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를 지나 여행작가, 소설가, ‘손미나앤컴퍼니’ 대표이자 인생학교 교장,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 손미나의 이력은 점점 늘어난다. 예스24 작가파일에는 ‘인생 3막’을 살고 있다고 나와 있지만, 본인도 현재 인생에서 몇 번째 막을 지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조급함을 갖기에는 너무 넉넉하고, 평생 있을 것처럼 착각하기엔 유한”한 인생을 이야기하며 오늘을 성실하게 채울 뿐이다.
인생은 여행에 곧잘 비유된다. 끝이 없고 목표보다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수식하는 업(業)은 계속 바뀌지만, 손미나는 여전히 자신을 ‘여행자’로 정의한다. <인생학교 서울>의 2018년 새로운 학기를 앞두고 작가 손미나, 교장 손미나가 아닌 여행자 손미나로 그를 만났다.
우리 모두는 여행자
이제 손미나 하면 ‘아나운서’보다는 ‘여행’을 떠올리게 돼요.
여행이 굉장히 대중화됐어요. 어렸을 때만 해도 해외여행 가는 건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학생도 쉽게 가요. 손쉽게 접하는 문화 향유 방식이 됐는데, 앞으로도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수명도 길어지고, 교통이 발달하고, 정보가 많아지잖아요. 여행을 비즈니스로 한다기보다 여행으로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많이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여행을 잘할까, 여행에 철학이 있지 않을까, 여행 문화는 어떻게 진화되나 하는 게 궁금해요. 어떻게 하면 여행 소비자나 노동자가 되지 않고 진정한 여행자가 되어 단 한 번 여행 하더라도 전환점을 제대로 만나 성장하고 변화하는 걸 연구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인터뷰 전에 스페인 관광청과 미팅하셨다고 하셨죠?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요?
앞으로 10년은 큐레이션의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시절이 있었죠. 이제는 그게 아니라 대상에게 맞는 정보를 적절하게 맞춰서 제공하는 능력이 많은 결과를 좌우할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도 마찬가지예요. 스페인에서 봐야 할 건 몇천만 가지지만 제한된 시간과 비용으로 모든 걸 다 경험할 순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에 따라 거기에 맞는 여행을 추천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 그걸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하던 참에 스페인 관광청과 만나서 사람의 상태와 인생의 단계에 맞춰 여행 콘텐츠를 내보이는 작업을 올해 하려고 해요.
싹(SSAC) 여행연구소에서 하는 일이 될 것 같은데요, 소개를 해주시자면.
싹(SSAC)은 sonmina social alliance community의 약자인데요, 사회적 동지의 모임이죠. 여행을 매개채로 하지 않더라도 내면에 뜨거움이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자면 ‘헤쳐모여’를 외친 건데, 정말 많은 사람이 계속 찾아와요. 우리는 모두 여행자일 뿐이거든요. 길 위에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걷고 있죠. 이런 자기 독자성에 맞춰 변화하고 성장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에도 곳곳에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사회에 더 멋있는 변화를 추구하고 우리가 다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을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일을 해요.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요?
싹이 여행을 둘러싼 무거운 주제나 철학만을 다루는 건 아니에요. 사실 저희 연구소 오시는 분들을 보면 진짜 다양해요. 프로파일러, 농부, 카지노 딜러, 펜션 주인, 의사는 반마다 다 있고요.(웃음)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오신 이유도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여행 친구를 얻고 싶고, 어떤 사람은 여행에서 위로를 받고 싶고, 여행을 가장 좋은 소비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는 분도 계시죠. 패턴처럼 얼마 만에 한 번은 꼭 여행을 가야 한다는 분도 있고요. 저는 그 어떤 것도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싹’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여러 가지 활동이 있어요. 말씀하신 싹 여행연구소도 있고, 싹수다방, 싹 여행선물도 있고요.
오프라인 활동은 한정적이라 싹수다방이라는 미디어를 만들었어요. 이것도 역시 시대 흐름을 반영한 건데, 지금은 1인 미디어 시대잖아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정보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눌까 하다 방송을 만들었고, 싹 연구소나 싹수다방에서 만들어진 수익이나 도움을 가지고 여행을 보내는 여행선물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싹이라는 프로젝트가 완성됐어요. 올해부터는 업그레이드를 시켜서 명실상부한 연구소가 되기 위해 콘텐츠 아카이브 작업을 시작했어요. 싹수다방도 비디오 버전을 만들거나 브랜드 콜라보 등이 생겨날 것 같고요. 아까 말씀드린 큐레이션 여행 프로그램으로도 뻗어 나갈 것 같아요.
일의 키워드와 개인의 키워드가 ‘여행’으로 만나네요.
