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핫했다. 그리고 지금도 가장 핫하다. 첫 솔로 앨범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로 작년에 대박을 치더니, 올해는 동료 힙합 아티스트들뿐만 아니라 아이돌 가수들에까지 프로듀서로서 지원 사격을 날리며 연일 상한가를 기록 중이다. ‘프라이머리’라는 네임 라벨이 붙었다하면 히트에 성공하는 작금의 대중음악 신에서, 스페셜 원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반론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매번 들었을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가면 디자인은 언제 했나요?
2006년쯤일 거예요. 프라이머리 스쿨(이하 피스쿨) 1집 앨범 준비하면서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음반을 수집하는 사람 입장에서 세월이 지난 앨범들 쭉 보고 있으면 간혹 어떤 앨범 자켓들은 사진이 촌스러워 보이거든요. (웃음) 거기에 캐릭터가 있으면 그게 덜 하더라고요. 나이가 들지 않는 느낌? 거기서 부터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피티 아티스트 윤협이라는 친구가 당시에 정크 아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쯤 제가 빠져있던 음악 스타일하고도 매치되는 부분이 많아서 가면을 만들게 되었고요, 또 재활용적인 측면에 있어서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부분도 있었죠.
비둘기 디자인으로 알고 있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원래 이게 오리지널 버전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영화를 찍는다고 빌려갔다가 그대로 먹어서(돌려주지 않아서)… 사진만 보고 다른 친구가 만들어줬죠. 그런데 만들수록 면적이 뚱뚱해지는 거예요. 원래는 비둘기 디자인인데 지금은 부엉이로 보시는 분들도 많고 코끼리로 보시는 분들도 많고.
앞이 뚫려 있나요?
뚫려 있긴 한데 잘 안 보여요. (웃음) 그래서 실제 연주를 할 때는 벗고 해요. 다프트 펑크나 데드마우스나 헬멧이 기술적으로 발달되었잖아요. 불도 들어오고 에어컨도 있고. 제 건 안에 아무것도 없어요 사실. 되게 불편해요. 습한 날씨에 쓰고 오면 눅눅해져있고.
처음 음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는 별 생각 없이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냥 음악을 좋아해서 시작한 케이스죠. 중학교 때 음악 시간에 기악 시험을 치르는데 왜 보통 리코더들 많이 하잖아요. 조금 특이한 악기로 연주하면 점수를 좀 더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사실 처음에 전 통기타로 조용필, 넥스트 이런 거 연주하는 걸 생각했거든요. 알고 보니 이게 클래식 기타더라고요. 가르쳐주는 건 「반짝반짝 작은 별」 (웃음) 그 때는 되게 하기 싫었어요, 진짜. 그러다 조금씩 재미가 들리더라고요. 그 때부터 음악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자 기타도 잡았어요. 깊게 들어갔죠.
굉장히 많은 악기를 다루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죠.
악기 다루는 걸 좋아해서요. 원래는 어렸을 때 기타 연주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하다 보니 관심사가 퍼져서 건반도 치고. 또 비슷한 악기들은 운지법이 조금씩 비슷하잖아요. 베이스도 치고 시타도 치고, 색소폰도 조금 배워놓아서 관악기도 약간 하고 있고요.
처음에는 힙합이 목표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록 음악을 좋아했어요. 속주를 좋아해서 잉베이 맘스틴, 스티브 바이 같은 아티스트들을 좋아했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지금만큼 음악 교육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어요. 지금은 실용음악 학원도 많고 예술 중고등학교나 대학에 학과도 잘 잡혀있지만 저 때까지만 해도 없었거든요. 그러다 고등학교 땐가 재즈 아카데미 이런 게 생겼던 거 같아요. 음악을 제대로 배운 게 그 때쯤이에요. 스무 살 때 재즈 아카데미에 처음 들어갔어요. 이전까지는 무조건 속주만 파다가 재즈란 걸 처음 접하면서부터 래리 칼튼이나 로니 조단 음악에 엄청 빠졌었죠. 로니 조단의 경우에는 모달 재즈라 해서 힙합하고도 콜래보레이션을 많이 했고 구루나 디제이 크러쉬와도 같이 음반도 냈고요. 여기에서부터 제 음악이 확장된 것 같아요.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무슨 음악을 들었나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들었죠. 중학교 때는 팝 음악을 엄청 들었고요. 저희 때는 강남 타워레코드 가서 돈 없으니까 애들끼리 매일 음악 듣고 오고 그랬어요. 거기가 1층이 팝이고 2층이 중화권 음악, 월드 뮤직, 인도 음악으로 나뉘어있었거든요. 가서 그런 음악들도 듣고 악보들도 사오고 그랬어요.
연주한다는 방식이 신에서 상당한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요즘에 기술이 좋아지다 보니 홈 레코딩 시스템으로 많이 바뀌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강점이 되는 시대가 온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보면 지금 이 시스템이 음악의 큰 신에 있어서는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연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굉장히 힘들어요. 몇몇 에이급 연주자들만이 음반의 거의 모든 세션을 담당하다보니 다른 연주자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상당히 적어진 거죠. 얼마 전에 유희열 형님이랑 얘기를 했었는데 예전에는 서울레코드로 웬만큼 연주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대요. 교류도 많이 하고, 이 친구가 기타 좀 친다하면 그 위에 형님들이 다 이끌어주는 기능도 있었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잖아요.
