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이현에게 ‘도시기록자’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는 건 너무 게으른 표현이 아닐까. 하지만 정이현만큼 도시와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양태를 성실하게 기록하는 소설가도 드물다. 여전히, 10년 만에 만나는 산문집『우리가 녹는 온도』에서도 서로 다른 온도 안에서 도시와 도시 안의 사람들을 그려낸다. 차가운 커피와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남자와 여자(「커피 두 잔」), 제주로 여행을 떠난 ‘하영’이 ‘동희’를 만나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일(「안과 밖」), 허리디스크 증상으로 재활센터에 간 ‘해미’가 본 눈(「눈 사람」) 등 어느 날 마주칠 법한 이야기들이다. 소설인 듯 에세이인 듯 흘러가는 이야기 10편 중 어떤 편이 독자들의 마음을 녹일지 기대가 된다.
3인칭으로 본 에세이
『상냥한 폭력의 시대』이후 소설로는 1년, 산문집으로는 10년 만이에요.
그동안 산문을 안 썼던 건 아니에요. 보통 칼럼 제안을 받거나 여기저기 상황이 되면 써 왔는데, 단발적으로 쓰는 것과 한 권의 책으로 묶는 일은 다른 일이더라고요. 여기저기 조금씩 쓴 글을 모아서 종합적으로 묶어 내는 산문집은 구태여 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출판사에서 처음 제안을 받은 게 5년은 넘은 것 같아요.
5년이면, 꽤 긴 시간이었네요.
처음에는 서울이나 춘천, 제주 등 각 도시와 사랑에 대한 소설과 산문이 섞인 무언가를 만들자는 막연한 계획이었어요. 5년이 지나는 동안 조금씩 스며들 듯 변해온 것 같아요. 어떤 글은 도시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막연하게 서울인가 싶은 글도 있어요. 또, 사랑이라는 게 모호하고 주관적인 정의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도시에 사는 결혼을 앞둔 여성과 남성의 사랑 같은 걸 생각했는데, 그것만 사랑인 건 아니잖아요. 「화요일의 기린」처럼 반려동물과 키우는 사람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뭐라고 부를 것인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막상 원고를 모아 보니 사랑이라기보다 두 명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어요. 조금씩 사랑의 외연이 확대되면서 주제가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제까지 냈던 책 중에 가장 작은 크기 같아요. 매거진 <컨셉진>에서 찍은 사진도 들어가 있고요.
컨셉진 분들께서 정말 열심히 도와주셨어요. 처음에는 사진 찍는 분에게 연락을 부탁드렸는데, 직접 정리하고 수정도 많이 해주셨죠.
‘그들은,’과 ‘나는,’으로 글의 처음이 나눠서 시작돼요. 소설의 숨은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들은,’과 ‘나는,’이 서로 딱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예를 들어 『지상의 유일한 방』을 쓰고 ‘나는,’ 부분에 제가 부평 지하상가에 가서 동선을 알기 위해 옷을 사러 다니고 어디서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겠죠. 하지만 이야기의 뒷면이라기보다, 조금 비켜나서 다르지만 어울리는 느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주 짧은 형태의 이야기가 모였는데요.
어디서부터가 소설이고 어디서부터가 에세이인지 반 가르듯이 나뉘지 않는 이야기예요. 워낙 준비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몇 년 전에는 출판사에서 독자들에게 사연을 받아 그중 몇 분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허락을 받아서 사연을 옮기기도 했어요. 어떤 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제 이야기를 바꾼 내용도 있고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으셨겠어요.
어딘가에서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른 방식, 다른 무게로 가지고 있었던 ‘우리들’이 곁에 있었던 것 같아요. 교정본을 보면서 엽편 부분이 3인칭으로 본 에세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에세이라고 해서 장르 형식이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세상에 한 권쯤은 소설인 듯 아닌 듯 엉뚱한 방식의 에세이도 한 권쯤 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소한 커피의 온도
작가님이 생각하는 ‘녹는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커피 두 잔』에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온도의 커피를 마시잖아요. 저는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셔야 녹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거든요. 어떤 사람은 추운 날씨에도 차가운 얼음을 넣은 커피를 마셔야 녹는 사람이 있고요. 사람마다 온도라는 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가운 아이스크림이나 눈사람이 녹아 없어진다는 구체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녹는다는 건 은유적인 표현인 것 같아요. 눈사람이 녹아서 없어지는 상상, 하지만 그 자리에 눈사람의 흔적과 기억은 남아있다는 걸 기억하셔도 좋고요.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관계 안에서 녹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어요.
그럴 수도 있어요. 여러 가지 의미가 ‘녹는다’에 들어 있고, 녹는다는 게 무엇인지 물으면 백이면 백 녹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한 감각이 다를 거예요.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시면 돼요.
작가님만의 온도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면 어느 부분에서 아이스 브레이킹이 끝나고 녹게 되나요?
아이스 브레이킹이 필요한 성격 같진 않아요. 어색한 걸 못 견뎌서 그냥 풀어야 해요. 반면 아주 뜨거운 관계는 또 못 가져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 같아요. 처음에는 그게 콤플렉스였거든요. 왜 이렇게 밀착된 관계를 못 견딜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사람마다 체온도 다르고 온도가 다 다른데 겉의 온도가 차가워 보인다고 해서 속마음도 같으리라는 당연함은 없으니까요. 나름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걸 늦게 안 것 같아요.