이렇게 살 줄 몰랐는데 돌아보니까 그런 키워드가 있더라고요. 저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발자국을 남기고 보니 전체 그림이 된 거죠.
손미나를 설명하는 말이 많아요. 지금 꼽자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인생학교, 팟캐스트, 대표, 소장, 편집인, 강사, 작가, 방송인. 너무 많아서 정신을 못 차려요(웃음). 뭘 제일 하고 싶은지 하나를 고르라고 할 때마다 저는 여행자라고 이야기해요. 뒤에 무슨 타이틀이 붙어도 저는 손미나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 이름에 제일 무게를 두고 살고 있어요. 아무리 훌륭한 타이틀을 달아도 그 사람이 별로라면 호칭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죠. 저는 여행자로 살고 있고, 하는 일이 다양해 보이지만 제가 가는 여행길 위에 놓인 일들일 뿐이에요. 달라 보이지만 한 길 위에 있어요.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요. 저는 말로 소통하다 글로 소통했고, 지금은 인생과 여행이라는 단어로 소통하고 있어요. 밖으로 눈이 향해있는 사람으로서 남보다 빨리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걸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리를 놓고 소통하는 역할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손미나의 여행 방법이 있다면요?
가벼워야지 여행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물건뿐만 아니라 마음도 비워야 하고요.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기 전에 좋은 곳으로 갈지 아닐지 결정할 때 심장을 꺼내서 깃털과 재봤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우리가 가볍게 살 수 있나 늘 고민하는 편이라 여행을 떠날 때도 짐도 조금, 갈 때도 마음을 비우고 올 때도 보고 들은 걸 미련을 두지 말고 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잘 노출되지 않은 곳들, 진짜 체험 위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한국 사회는 굉장히 좁은 의미의 행복이나 성공을 기준으로 누군가 정해 놓고 거기를 통과하라고 하는 것 같아요. 꾸역꾸역 모여서 힘들게 달리기를 하는데 끝이 없어요. 대학만 들어가면 다 편할 것 같아서 고3 때 힘을 내면 대학에 들어갔는데 허들이 더 높아요. 그리고 직장 들어가면 좋을 줄 알았죠. 더 심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어요. 책을 쓰면 편할까 했는데 책에도 베스트셀러 순위를 매겨요. 끝없는 경쟁 속에 나라는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서 사는 여유가 없어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내 삶이 매일매일 다르게끔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지혜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책은 말할 수 없이 좋은 창구지만 모든 사람이 매일 책만 읽을 수는 없잖아요. 좀 더 살아있는 경험을 얻으려면 여행이 좋다고 생각해요. 낯선 사람이 내 스승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하나를 건드려서 내가 이미 가지고 있었던 답을 발견하게도 해주고 그러잖아요.
최근 읽은 책이 있나요?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잠』을 읽었어요. 예지몽을 꾸고 꿈을 이어서 꾸는 사람이 나오는데 저도 그러거든요. 너무 재밌었어요.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백년을 살아보니』도 읽었는데 오래 살다 보면 기본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라, 정직하게 살아라,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닌데 뭔지 모를 울림이 있어요. 아, 『아라비안 나이트』도 읽고 있어요.
영혼의 행복을 고민하는 시대
인생학교 이야기를 해 보죠. 몇 년부터 시작하신 활동인가요?
2015년 말에 오픈했고요. 오픈하기 전 1년 동안 알랭 드 보통과 정말 많은 대화를 했어요. 우리한테 과연 이게 적합한 일인가, 인생학교 콘텐츠가 한국에 도움이 될까, 기존의 콘텐츠를 문제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등등 고려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알랭 드 보통이 처음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들었어요.
2년 동안 진행하면서 알랭 드 보통이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도 팬이었지만 같이 일하면서 너무 좋은 친구가 되었고, 너무 똑똑해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너무 재미있고 재치있고 통찰력이 깊어요. 처음에 인생학교가 연 건 2008년이었으니까 이미 연구한 지 10년 넘게 된 프로젝트예요.
분기별로 진행하나요?
지금까지는 회차별로 하나씩 들어도 되고 쿠폰 사서 한꺼번에 들을 수도 있었어요. 이번 봄부터는 학제로 하려고요. 예를 들어 올해 인생학교의 봄학기를 듣고 싶다 하면 등록해서 정해진 기간 안에 계속 수업을 같이 하는 거죠. 어느 단위로 학기를 구성할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직장이다 뭐다 해서 다들 바쁘잖아요. 한꺼번에 몰아붙인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쓰는 시간과 비용, 노력 같은 걸 감안해서 구성할 예정이에요.
