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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특집] 김현, “또 하나의 필터를 거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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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면서 입술을, 그의 말을 주목해서 보게 되었다. 이번 시집 제목이 『입술을 열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제까지 “뽀뽀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시인 김현은 소수자로서 경험한 일을 글로 밝히면서 변화를 바랐고, 글 바깥에서는 직접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는 304낭독회와 한국여성의전화 자원봉사, 청소년 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자원봉사 등에 참여했다. 침묵을 깨고 입술을 열어 발언하는, 시인이자 시민의 이야기. 입술을 연 그곳에서는 ‘슬픔의 송곳니가 빛나’지만, ‘가만히 흰 말이 가만히 기쁜 말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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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로 꾸려지는 세계


이전 시집 『글로리홀』은 서브텍스트가 많았었죠. 『입술을 열면』은 또다른 느낌이에요.

 

시집을 꾸릴 때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이번 시집에서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야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다른 방법으로 썼어요.


항상 그게 신기해요. 따로 발표한 시가 시집으로 묶이면 어떤 세계가 그려지더라고요.


처음부터 시집으로 엮이는 세계를 그리면서 쓰는 편이에요. 어떤 시집을 묶을까 염두에 두고 다음 시를 쓰거든요. 이를 테면 『글로리홀』뒷표지에 적힌 「인간」은 『입술을 열면』 에서 이어지는 느낌이 들게끔 하고 싶어서 일부러 각주 모양만 넣고 각주 내용을 달지 않았어요. 『입술을 열면』에도 다음 시집과 연결되는 구절을 넣었고요.


영화 마지막에 다음 편을 예고하는 장면이 들어가는 것처럼요?


맞아요. 하나가 끝났다고 해서 이 세계가 끝나고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기보다, 어쨌든 한 작가가 쭉 자기 작품세계를 끌고 가는 거니까 마치 시리즈로 나가는 것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입술을 열면』에서도 각주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데, 각주의 모양이 다 달라요. 텍스트로 만든 일러스트라고 해야 할까요.


시하고 잘 어울릴 만한 기호를 바꿔가며 달았어요. 직관적으로 넣은 기호이긴 한데, 제목 앞에 어떤 기호가 붙느냐에 따라 시로 진입하기 전에 톤이 바뀔 것 같더라고요.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게 제일 맞을 것 같아요.

 

 

글로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싶어요


『질문 있습니다』 와 『아무튼, 스웨터』등 산문집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어요.


다들 한꺼번에 책을 내니까 제가 성실하게 글을 쓴다고 이야기하시지만, 제가 거절을 잘 못해요. 산문 청탁이 들어오면 다 받는 편이에요. 너무 쫄보여서 원고 펑크도 못 내고요. 그러다 보니 원고가 차츰차츰 쌓이기도 하고, 옆에서 편집자 분들이 으쌰으쌰 독촉과 응원을 잘 해주셔서 빨리 쓸 수 있게 됐던 것 같아요.


산문도 즐겨 쓰시나요?


산문 쓰기에 대한 욕망이 있어요. 외국 작가들이 등단이나 특별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시나리오나 그림책 등 다방면으로 집필하는 게 멋있어 보이거든요. 시인이라고 해서 시만 쓰고 싶진 않아서 긴 글이나 산문 쓰기에 대한 욕망이 있었는데, 청탁이 왔을 때 그 욕망이 발현된 것 같아요.


시에 나온 등장인물, 시를 쓰던 상황 등이 산문에 나와요. 시의 뒷배경을 소개한 느낌이었어요.


예를 들어 『걱정 말고 다녀와』 에서는 문학적인 산문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켄 로치라는 감독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쓰는 산문인데, 켄 로치라는 감독의 스타일을 제가 멋진 문장이나 아포리즘으로 가리면 안되겠다 싶어서 김현이라는 사람의 민낯과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려고 했어요. 자연히 시를 어떻게 쓰고, 뭘 쓰게 됐는지가 자연히 녹아들었죠..


‘생활의 가까이에서 생활에 가까운 것을 경계하며’ 시를 썼다고요.


시는 또 하나의 필터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커피를 내려마실 때 원두 가루를 갈아서 채워넣고 물을 부으면 필터에 걸러 나오는 것처럼요. 산문은 재료만으로도 무슨 맛인지 말할 수 있지만 시는 그 재료를 어떻게 추출해내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예술가의 광기는 남이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쓴 이유도, 최근 예술가의 광기나 자유를 방패 삼아서 폭력을 일삼았던 분들이 계속 드러나잖아요. 그분들한테 생활이 그렇게 만신창이인데 글로만 아름다운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분들이 이야기하는 예술가의 자유와 광기와 혼은 안에 있어야 하는 거지 밖으로 빼내서 본인 입으로 이건 예술가의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맞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잘 돌려 깎아서 썼어요. (웃음)


이 시집의 시들은 생활의 가까이에서 생활에 가까운 것을 경계하며 쓰였다. 예술가로서 나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 광기는 누구도 볼 수 없고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더 웃고 더 잘 것이다. 당신에게는 당신에게 맞는 평화가 이어지길.