기쁘고 후련한 느낌의 책
에세이는 소설보다 작가의 감정이나 콤플렉스가 더 많이 드러나요.
사실 글에서 저 자신이 많이 드러나는 걸 힘들어해요. 글쓴이가 맨 앞에 나오는 그런 글을 읽는 것도 힘들어하고요. 에세이의 작가도 분명 화자고, 에세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연인이 아니라 화자의 화법으로 쓰인 글이라고 생각해서 날 것으로 드러내려고 하진 않았어요. 거의 마지막에 쓰인 산문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에 대하여」였는데, 그 글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글 같아요.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 박쥐에 대하여』에서는 ‘소설 쓰는 일이 두렵다고, 점점 더 두려워진다’고 고백하셨는데요.
저를 잘 모르는 사람은 제가 되게 안정적인 사람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이유 없이 불안할 때가 많아요. 친구랑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가 안 와요, 그럼 어느 순간에 불안해져서 열 번씩 전화하고 인터넷으로 버스 사고 검색하는 사람이거든요.
<채널예스>에 작가님 이름을 검색하면 관련 기사로 여덟 페이지가 나와요. 책은 열한 권째 냈고요. 그래도 쓰는 일이 두렵나요?
쓴 기간과 상관 없이 누구나 그럴 것 같아요. 30년 쓴 작가도 완전 백지에서 시작하잖아요. 아무리 선생님이셔도 단편 원고 하나도 못했다면 불쌍하고, 그래서 평등해요. 아무리 오래 써도 같이 시작한다는 게 좋고, 또 힘들고요. 그런 힘든 매력 때문에 쓰는 것 같아요.
단편을 쓰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고 몇 번 말씀하셨는데요.
2009년에 장편 『너는 모른다』를 일일 연재로 쓰고 잠깐 육아하다가 바로 알랭 드 보통과 『사랑의 기초』 연작을 썼죠. 끝나고 계간지에 『안녕 내 모든 것』을 연재했었고요. 장편에만 몰입해 있던 시기라 단편에 대한 감을 놓치고 청탁을 받아도 못 쓸 것 같은 시간이 길었어요. 장편을 쓰고 있었으니 일을 안 한 건 아닌데, 저는 단편을 좋아하고 단편을 쓸 때 문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촌스러운 사람이라서요.
산문집 『우리가 녹는 온도』를 쓰면서 기존과 다른 점이 있었나요?
착점 자체가 아예 다르게 뽑힌 이야기들 같아요. 작가로서는 단편을 쓰려면 문학적으로 힘을 줘야 할 것 같고, 문학적으로 힘을 주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도 해보면서 힘들게 쓰거든요. 소설이 안 되어서 짧아진 게 아니라, 기존의 단편소설보다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보자는 마음으로 접근한 것 같아요. 만약 주제가 엽편으로 풀리지 않고 정식으로 각을 잡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단편이나 중편, 다른 방식으로 풀릴 수 있을 테고요.
단편소설보다는 어깨에 힘이 빠진 느낌이에요.
훨씬 후련하죠. 훨씬 재미있었고요. 단편은 재미의 종류가 다른데요, 저는 단편에서 변태적인 재미를 느끼거든요. 너무 힘들게 한 문장 한 문장을 천 번씩 읽으면서 고치고 그 안에 단 하나의 오점도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쓰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썼어요. 20매니까 아니면 다시 쓰지 하는 마음으로요.
『상냥한 폭력의 도시』를 읽으면서 힘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식의 여운이 남길 바랐어요. 오늘 누군가 새 책 낸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서 열한 번째 책인데 이렇게 부담 없고 기쁘고 후련한 느낌의 책은 처음이라고 그랬어요. 작고 예쁜 책인데 공이 많이 들어갔어요. 책을 만들었던 사람 모두 연말연시에 선물처럼 독자들에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우리가 녹는 온도』도 전작과 비슷한 도시의 생활을 그리는데, 이상하게 즐거웠어요. ‘나는,’으로 시작하는 에세이 부분이 더 희망적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정말요? 다행이에요. 제가 소설 속 인물보다는 더 따뜻한가 봐요. (웃음)
늘 ‘동시대인의 보폭으로 걷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여전하신 거죠?
등단 수상 소감을 쓸 때도 그런 말을 썼던 것 같아요. 항상 동시대인을 그리겠다는 게 유일하게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이에요. 제가 SF를 쓰든 조선시대 이야기를 쓰든, 현재와 그 세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설가분들은 다 비슷한 마음일 것 같아요.
달라진 게 있다면 기존에는 우리를 이렇게 만들게 하는 구조나 사회, 시대는 뭘까 이런 걸 더 궁금해했던 것 같아요. 초기작을 보면 사회학자도 아니면서 그걸 밝히고 싶었다는 게 보이는데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것도 궁금하지만 그건 또 다른 분의 몫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 그 시대를 같이 걷는 저 자신, 제 뒷모습은 어떨까 하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변하더라고요.
독자들이 이번 책을 어떻게 읽어줬으면 하나요?
소소하고 작지만 반짝이는 뭔가를 하나씩 심어놓는 마음으로 썼어요. 그래서 반짝이는 게 무엇인지는 다 다르지만 나는 어디서 녹는 사람인가 질문을 던지고 반짝이는 걸 하나씩 찾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녹는 온도정이현 저 | 달
꽝꽝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도 아주 미세한 온기에 흐물흐물 녹아내리기도 하고, 작디작은 균열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와장창 허물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