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가요계에서 강세였던 '발라드'의 막강한 마켓파워를 견인한 인물 최성수. 감칠 맛 나는 선율과 아련한 노랫말을 써낸 싱어송라이터로, '남남', '동행', '해후', '풀잎사랑' 등 잇단 히트 퍼레이드를 펼친 '빅'가수였다. 그의 음악은 당대 누구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성인 풍에다 노랫말은 전업 시인을 방불케 했다. 음악계에 등장한지 어느덧 35년의 세월이 흐른 베테랑이지만 그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진행형 가수다.
막 유명 시인들의 작품에 곡을 붙인 <시가풍류방(詩歌風流房)>이란 앨범을 냈다. 시 노래로 풍류를 제공한다는 제목에 그의 근래 지향이 축약되어있다.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온화하고 여유로운 웃음으로 가득했다. 나이가 들고 또 고통스런 현실에 처했어도 인터뷰 내내 강한 음악 열(熱)을 드러내며 신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먼저 “왜 앨범이 이렇게 늦었나?”고 물었더니 시가풍류방은 연작 앨범으로 발표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앨범활동은 지속하리라고 봤다. 근데 기대와 다르게 10년 만에 앨범을 냈다. 왜 이렇게 늦었나.
주지하다시피 제작환경이 여의치 않았고 내 경우 사건 사고가 있지 않았나. 미국에 있는 시간도 많았고 매니저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내면 뭐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늦었다. 11집 앨범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 건 사실이다.
행여 음악 자체에 대한 회의가 생긴 것은 아닌가.
그럴 리가 있나. 난 언제나, 어떤 경우라도 음악으로 돌아간다.
막 발표한 새 앨범 <시가풍류방> 은 유명 시인들의 시로 엮었다. 소개해 달라.
제목 그대로 '시 노래'이며 고은,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 등 존경하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였다. 일일이 사용허락을 받았다. 실은 올해 초 '시가미다방'이라는 타이틀의 디지털싱글을 냈다. 두 곡이었는데 도종환 시인의 '다시 오는 봄'과 제주 시인으로 지난 9월말에 세상을 떠난 권재효 시인의 '술 먹게 하는 봄밤'이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다시 오는 봄'은 나와 가족이 힘들었을 때, 지금도 힘들지만, 다시 서게 할 수 있는 위로를 제공했다.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앨범 <시가풍류가>는 디지털싱글의 기획을 확대한 것으로 보면 되겠다. 위 두 곡도 여기 수록되어 있다.
시에 곡을 붙인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원래 멜로디를 만들고 뒤에 가사를 붙이는 스타일이다. 이미 만들어진 것, 그것도 남의 글을 가지고 멜로디를 붙인다는 게 어찌 쉽겠는가. 시의 의도와 감성도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굉장히 어려웠다.
도종환 시인의 경우는 문화체육부장관이 되기 전인가.
좀 전에 말한 디지털 싱글 '다시 오는 봄'에 이어 앨범의 첫 곡인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역시 도종환 선생의 작품이다. 당연 장관이 되시기 전에 사용허락을 받았다. 장관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노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물었더니) 좋은 노래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더라.
가장 힘들었던 곡은?
'고뇌하는 청춘에게라'로 이건 고은선생의 시가 아니고, 인터넷 네이버 캐스트에 들어가면 고은선생 인터뷰 기사가 있는데 내용이 맘에 들어서 그것의 일부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시가 아니라 인터뷰 내용이라서 힘겨웠지만 자랑스럽기도 하다.
요즘 청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힘들 것이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미래가 있지 않나.
앨범 전체적으로 아코디언을 많이 사용했다.
나와 잘 어울린다. 첼로, 피아노와도 조합이 좋고. 아코디언 소리가 자칫하면 '뽕'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이 러시아 친구 알렉스 세이킨(Alex Sheykin)는 팝과 클래식에 능통한 덕에 뽕 느낌을 최소화했던 것 같다.
이 앨범의 중요한 포인트는.
조윤성 피아니스트로 몇 곡 빼놓고 다 피아노를 쳐주었고 편곡에도 결정적이었다. 그와 공연을 많이 다니면서 감각을 공유하게 됐다. 내 음악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줬다고 할까. 아버지가 재즈 1세대 드러머이신 조상구씨다. 조윤성 때문에 앨범에 격이 부여되었다고 본다.
시를 노랫말로 곡 만드는 작업은 이번 단발로 끝나나.
그렇지 않다. 이미 황동규, 고정희, 마종기, 나태주, 이정하, 최영미, 류시화 등등 시인의 작품으로 곡을 만들어 놓았다. 소설가 이외수, 이해인 수녀의 작품도 있고... 50곡을 만들었다. 차례차례 다 녹음할 계획이다. <시가풍류방>은 시리즈, 연작으로 전개한다.
하긴 1980년대 후반 전성기 시절 워낙 최성수 노래가 시적(詩的)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시보다 더 시적인 노랫말'이라는 찬사도 나오지 않았는가.
과찬이다.
'해후' 가사는 언제 들어도 고감도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방황하며 술집 다니며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들은 얘기를 가사로 옮긴 것뿐이다.
