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되는 법』만큼 정직한 제목을 가진 책도 드물지 싶다. 부제는 ‘두 언어와 동고동락하는 지식노동자로 살기 위하여’다. 저자는 20년 이상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50여 권의 책을 옮긴 김택규 번역가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번역가가 사는 법’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곳에서 번역가로 산다는 것’으로 읽어도 좋다. 얇고 작은 책이라고 얕봤다가는 적잖게 당황할지 모른다. 이렇게 많은 정보들이, 이토록 빼곡히 담겨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는 까닭이다. 번역가의 현실에 대한 솔직한 고백,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문장의 매력 또한 이 책이 놀라운 이유다.
출판 번역가가 되는 법, 번역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출판사와 계약이 이루어지는 과정, 인세를 책정하는 방식, 번역가의 생존법 등 『번역가 되는 법』 에는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번역가와 원작가의 관계, 좋은 번역에 대한 고민 등 깊이 있는 사유도 담겨있다. 번역가 지망생들이 가장 궁금해 할 부분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팁들을 모아 꾹꾹 눌러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번역가를 꿈꾸지 않더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만한 책이다. 직업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늘 흥미롭다.
김택규 번역가는 1997년부터 중국어 출판 번역을 시작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에 있을 때 『죽은 불 다시 살아나』를 번역하면서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출판사 김영사, 웅진지식하우스, 글항아리의 중국 현대 소설 시리즈를 기획한 바 있고, 현재도 기획 번역가로서 자신이 매혹된 책들을 직접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아큐정전』 , 『사람의 세상에서 다시 죽다』, 『이혼지침서』, 『이중톈 중국사』 , 『암호해독자』 , 『논어를 읽다 』등 5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숭실대학교 중어중문과 겸임교수로 일하며 중국 소설과 인문서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작가와 번역가,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할 뿐
“제가 번역한 책은 온전히 제 것이 아닙니다”라고 쓰셨어요. 이제는 온전히 자신의 책을 갖게 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예전에 쓴 박사 논문이 책으로 나온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번역가 되는 법』 은 제가 쓴 두 번째 책인데요. 그렇게 큰 감흥은 없어요.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다 페이스북에 연재했던 것들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은 거거든요. 그래서 큰 기대나 감흥은 없는데, 지금까지 번역가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도와주신 분들에게 한 권씩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설레더라고요. 지난한 삶을 살아오는 데 있어서 참 바보스러운 짓을 한다는 눈길을 받을 가능성이 컸거든요.
바보 같다고요? 왜요?
대학원에 들어갔으면 교수가 되려고 해야 하고, 글을 쓴다고 했으면 빛나 보이는 창작자를 해야 된다는 일반적인 기대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박사 과정에 있으면서도 대학 쪽에는 전혀 신경을 안 썼어요. 번역을 잘 하니까 소설을 써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내가 소설을 쓰면 누가 보겠냐고 했고요. 훌륭한 작가의 책을 번역해서 독자들한테 선보이면 제가 별 볼 일 없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그렇게 번역가 생활을 해왔는데, 격려해 주시고 힘을 주신 분들이 있었어요.
『번역가 되는 법』 은 정말 막힘없이 읽혀요. ‘역시 베테랑 번역가가 쓴 책은 믿고 봐도 좋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웃음).
그동안 번역, 번역학에 대한 사유와 짧은 글쓰기는 계속 했어요. 그것들이 쌓이다가 거의 최정점에 이르렀을 때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요. 그때부터 한 꼭지씩 페이스북에 연재를 했죠. 그리고 거의 7년 동안 대학원에서 중국어 번역학 수업을 했어요. 번역과 관련해서 얼마나 많은 책을 보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생각했겠어요. 그게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거예요. 머릿속에서 굴리고 또 굴렸던 생각들이 많았기 때문에 끊김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번역하실 때도 ‘문장이 얼마나 매끄러운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책에서도 단어의 배열, 리듬감에 대해 말씀하셨잖아요.