어른을 대상으로 한 인생 교육 기관이 많아졌어요. 인생학교가 시대를 조금 앞서서 생각한 게 아닐까 싶고요.
너무 당연하게 필요한 일이고 앞으로도 더 커질 거예요. 그만큼 이 일이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그렇지 않아도 교육의 기회가 넘쳐나는데 잘 만들어진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누군가 제안할 필요가 있어요. 학교에서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아도 연애를 한다거나 매일 직장 생활하면서 동료와 문제가 생긴다거나,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거나 하면 인간은 정말 한계에 부딪히거든요. 이제 우리 영혼의 행복, 영혼의 빈곤함을 고민하는 시대가 온 거죠. 고민이 실제로 필요하고요. 교육 자체가 의문이 들면서 저희도 절대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올해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요.
올해 새로 만든 콘텐츠가 대거 업데이트돼요. 열심히 번역하고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고요. 확실히 알랭 드 보통과 그의 팀이 원래도 좋았지만 개선하니까 더 좋은 게 나오더라고요. 한 번 더 고민하니까 또 발전된 콘텐츠가 나오는 걸 보니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요. 어떤 사람은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을 삶에 대한 물음표를 계속 떠올려야 하고,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에 대한 비전이 넓어지죠.
이제까지 인생 학교를 거쳐 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작년 봄에 통계를 냈을 때 만 명이 넘었어요. 장소가 제한적이라 20여 명씩 듣게 되는데, 그래도 많이 왔죠. 큰 이벤트를 연 적도 있고요.
인생학교에서 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뿌듯할 것 같아요.
보람차죠. 저희 직원들은 제가 봤을 때 그 보람으로 일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대기업도 아니고, 근무조건이 뻔하잖아요. 하지만 평생 한 번이라도 당신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듣기 힘든데 보약 챙겨주고 볼펜 챙겨주면서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 때문에 힘이 나죠.
다음 학기는 언제 시작되나요?
지금 새로운 콘텐츠를 번역하고 있어요. 5월 초에 시작하고 신청은 3월부터 받을 것 같아요. 2018년에는 좀더 많은 분이 오셨으면 해요.
불안함을 끌어안고 사는 법도 알아야 한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많은 일을 하시잖아요. 사실상 아나운서였을 때보다 더 바빠졌을 것 같아요.
대신 여러 가지 일을 해볼 수 있으니까 좋지 않아요? 그런 장점도 있지 않을까요?
바쁘다고 해서 꼭 지치는 건 아니죠?
끝이 안 보일 때, 아무리 해도 결과가 안 나올 때 지치죠. 꼭 경제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한 일에 피드백이 튀어나오고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때 사람들은 보람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저는 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보기에 근사하니까 너무 좋다고 하지만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희생정신으로 일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버티는 이유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 때문일 거예요. 명확한 목표가 없이 왜 이걸 하고 있지 반문하면 답이 없어요. 자신이 왜 공부하는지 모르고 뭘 하면 행복한지 모른다는 말을 들으면 안타까워요. 그러면 되게 안타깝거든요. 그걸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 한 발짝을 내미는 게 어려워요.
어떤 게 제일 어려울까요? 경제적인 이유? 용기? 남들이 다 가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
아마도 안전망이 없다는 불안 때문이겠죠?
안전망이 있는 삶이 역사상에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요? 물론 예전 같으면 정년퇴임할 때까지 갈 수 있는 직장이 많았다는 차이는 있어요. 그러나 한 마디로 이 길로 가면 앞으로도 계속 안전할 거라는 건 누구한테도 없었고, 그런 불안은 저도 가지고 살아요. 물론 이런 이야기 들으면 화낼 분이 있겠죠. 제가 주장하는 건 불안함을 끌어안고 사는 법도 조금은 알아야 한다는 거죠. 문제는 내가 꼭 이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어야 해요.
그럼 첫 번째 발을 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꼭 외국이 아니더라도 계속 떠나고 많이 걸으면서 생각하고, 의외의 사건을 만났을 때 피하지 않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실패하면 안 된다는 걸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젊은 세대뿐 아니라 모두에게요. 모두가 성공해야지만 인간다운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요. 첫발을 내디뎌서 잘못하면 두 번째로 하면 되는데 마치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죠. 늘 강조하지만 실패하면 다시 하면 돼요. 아무도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가 그 용기를 못 내죠. 조급함을 갖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 넉넉하고, 평생 있을 것처럼 착각하기엔 유한해요. 조급할 필요도 없고, 언제까지나 미루면 안 되는 딜레마가 있는 게 인생인데, 앞에 놓인 일을 열심히 하고 결과는 신에게 맡기는 과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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