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에게 작가 구자선을 소개해 주세요.
학교에서 전공은 애니메이션이었어요. 3학년 즈음부터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서 혼자 일러스트 작업도 해보고 관련 수업을 듣기도 하다 보니 애니메이션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림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생기더라고요. 졸업하고 나서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애니메이션 콘셉트 영상을 팀 VCR과 같이 작업하고, 『휴게소』 등의 삽화 작업도 가끔 받아서 하고 있어요.
『여우책』 의 여우 그림이 인터넷 상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처음에 자기 홍보를 위해 뭔가 해보려고 하루에 그림 한 장과 글을 같이 SNS에 올렸어요. 쉽게 그릴 수 있는 그림으로 하나씩 노출했더니 VCR에서도 그 그림들을 보고 같이 책을 내보자고 작업 제안을 했어요.
『여우책』 을 출판한 출판사 이름 자체도 ‘VCR’이에요.
사실 VCR은 학교 선배와 동기들이 만든 창작집단이었어요. 애니메이션 과 졸업한 학생들이다 보니까 일러스트에 강점이 있는 분들이 많아서 애니메이션 작업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같이 하고 있어요. 제가 합류하기 전에도 합동지 개념으로 몇 번 책을 냈는데, 후원한 분들께 드리는 형식으로만 작업했었어요. 『여우책』과 이지혜 작가님의 『사랑을 찾아서』를 내면서 겸사겸사 출판사 등록을 해서 출판사 일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인쇄가 까다롭지 않나요?
요즘에는 영상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어쨌든 이미지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라서 출판 영역에도 손을 대고 있어요. 그림과 책을 떼놓을 수 없어서요. 저는 운이 좋았던 게 책을 내면서 프로듀서 님이 간단한 흐름만 잡은 채로 나머지는 전적으로 제 의견을 받아 진행해주셨거든요. 작업 진행 과정 자체도 도움을 많이 받아서 힘든 부분은 거의 없었어요.
팀 내부에 출판을 따로 맡은 분이 계세요?
각 업무마다 대표자가 있다기보다는 두어 명 정도 작업을 같이 나눠서 진행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비긴 어게인2> 오프닝 및 아트워크 작업 등 영상 작업에 치우쳐 있기는 한데, 창작집단의 느낌이 아직은 남아 있어요. 이번에 『여우책』 전시를 대전에서 했는데 VCR에서 인력을 지원하고 연락은 제가 다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각자 할 수 있는 부분을 맡아서 해요. 영상 작업을 주로 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일 출근하듯 모이고, 저는 가끔 콘셉트 아트에 같이 참여하는 식이죠. 지금은 책 인쇄 부분을 주로 김보성 작가님이 진행하고 있고, 원래는 김가와 씨가 『여우책』 , 『사랑을 찾아서』 , 『ILLY』 세 권을 총괄해 맡았었어요.
작가님도 영상 작업을 하셨죠? 작업을 꼭 책으로 해야 한다는 마음은 아니신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 한 건 ‘월간 윤종신’, ‘신치림X에디킴’ 뮤직비디오 콘셉트 아트 작업이었어요. 일러스트 작업도 좋아하지만 기회가 생기면 영상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요즘 세상이 하나만 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영상을 공부한 사람이다 보니까 평면 작업에서 느끼는 한계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최근 두 번째 책 『엄마, 있잖아』가 나왔어요. 작고 귀여운 책이에요.
작은 책을 좋아해요. 『엄마, 있잖아』를 만들 때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크기로 작게 만들고 싶었어요. 초판은 『여우책』의 동생 느낌으로 작게 만들었는데 단가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재쇄부터는 판형을 바꾸려고요. 작으면 제본 과정에서 수작업을 많이 해야 한다더라고요.
부수는 얼마나 됐나요?
1쇄는 500부 정도요. 2쇄부터는 쭉 1000부씩 찍고, 『여우책』은 6쇄째 찍고 있어요.
책이 안 팔리는 요즘 시대에서는 선방했다고 여겨집니다.
다행이에요. 그렇게 유명한 집단이 아니었는데도 언리미티드 에디션 처음 나갔을 때 스페셜 부스로 자리를 받아서 초반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여우책』을 낸 지도 꽤 오래됐는데 최근까지도 전시 문의도 주시고 계속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고요. 『엄마, 있잖아』도 좋게 봐주셔서 여러모로 독립출판이었지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다음 작업을 하는 원동력으로 삼고 있어요.
그림의 질감이 포근해요. 어떻게 작업하세요?
보통은 수채화로 많이 작업해요. 수채화 작업이 60%, 이후에 포토샵에서 디지털 기반이 40% 정도 들어가는 것 같아요. 질감은 거의 수채화로 작업했다고 보시면 돼요.
주로 동물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왔어요.
성격이 살가운 편이 아니기도 하고요, 사람 이야기를 할 때 사람으로 보이는 캐릭터보다 동물에게 가지는 일차적인 따뜻함을 통해 보여주는 게 더 편해요. 귀여운 동물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 가장 영감을 많이 받기도 하고요. 『엄마, 있잖아』도 엄마 해달과 아기 해달이 손잡고 자는 영상을 보고 만들었어요. 동물들의 애정이 엄청나게 순수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보다 훨씬 가깝게 다가올 때가 있는 것 같아요.
SNS를 통해 반려동물을 그려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어요. 동물을 키우시나요?
그 프로젝트의 솔직한 계기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벌고 싶다’였어요. (웃음) 제가 동물을 그릴 때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결과물도 마음에 들게 나올 때가 많고요. 동물을 엄청 좋아하지만 그만큼 책임감이 들기도 하고, 제 생활이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아서 스스로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아요.
창작자들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죠.
지금 입시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어요. 그게 주 수입원이고, 일러스트레이터 일이 주기적으로 오는 편이 아니지만 그것도 본업이라고 생각해서 두 개를 계속 병행해요. 봉사랑은 다른 느낌인데,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입시 강사 일도 힘들지만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고요. 일러스트레이터 일도 남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좋아요.
국제엠네스티와 같이 한 ‘세계 여성의 날’이나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 그림 작업도 비슷한 일일까요?
작업을 좋게 봐주시고 연락을 주셔서 저도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소수자를 위한 작업을 계속 하고 싶고, 그런 의미에서 국제엠네스티와 같이 한 작업이 저에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후 출판 계획이 있나요?
길게 잡아서 올해 1년 정도는 책으로 신작을 낼 것 같진 않아요. 만약 하게 된다면 요즘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나,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준비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어서 충분히 생각한 후에 만드려고요.
여우책구자선 저 | VCR
품에 안고 속삭이는 듯한 단문의 문구와 부드러운 질감의 수작업 일러스트로 이루어진 한 장의 그림 편지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