본격적으로 발을 담근 것은 프라이머리 스쿨부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예. 사실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활동을 하긴 했는데 본격적인 건 피스쿨 때부터예요. 그러다 빅딜 레코드를 만들어서 한 장 내고 (레이블에서) 나오기도 했고. (빅딜에서는 왜 나오게 되었나요?) 그때는 다들 나이도 어렸어요. 생각해보면 취미로 접근했던 것 같고요. 같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중단하고 옮겼죠. 1집 앨범은 사기도 당했어요. 1원도 못 받았는데. 제작비도 많이 안 썼거든요 사실, 자켓도 친구들이 만들어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유통 과정에서 사기를 당한 거죠.
스스로도 컨템포러리 재즈라고 말했는데, 그 특유의 재지함이 상당히 특이했습니다.
그걸 좋아했고, 추구했고 지금도 좋아해요. 하고 싶고. 언젠가는 그런 형태의 앨범을 내고 싶어요. 내겠죠. 지금은 대중적으로 다가가려고 해요.
스코어(이관)랑 같이 프라이머리 스코어로도 음반을 냈었죠?
원래 기획된 건 그게 아니에요. 그런 형태가 아니었고 둘이서 하는 잼 형식이었죠. 아예 연주곡으로만, 가창인 노래도 있지만 연주가 대부분을 이루는 음반을 내려고 했어요.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같은 음반을 좋아했거든요 당시에. 작업을 막 시작하니까 투자자가 들어오게 되고 회사도 끼게 되면서 요구사항이 생기더라고요. 대학생이라 시간도 많지 않은데 데드라인이 주어지고요. 어떻게 하다 보니 한 달 만에 나왔는데 아쉬웠어요.
아쉬운 곡들이 많은가요?
음반 낼 때마다 항상 아쉬워요. 그래도 저는 완전히 제 욕심을 충족시키는 스타일은 아니예요. 물론 나오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노력을 하지만 자기만족은 100 퍼센트 채우려고 몇 년씩 음반 작업에 매달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차라리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죠. 만들고 1주일 뒷면 안 좋게 들려요. 그런 식으로 했다가 안 나온게 되게 많죠. 못 내고 쟁여두고 있는 트립 합 스타일도 많고 아무도 안 사겠다 싶은 레이드 백(laid back) 심한 스타일도 갖고만 있죠.
꼽아본다면 어떤 곡들이 아쉬움으로 기억에 남나요?
팔로알토 앨범에 있는 「줄넘기」랑 정기고 형이 피쳐링 한 「녀석들」이나… 일본 그룹 게이글(Gagle) 곡 중에 「Love note」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많이 안 알려진 곡들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워요. 맘에 드는 곡들인데.
스코어도 스쿨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런 형태의 음반을 내고는 싶은데 지금은 연주를 워낙 안 해서요. (웃음) 일주일만 안 해도 손이 굳더라고요.
첫 솔로 앨범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에 대해 얘기해보죠. 만족도는 어느 정도였나요?
대중적으로 접근하려 했던 음반이라, 어떻게 보면 앨범 전체의 색깔에 있어서는 크게 만족도는 없어요. 앨범 단위로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예전에 냈던 음반에 더 어울리죠. 하지만 지금 시장에서는 그런 형태를 거부하잖아요. 대중들도 그런 음반을 원치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면 지금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죠.
2CD에다가 분량이 상당합니다. 스쿨이나 스코어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평소 작업량이 많은가요?
작업을 할 때 한 번에 많이 해요. 예전에는 사실 곡이 남아돌았거든요. 집중을 하는 대로 나오는 식이었는데 요새는 외부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밀린 것도 많아서. (웃음) 들어온 것만 끝내고 당분간 작업은 그만 받으려고요. 다음 앨범 준비 해야죠.
칼 같은 데드라인에 쪼는 작업, 닦달로도 MC들 사이에서 유명해요.
요새는 안 그런데 예전에는 혈기가 왕성해서 좀 심했어요. 할 게 있는데 잠에 드는 거, 이걸 해야 하는데 쉬는 거, 이런 걸 용납 못해요 저는. 슈프림팀 작업 한창 할 때는 전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옆에 붙어서 가사 쓰게 했죠. 물론 개인적인 차이라 집중력이나 작업 방식은 뮤지션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험상으로는 약간 아티스트 성향을 가지신 분들이 조금은 더 게으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놀기 좋아하고. 쪼이면 나오죠.