그게 가장 중요하죠. 이번 책도 그렇고 번역도 마찬가지인데, 글을 읽는 사람들의 호흡이 끊기면 안 되잖아요. 그러려면 어순과 리듬감을 계속 신경 써야 되고요. 번역을 잘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운율을 생각하지 않은 문장이 하나도 없어요. 운율 때문에 삭제하거나 덧붙이는 성분들도 있어요. 의미와 상관없는 부분에 한해서요.
“번역가는 작가보다 열등한 존재인가”라는 꼭지가 있어요. 번역가와 원작가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에는 작가가 창조의 주체로서 번역가보다 앞선 존재, 더 중요한 존재라는 걸 인정했어요. 그런데 점점 생각이 변화했죠. 번역가와 작가는 서로 다른 영역,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일 뿐 양자의 행위에 대해서 어떤 우열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소설이나 시를 쓰고 싶다거나, 번역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없어요. 처음부터 스토리에 대한 욕망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요. 시를 쓰고 싶었어요.
시인의 길을 가지 않으신 이유는 뭔가요?
사실 작은 문예지에 등단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포기했어요. 시를 다섯 편정도 보내야 했는데, 두 번째 시를 올려야 될 때 포기했어요. 그래서 시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잃었죠. 한창 번역을 하면서 시와 점점 멀어질 때였거든요. 시인으로 등단한다고 해도 계속 시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굉장히 오래 시를 읽었고 많이 쓰기도 했는데, 제가 소질이 없다는 건 계속 절감했어요(웃음). 그러면서도 ‘극복이 되겠지, 실력이 늘겠지’ 생각했죠. 그런데 창작에 있어서의 한계는 인력으로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더라고요. 번역가의 소질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시인이 되는 것도 포기하고, 거의 수동적인 입장에서 번역을 하게 된 건데요. 그러면서 생각도 바뀌었어요. 번역, 번역가도 고유한 분야로써 창작을 질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옮겨간 거죠.
이 책을 읽다 보면 “얼마나 번역가가 부차적으로 취급 받는지” 알게 돼요. 인세 부분만 보더라도, 책이 많이 팔릴수록 작가의 인세 비율은 높아지는데 번역가는 낮아지잖아요.
어차피 우리 시대에 변할 사항은 아닌 것 같고, 앞으로 번역가를 위해 개선될 거라고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요. 제가 유일하게 걱정되는 건 번역가의 고갈이에요. 사실 그 부분도 별로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은 게, 출판 번역가들 중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베테랑 번역가들은 계속 줄거나 신인들이 출현하지 않는 상황이에요. 제가 다른 언어권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중국어권만 놓고 보면, 한 15년 넘게 신인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소설을 번역했던 게 2000년대 초반 이후로, 저보다 어린 나이에 오랫동안 소설을 번역해 온 베테랑 번역가는 세 명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이 분들 가운데 전업 번역가는 한 명도 없고요. 저하고 또 한 분을 빼놓고는 한 명도 남자 번역가를 본 적이 없어요. 전통적으로 남자가 가정을 꾸리면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번역가는 가장이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닌 거죠.
신인 번역가가 출현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생활이 불가능하니까요. 저는 1년에 4~5권 정도밖에 번역을 하지 않는데,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하려면 매달 한 권씩 번역해야 돼요.
그렇게 하면 자기 생활이라는 게 없을 것 같아요. 계속 소진될 것 같고요.
그렇죠. 한 권 정도만 번역해도 완전히 소진돼요. 그런데 쉴 시간이 없죠.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온 거예요. 상황이 이러하고 여기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된다, 하고 계획을 세운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죠(웃음). 번역을 계속 해서는 굶어 죽겠다 싶어서 자기계발을 해가면서 살아온 거예요.
다른 재주가 있는데 번역을 왜 해요?
책에도 ‘번역가의 아르바이트’라는 제목의 장이 따로 있어요.
번역가들이 쓴 책이 의외로 많아요. 자기 술회라고 할까요. 제가 그런 책들을 많이 본 건 아닌데, 저처럼 구질구질한 이야기, 처절한 현장을 다루지는 않았을 거예요(웃음). 조금 품위 있게 쓰셨을 것 같아요.
