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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탁 “죽지 않고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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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의 그리움에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마흔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즈음 어머니의 곰탕이 상에 올랐다. 작가는 생각했다. “아버지도 곰탕 참 좋아하셨는데. 시간 여행이라는 게 가능하다면, 살아 계셨을 때로 돌아가 이 곰탕 드시게 하면 좋겠다.” 소설 『곰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다시 2~3년이 흐르고, 이야기는 푹 고아져 세상으로 나왔다. 이제 막 마흔이 된 아들이, 꼬박 40일 동안, 쉼 없이 써내려 간 첫 번째 소설이었다.

 

아주 오묘한 맛이 나는 『곰탕』  이다. 가슴 뻐근해지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소설가 장강명의 말을 빌리자면 “레이저 총을 들고, 멋진 불량 여고생이 운전하는 뿅카를 타고, 광안대교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듯한 소설”이었다. 곰탕의 조리법을 배우기 위해 미래에서 온 인물이 등장하고, 그의 주변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이야기는 시간 여행, 범죄, 스릴러, SF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거침없이 내달린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이 진기한 소설의 매력에 빠졌다. 지난 해 11월부터 한 달 동안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됐던 『곰탕』은 연재 3일 만에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하며, 최단 시간 랭킹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을 쓴 이가 영화감독 김영탁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 <슬로우 비디오>를 통해 ‘웃음과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선보였던 그가 서늘한 사건, 퍼석한 인물을 그려낸 것.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유머와 감성을 잃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냈다. 대중들은 『곰탕』  안에서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테지만, 이 만남은 의아함이 아닌 반가움과 기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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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나의 현재에서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원래는 소설가가 되고 싶으셨다면서요?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고요. 그냥 50대쯤 돼서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그렇게 늦게 쓰려고 하셨어요?


영화라는 직업도 있고 일도 재밌고, 소설을 쓰는 게 어떤 목표가 아니었거든요. 살면서 한 번은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50대가 되면, 그때는 조금 철이 들지 않을까 해서, 철들면 조금 좋은 문학을 쓰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아직 철이 안 들었다고 생각하세요(웃음)?


철이 잘 안 들더라고요(웃음).

 

『곰탕』은 어떻게 쓰게 되셨어요?


<슬로우 비디오>가 끝난 직후였는데, 제가 원래 영화가 끝나면 한 번씩 여행을 가거든요. 저한테 주는 선물 같은 건데요. <슬로우 비디오>가 끝났을 때도 두 달 정도 길게 여행을 가려고 했었어요. 새로 계약한 영화 트리트먼트도 쓸 겸 떠나서 한 달 정도 여행을 다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조금 다운되더라고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까,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3년 정도 됐을 때인데, 그동안 저를 돌볼 시간이 없었나 봐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어머니가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곁에서 보살펴드려야 했고, 제가 가장이 됐으니까 책임감도 더 심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행을 가서는 경제 활동과 관계없이 저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아내한테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연락을 하고 40일 동안 썼죠.

 

40일 동안만 쓰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그것도 되게 유치한 발상이죠. 마흔한 살이었으면 41일 동안 썼을 텐데(웃음), 마흔이니까 40일 정도는 돈에 관계없이 글을 써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어요. 공교롭게도 그 마음을 먹었을 즈음에 여행이 40여일 밖에 안 남아있었고요. ‘곰탕’이라는 아이템은 그 전에 갖고 있었던 건데, 그것도 아버지 때문에 생각했던 이야기였어요. 그걸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진짜 매일매일 썼어요.

 

‘곰탕’이라는 소재를 떠올리셨던 계기가 있었죠?