남겨둔 곡들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얼마 전에 나온 범키의 「미친 연애」 같은 곡은 제 앨범에 들어가려 했어요. 이번에 나온 피타입의 「꿈의 해석」도 그렇고요. 아날로그 신디로 만든, 진보같은 친구들이 추구하는 그런 사운드의 노래인데 2008년 쯤 그런 식의 음반을 준비하면서 만든 피스쿨 시절의 곡이에요. 사실 피스쿨 2집이 잘 안 됐거든요. 2집을 내기 전에 약간 시장의 변화를 감지했던 것 같아요. 원래는 시장에서 음반이 팔려야 살아남는 시스템이었는데 그게 점점 바뀌더라고요.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안 되겠다’는 것도 실감했고요. 타협을 하지 않고 제 음악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일본 레이블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본의 아니게 대학교 졸업을 못 했거든요. 전공필수 과목을 미수강해서… (웃음) 한 학기를 더 다니면서 그 쯤 아메바랑 계약을 했어요.
솔로 앨범을 내면서 기억에 남는, 혹은 재미있었던 작업 에피소드가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리듬파워와 함께했던 「2주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이랑 작업할 때면 토크를 해요. 술은 잘 안 먹지만 술집에서 나올만한 얘기들이 나오죠. 한번 해보고 멜로디 입혀주고, 또 하고. 집에서 놀면서 했던 것 같아요. 리듬파워 새 앨범 작업도 들어갔고… 이센스랑 했던 「독」같은 경우에는 래퍼가 감정을 조금 이입해야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시간이 걸렸는데, 작업은 새벽에 했어요. 그 친구는 야행성이고 저는 아침형인간이라. 스튜디오 불 다 끄고 촛불 켜놓고 전자레인지에 데운 와인 마시면서 녹음했어요. 곡에서 나오는 연필소리도 마침 녹음실에 철제 책상이 있더라고요. 볼펜으로도 해보고 나무 책상, 플라스틱 책상 여러 곳에 놓고 해봤는데 철제 책상이 가장 잘 나왔던 것 같아요. 「3호선 매봉역」은 굳이 3호선에 안 가도 되는데 3호선에 가서 녹음했어요. 매봉역까지 가긴 좀 그래서 남부터미널역에 가서 따왔고요.
자이언티 얘기를 잠시 꺼내볼게요. 「씨스루」를 통해 자이언티가 많이 알려졌고 프라이머리의 페르소나로도 자주 언급이 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일 잘 맞는 것 같아요. 경험상으로 그런 아티스트가 굉장히 많았는데 전에 작업을 많이 했던 빈지노도 잘 맞았고 다이나믹 듀오 개코 형도 잘 맞았어요. 자이언티 같은 경우는 저를 통해 잘 알려지고 홍보가 되어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만약 빈지노가 그렇게 알려졌다면 빈지노가 그런 얘기를 들었겠죠.
최근에는 아이돌들과의 콜래보레이션도 많았어요. 인피티트H랑 엠블랙, 얼마 전에는 브라운아이드걸스와도 같이 했죠. 계기가 있었나요?
아이돌 작업 의뢰가 엄청나게 많이 왔어요. 거기서 해야 하는 것만 했죠. 제 앨범이 나오기 전에 했던 인피니트는 에픽 하이랑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엠블랙은 제 앨범에 도움을 줬던 게 이유였고, 브라운아이드걸스는 윤일상 형님이랑 얘기가 되어서 했고요.
혹시 같이 하는 기준이 있나요?
예전에는 욕심이 있어서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걸 준비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가수들과 같이 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다른 프로듀서들 예를 들어 퍼렐 윌리엄스나, 팀벌랜드 보면 누구 음반을 들어도 그 곡은 누구다 알 수 있는 색이 있잖아요. 저도 제 색깔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마찬가지로 색깔이 센 다른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면 합쳐진 색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요. 그 색깔들이 만나서 융화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런데 아이돌 같은 경우에는 모호한 면이 있다 보니 제 색깔만 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제시를 해주길 바리기도 하고요. 어떤 프로듀서랑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디렉팅을 붙이고 이것저것 가이드를 잡다보면 결국 프로듀서의 스타일로만 가게 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힘든 점을 느꼈죠. 사실 지금 개인적으로도 준비하고 할 게 많아서 기회가 되면 더 잘 해보고 싶어요.
뽑아내는 음악 바운더리가 상당히 넓습니다. 장르 구분 없이 음악을 들은 증거이기도 하겠군요.
다 좋아하고요. 사실 어떻게 보면 저도 팬이죠. 음악을 듣는 팬이고 좋아하고 듣고.
요즘 꽂힌 음악이 있나요?
요새는 좀 올드한 음악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1930년대 조금 엣날 음악. 예전에도 듣기는 들었는데 최근에 다시 듣게 되네요.
평소 작업을 하면서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요?
여기저기 일상에서 얻죠.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 하려 했었는데 요즘은 목적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 같아요. 목적도 없고 내지르는 스타일이었다면 이제는 전문적으로 하다 보니 목적이랑 범위를 가지고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프로페셔널하게 하려면 범위를 줄여야하는 면이 있는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있어요.
아예 예상치 못한 장르의 음악을 기대해볼 수도 있을까요?
그렇죠. 요새 좀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미니멀한 것도 해보고 싶고 오케스트라 같은 것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거든요. 새 앨범에서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혹시 최근 작업하고 있는, 구상하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말해줄 수 있나요?