- 시인의 말 중


말씀하신 대로 생활이나 사회문제를 직접으로 드러내지 않고 ‘돌려깎는’데, 그런 중에도 해학이나 웃음,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는 감정이 있었어요. 제일 좋았던 문장은 ‘언제까지 부채춤을 추게 할 거야’였는데요. 부채춤을 추면서 ‘동성애를 반대’하던 사람들의 말을 가져왔어요.


전복시키고 싶었어요. 그 말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든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들이 있잖아요. 「가슴에 손을 얹고」에서 썼던 여성을 지칭하는 말, 꽃이나 동굴 같은 고정관념을 거부하겠다는 말도 어쨌든 전복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거죠. 그들은 혐오의 말로 썼는데 그 말을 제 시로 빼앗아와서 혐오하지 않는 말로 바꾸고 싶더라고요. 그들이 그 말을 뱉었을 때는 너무 혐오적인데 그걸 다른 시적 방식으로 쓰니까 우리 말이 된 것 같다는 분도 있었고, 많이들 통쾌해 하세요.


원래 제목을 ‘조선마음’으로 생각하셨다고 들었어요. ‘조선마음’이 제목이었다면 의도했던 전복의 의미가 더 강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막상 교정지를 받아서 다시 보니까 ‘조선 마음’이 이 한 권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묶고 보니 입술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더라고요. 원래는 마음을 앞에 내걸고 싶었는데, 제가 모르는 사이에 제 시가 마음보다 더 적극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조금 더 능동적인 제목을 달아보자는 생각으로 ‘입술을 열면 미래가 나타나고’로 했는데, 편집부에서 제목에서 독자들의 몫이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셔서 ‘입술을 열면’ 하고 나머지를 남겨뒀어요.


‘조선마음’에서 조선은 ‘헬조선’에서 나온 말인가요?


조선이라는 말이 특이하잖아요. 왜 ‘헬대한민국’이 아니고 ‘헬조선’이었을까요? 여러모로 찾아보니 변영로 시인이 『조선의 마음』이라는 시집을 낸 적이 있더라고요.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혼과 정기를 잃지 말고 조선인으로서 독립에 힘쓰자는 내용이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조선의 얼, 혼, 정기가 뭘까? 싶은 생각이 들고, 실은 헬조선이 그 조선의 얼과 혼을 가져다가 비꼬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도 조선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전복시키고 싶었어요. 포르노 배우가 등장하는 시에 조선마음, 게이나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시에도 조선마음을 붙여보고요. 일부러 가져와서 이런 것들 것 조선의 얼과 혼이 아닌가? 묻는 거죠. 그렇게 제목을 붙여놓으면 끝났다는 마음이 드는데, 뭔가 조선 마음을 가지고 또 쓰고 싶어져서 연작으로 몇 편을 썼어요.


사회적 이슈에 따라 글도 달라질 것 같아요. 시집에는 박근혜 전대통령 퇴진운동이 일어났던 2013년부터 2015년 즈음까지 쓴 시가 묶였는데, 요새는 어떤 글을 쓰게 되나요?


최근에는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시를 주로 쓰고 있어요. 세월호 사건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런 시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 사건 이후 돌아오지 않는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304낭독회를 오랫동안 같이 하면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호명하는 시가 자연스럽게 쓰이더라고요. 말씀하신 대로 사회 문제에 따라서 글도 다르게 쓰이는 것 같아요. 충남인권조례 폐지와 미투 운동도 있고요. 지금은 성소수자 인권이 첨예한 이슈인데, 그런 문제를 자연히 글로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시 안에 사회적 쟁점을 넣으면 생기는 효과가 있어요. 예를 들어 시 안에 ‘박근혜 하야’ 같은 말을 넣으면 시가 생뚱맞아지면서 시적으로 바뀌거든요. 서정적이다가 갑자기 아주 비서정적인 게 들어가면서 시의 분위기가 활발해져요. 그런 분위기가 좋기도 하고, 에너지가 느껴져서 일부러 그런 말을 쓰려고 하고 있어요.


생뚱맞아 보이는 사회 참여의 말이 서정의 일부라는 생각을 해요. 이게 소수자의 서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맞아요. 『글로리홀』 도 사람들이 늘 야하고 전위적이라고 하는데 저는 너무 서정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한 편의 시 안에 서정적인 면, 참여적인 면, 전위적인 면 모두 있는 게 개인적으로는 저한테 맞는 형식인 것 같아요. 아주 서정적인 사랑의 시 안에, 들어가면 안 되는 말이 결합하면 그것도 나름의 서정인 거죠. 한 편의 시를 놓고 노동시와 서정시, 참여시, 여러 가지 갈래로 읽히는 건 아주 좋은 일이에요. 『입술을 열면』 에서는 다양한 출입구를 만들어 놓고 싶어서 디졸브라는 설명을 붙여가면서 장면을 겹치는 것처럼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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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팔짱을 끼는 사람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시인 김현을 호명할 때는 ‘문단 내 성폭력’과 ‘미투 운동’을 주제로 말하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이름을 걸고 이야기하는 데 부담은 없나요?