매달 한 권씩 번역을 하면 힘들지만 생계가 가능하다고 하셨는데요. 번역 권수를 줄이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요즘 나오는 책이 보통 원고지 700~800매 정도 되는데요. 4~5년 정도 번역한 사람은 원고지 한 매당 4천 원을 받아요. 그러면 한 권을 번역하고 320만 원을 받는 거죠. 여기에서 3.3% 세금도 떼고요. 두 가족이라면 한 달을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모자랄 테고요. 혼자 살면 생활은 되겠지만 이렇게 무리한 스케줄을 짜지 않겠죠. 한 달에 한 권씩 번역하면 1년에 12권인데, 그만큼 계약을 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에요. 그런데 계약을 해도 문제죠. 압박감이 있잖아요. 보통 출판사에서 길면 6개월의 번역 시간을 줘요. 12권을 계약했다면 6개월 동안 6권을 번역하고 나서 나머지 6권에 대해서는 출판사의 독촉 전화를 어떻게 감내할까요?
번역가님의 경우, 동시 계약하시는 책이 몇 권 정도 되나요?
많아야 서너 권이에요. 어떤 분들은 열 권씩 하시는데, 저는 그걸 못 견뎌요. 그러면 매달 한 권씩 번역을 해도 서너 달 지나면 더 이상 일이 없잖아요. 그렇다고 열 권, 스무 권을 계약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렇게 많이 계약하면 독촉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요. 그런데 근본적으로 한 달에 한 권씩 번역을 하는 건 힘들어요. 그렇게 많이 계약하는 건 권장하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내 번역 행위와 크게 이질적이지 않은 일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을 보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번역가가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으실 것 같아요.
맞아요.
『번역가 되는 법』 에 정답이 다 나와 있죠?
사실 책에서 말하지 않은 대답이 있어요.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한데 ‘번역 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재주나 욕망이 없다면 그때 번역가를 해라’라는 거예요(웃음). ‘다른 걸 잘할 수 있는데 왜 번역가를 하니, 너는 다른 재주도 있는데’라고 말하죠.
번역가님도 다른 재주가 있으시잖아요.
제가 가진 재주라는 건 그냥 글을 다루는 거죠. 창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다루는 자체를 좋아해요. 그 재미를 느끼려면 번역가가 최적의 직업이에요.
시를 쓸 때 언어를 만지는 즐거움과 비슷한가요?
네, 맞아요. 윤문이나 편집을 하시는 분들도 언어를 많이 다루기는 하시는데, 번역가는 직접적으로 원어에 닿아 있잖아요. 물론 편집자는 전세계의 작가들에게 다 접근할 수 있지만, 저 같은 기획 번역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직접 발굴해서 번역하고 그 언어를 다룰 수 있어요. 마치 수집을 하듯이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만 번역할 수 있죠. 그래서 기획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제 저는 누가 던져주는 작품을 번역하고 싶지 않거든요. 직접 돌아다니면서 고르고 제가 심취했을 때, 그 작가의 책을 번역하고 싶어요. 번역가에게는 그런 재미가 있어요. 도 한국의 중국 소설이라는 분야에서 담론을 조정할 수도 있죠. 특정 작가를 소개하고 그 사람의 문학 담론을 옮겨 올 수 있는 거예요. 그게 번역가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고, 어떤 권력 의지 같은 게 만족되는 부분이에요.
주로 기획하시는 책들은 어떤 건가요?
거의 50% 이상은 중국에서 번역 지원금을 받아 오는 책이에요. 중국은 자국 문화의 세계화에 굉장히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어요. 1년에 전세계 출판사에 지급하는 번역 지원금만 천 억 정도 될 거예요. 제 경우에는 어떤 책을 읽고 정말 좋은 작가라는 확신이 들면 중국 출판사에 연락을 해요. 이 작가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데, 번역비를 지원해 주지 않으면 힘들다고 말하죠. 출판사에서는 너무 좋아해요. 지원금을 주는 건 국가니까 자신들은 신청서만 쓰면 되거든요. 그렇게 해서 번역비를 받아오면, 우리나라 출판사로써는 번역비를 아낄 수 있죠. 전체 비용에서 번역비가 상당히 큰 금액을 차지하거든요. 그러니까 출간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죠. 책이 많이 안 팔린다고 해도 매출이나 출판사의 이미지 제고에는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출간하자고 하는 거예요.