장르에 틀이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힙합 뮤지션이라고만 바라보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저도 그런 식으로 인식하려하지 않고 있고요. 그보다 조금 더 확장을 하고 있어요. 다른 장르를 콘셉트로 하고 있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완전히 힙합으로 가려고 있어요. 반반이죠. 비율을 절반 정도는 많이 확장을 하면서 남은 절반은 완전한 한 색깔로. 조금 분리를 할까 생각을 하고 있고요. 10월쯤으로 목표를 잡고 있어요.
라디오, TV와 같은 미디어 매체 출연에 사람들이 많이 반깁니다. 소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너무 말을 못해서. (웃음) 아주 조금씩은 괜찮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시크하다고, 너무 부담스럽다고 하던데요. 라디오 처음 할 때도 유인나씨 고정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갔거든요. 성향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 시간대 라디오 특성상 재밌어야하고, 막 목소리 연기도 하고 그래야하는데 그것 때문에 대본에도 없는 걸 자꾸 시키는 거예요. 여자 역할도 시키고. 생방송중에 노래 부르고 안하면 진행 안하고. 스트레스도 장난 아닌 거예요, 생각해보니. 지금 하는 애프터클럽 프로그램 하다 보니 조금씩 나오는 거예요.
진행은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엔 굉장히 긴장됐고 가보니까 또 대본이 없어요. (웃음) 그래서 처음엔 대본을 막 써놓고, 이걸 읽자 했다가 이것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이거 뭔가 얘기를 해야겠구나 싶어서 게스트를 데리고 왔죠. 한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하다가 15분은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음악 트는 식으로 하자고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음악 얘기를 하다 보니 말이 점점 길어져요. 편집 때 녹음 분량을 매번 줄이고 있어요. 저번 주에도 메타 형님이랑 했는데 말이 또 길어져서 얼마 잘라냈고.
섭외는 어떻게 하시나요?
제 카톡으로. 다들 친해서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신보 나온 아티스트도 좋죠. 나올 얘기들도 많고.
같이 작업하고 싶은 MC가 있다면?
웬만한 아티스트랑은 작업을 다 해본 거 같아서 신인들이랑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여성 MC들과도 해보고 싶고, 했던 사람들도 좋지만 신 자체에 새로운 스타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한 번은 메일 주소 공개해놓고 데모를 보내 달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때 너무 많이 날아와서 메일이 아예 확인 불능상태가 되버렸어요. 보낸 사람이 또 계속 보내고.
힙합 신에서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같이 하고 싶은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로는 누가 있을까요?
엄청나게 많죠. 사실은 너무 많아서 누구라고 꼽아 말하긴 좀 그렇고, 국악하시는 분들하고도 해보고 싶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오케스트라 음악도 해보고 싶고… 저도 아이디어나 구상을 외국 뮤지션들에게도 많이 얻거든요. 그런 음악들을 듣다보면 굉장히 멋있게 여러 방식으로 작업을 많이 하더라고요.
슬슬 인터뷰가 막바지로 향해 가는데요, 이쯤에서 영향을 준 아티스트, 혹은 음악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데, 진짜 어릴 땐 서태지였고요. 저희 나이 때는 다 그렇잖아요. 신이었으니까요. 중학교 때는 신해철 선배님이나 유희열 선배님이었고요. 커가면서는 로니 조단이나 마일스 데이비스, 래리 칼튼. 공부를 할 때 이 아티스트들 음악 들으면서 배웠던 것 같아요.
이즘의 공식 질문이죠. 내 인생에 영감을 준 음반을 꼽는다면?
로니 조단의 <Off The Record>앞으로의 음악에 대해 영감을 주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산타나의 <Supernatural>.
예전에 잠시 아티스트와 평론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었죠?
사실, 모르겠어요. 신 자체가 너무 좁은데 그 안에서 아티스트들이 타격을 굉장히 많이 입더라고요. 지금은 안 그런 경향이 있는데 몇몇 커뮤니티들 중심으로 신이 운영되었거든요. 모든 정보들이 그 쪽을 통해 나와요. 그런데 그런 곳에서 평론을 내놓으면 새 음반을 낸 아티스트가 쉽게 무너져버려요. 새로운 대중들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보고 공부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티스트들은 들려줄 권리를 잃어버리는 거죠. ‘이건 이래서 별로더라’ 식으로 올라오는데. 그 순간에 아티스트는 타격을 많이 받아요. 망가지기도 하고. 이게 왜 필요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은 대중들인데 정작 평가는 대중들이 아니라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올리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여기에 쉽게 휩쓸리죠. 물론 그 분야에 계신 사람들을 안 만나본 것도 아니에요. 저도 그 상황에서 많이 봤고 안 좋은 것도 마주쳐보고, 화해시키려고도 했죠.
공존할 방향이 있을까요?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하지만 가이드를 제시해주는 게 평론가라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들어보면 뭐가 보일 것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정도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마다 오래가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유행을 타는 음악, 트렌드를 좇는 음악은 하고 싶지 않아요. 일렉트로닉이 핫하다고 하면 가요 전반이 그 쪽으로 향하고 디스코가 핫하다고 하면 또 그 쪽으로 향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걸 좀 피하려고 해요.