제 영화나 이야기의 소재는 대부분 일상에서 나와요. 그걸 대중적인 포맷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야기를 더 키우거나 설정을 덧붙이는데요. 곰탕의 경우도, 어머니가 만들어서 보내주신 걸 서울 집에서 먹고 있었어요. 아내랑 아내 친구랑 셋이 같이 있었는데, 그때 그냥 지나가는 말로 ‘아버지도 곰탕을 좋아하셨는데 시간 여행이 가능하면 이걸 들고 아버지 살아계실 때로 가서 같이 먹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내 친구 분이 너무 재밌는 이야기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옆방에 있는 작업실로 가서 스토리를 메모했어요. 그때 쓴 건, 가까운 미래에 시간 여행이 가능해졌을 때 저처럼 우울한 주방장이 과거로 가서 곰탕을 끓여서 아버지를 먹이는 이야기였어요. 과거로 가면 어린 아버지와 만나게 될 테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간 거죠. 당시에는 거기까지만 정리를 해놨고, 나머지 부분은 여행 갔을 때 매일 이야기를 만들면서 썼어요. 나중에 다시 읽어 보니까 제가 마흔까지 살면서 힘들었던 감정들이 다 녹아있는 것 같더라고요.

 

초고를 완성하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울컥했죠. 이 감정들을 쏟아냈다는 것 때문에도 울컥했고, 소설을 처음 썼다는 데에서 오는 울컥함도 있었어요.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 느낌 같은 거죠.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이렇게 빨리 쓸 줄 몰랐거든요. 여러 가지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 생각도 나고, 그러면서 울컥했던 기억이 나요.

 

카카오페이지 연재는 먼저 제안을 받으셨어요? 


제가 아는 출판사 대표님이 계신데, 원래 영화 일을 하시던 분이었어요. 그 분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책으로 낼 이야기 없냐고 하셔서, 대화를 하다가 『곰탕』  이야기를 한 거예요. 재작년에 소설을 쓴 게 하나 있다고요.

 

그 전까지는 초고를 그냥 가지고 계셨던 거네요?


그렇죠. 처음에 초고를 보여줬을 때 제 주변에서는 너무 폭발적인 반응이었어요(웃음). 빨리 책으로 내자고, 대박이라고, 그랬는데 주변 반응이라는 게 믿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웃음). 그래서 계속 가지고 있다가 그 출판사에서만 검토를 했었는데요.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공모전에 내면 당선이 될 것 같다고, 그러면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셨어요. 감사한 제안이기는 했지만 저는 굳이 그렇게 알리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냥 제 이름을 걸고 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출판을 안 하고 지나갔죠. 그런데 그 출판사 대표님이 카카오페이지가 되게 좋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시에 저는 카카오페이지를 몰랐는데, 관계자 분들을 뵈니까 에너지가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정말 자신의 일처럼 다들 잘 해주셨어요. 아마 카카오페이지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책을 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는 개인적인 모습들, 고민들이 많이 담겼을 것 같아요.


캐릭터들 안에 조금씩은 제 감정들이 들어가 있죠. 이 소설을 보고 ‘너 그때 조금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야기 전개 방식이나 설정에도 제가 힘들었던 일들이 들어있는데요. 이를테면 제가 시골에서 올라와서 잘 적응이 안 될 때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솔직하지 않은 순간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때 ‘왜 이렇게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게 낯설지? 나 외계인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나처럼 자기 세계가 아닌 곳에 끼어들어서 사는 사람들이 많겠지?’라는 생각을 했고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다른 시간대에 와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공포들이 소설을 쓰면서 쏟아진 것 같고요.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그때 많이 했던 생각이 ‘왜 우리가 사는 현재를 정할 수 없느냐’는 거였어요. 당시의 저한테는 아버지의 죽음과 그로 인한 책임감이 큰 부분을 차지했겠지만 ‘내가 왜 이렇게 힘든 현재를 살아야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면 현재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그런 시절이 와도 우리는 지금을 살아야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일단 저한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저는 일상에서의 삶을 계속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거든요. 제 영화를 보고 ‘그래, 살지 뭐’ 이런 느낌이 들면 좋겠어요. 『곰탕』에는 여러 가지 장르가 들어 있지만, 어쨌든 큰 이야기는 지금에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거거든요.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굴곡들이 있었으나, 결국은 자기 현재에서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죽지 않고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40일 만에 초고를 쓰셨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이야기예요. 그 시간 동안 대강의 줄거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소설은 처음 쓰는 거지만, 어쨌든 시나리오를 10년 넘게 썼잖아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일을 했어요. 작가가 되자마자 각색도 많이 했고, 당연히 제 연출작은 제가 다 썼고요. 어쨌든 영상도 언어의 일종인데, 저는 여전히 영상 언어보다 문장을 다루는 게 더 익숙해요. 그리고 모든 작가님들이 그러시겠지만 평소에 고민을 많이 하는 거죠. 정말 감사했던 게, 여행지에서는 진짜 제한된 공간에 있었잖아요.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고요. 그때 스스로한테 제약을 주려고 한 일이 있었는데, 매일 그 날 쓴 분량의 마지막 문장을 아내한테 카톡으로 보냈었어요.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아침까지도 써서 보냈고요. 처음으로 아내한테 파일을 다 보냈어요. 혹시라도 제가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 언젠가 유작으로 출판을 하라고(웃음).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하시면서 기록을 세우셨어요. 최단 시간에 1위에 올랐죠. 예전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셨을 때 천만 영화는 못 만들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 정도면 천만 영화 가능한 거 아닌가요(웃음).


