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과 ‘통일’. 두 개의 단어는 작가 잉고 슐체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동시에 그것은 잉고 슐체와 한국 독자들을 잇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듬해인 1962년 구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28살의 나이에 조국의 통일을 목격했다. 이후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심플 스토리』와 『새로운 인생』『아담과 에블린』등의 대표작을 통해 통일 이후 독일인의 생활상을 문학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 작품들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은 분단의 경험을 작가와 공유했다. 그리고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통일, 그 아득한 미래의 모습을 엿보았다. 이렇듯 잉고 슐체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소재들로 역사 속의 경험, 경험 속의 역사를 들려준 작가다. 이에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013 만해대상 문학부문의 수상자로 잉고 슐체를 선정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이어지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명과 평화 사상, 사랑의 철학을 발견한 까닭이다. 작가 잉고 슐체가 펼쳐 놓은 인간과 그 삶의 이야기는 사랑과 평화를 어떤 모습으로 끌어안고 있는지, 그 깊숙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채널예스>가 직접 작가와 만났다.
독일 통일 이야기 안에 숨겨진 것은 인간의 삶
“문학에서는 항상 사회적인 역할이라든지 사회적인 사랑,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루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이고요. 그리고 작가가 아니더라도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도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잉고 슐체는 사회 환경이 변함에 따라 인간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작품 속에 그려왔다. 『심플 스토리』와 『새로운 인생』『아담과 에블린』에서는 통일을 전후해 달라진 사람들의 일상을, 『핸드폰』에서는 핸드폰으로 대변되는 기술의 발전이 바꾸어놓은 우리 삶의 속도와 그로 인해 야기된 문제점들을 이야기했다. 잉고 슐체가 생각하는 작가와 문학의 역할이란 사회 참여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사회 참여란 시민으로서 누구나 해야 하는 역할이지, 작가로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잉고 슐체의 작품 세계가 독일 통일에 대한 것으로만 한정되는 것 역시 경계했다.
잉고 슐체가 한결같이 주목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개인과 그들의 일상이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는 한 가운데에서도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여행을 하고, 직장을 잃는, 별다를 것 없는 우리들의 하루하루다. 그는 문학이 한 사회를 뒤흔들 수 있다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작품을 쓰지 않는다. 자신은 “항상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문학에 옮기는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은 모두 그가 경험했던 일들을 주제로 사랑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인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해 다루었지만 그에 접근하는 방식은 언제나 일상적이었다. 삶에 변화를 가져온 거대담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그들에게 찾아온 변화를 보여주는 식이다. 이를테면 『심플 스토리』『새로운 인생』『아담과 에블린』의 세 작품은 모두 통일 전후 구동독인들의 달라진 일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것을 구체화하는 방식은 이데올로기의 변화나 사회 제도의 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심플 스토리』에서는 각 장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독백이, 『새로운 인생』에서는 주인공의 편지가 그들 삶에 나타난 변화를 보여준다. 『아담과 에블린』의 주인공 연인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그들이 경험하는 갈등과 혼란이 드러난다.
사회주의 vs 자본주의,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그래서 잉고 슐체의 작품은 ‘분단과 통일, 그것에서 비롯된 삶의 변화와 사회문제’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독자들이 그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렇듯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이해될 수 있게 들려주는 작가의 능력은 ‘만해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 중 하나다. 그를 수상자로 추천한 독일문학 디알로그 학회(DeLiDi)는 추천 이유서에서 ‘잉고 슐체의 문학은 단순히 밋밋한 역사기록이나 사회고발이 아니라 유머, 코미디, 아이러니 등을 동반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기법을 통해 심각하고 민감한 사회적 역사적 현실을 인간적 사건 혹은 예술의 형식으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자가 계속 읽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작품들의 경우에는 표면 아래에서 뭔가를 만들어냅니다.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우리 모두가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을 표면 아래에 담고 있는 구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해당되는 문제들이 밑에 깔려있는 것이죠.”