매번 들었을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가면 디자인은 언제 했나요?
2006년쯤일 거예요. 프라이머리 스쿨(이하 피스쿨) 1집 앨범 준비하면서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음반을 수집하는 사람 입장에서 세월이 지난 앨범들 쭉 보고 있으면 간혹 어떤 앨범 자켓들은 사진이 촌스러워 보이거든요. (웃음) 거기에 캐릭터가 있으면 그게 덜 하더라고요. 나이가 들지 않는 느낌? 거기서 부터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피티 아티스트 윤협이라는 친구가 당시에 정크 아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쯤 제가 빠져있던 음악 스타일하고도 매치되는 부분이 많아서 가면을 만들게 되었고요, 또 재활용적인 측면에 있어서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부분도 있었죠.
비둘기 디자인으로 알고 있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원래 이게 오리지널 버전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영화를 찍는다고 빌려갔다가 그대로 먹어서(돌려주지 않아서)… 사진만 보고 다른 친구가 만들어줬죠. 그런데 만들수록 면적이 뚱뚱해지는 거예요. 원래는 비둘기 디자인인데 지금은 부엉이로 보시는 분들도 많고 코끼리로 보시는 분들도 많고.
앞이 뚫려 있나요?
뚫려 있긴 한데 잘 안 보여요. (웃음) 그래서 실제 연주를 할 때는 벗고 해요. 다프트 펑크나 데드마우스나 헬멧이 기술적으로 발달되었잖아요. 불도 들어오고 에어컨도 있고. 제 건 안에 아무것도 없어요 사실. 되게 불편해요. 습한 날씨에 쓰고 오면 눅눅해져있고.
처음 음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는 별 생각 없이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냥 음악을 좋아해서 시작한 케이스죠. 중학교 때 음악 시간에 기악 시험을 치르는데 왜 보통 리코더들 많이 하잖아요. 조금 특이한 악기로 연주하면 점수를 좀 더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사실 처음에 전 통기타로 조용필, 넥스트 이런 거 연주하는 걸 생각했거든요. 알고 보니 이게 클래식 기타더라고요. 가르쳐주는 건 「반짝반짝 작은 별」 (웃음) 그 때는 되게 하기 싫었어요, 진짜. 그러다 조금씩 재미가 들리더라고요. 그 때부터 음악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자 기타도 잡았어요. 깊게 들어갔죠.
굉장히 많은 악기를 다루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죠.
악기 다루는 걸 좋아해서요. 원래는 어렸을 때 기타 연주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하다 보니 관심사가 퍼져서 건반도 치고. 또 비슷한 악기들은 운지법이 조금씩 비슷하잖아요. 베이스도 치고 시타도 치고, 색소폰도 조금 배워놓아서 관악기도 약간 하고 있고요.
처음에는 힙합이 목표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록 음악을 좋아했어요. 속주를 좋아해서 잉베이 맘스틴, 스티브 바이 같은 아티스트들을 좋아했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지금만큼 음악 교육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어요. 지금은 실용음악 학원도 많고 예술 중고등학교나 대학에 학과도 잘 잡혀있지만 저 때까지만 해도 없었거든요. 그러다 고등학교 땐가 재즈 아카데미 이런 게 생겼던 거 같아요. 음악을 제대로 배운 게 그 때쯤이에요. 스무 살 때 재즈 아카데미에 처음 들어갔어요. 이전까지는 무조건 속주만 파다가 재즈란 걸 처음 접하면서부터 래리 칼튼이나 로니 조단 음악에 엄청 빠졌었죠. 로니 조단의 경우에는 모달 재즈라 해서 힙합하고도 콜래보레이션을 많이 했고 구루나 디제이 크러쉬와도 같이 음반도 냈고요. 여기에서부터 제 음악이 확장된 것 같아요.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무슨 음악을 들었나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들었죠. 중학교 때는 팝 음악을 엄청 들었고요. 저희 때는 강남 타워레코드 가서 돈 없으니까 애들끼리 매일 음악 듣고 오고 그랬어요. 거기가 1층이 팝이고 2층이 중화권 음악, 월드 뮤직, 인도 음악으로 나뉘어있었거든요. 가서 그런 음악들도 듣고 악보들도 사오고 그랬어요.
연주한다는 방식이 신에서 상당한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요즘에 기술이 좋아지다 보니 홈 레코딩 시스템으로 많이 바뀌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강점이 되는 시대가 온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보면 지금 이 시스템이 음악의 큰 신에 있어서는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연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굉장히 힘들어요. 몇몇 에이급 연주자들만이 음반의 거의 모든 세션을 담당하다보니 다른 연주자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상당히 적어진 거죠. 얼마 전에 유희열 형님이랑 얘기를 했었는데 예전에는 서울레코드로 웬만큼 연주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대요. 교류도 많이 하고, 이 친구가 기타 좀 친다하면 그 위에 형님들이 다 이끌어주는 기능도 있었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잖아요.