출판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시는 건가요?
원래 저작권 에이전시가 할 일이죠. 그런데 저작권 에이전시가 못하는 일이 있어요. 작품을 고르는 거예요. 영세해서 인력이 부족하거든요. 계약을 맺는 책에 대해서 수수료를 얻는 상황이다 보니까 수백 권의 저작권을 동시에 핸들링해요. 그러니까 한 권의 책에 많이 신경을 쓸 수가 없어요. 저는 대부분의 일을 제가 처리하고 직접 저작권 계약을 하기도 하고요. 저작권 계약과 관련해서 자세한 부분은 에이전시에 넘기기도 해요.
기획 번역을 하면 일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주체성을 가지고 스스로 즐기면서 오래 일할 수 있고요.
그렇지만 모든 사람한테 기획하는 걸 권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번역가가 자신이 기획한 책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경우에도, 출판사에서 기획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주는 데 인색하거든요. 그러면 기획을 하는 데 들인 시간과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번역가가 큰 타격을 입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많이 공부하면서 기획하지 말라고 해요. 일주일씩 원서 찾아보면서 잘 될 것 같지도 않은 책의 기획서를 만들어서 출판사에 돌리다가 결국 실패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번역가는 무너져요. 그래서 반드시 잘될 것 같은 책, 그리고 기획서를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들 것 같지 않은 책에 한해서 기획하라고 이야기해요. 기획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거죠. 번역하는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는 선에서 요령껏 해야 돼요.
출판 번역가, 자격증 필수 아닙니다!
번역가가 되고 싶어서 찾아오는 분들에게 샘플 번역을 받으신다고요.
그것도 상대가 적극적일 때 해당되는 이야기죠. 자신의 실력을 평가 받고 싶다고 할 때요.
샘플을 보고 ‘이 사람은 번역가와 맞지 않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되실 때도 있죠?
대부분 그렇죠.
어떤 때 그런가요?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이유가 있나요?
글이 효율적이지 않을 때예요. 문장을 다루는 솜씨가 비효율적인 거죠. 이게 좋은 강박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언젠가부터 글을 쓰거나 볼 때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 생긴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한 문단에서 똑같은 단어가 두 번 출현할 때 있잖아요. 또 쓸모없는 어미나 조사가 얼마나 적은지, 대명사 같은 것들을 다루는 솜씨가 어떤지, 그런 것들을 보게 돼요. 너무 총체적이라서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보면 느낌이 있잖아요.
언어 감각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인가요?
그렇죠. 그런데 번역가가 되겠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20대 중반 이상이에요. 만약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라면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겠지만, 이미 졸업하신 분들한테 이 부분을 조금 고치면 낫겠다고 말하는 게 어려워요.
번역가가 되려면 통번역 대학원을 나와서 자격증을 따는 게 필수이거나, 가장 보편적인 루트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번역가 되는 법』 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해요.
통번역 대학원 출신으로 번역을 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특히 실용서 부문에 많은데요. 문학, 인문학에는 거의 없어요. 기본적으로 통번역 대학원 교수님들 중에 전문 출판 번역가 출신이 없거든요. 통역 전문가들이 많죠. 통번역 대학원의 커리큘럼 자체에 출판 번역에 대한 과목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통번역 대학원에 들어간다고 해서 출판 번역으로 이어지지는 못해요. 이화여대 통번역 대학원 출신들이 번역가로 탄생하는 경우가 많던데, 제가 알기로는 2학기에 한 번 출판 번역 과목이 있었던 것 같아요. 출판 번역가를 양성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신경을 쓰는 것 같고요. 아무튼 ‘여기를 나오면 출판 번역가가 되는 데 유리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통번역 대학원은 없다는 거죠.
자격증도 마찬가지인가요?
자격증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사실 제가 자격증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어요.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책을 번역하고 있을 때였는데요. 번역가 자격증 시험은 한국어를 외국어로 전환하는 것, 외국어를 한국어로 전환하는 것 두 경우를 다 봐요. 중국어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마 다른 언어도 그럴 거예요. 그런데 저는 한국어로 옮기는 전문가이지, 중국어로 옮기는 전문가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시험에 떨어졌어요.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현역 출판 번역가가 떨어지는 시험일세’ 하고 웃으면서 나왔어요.