아, 천만 영화... 잘 모르겠는데요. 차태현 씨가 너무 확고하게 안 된다고 해서...

 

그때 작가님도 동의하셨던 거 아니었나요(웃음)?


네, 동의하죠. 저는 천만 영화 자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곰탕』이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을 줄 아셨어요?


진짜 전혀 몰랐고요. 연재를 시작한 첫 날 몇 시간 지나서 1만 명이 보신 거예요. 그런데 저는 영화를 했기 때문에 그게 안 좋은 결과인 줄 알았어요. 영화는 개봉 첫 날 몇 십만 명의 관객이 들어야 괜찮은 거거든요. 그래서 담당자 분께 ‘우리 망했죠?’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니에요, 지금 잘 되고 있는 거예요’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카카오페이지에 계신 분들도 좋은 분들이구나’ 했어요(웃음). 영화 업계 분들은 감독들이 마음 다치지 않게 좋게 이야기해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이미 결과는 나와 있는데 혹독하게 이야기해서 상처 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괜찮아, 이렇게 위로해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요. 그래서 ‘망했는데 안 망했다고 해주시는 거구나’ 하고 괜찮다고 말씀드렸죠. 내심 ‘그렇지, 뭐’ 하고 생각했는데 3일 만에 10만 명이 읽으신 거예요. 굉장히 좋은 결과라고 하셔서 그런 줄 알게 됐죠.

 

최근 몇 년 동안 타임슬립 소재가 쏟아져 나오다시피 했어요. 대중의 반응도 시들해진 것 같고요. 그런데 『곰탕』은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이유가 뭘까요?


제가 진짜 유명한 감독도 아니고, 제 영화가 아주 흥행한 영화도 아니고, 그래서 가끔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극장에 가면 ‘어쩌면 계속 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해요. 소위 천만 영화라고 부르는 작품들을 만드시는 감독님들과 저 같은 사람들은 보는 게 다른 것 같거든요. 굳이 차별점이 있다면, 저는 한 번도 소재를 먼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말하고 싶은 메시지나 이야기가 있을 때 그걸 다루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취할 뿐이지, 기획물처럼 ‘요즘 타임 슬립 영화가 잘 된다는데 그런 걸 해볼까’ 하는 식으로 접근해본 적이 없어요. 이 소설도 그래요. 아버지가 죽었고, 그 아버지한테 곰탕을 먹이고 싶고, 그러려면 시간 여행이 필요했던 거죠. 그런 생각에서 취한 거지, 타임 슬립물로 쓸 생각은 없었어요.

 

영화를 만드실 때도 그렇게 해 오신 거죠?


이를테면 <헬로우 고스트>도 귀신 이야기잖아요. 당시에 귀신 이야기가 신선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헬로우 고스트>를 귀신 이야기로 보지 않거든요. 정말 외로운 남자가 있는데 ‘이 사람의 외로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화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보니까 ‘너무 외로워서 귀신들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해서 귀신이 나온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처음 생각했을 때 한국이 계속 자살률 1위를 차지할 때였어요. 사람들이 안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했어요. 그래서 한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사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제가 지금까지 했던 많은 이야기들의 큰 전제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투자사에 가서 ‘죽지 않고 사는 이야기를 할 거예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대중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다보니 그런 소재를 취하게 된 거죠.

