 들여 만들었으니 당연하겠죠.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 이누지마의 ‘세이렌쇼 미술관(精?所美術館)’, 데시마 미술관, 이 세 곳이 베네세 그룹에서 만든 곳인데요. 세 곳 모두 동일한 맥락은 있어요. 첫째, 세토우치 지역의 자연과 미술관이 분리되지 말 것. 공간과 작품이 딱 달라붙어 있는 거죠. 둘째가 자연을 어떻게 해석했느냐 예요. 지중미술관은 세토우치 자연 풍경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땅에 집어넣었고요. 세이렌쇼미술관의 건축가 산부이치 히로시는 자연의 힘으로 작동하는 미술관을 만들었어요.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기계적 순환 장치를 쓰지 않고 바람을 만들어내요. 한편 데시마 미술관은 공간에서 선적인, 정신적인 세계를 다뤘고요. 세 미술관을 보면 약간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해요.
내부는 천장과 벽의 경계가 없어 꼭대기 부분의 구멍 가장자리에서 주변으로 갈수록 구조체의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그러데이션을 그리며 어두워진다. 사람들은 앉거나 눕거나 서서 하염없이 침묵에 빠져든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정말 고요하다.(84쪽)
세 미술관만 봐도 건축과 공간의 상호작용이 건축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와 관계된 건물들 대부분은 마을 안에 들어 있는 집을 개조해서 작품을 들여놓은 것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다보니 그곳에 거주하는 마을 분들의 생활과 단절되어 있는 게 아니죠. 어떤 집이 비면 그 건물 내부 혹은 마당 같은 공간에 작품을 놓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건축에 대한 해석, 이런 게 아니라 건축 공간을 몸으로 느끼는 것에 더 가까워요. 모든 건물이 그렇진 않지만 많은 곳들이 가보면 느낄 수 있는 게 대부분이에요. 사진으로 보는 작품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꼭 한 번 가서 느껴보셨으면 해요.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과 건축, 생활이 밀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잖아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흥미로운 대목이거든요.
예술을 통해 섬을 변화 시킨다는 취지에 잘 들어맞는 게 오시마(大島)예요. 예술제를 기획한 분들은 오시마를 말하지 않고 트리엔날레를 말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요. 오시마는 우리로 치면 예전 소록도 같은 곳이에요. 나병 환자들을 수용하던 곳이죠. 2000년대 들어 법이 폐지돼서 그분들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수십 년 간 격리되어 있었으니 나갈 수 있다 해도 갈 곳이 없는 거죠. 한 기사를 보니까 식당 출입을 거부당한 사례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분들이 예술제를 통해 변화를 경험하셨어요. 그분들이 썼던 생활도구, 해부대 등이 전시되었거든요. 겨우 물건을 전시하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해주는 경험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주변을 보고 변화를 했다는 것이 바로 예술제가 내세웠던 ‘복권’의 시작점이었다고 생각해요.
거리두기 전략
예술의 힘을 상기하게 되네요. 건축가인 저자 입장에서는 건축 또한 그런 힘을 가진 영역이라고 말씀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저자가 건축에 매료된 이유도 궁금하고요.
도시 재생 차원에서 볼 때, 건축이 들어가서 성공한 경우가 있긴 있죠. 스페인 ‘빌바오’가 그런 경우잖아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짓고 나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오죠. 처음에는 미술관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미술관이 생기면 사람들이 오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도시학자들 의견은 조금 달라요. 빌바오가 미술관을 짓기 전까지 도시에서 추진했던 도시 재생 정책들이 있는데요. 보행 가로를 만들고, 수경 공간을 연결하는 등의 일을 했거든요. 그러니 누가 와서 뭘 짓더라도 성공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는 거죠. 그런 것 같아요. 건축이 도시 재생, 섬들의 재생에 기여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죠. 하지만 지역 기반, 배경을 갖지 않으면 단순히 건축만으로는 힘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트리엔날레도 멋진 공간과 미술관들이 있지만 열두 개의 섬이 전부 그렇진 않거든요.
건축이 장소성과 얼마나 밀접하게 조응하느냐의 문제겠네요.
그렇죠, 예술제도 세토우치라는 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잖아요. 건축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건 절대 아니에요.
앞서 미술관이 주변 공간과 “딱 달라붙어 있다”는 표현을 하셨는데요. 그것이 가능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선행되어야 할까요? 도시 재생과 지역의 복권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이슈라서 구체적인 궁금증이 생기거든요.
이전까지의 도시 재생의 방법 중 하나는 전면 철거 후 재개발 사업을 통한 것이었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요. 박원순 서울시장 이후부터 주민 주도 도시 재생 사업이 많이 활성화됐어요. 혜화동에 ‘장수마을’이라고 있거든요. 그곳도 이전 추진은 철거 후 재개발이었는데요. 뒷부분에 있는 서울 성곽과 심한 경사로 인해 개발이 어려웠어요. 그 때문에 진행이 안 되고 있다가 주민이 원하는 방향의 재생을 논의한 거죠. 그것처럼 일차적으로는 실제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거예요. 주민들이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해요. 요즘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주민 주도의 사업 추진을 점차 늘려가고 있는 것 같아요.