작가는 통일 이전 동독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성장했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지금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와 같은 구동독인들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적지 않은 혼란을 경험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환경에 흡족해했다. 그 사이에서 작가는 균형을 잃지 않았다. 잉고 슐체는 ‘서독이나 동독의 어느 한쪽으로의 편향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과거 동독이나 서독의 체제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통일을 통해 재구성된 현재의 새로운 사회와 인간들을 주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일 이후에 독일은 많은 성장을 이루었지만 공동의 삶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썼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객관적이라는 인상을 받은 것 같아요. 민주주의는 인간이 자기 의사를 스스로 결정하거나 다른 사람과 같이 결정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사회적인 평등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개인 소유를 보호하는 것이 현안이고 중요하죠. 그런데 저는 개인 소유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호의 차원에서 본다면 개인 소유뿐만 아니라 노동력도 같이 보호돼야 하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 그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잉고 슐체는 이상적인 사회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상적인 환경이란 단지 이상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는 어떠한 환경이든 구성원들은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환경이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제대로 된 약속을 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것이며, 그에 따라 인간이 행복하거나 불행한 환경이 결정된다고 했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는 장자크 루소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여기에서 자유는 강한 자의 권리를 말할 수 있겠죠. 자유를 누리니까요. 그 동시에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놓인 상황에서 정치적인 법이 아닌 좋은 법칙을 만들어내고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상황을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의 역할은 ‘물이 어때?’라고 묻는 것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만큼 통일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국민들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통일의 필요성 여부에 대한 공동의 합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래의 통일 한반도의 모습을 그리는 대표적인 작가를 꼽기도 쉽지 않다. 우리에게 그 날은 오기는 할 것인가. 아니, 그보다 앞서 우리는 통일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통일에는 큰 비용이 따르는 등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분단보다는 통일이 결국 독일에는 선물이었다”고 말한바 있는 작가 잉고 슐체에게 물었다.
“저는 북한 주민들을 도와주려는 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통일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이전 독일의 상황은 지금의 한국과 달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동독에서도 사람들이 먹고 살 만큼의 여유가 있었고 각자 돈을 벌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북한의 상황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하는 비용과 감수해야 되는 부분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은 통일 전의 독일 사람들보다 통일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의 저는 독일의 재결합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당시의 저와 독일 주민들보다도 오늘날 한국 분들이 오히려 통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그는 독일의 통일 과정을 되돌아보며, 흡수 통일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어느 한 쪽으로 힘과 무게가 쏠리는 것이 아닌 동등한 상태에서 새로운 국가가 탄생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독일은 서독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흡수 통일이 이루어졌다.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는 구동독인들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동독 출신의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를 두고 잉고 슐체는 ‘이제 문학도 이데올로기보다 자본에 대한 종속성이 심화됐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통일 이후의 상황은 이데올로기적인 타협보다는 경제적인 부분이 확실히 더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품 활동이 좋아진 작가들도 있고, 더 나빠진 작가들도 있죠. 그런 걸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스스로 끔찍하다고 여기는 것은, 세금이나 경제적인 성장은 계속 상승하고 있지만 인문학의 자리는 점점 낮아지고 좁아져가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언론 매체에서 인문학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오락과 같은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죠. 그런 현상이 교육 현장이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출판 시장의 불황이 이어지는 상황은 독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디어가 앞 다투어 소개하는 베스트셀러 위주로 독서가 이루어지는 현상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독자들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문학 서적 읽기가 한 때의 열풍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진다는 점이다. 잉고 슐체 작가는 그 요인으로 독일의 오랜 전통을 꼽았다. 생활 속에서 사색하고 철학하는 독일인들의 뿌리 깊은 역사적 전통은 국민성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들에게는 책을 통해 지식을 얻으려는 문화가 있고,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서점이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잉고 슐체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헤겔이나 쉘링 같은 철학자의 책은 많이 찾지 않는다”고 아쉬워했지만, 지속적으로 인문학 독서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에서 희망을 찾았다.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헤엄치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더 나이많은 물고기 한 마리와 우연히 마주칩니다. 그 물고기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합니다. “안녕, 얘들아. 물이 어때?” 어린 두 물고기는 한동안 계속 헤엄칩니다. 그러다 마침내 한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를 보고 말합니다. “도대체 물이 뭐야?” (중략) 만약 의식적인, 즉 가치있는 삶을 누리려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자명함을 인식해야 하고, 우리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물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잉고 슐체의 ‘2013 만해대상’ 수상소감 중) | ||
“예술의 기능은 자명함을 의식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꾸준하게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거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상대로 정치적인 사상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명한 것을 의식하게 하고 계속 밝혀내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잉고 슐체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이 글을 읽는 이유와 같다고 말했다. ‘당신은 왜 읽습니까?’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처럼,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한 마디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흥미롭고 기쁘기 때문에”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읽는 행위는 경험을 전달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듯, 그에게는 작품을 쓰는 순간의 경험이 그와 비슷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저에게 문학이란 물방울 속에서 세상을 보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어떤 소설의 인물이 한 ?단면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읽는 독자들은 지루할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하나만 특출 나게 드러내는 게 아니라 인물이 처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방울이라는 것 자체가 그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거잖아요. 단면만이 아니라 여러 면을 파악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제게 문학은 물방울 속에서 세상을 보는 행위입니다.”
[통역: 김경랑, 서장원 고려대학교 독일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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