 

돌아가신 아버님과 곰탕을 먹었던 기억에서 시작된 소설이잖아요. 감상적이고 슬픈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메시지는 묵직하지만 작품의 분위기나 리듬은 경쾌하죠. 그 점이 너무 흥미로운 것 같아요.


영화를 하면서 클리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아주 새로운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보편성 있는 이야기가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영화는 규모가 큰 산업이다 보니까 더 그렇죠. 그래서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넣어야 된다는 강박이 늘 있었는데요.  『곰탕』을 쓸 때도, 이게 여러 명의 인물이 나오는 긴 이야기이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독자 분들이 잘 따라올까 생각했어요. 막연하게 범죄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범죄물은 굉장히 익숙한 클리셰잖아요. 그래서 범죄물이라는 외피를 입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양창근과 강도영도 우리가 많이 봐왔던 형사들이죠. 한 쪽은 드라이하고 한 쪽은 더 핫한 형사들이 콤비를 이루는 건데, 그러면 어떤 사건의 리액션들이 정해지거든요. 그게 재밌더라고요. 독자들도 조금 더 쉽게 따라올 수 있고요. 숨겨야 될 캐릭터들은 조금 숨기기도 했죠. 그리고 범죄물로 쓰자고 생각하는 순간 김화영이라는 캐릭터가 생긴 것 같아요. 김화영이 누군가를 죽이러 왔다고 하는 순간 범죄물이 시작된 거죠.

 

결코 짧지 않은 길이인데도 굉장히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에요. 짧은 문장이 만들어내는 호흡도 한 요인인 것 같고요.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너무 묘사가 많고 소설 같다고 혼나곤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시나리오를 쓸 생각은 못해봤어요. 대학에 들어와서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시나리오 작가가 됐는데, 영화판에 와보니까 생각보다 좋은 직업이어서 계속 있었던 거예요.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그냥 글을 쓸 때 제가 좋아하는 호흡이라는 게 있는 걸 텐데요. 그러다 보니까 시나리오를 쓸 때는 글이 아깝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지인들한테요(웃음). 시나리오는 어차피 독자들이 보는 게 아니니까, 우리끼리 보기는 글이 조금 아깝다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굳이 이렇게 쓸 필요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냉정하게 보자면, 지문이나 묘사가 너무 길면 감독과 배우 입장에서는 읽기 힘들 수 있거든요. 그런 게 시나리오 쪽에서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데, 소설에서는 빠른 호흡으로 보이지 않나 싶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갈증을 느끼셨을 것 같기도 해요. ‘한 번 원 없이 내 글을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라고 할까요.


『곰탕』 을 쓰면서 그걸 많이 푼 것 같아요. 이 소설을 보면 초반에 거의 30페이지 정도가 다 세팅이에요. 계속 인물들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게 저는 너무 즐거웠어요. 사실 더 길게 쓰고 싶기도 했는데, 쓰면서도 너무 재미없으면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타이트하게 가자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현역 감독이다 보니까 어떤 단락은 영화의 씬처럼 넘버링을 하면서 썼어요. 그것도 약간 습관인 것 같은데요. 또 어떤 부분은 몽타주나 인서트 같은 컷으로 한 장면만 써놓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게 머릿속에 꼭 필요한 이미지라서 그렇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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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덩어리들을 써봐야겠다


‘김영탁은 따뜻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 이미지가 굳어질까 봐 걱정되기도 하세요?


조금 불편할 때가 있어요. <헬로우 고스트>, <슬로우 비디오>가 다 제가 쓰고 찍은 거니까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닌데요.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곰탕』도 결국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늘 일상에서 이야기를 찾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게 제 개인적인 일상에서 너무 큰 사건인 거죠. 사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다음 이야기도 아버지가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예요. 한동안은 그럴 것 같아요. 다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저한테는 계속 아버지와 관련된 것들을 털어내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차태현 씨와 굉장히 친하시잖아요. 이번에도 인터뷰에서 『곰탕』홍보를 해주셨더라고요(웃음). 카카오페이지에서 1등하고 있는 소설이라고요.