본격적으로 발을 담근 것은 프라이머리 스쿨부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예. 사실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활동을 하긴 했는데 본격적인 건 피스쿨 때부터예요. 그러다 빅딜 레코드를 만들어서 한 장 내고 (레이블에서) 나오기도 했고. (빅딜에서는 왜 나오게 되었나요?) 그때는 다들 나이도 어렸어요. 생각해보면 취미로 접근했던 것 같고요. 같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중단하고 옮겼죠. 1집 앨범은 사기도 당했어요. 1원도 못 받았는데. 제작비도 많이 안 썼거든요 사실, 자켓도 친구들이 만들어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유통 과정에서 사기를 당한 거죠.
스스로도 컨템포러리 재즈라고 말했는데, 그 특유의 재지함이 상당히 특이했습니다.
그걸 좋아했고, 추구했고 지금도 좋아해요. 하고 싶고. 언젠가는 그런 형태의 앨범을 내고 싶어요. 내겠죠. 지금은 대중적으로 다가가려고 해요.
스코어(이관)랑 같이 프라이머리 스코어로도 음반을 냈었죠?
원래 기획된 건 그게 아니에요. 그런 형태가 아니었고 둘이서 하는 잼 형식이었죠. 아예 연주곡으로만, 가창인 노래도 있지만 연주가 대부분을 이루는 음반을 내려고 했어요.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같은 음반을 좋아했거든요 당시에. 작업을 막 시작하니까 투자자가 들어오게 되고 회사도 끼게 되면서 요구사항이 생기더라고요. 대학생이라 시간도 많지 않은데 데드라인이 주어지고요. 어떻게 하다 보니 한 달 만에 나왔는데 아쉬웠어요.
아쉬운 곡들이 많은가요?
음반 낼 때마다 항상 아쉬워요. 그래도 저는 완전히 제 욕심을 충족시키는 스타일은 아니예요. 물론 나오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노력을 하지만 자기만족은 100 퍼센트 채우려고 몇 년씩 음반 작업에 매달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차라리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죠. 만들고 1주일 뒷면 안 좋게 들려요. 그런 식으로 했다가 안 나온게 되게 많죠. 못 내고 쟁여두고 있는 트립 합 스타일도 많고 아무도 안 사겠다 싶은 레이드 백(laid back) 심한 스타일도 갖고만 있죠.
꼽아본다면 어떤 곡들이 아쉬움으로 기억에 남나요?
팔로알토 앨범에 있는 「줄넘기」랑 정기고 형이 피쳐링 한 「녀석들」이나… 일본 그룹 게이글(Gagle) 곡 중에 「Love note」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많이 안 알려진 곡들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워요. 맘에 드는 곡들인데.
스코어도 스쿨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런 형태의 음반을 내고는 싶은데 지금은 연주를 워낙 안 해서요. (웃음) 일주일만 안 해도 손이 굳더라고요.
첫 솔로 앨범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에 대해 얘기해보죠. 만족도는 어느 정도였나요?
대중적으로 접근하려 했던 음반이라, 어떻게 보면 앨범 전체의 색깔에 있어서는 크게 만족도는 없어요. 앨범 단위로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예전에 냈던 음반에 더 어울리죠. 하지만 지금 시장에서는 그런 형태를 거부하잖아요. 대중들도 그런 음반을 원치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면 지금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죠.
2CD에다가 분량이 상당합니다. 스쿨이나 스코어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평소 작업량이 많은가요?
작업을 할 때 한 번에 많이 해요. 예전에는 사실 곡이 남아돌았거든요. 집중을 하는 대로 나오는 식이었는데 요새는 외부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밀린 것도 많아서. (웃음) 들어온 것만 끝내고 당분간 작업은 그만 받으려고요. 다음 앨범 준비 해야죠.
칼 같은 데드라인에 쪼는 작업, 닦달로도 MC들 사이에서 유명해요.
요새는 안 그런데 예전에는 혈기가 왕성해서 좀 심했어요. 할 게 있는데 잠에 드는 거, 이걸 해야 하는데 쉬는 거, 이런 걸 용납 못해요 저는. 슈프림팀 작업 한창 할 때는 전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옆에 붙어서 가사 쓰게 했죠. 물론 개인적인 차이라 집중력이나 작업 방식은 뮤지션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험상으로는 약간 아티스트 성향을 가지신 분들이 조금은 더 게으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놀기 좋아하고. 쪼이면 나오죠.
남겨둔 곡들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얼마 전에 나온 범키의 「미친 연애」 같은 곡은 제 앨범에 들어가려 했어요. 이번에 나온 피타입의 「꿈의 해석」도 그렇고요. 아날로그 신디로 만든, 진보같은 친구들이 추구하는 그런 사운드의 노래인데 2008년 쯤 그런 식의 음반을 준비하면서 만든 피스쿨 시절의 곡이에요. 사실 피스쿨 2집이 잘 안 됐거든요. 2집을 내기 전에 약간 시장의 변화를 감지했던 것 같아요. 원래는 시장에서 음반이 팔려야 살아남는 시스템이었는데 그게 점점 바뀌더라고요.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안 되겠다’는 것도 실감했고요. 타협을 하지 않고 제 음악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일본 레이블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본의 아니게 대학교 졸업을 못 했거든요. 전공필수 과목을 미수강해서… (웃음) 한 학기를 더 다니면서 그 쯤 아메바랑 계약을 했어요.
