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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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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추측과 미신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과연 그런가?’라는 물음을 한 번 더 곱씹는 일이자 수많은 가설과 실험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더 나은 논의를 위해 나아가는 행위다. 확실히 과학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을 보고 위안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학자도 과학을 어려워한다. 그렇기에 서울시립과학관장 이정모는 ‘과학의 대중화’보다는 ‘대중의 과학화’를 더 바란다. 쉬운 게 아닌 과학을 쉽게 접근하려면 본질을 놓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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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밀착형 과학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은 여러 편의 글이 모인 책이에요.

 

일 년 반 정도 쓴 글을 모았어요. 작년 대통령 탄핵 즈음까지 썼던 것 같고요.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은 책이라 과학책이 아닌데 제목에 ‘과학’을 붙이면 사람들이 헷갈릴 것 같아서 처음에는 제목을 반대했었어요.

 

안 그래도 정치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책 리뷰가 있었어요. 과학책인데 계속 정치를 이야기한다면서요.


첫 번째 쓴 책이 「달력과 권력」이었는데 그때도 과학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문서라고 생각했어요. 달력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산수 계산이 조금 들어갔는데,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과학책이라고 여겨주더라고요. 그만큼 세상 사람들이 과학을 거리가 멀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생활 밀착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집필 당시 생활에서는 정치가 가장 생활과 밀접한 관계였겠네요.


2016년 3월 13일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네 번째 게임이 열린 날이자 인류가 인공 지능을 이긴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그쯤 되면 2017년 3월 13일에는 과학자들이 모여서 심포지엄도 열고 그래야 하는데, 한 건도 없었어요. 바로 3일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과학자들도 그 문제에 매몰되어 있던 거예요. 평상시 못 보던 교수들을 다 광화문에서 만나던 시기였으니까요.(웃음) 그다음 관심을 가진 게 육아 문제예요. 딸만 둘이거든요. 육아와 출산, 여성의 경력 단절 같은 이야기를 동물과 연관 지어 생각하죠. 새끼를 키우지 않는 수컷은 주로 파충류고, 조류와 포유류는 수컷이 육아에 참여하거든요. 그런 이야기가 생활 밀착형이 아닐까 싶었어요.

 

대개 과학 인문서의 내용은 생활하는 데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사실 생활과 관련 없는 건 하나도 없어요. 옛날에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발견했을 당시에는 쓸모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 라디오,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휴대폰 모두 전자기파로 작동해요. 현대 물리학의 최고 성과라는 상대성 이론도 말만 들으면 어려워 보이지만, 상대성 이론이 없으면 내비게이션을 쓸 수 없어요. 지구에서 흐르는 시간과 우주에서 흐르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성 이론을 가지고 인공위성이 자동차의 위치를 보게 되거든요. 중력파도 지금은 먼 이야기지만, 얼마든지 생활과 연결할 수 있을 거예요.

 

 

과학자들은 실패에 익숙한 사람들

 

쉽게 쓴다고 해서 과학의 대중화는 아니라는 말씀이 있었어요.


1980년대에 운동권이 확산하면서 자연대에서도 과학 대중화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사람들이 과학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니까 과학을 쉽게 설명해보자는 역할을 많이 하는데, 완전히 실패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이유는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쉽게 설명하려다 보니까 어려운 걸 빼요. 예를 들면 부력을 설명하면서 부력의 원리는 빼고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 하면서 뛰쳐나오는 것만 알려주는 거죠. 과학 대중화를 하면서 과학의 변두리, 과학의 일화와 과학자의 이야기를 할 뿐 실제 과학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과학 주변의 이야기가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의 대중화 운동뿐만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 운동도 필요해요.

 

대중을 향한 과학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사람들에게 과학자만큼 지식을 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다만 이 세상의 과학자들이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 삶이 어떻게 바뀔지 이해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강의를 나가도 제가 말하는 시간은 한 시간 내로 줄이고 최대한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해요. 과학자와 직접 만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실제로 과학자들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과학자들은 엉덩이가 무겁고 실패에 익숙한 사람일 뿐이에요.

 

"과학관은 실패를 경험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씀도 해주셨어요.


과학을 보기만 할 게 아니라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몇몇 과학관에서 학습 프로그램,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요. 체험 행사는 1에서 10까지 정해져 있고, 그대로 따라 하면 실패할 일이 없어요. 제가 관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립과학관에서는 보고(see) 배우는(learn) 것에서 하나 더 나아가서 실제 해보는(do) 일을 하고 싶어요. 과학을 한다는 건 자기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예요. 지난겨울에는 DNA를 추출해서 증폭시키고 그걸 분석하는 실험을 했어요. 물론 가설을 세우다 실패하고, 가설 따라 관측하고 실험하다 실패하고, 실험 결과를 분석하다 실패해요. 하지만 괜찮아요.