그 뒤로는 자격증 시험을 안 보셨어요?
볼 일이 없죠. 한 번 해볼까, 하고 본 거였거든요. 서류 번역 같은 걸 주로 하는 번역 에이전시에 이력서를 낼 때는 번역가 자격증이 있다고 쓰면 일이 생겼을 때 연락이 와요. 단행본 번역 말고 서류 번역이요. 예를 들면 카탈로그,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을 번역하는 거예요. 그런 일들은 에이전시를 통해서 맡게 되니까 번역가 자격증이 필요할 수도 있을 거예요.
책에서 조언하시길 ‘에이전시에는 첫 번째 작품을 번역할 때까지만 있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
제가 말하는 건 단행본 번역 에이전시예요. 이런 에이전시는 번역가들에게서 큰 몫을 떼야 유지가 돼요. 50% 이상을 떼어가는데요. 거의 착취를 당한다고 봐야 돼요. 공정 비율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번역가들은 싸우지도 못하고 계속 끌려 다니면서 정말 형편없는 돈을 받고 번역을 하게 돼요. 한 건을 번역하고 100만 원 밖에 못 버는데, 그렇게 5년을 메여 있었던 분도 있어요. 그런 분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죠.
번역가 입장에서는 ‘나는 왜 항상 을이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 것 같아요. 출판사는 번역가의 인세 비율을 낮게 책정하고, 에이전시는 번역가의 몫을 떼어가니까요.
그렇죠. 겉으로 보면 번역가는 을이에요. 많은 출판사에서 외주자 혹은 외주 업체에 비용을 지출할 때, 가장 마지막으로 번역가에게 주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곳과는 일을 해본 적이 별로 없고요. 대부분 ‘좋은 퀄리티의 원고를 받으려면 역자 인세부터 챙겨줘야지’라고 생각하는 출판사랑 많이 일했어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번역 퀄리티가 안 좋은 원고가 들어오면 정말 골치 아파요. 특히 중국어는 더 그렇죠. 원어를 몰라서 고칠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역자한테 돌려보낸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지도 않을 것 같고, 어쩔 수 없이 외주를 줘야 되죠. 그렇게 해도 원고가 나아지지 않으면 ‘이걸 포기해야 되나’ 고민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런 시간이 1년 넘게 이어질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돈을 적게 줘가면서 검증되지 않은 역자를 쓰는 것보다 어느 정도 번역비가 높더라도 검증된 역자를 쓰는 게 낫죠. 최대한 인건비가 더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는 거예요.
번역가로서 경력을 쌓고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나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아요. 능력이 있는 역자라는 소문은 금방 퍼지거든요. 편집자들이 적극적으로 소개를 해주고요. 실력만 있으면 그런 문제는 별로 크지 않아요. 물론 안 좋은 출판사에 운 나쁘게 걸려드는 경우는 있죠. 저도 한 번 번역비를 떼인 경우가 있어요. 저자나 역자에게는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아마 누구나 경험이 있을 거예요. 인세를 3년 만에 받았다는 경우도 많고요. 역자들이 평소에 가장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인세가 늦게 나오는 거예요.
직접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세요
계약서에 ‘출간 후 일정 기간 안에 번역비를 지불한다’고 쓰는 경우가 있다면서요? 출간은 언제 될지 모르는 건데, 그 동안 번역가는 어떻게 생활을 하라는 건지... 너무 배려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문제를 갖고 있는 출판사 중에 유명한 대형 출판사도 있어요. 그런데 출판사 입장도 이해가 가요. 그런 곳은 출간할 책이 많이 밀려 있기 때문에 ‘2년 뒤에나 나올 책의 경비를 왜 미리 집행해야 되지? 출간될 때 집행해도 되잖아? 일찍 하면 우리 출판사가 손해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같이 일하는 동료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편집자가 생각하는 것과 경영자가 생각하는 건 달라요. 경영자는 숫자만 보고 합리적인 선상에서 결정하려고 하거든요. 어떤 번역가들은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나 쓸데없는 생각이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번역비가 조금 적어도, 혹은 조금 늦게 인세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도 여기랑은 꼭 계약할 거라고 생각해요. 더 따지지도 못하고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는 거죠. 저도 번역가 생활을 하는 동안 이력을 조금 치장하기 위해서 중요한 출판사들과는 한 번씩 계약을 맺어봐야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렇게 함께 일할 출판사의 배치를 생각하면서 계약을 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불리한 조건을 자청해서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번역가 지망생에게 추천하시는 방법은 ‘직접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것’인가요?