저도 누가 보여줘서 봤는데요. ‘고맙구나, 어지간히 걱정되나 보다’ 싶더라고요(웃음).

 

당시 인터뷰에서 “영화화할 것 같은데 싫다고 말했지만 분명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던데요. 『곰탕』 의 영화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셨어요?


주변에서 영화화할 거 아니냐, 언제 할 거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일단 제가 현역 감독이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영상화 작업을 고민해 봤는데요.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봤을 때, 감독으로서 이렇게 사이즈가 큰 이야기를 연출하는 게 과연 순조로울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 곰탕에 대해서 아직 못다 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고요. 그래서 차후에 드라마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앞으로도 영화와 소설,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를 쓰실 거죠?


그러고 싶어요. 저는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제일 먼저 시작해서 가장 늦게 끝내는데요. 그러면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4~5년, 10년까지도 걸려요. 감독님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요. 그리고 영화는 중간에서 홀딩되거나 여러 가지 외부 요인으로 중단되면 없던 일이 돼버려요. 그런데 『곰탕』 은 1년도 안 걸려서 결과물을 실물로 보게 됐어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내가 뭘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거니까요. 결과물을 빨리 볼 수 있다는 게 좋았고, 독자들 반응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어요.

 

『곰탕』 의 인물들은 삶에 대한 의지, 욕구가 강렬한 것 같아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인데, 그것들이 서로 부딪히는 느낌이에요.


글을 쓸 때 어절 수 없이 캐릭터 안에 저랑 닮아 있는 부분들이 들어가게 되는데요. 저한테는 없는 부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할 거예요. 저는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의지가 약한 편이에요.

 

이우환이라는 인물은 “이렇게 사나, 그렇게 죽으나”라고 생각하잖아요. 비슷한 건가요?


그렇죠. 사실 우환이는 삶에 대한 태도가 저랑 비슷한 인물인데요. 그런 우환이가 살면서 처음으로 ‘행복해보자’라고 마음먹는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서 당연시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행복에 대해서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데, 예전에 저는 ‘꼭 살아야 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그러면 꼭 행복해야 되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거든요. ‘행복해야 되는 게 당연한 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이 소설을 보면 행복에 대한 입장이 다 달라요. 그래서 우환의 주변 인물들을 보면 삶에 대한 의심이 아무도 없어요. 다 확신에 차 있는 거예요.

 

그들은 작가님과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일면 존경하는 면들이 있는 캐릭터들이죠. 확고함이 있는. 저는 많은 분들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왜 사는지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답을 구하기 너무 힘들더라고요. 늘 생각하는 게, 확고한 일상이 있으면 그런 의심이 잘 안 든다는 거예요. 이 소설을 쓸 때 ‘나한테는 많이 없는 욕망 덩어리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우환이 삶에 대한 욕구를 갖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관계’인 것 같아요.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슬로우 비디오>, <헬로우 고스트>에서도 다루셨던 것 같고요.


그렇죠. <헬로우 고스트>에서도 계속 죽으려고 하는 인물이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는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 하루가 보편적이지 않고 특별하면 오히려 힘이 빠질 것 같았어요. 관객들이 보고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잖아요. ‘저래야 사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가장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찾다 보니까 그들의 관계를 가족으로 만든 거죠. 물론 가족이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헬로우 고스트>의 주인공도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거든요. 알고 보니 가족들이 있었던 거죠.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게 ‘유별나지 않지만 계속 살아가게 지탱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계인 것 같아요. 결국은 친구, 가족, 그런 관계들이 단단해지면 쉽게 포기하거나 죽지 않거든요. 『곰탕』에서도 그런 관계의 모습을 그린 거죠.


 

 

곰탕김영탁 저 | arte(아르테)
반전의 반전을 따라가며 마지막 문장까지 정신없이 읽고 나면, 한 인간이 가진 ‘그리움’이 어떤 일을 감행하게 하는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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