기성 시를 가져다 곡을 쓰는 결정적인 이유가 행여 노랫말 만들어내는 감각이 둔화해서 그런 건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다. (웃음) 시와 인연은 지금이 아니라 오래전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집을 가지고 다니며 읊곤 했다. 우리 시절에는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 않나. 1983년 첫 앨범인 <그대는 모르시더이다>를 발표하기 전에 이미 신석정 시인의 '임께서 부르시면'에 멜로디를 붙인 곡을 내놓은 바 있다. 시를 계속 응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1989년, 납북 작가의 작품이 해금되던 시기 친하게 지낸 한 KBS 프로듀서가 정지용 시인의 <향수> 시집을 주면서 여기다 노래를 붙여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정말 어려워서 포기했다. 그런데 후에 김희갑선생이 토씨하나 바꾸지 않은 채 그걸 만든 것을 듣고 정말 놀랐다. 존경스러웠다. 그때 엄청난 충격으로 이 작업을 염두에 두어왔다.
앨범 제목에 붙이고 있지만 나이 들면서 '풍류'라는 개념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계기가 있는지.
계기라기 보단 세상이 지금 멋이 없어졌다. 만나서 술도 취할 때까지 마시고, 함께 어울리고 그래야 하는데 인생이 더 푸석푸석해지고 각박해진 것 같다. 풍류가 사라진 것이다.
풍류란 키워드에 시를 더하는 작업은 분명 어울림이 있다.
요즘 들어서 '노래'보다 시가 멋있는 것 같다. 예전 문학의 밤이다 시가의 밤이다 해서 자주 그런 행사가 있곤 했는데 요즘은 시 낭송이라는 것이 없어진 것 같다. 우리나라만큼 시가 위대한 나라가 없는 것 같은데... 시집이 가장 많이 발매되는 나라, 그래도 시를 대우해주는 나라 아닌가.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우와! 멋져보였다. 게다가 시상식에 불참하겠다고 한게 더 멋있어 보였다. 내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내가 기획하고 있는 <시가풍류방> 작업도 의미가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전에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처럼 정호승 시인의 시를 노래한 안치환 같은 가수들을 보고 새롭게 방향을 설정하기도 했다. 히트곡이 있다고 해서 그것만 노래하고 다니는 것보다는 이러한 새로운 작업들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전성기 시절 자신의 곡을 들으면 어떤 기분인가.
옛 곡에 만족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러지 않았는가. 옛 노래들을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난 고인물이 싫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남남', '동행', '해후', '기쁜 우리 사랑은', '잊지 말아요'보다도 '풀잎사랑'을 좋아한다. 거의 대표곡이 이 곡으로 정리된 것 같다. 고맙기도 하지만 제일 오글거려서 싫다.
그럼 전성기 작품 중에서 덜 알려졌지만 맘에 드는 곡은.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운 곡.
내 음악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성인 발라드로 분류될 텐데 통상적으로 '뽕'의 느낌이 살아있는 노래들이 잘 맞는다고 하더라. '장미의 눈물', '당신' 이런 노래들을 지금 들어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이문세의 팝 발라드보단 '뽕기'가 스민 발라드인 것은 맞다. 그것을 의식하고 썼나.
의식하진 않았다. 그 당시엔 흥얼흥얼하면 무조건 뽕느낌, '뽕필'이 나왔다. 하지만 뽕이라고 불리는 것은 싫었다.
최성수가 좋아하는 최성수 곡은.
'텔레비전을 보면서'와 '위스키 온 더 락'... 라이브할 때는 거르지 않는다.
지금 당장하고 있는 음악 작업은?
박종인 시인의 '미술관에서 애인을 삽니다'에 곡을 붙였고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미국추상표현주의 작가 로이 리텐슈타인의 작품에 통상적인 언어들을 붙여 곡을 만들었다. 또 1960년대에 이미 굉장히 모던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프랑스 작가 이브 클라인의 2014년 공연에 영감을 받아 노래를 만들었다. 이 세 곡을 묶어서 미술관 컨셉트의 미니 앨범을 내려고 한다. 기대해 달라. 그리고 이정하 시인이 쓴 시 '친구'와 마르코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팝 작곡가의 악곡을 붙인 곡도 낼 예정인데, 시가 곡이 잘 붙어서 굉장히 만족스럽다. 마르코가 '린도마니'라는 딴 곡도 줬는데 이 곡은 내가 가사를 붙였다. 맘에 든다. 작업은 거의 완료한 상태고 녹음만 하면 된다.
근래 곡을 쓸 때 사용하는 코드는 예전과 다른가
텐션을 많이 집어넣는다. 나인스 코드도 잘 쓰고... 하지만 요즘엔 점점 멜로디의 싸움인 것 같다. 멜로디는 아직 자신 있다.
장안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역점을 두고 교육하는 것은.
노래를 부르던 연주를 하던 스스로 곡을 쓰라고 주문하고 강조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작사 작곡이 음악가로 살아남는 방법이다.
음악가로서 예술가로서, 멜로디 만드는 것과 작사 중에 어느 부분이 어렵나.
가사 쓰는 게 더 어렵지만 다 힘들다. 가사든 멜로디든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의 근육이 발달해 감성 결과물이 나오는 거다. 책을 많이 읽고 영화를 많이 보고 노래를 많이 듣는 수밖에 없다.
가사와 곡이 잘 붙은 우리 명곡을 꼽는다면.
우선은 박인수 이동원의 '향수'를 뽑고 싶다, 시를 이용한 가수의 정수라고 할까. 고은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인 '가을편지' 그리고 '아침이슬'. 요즘 친구들이 '아침이슬'이란 노래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싱어송라이터 문화는 물론 우리 민주주의를 대변하고 이끌어온 노래라고 생각한다. 문화유산이다. 이런 노래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인터뷰 : 임진모 이택용
사진 : 이택용
정리 : 임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