그렇죠. 물론 제일 좋은 건 아는 사람을 통하는 거예요. 그런데 누구나 출판계에 아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저처럼 번역가로 일하는 사람을 알아두면 좋아요. 현실에 대해서 물어볼 수도 있고, 출판사를 연결해 달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아무나 연결해 주시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연락처를 가르쳐줄 수는 있죠. 그리고 편집자한테는 언질을 주죠. 이런 사람이 연락을 해올 텐데 나를 의식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라고요. 출판사에 부담이 되는 압력을 넣을 수는 없죠.
번역가님의 경우는 어땠나요? 먼저 출판사에 연락하셨나요?
저도 다른 분을 통해서 번역을 시작하게 됐죠. 지금까지 50여 권의 책을 번역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책이 첫 번째 번역서였어요. 그 책이 여러 교수들에게 번역 의뢰가 갔었는데, 다들 책이 너무 어렵고 까다롭다고 거절을 한 거예요. 그 중 한 교수님이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이 있는데 한 번 시켜보실래요?’ 하고 출판사에 이야기하시고 저를 부르셨던 거예요.
그 책이 『죽은 불 다시 살아나』였죠?
네, 저는 ‘너무 좋은 책인데?’ 하고 맡았죠. 원래는 제가 하면 안 됐어요. 박사 1학기생이 맡을 책이 아니에요.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깊이가 있어서 그렇죠?
맞아요. 제가 그 책을 2년 동안 번역해서 200만 원을 받았죠.
여러모로 잊으실 수 없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는 그 책을 번역하면서 번역가가 된 거예요. 어디를 가도 ‘이런 책을 번역했어? 신뢰할 만하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제 자신감이죠. ‘이런 책도 번역했는데, 뭘 못하겠어’ 싶은 거예요. 『죽은 불 다시 살아나』 는 한 3년 전쯤에 <한겨레>에서 중요한 사회과학서로 선정하기도 했어요.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출판상 번역부문 후보에도 올랐었고요. 사실 후보에 오르는 것 자체도 굉장히 힘들거든요. 수많은 언어에서 번역된 책들이 다 후보가 되니까요. 대부분 선정되는 책들을 봐도 5권, 10권씩 되는 대작들이에요. 그런데 『죽은 불 다시 살아나』가 후보에 오른 거예요. 그 책이 얼마나 중요한 책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저도 책을 받았을 때부터 굉장히 중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판매량은 적었죠.
당시에 인세 계약을 하셨는데요. 판매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 출판사에서는 인세로 계약하길 원하죠?
외서 저작권을 계약하고 나면 출판사는 항상 고민하는 거예요. 인세로 해야 되나, 매절로 해야 되나. 많이 팔릴 것 같으면 매절 계약을 하려고 하죠. 안 팔릴 것 같으면 인세 계약을 하고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역자한테 물어보지, 뭐’ 하는 거고요(웃음).
‘외국어 감각’보다 중요한 건 ‘모국어 감각’
‘번역가를 준비해볼까?’ 생각하다가도 ‘현지에서 살다 온 사람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정말 많아요.
번역가님은 “확고한 모국어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독자가 읽을 언어를 잘 다뤄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책 독자들만큼 까다로운 사람이 없잖아요. 그들을 만족시키려면 번역가가 고급스러운, 품위 있는 문체를 갖고 있어야 되죠. 책을 본다는 건, 특히 인문서나 문학을 본다는 건 품위로운 시간을 누리기 위한 건데 번역가가 그에 합당한 고급 문체를 구사할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려면 오랫동안의 훈련이 필요한데요. 사실 한두 해 훈련한다고 해서, 아니면 특정 교육기관을 다닌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절대로 이중 언어 구사자가 할 수 없죠.