책에 국내 한 지자체에서 진행하려다 무산된 ‘쪽방촌 체험관’을 짚었잖아요. 간혹 그런 엉뚱한 사례가 보이는 건 여전히 주민 주도라는 중요한 전제를 외면한 결과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재생을 ‘사업’으로 추진하는 거죠. 사실 공무원 분들도 고민을 많이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일단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보다 외부에서 힘을 가져와 바꾸어보려고 했던 거겠죠. 오시마 사례처럼 주민들이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의 힘을 들여오려고 하다보면 자칫 주민들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온바 팩토리가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요. 주민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만들어낸 거잖아요. 외부에서 멋진 게 들어와서 구경거리를 만든 것이 아니고요. 그게 중요할 것 같아요.
지역과 밀착되고, 나아가 활성화 되는 데에는 스토리텔링도 중요한 요소더라고요. 메기지마(女木島)의 ‘도깨비 동굴’이나 아와시마(粟島)의 ‘표류 우체국(Missing Post Office)’가 좋은 시사점을 줬어요.
표류 우체국은 저도 공감이 갔어요. 누군가와 이별하고, 더 이상 만날 수 없거나 연락할 수 없는 분들을 대신해서 역할을 하는 곳이잖아요. 그런 개념이 흥미로웠어요. 그 점에 있어서 특별히 제 나름의 느낌이 있었는데요. 일종의 전략이랄까요? 국내든 어디든 간에 핫플레이스가 생기면 그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기고, 외부에 소개도 될 수 있도록 사업이 추진되길 원하잖아요. 그런데 나오시마는 안 그런 것 같아요.(웃음) 그것은 ‘거리두기 전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나오시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이라는 그 거리를 좁히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있는 거죠.
거리두기 전략, 대단히 새로운 관점인데요.
외딴 사찰에 갈 때 가는 길에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그런 것 같아요. 도시에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느낌을 계속 유지하길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터넷에서 이미지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둔 곳도 있고요. 먹을거리나 숙소 등을 화려하게 마련하고 알려서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지도 않잖아요. 와서 직접 보고 느껴 가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거리감 유지가 성공의 한 요인이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책에도 사진을 담지 못해 스케치로 갈무리한 곳도 있었잖아요.
책을 낸다고 사진을 요청했는데도 안 주더라고요.(웃음) 『자전거 건축 여행』을 냈을 때는 요청해서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안 그랬어요.
건축의 재미있는 면들
화학을 전공하다가 어느 날 건축을 하게 됐고, 건축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도 하셨는데요. 건축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자 하세요?
어쩌다 세 번째 책까지 내게 됐는데요. 건축이라는 것이 실용분야이면서도 예술적인 면도 있죠. 때문에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너무 그것들을 학문적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이기도 하니까요. 건축의 그런 면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게 처음 목표였어요.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계속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건축이 가지는 스펙트럼이 워낙 넓으니까요. 학문으로써의 건축뿐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서도 건축은 많이 이야기되잖아요. 저자는 이 양 끝단의 가운데에서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집짓기 관련 실용서는 되게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일본 저자들의 책도 많고요. 요즘에는 교수님들이 쓰는 책들도 간혹 보이는데요. 그런 분야의 중간이라면 중간일 수도 있고요. 건축의 재미있는 측면을 짚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요즘 관심 두고 있는 주제는 뭔가요?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 들려주세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려고 해요. 이번에 예술제를 바탕으로 세토우치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했잖아요. 다른 지역도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국내에도 재미있는 곳이 많은데 저는 일본이 흥미롭더라고요. 공간의 느낌도 좋고요.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지역이 몇 곳 있어요. 세토우치 지역 중 한 곳도 있는데요. 본토와 시코쿠(四國) 사이에 섬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사이에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본토와 연결된 길이 있어요. 그것을 보다보니까 새로운 공간들이 있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그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좀 더 듣고 싶은데요.
우선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도 많고요. 그러면서도 일본의 건축 수준은 세계 건축계 중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할 정도거든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분들도 많고요. 공간 자체를 만들어내는 기술력도 좋죠. 특히 일본 건축에 흥미를 느꼈던 점 중 하나는 굉장히 개념적인 건데 그것을 짓는다는 거예요. 주택도 그렇고요. 가령 유리로 만든 주택은 바깥에서 보이잖아요. 그런데도 건축가가 지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거죠. 일본의 그런 건축 문화, 특히 현대 건축을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었으면 하세요?
기본적으로는 여행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아까 말했듯이 직접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 실제로 그곳에 가실 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공무원 분들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나오시마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차현호 저 | 아트북스
이색적인 현대미술과 일본의 시골 풍경이 충돌하고 갈등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그 묘하고도 생경한 광경을 기록한 예술 순례의 길. 지은이의 발자국을 따라 바다의 미술관으로 함께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