문단을 고발하는 ‘질문 있습니다’를 썼을 때는 이 정도로 퍼질 줄 몰랐어요. 계간지를 읽는 사람들만이라도 문학장 안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대상화, 폭력의 문제를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많이 읽히면서 그 때는 부담스러웠었죠. 이후에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던 작가들의 응원도 있었고, 연대의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부담감을 떨쳐낸 거고요. 계속해서 재조명 하고 발언하는 것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데, 한편으로는 제가 지정성별이 남성이기도 하고, 문지라는 곳에서 시집을 냈던 사람이잖아요. 여러 가지를 겹쳐 보면 어쨌든 이 안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발언권을 독점하지 않을지 경계하고는 있어요. 더 오랫동안 고민해 온 여성주의 기반의 선생님들, 실제로 문제를 증언한 생존자분들도 많고요. 그래서 거절할 것들은 거절하고, 기획보도에서 남성 문인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하면 참여하고 있어요.


성폭력 사건이 재점화 되면서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하지만, 언제 여론이 뒤집힐지 알 수 없어요. 피해자가 얼굴을 나타내면 또 가해가 일어나는 상황이잖아요.


문단 내 성폭력이 터졌던 초반에 어떤 분들이 문단을 도매급으로 묶어서 욕 먹게 하지 말고 피해 당한 바가 있으면 실명을 밝히라고 한 적이 있어요. 너무 충격적이었죠. 대다수 성폭력 문제에서 실명을 밝히면 반짝 했다 금방 잊히고 명예훼손과 무고 등으로 피해자 삶이 피폐해지는 상황에서, 그런 쉬운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질문 있습니다’를 쓸 때도 제가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서술하고, 이런 피해들로부터 여성주의를 알게 되면서 용기 있게 생존했다는 걸 밝힌 이후에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어요. 그게 윤리적이라고 생각했고요. 젠더나 위계, 폭력 같은 것들을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고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여 소화한 이후에야 문제와 관련한 청유가 나올 수 있다고 봐요.


본인의 투쟁을 ‘겁먹은 투쟁의 방식’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지만, 거의 최전선에 서 계신 느낌이에요.


저는 최전선이 아닌 것 같아요. 지금 가장 앞에 계신 분들은 고발하는 분들이고, 저는 그분들이 중심에 서서 팔짱을 내면 같이 팔짱 끼고 대오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처럼 가끔 팔짱 끼고 같이 구호도 외쳐 주고,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최전선에 있는 분들도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만 하더라도 남자 페미니스트들은 버리고 간다, 성소수자 이슈는 성소수자들이 해결하라는 주장이 있어요. 여러모로 복합적인 위치라고 생각하는데요.


예전 같으면 ‘왜 그렇게 운동 하냐’ ‘그게 말이 되냐’ 하면서 발언 했을 텐데, 지금은 내 운동 방식이 옳고 너의 운동 방식은 잘못됐다는 대립은 피하려고 해요. 이것 역시 쫄보기 때문이겠죠. 그렇다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아니에요. ‘잘하세요, 저도 여기서 이렇게 잘할게요.’ (웃음) 이런 거죠. 결과적으로 성소수자 운동, 장애인 활동, 전부 생각하는 지점이 다를 텐데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상이 그려질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너무 나이브하죠?

 

모든 일에 첨예하려면 힘들죠.


첨예하게 대립하는 과정도 필요해요. 그런 첨예함을 거치고 나면 여러모로 상처가 되고, 잠시 멈추게 되기도 하고, 그 이후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주저하게 될 때가 있죠. 그 과정을 통해서 또 여러모로 성숙해지기도 하고요. 그 과정을 다 거쳐온 건 아니지만, 작은 마음으로 제 일을 하겠다는 마음이에요.


김현 시인에게 ‘제 일’은, 결국 문학이 되는 걸까요?


문학이 될 수도 있겠고요.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를 나누지 않겠다는 운동의 방식일 수도 있고요. 그런 방식이 자연히 시적으로 녹아들기도 하니까 그게 어쩌면 시를 쓰는 행위가 될 수도 있겠죠.


사회 의식을 가지고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부대낌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예술로서 피해자가 있는 사건을 소재로만 다룰 수 있다는 위험까지 비롯해서요.


그건 정말 경계를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직접적으로 가져다 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까 시는 필터가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그게 표현적인 검열뿐만 아니라 애초에 어떤 토대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도 포함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상화하거나 소재로 쓰면 안 된다는 검열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요. 다 드러내고 구호적으로 쓰는 것도 의미와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에두르거나 필터를 하나 거쳐서 나오는 게 제가 하고자 하는 예술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예술로 다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자아분리까지는 아니지만, 시로 할 수 있는 건 시로 하고 시민으로서 할 일은 시민으로서 하는 거죠. 굳이 시민으로 한 일을 예술로 또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생각보다는 덜 힘들어요. (웃음)


 


 

 

입술을 열면김현 저 | 창비
낮과 밤처럼 연속되는 우리의 사회현실에 대한 시인의 담대한 저항이자 이 상황을 함께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민낯을 오래 바라본 다정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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