 

실패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반발이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 서울시립과학관을 만들 때도 과학이 신나고 쉬운 거라고 알려주는 과학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받았어요. 그래서 과학이 재미있을 수는 있는데 결코 쉬울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자꾸 쉽게 하려다 보니 본질을 빼는데, 그러지 말고 과학이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가되 최대한 재밌게 접근하자는 거죠. 과학만 어려운 게 아니라 역사도 예술도 경제도 어려워요. 하지만 평소 사용하는 자연어로 되어 있으니 어쨌든 책을 읽어낸단 말이에요.

 

그 어려운 과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학이 우리 삶을 규정하는 부분이 있고, 잘 모르면 혹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속지 않으려고 과학을 이해해야 하는 거죠. 과학이 지식은 아니거든요. 지식이라면 적어도 내가 사는 동안에는 변하지 않아야 하잖아요. 진화론도 세세한 부분은 처음 다윈의 주장으로부터 다 달라졌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다윈이 틀렸다고 이야기하진 않죠. 갈릴레오가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결정적인 증거 하나가 목성에서 달 네 개를 발견한 거였는데, 제가 배울 때는 목성의 달이 예순일곱 개까지 늘어났거든요. 작년 10월에는 예순아홉 개로 늘어났어요. 과학이 지식이라면 틀린 걸 배운 거죠. 하지만 과학은 옳은 걸 찾는 게 아니라, 어떤 질문에 대한 잠정적인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맨 처음에 과학책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계속 들어보니 결국 과학 이야기인데요.(웃음)


그럼 과학책이 맞나 봐요.(웃음) 과학을 믿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해요.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느냐고 물어보는데 진화론은 믿는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연구 결과로 지구와 우주와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가장 합리적인 안이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하지만 만약 삼엽충이 나온 지층에서 토끼가 같이 나왔다든지, 공룡의 배 속에 사람이 있는 단 한 개의 화석만 나온다면 이제까지 알고 있던 모든 진화 이론을 다 버릴 수 있어요. 내가 아는 것들이 조만간 틀렸다고 밝혀지고 다른 차원으로 가길 원해요.

 

자신이 아는 것을 의심하는 태도도 포함된 거네요.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되잖아요. 경제학자는 경제학자의 눈으로, 일반 시민은 장바구니 물가를 보죠. 과학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분석하다 보면 자신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돼요. 내 주장이 충분히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는 것이 과학자의 태도거든요. 자신이 아무리 훌륭하고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라도 갓 박사를 받은 젊은이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는 거죠. 그런 게 과학적인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다음 과학을 하다 보면 우주가 얼마나 장엄한지,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인간이 차지한 역사가 얼마나 작은지 알게 돼요. 의심하고 겸손해지는 게 사람이 과학을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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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작을 쓰지 않는다

 

과학도 저마다 전문 영역이 있어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자신을 소개하시는데, 다른 영역의 과학을 이야기하는 게 힘들진 않나요?


다양한 수준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분야만큼 하는 거죠. 전문가만 설명해야 된다고 하면 우리나라에 과학 커뮤니케이터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당연히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야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무래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또 비판받는 데도 익숙하고요. 강연 가서도 틀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누가 잘못했다고 지적하면 잘못했다고 하면 돼요. 그 비판을 안 받으려고 시도를 안 하는 건 오히려 과학적이지 않은 태도죠.

 

글쓰기는 어떤가요?


안 힘들어요. 다른 분들은 글을 청탁받으면 일주일 전부터 고민하는데 저는 마감 두 시간 전에 고민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원칙이 ‘절대 불후의 명작을 쓰지 않는다’예요. 완벽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가볍게 쓰는 거고요.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전해지면 그걸로 된 거죠.

 

주로 언제, 어떻게 쓰세요?


SNS에서 글감을 많이 얻어요. 훌륭한 SNS 친구들이 중요한 논문을 찾아서 번역해서 올려놓을 때도 있고요. 저널 검색 시간이 훨씬 줄어들죠. 그다음에 책도 많이 읽어요. 50대가 넘어가면 호르몬이 바뀌면서 갑자기 잠이 줄어들더라고요. 노인이 부지런해서 일찍 깨는 게 아니라 새벽에 저절로 깨져요. 어느 순간 하루에 네 시간 정도만 자도 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한테 잠 많이 자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저도 그때는 많이 잤어요. 호르몬이 원래 그러더라고요. 읽다 보면 갈수록 쉬워지고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있더라고요.

 

다음 집필 계획이 있나요?


다음 달에 나오는 책이 『공생, 멸종, 진화』의 후속 편 정도가 되는데요. 번역서도 몇 권 계획하고 있어요. 길게 잡고 계획하는 책은 『다윈 사상사』예요. 제 집필의 삶을 한 번 더 마무리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정모 저 | 바틀비
작은 꽃들이 큰 꽃보다 먼저 피는 전략으로부터는 빽도 없고 힘도 없는 자들의 연대를, 자신의 것을 버리면서 빛을 발하는 원자와 태양을 통해서는 낮아지는 것의 어려움을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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