솔로 앨범을 내면서 기억에 남는, 혹은 재미있었던 작업 에피소드가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리듬파워와 함께했던 「2주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이랑 작업할 때면 토크를 해요. 술은 잘 안 먹지만 술집에서 나올만한 얘기들이 나오죠. 한번 해보고 멜로디 입혀주고, 또 하고. 집에서 놀면서 했던 것 같아요. 리듬파워 새 앨범 작업도 들어갔고… 이센스랑 했던 「독」같은 경우에는 래퍼가 감정을 조금 이입해야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시간이 걸렸는데, 작업은 새벽에 했어요. 그 친구는 야행성이고 저는 아침형인간이라. 스튜디오 불 다 끄고 촛불 켜놓고 전자레인지에 데운 와인 마시면서 녹음했어요. 곡에서 나오는 연필소리도 마침 녹음실에 철제 책상이 있더라고요. 볼펜으로도 해보고 나무 책상, 플라스틱 책상 여러 곳에 놓고 해봤는데 철제 책상이 가장 잘 나왔던 것 같아요. 「3호선 매봉역」은 굳이 3호선에 안 가도 되는데 3호선에 가서 녹음했어요. 매봉역까지 가긴 좀 그래서 남부터미널역에 가서 따왔고요.
자이언티 얘기를 잠시 꺼내볼게요. 「씨스루」를 통해 자이언티가 많이 알려졌고 프라이머리의 페르소나로도 자주 언급이 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일 잘 맞는 것 같아요. 경험상으로 그런 아티스트가 굉장히 많았는데 전에 작업을 많이 했던 빈지노도 잘 맞았고 다이나믹 듀오 개코 형도 잘 맞았어요. 자이언티 같은 경우는 저를 통해 잘 알려지고 홍보가 되어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만약 빈지노가 그렇게 알려졌다면 빈지노가 그런 얘기를 들었겠죠.
최근에는 아이돌들과의 콜래보레이션도 많았어요. 인피티트H랑 엠블랙, 얼마 전에는 브라운아이드걸스와도 같이 했죠. 계기가 있었나요?
아이돌 작업 의뢰가 엄청나게 많이 왔어요. 거기서 해야 하는 것만 했죠. 제 앨범이 나오기 전에 했던 인피니트는 에픽 하이랑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엠블랙은 제 앨범에 도움을 줬던 게 이유였고, 브라운아이드걸스는 윤일상 형님이랑 얘기가 되어서 했고요.
혹시 같이 하는 기준이 있나요?
예전에는 욕심이 있어서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걸 준비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가수들과 같이 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다른 프로듀서들 예를 들어 퍼렐 윌리엄스나, 팀벌랜드 보면 누구 음반을 들어도 그 곡은 누구다 알 수 있는 색이 있잖아요. 저도 제 색깔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마찬가지로 색깔이 센 다른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면 합쳐진 색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요. 그 색깔들이 만나서 융화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런데 아이돌 같은 경우에는 모호한 면이 있다 보니 제 색깔만 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제시를 해주길 바리기도 하고요. 어떤 프로듀서랑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디렉팅을 붙이고 이것저것 가이드를 잡다보면 결국 프로듀서의 스타일로만 가게 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힘든 점을 느꼈죠. 사실 지금 개인적으로도 준비하고 할 게 많아서 기회가 되면 더 잘 해보고 싶어요.
뽑아내는 음악 바운더리가 상당히 넓습니다. 장르 구분 없이 음악을 들은 증거이기도 하겠군요.
다 좋아하고요. 사실 어떻게 보면 저도 팬이죠. 음악을 듣는 팬이고 좋아하고 듣고.
요즘 꽂힌 음악이 있나요?
요새는 좀 올드한 음악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1930년대 조금 엣날 음악. 예전에도 듣기는 들었는데 최근에 다시 듣게 되네요.
평소 작업을 하면서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요?
여기저기 일상에서 얻죠.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 하려 했었는데 요즘은 목적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 같아요. 목적도 없고 내지르는 스타일이었다면 이제는 전문적으로 하다 보니 목적이랑 범위를 가지고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프로페셔널하게 하려면 범위를 줄여야하는 면이 있는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있어요.
아예 예상치 못한 장르의 음악을 기대해볼 수도 있을까요?
그렇죠. 요새 좀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미니멀한 것도 해보고 싶고 오케스트라 같은 것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거든요. 새 앨범에서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혹시 최근 작업하고 있는, 구상하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말해줄 수 있나요?