모국어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 활동이 있었나요?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건 발제였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원 때까지 계속 독서 클럽에 있었는데, 거의 매주 두 모임에 발제를 해갔어요. 흔히 발제를 할 때 1번, 2번,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하는데요. 저는 다 완전한 문장으로 썼어요. 되도록이면 글 전체가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눠지게 독립적인 텍스트로 만들었고요. 발제문이라고 해도 내가 쓰는 글이니까 기본적으로 글꼴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발제를 피하지 않았어요. 누가 하기 싫다고 하면 제가 하겠다고 했죠. 발제에 재미가 들리면서 체화가 되면, 발제를 하지 않으면 책을 안 읽은 것 같거든요. 어떤 이론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하면, 발제를 하면서 이론의 골자가 머릿속에 각인 돼요. 나중에는 굳이 모임이 없어도 자동적으로 발제를 해가면서 책을 읽고요. 지금도 책을 읽으면, 자기계발서나 소설이 아니면, 반드시 발제를 해가면서 봐요.
앞서 번역가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해주셨는데요(웃음). 그럼에도 번역을 계속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아까 권력 의지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제가 글쟁이로서 가진 능력 내에서 권력 의지를 가장 충족시켜주는 것이 번역 행위예요. 그래서 계속 번역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권력 의지는 언어적인 것도 있고 사회적인 것도 있어요.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제가 존재하는 출판의 장, 독서의 장에서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제 능력으로 저작권을 가져오고 번역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흥분시키고, 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수 있죠. 이건 제 관점에서는 굉장히 위대한 일이거든요. 번역가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죠.
언어적인 측면에서는 어떤가요?
번역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번역의 제1원칙은 충실성인데, 충실성은 그냥 환상이에요. 번역가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겁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원문을 그대로 전환하고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필터로 삼아서 완전히 다른 텍스트로 가져오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원작과 원작가의 환상을 안겨주는 거예요. 이것도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역시 권력 의지의 충족과 관련이 있는 거죠.
“자, 드디어 이 책을 마쳤다. 곧장 다음 번역에 돌입하자”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책이에요(웃음). 지금 번역 중이신 책은 무엇인지, 곧 출간될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유유 출판사에서 양자오의 고전 시리즈 두 권이 나올 거예요. ‘양자오의 전국책 읽기’, ‘양자오의 순자 읽기’인데요. 『번역가 되는 법』 처럼 작고 가벼운 책이에요. 양자오는 우리나라에서 그와 비슷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대중 강연자로서 김용옥 선생 정도가 비견될 것 같아요. 그런데 색깔은 달라요. 양자오는 동양의 사서삼경과 서양의 여러 책들, 예를 들어서 『꿈의 해석』이라든지 『종의 기원』처럼, 지식계를 뒤흔든 동서양 고전들을 하나하나 해설하는데요. 원전을 강좌하고 나서 그것을 녹취, 정리해서 책을 내고 있어요. 대만 저자인데요. 대만에서 출간된 책들이 호응을 얻고 나서 작년부터 중국에서 출간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 양자오의 책은 적어도 동양 고전 쪽에서는 비교의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좋은 책이에요.
앞서 『논어를 읽다』 도 번역하셨죠?
네. 그 책에서도 양자오가 논어라는 두꺼운 책에서 몇 장만을 뽑아서 공자의 인간성, 논어라는 텍스트의 근본적인 성격에 대해서 해설하는데요. 정말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이 돋보여요. 요즘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데, 양자오의 책은 그런 세태를 조금 개선할 수 있는 모범을 보여주는 텍스트인 것 같아요. 너무 대단한 책들은 오히려 읽기 힘든데, 양자오는 굉장히 친절한 작가이기도 하고요.
번역가 되는 법김택규 저 | 유유
고분고분 죽기를 기다릴 수 없다면서,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말하고 살아갈 앞날을 그립니다. 그리하여 번역가를 꿈꾸는 이에게 현실적인 길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