장르에 틀이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힙합 뮤지션이라고만 바라보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저도 그런 식으로 인식하려하지 않고 있고요. 그보다 조금 더 확장을 하고 있어요. 다른 장르를 콘셉트로 하고 있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완전히 힙합으로 가려고 있어요. 반반이죠. 비율을 절반 정도는 많이 확장을 하면서 남은 절반은 완전한 한 색깔로. 조금 분리를 할까 생각을 하고 있고요. 10월쯤으로 목표를 잡고 있어요.
라디오, TV와 같은 미디어 매체 출연에 사람들이 많이 반깁니다. 소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너무 말을 못해서. (웃음) 아주 조금씩은 괜찮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시크하다고, 너무 부담스럽다고 하던데요. 라디오 처음 할 때도 유인나씨 고정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갔거든요. 성향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 시간대 라디오 특성상 재밌어야하고, 막 목소리 연기도 하고 그래야하는데 그것 때문에 대본에도 없는 걸 자꾸 시키는 거예요. 여자 역할도 시키고. 생방송중에 노래 부르고 안하면 진행 안하고. 스트레스도 장난 아닌 거예요, 생각해보니. 지금 하는 애프터클럽 프로그램 하다 보니 조금씩 나오는 거예요.
진행은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엔 굉장히 긴장됐고 가보니까 또 대본이 없어요. (웃음) 그래서 처음엔 대본을 막 써놓고, 이걸 읽자 했다가 이것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이거 뭔가 얘기를 해야겠구나 싶어서 게스트를 데리고 왔죠. 한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하다가 15분은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음악 트는 식으로 하자고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음악 얘기를 하다 보니 말이 점점 길어져요. 편집 때 녹음 분량을 매번 줄이고 있어요. 저번 주에도 메타 형님이랑 했는데 말이 또 길어져서 얼마 잘라냈고.
섭외는 어떻게 하시나요?
제 카톡으로. 다들 친해서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신보 나온 아티스트도 좋죠. 나올 얘기들도 많고.
같이 작업하고 싶은 MC가 있다면?
웬만한 아티스트랑은 작업을 다 해본 거 같아서 신인들이랑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여성 MC들과도 해보고 싶고, 했던 사람들도 좋지만 신 자체에 새로운 스타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한 번은 메일 주소 공개해놓고 데모를 보내 달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때 너무 많이 날아와서 메일이 아예 확인 불능상태가 되버렸어요. 보낸 사람이 또 계속 보내고.
힙합 신에서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같이 하고 싶은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로는 누가 있을까요?
엄청나게 많죠. 사실은 너무 많아서 누구라고 꼽아 말하긴 좀 그렇고, 국악하시는 분들하고도 해보고 싶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오케스트라 음악도 해보고 싶고… 저도 아이디어나 구상을 외국 뮤지션들에게도 많이 얻거든요. 그런 음악들을 듣다보면 굉장히 멋있게 여러 방식으로 작업을 많이 하더라고요.
슬슬 인터뷰가 막바지로 향해 가는데요, 이쯤에서 영향을 준 아티스트, 혹은 음악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데, 진짜 어릴 땐 서태지였고요. 저희 나이 때는 다 그렇잖아요. 신이었으니까요. 중학교 때는 신해철 선배님이나 유희열 선배님이었고요. 커가면서는 로니 조단이나 마일스 데이비스, 래리 칼튼. 공부를 할 때 이 아티스트들 음악 들으면서 배웠던 것 같아요.
이즘의 공식 질문이죠. 내 인생에 영감을 준 음반을 꼽는다면?
로니 조단의 <Off The Record>앞으로의 음악에 대해 영감을 주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산타나의 <Supernatural>.
예전에 잠시 아티스트와 평론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었죠?
사실, 모르겠어요. 신 자체가 너무 좁은데 그 안에서 아티스트들이 타격을 굉장히 많이 입더라고요. 지금은 안 그런 경향이 있는데 몇몇 커뮤니티들 중심으로 신이 운영되었거든요. 모든 정보들이 그 쪽을 통해 나와요. 그런데 그런 곳에서 평론을 내놓으면 새 음반을 낸 아티스트가 쉽게 무너져버려요. 새로운 대중들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보고 공부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티스트들은 들려줄 권리를 잃어버리는 거죠. ‘이건 이래서 별로더라’ 식으로 올라오는데. 그 순간에 아티스트는 타격을 많이 받아요. 망가지기도 하고. 이게 왜 필요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은 대중들인데 정작 평가는 대중들이 아니라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올리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여기에 쉽게 휩쓸리죠. 물론 그 분야에 계신 사람들을 안 만나본 것도 아니에요. 저도 그 상황에서 많이 봤고 안 좋은 것도 마주쳐보고, 화해시키려고도 했죠.
공존할 방향이 있을까요?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하지만 가이드를 제시해주는 게 평론가라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들어보면 뭐가 보일 것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정도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마다 오래가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유행을 타는 음악, 트렌드를 좇는 음악은 하고 싶지 않아요. 일렉트로닉이 핫하다고 하면 가요 전반이 그 쪽으로 향하고 디스코가 핫하다고 하면 또 그 쪽으로 향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걸 좀 피하려고 해요.
인터뷰 : 김반야 신현태 이수호 전민석
정리 : 이수호
정리 :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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