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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제일 무서운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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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은 ‘공장 출신 소설가’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주물공장에서 십 년을 일했다. 종일 금속을 녹여서 뜨고, 붓고, 단추나 옷핀 등을 만들었다. 글은 인터넷 유머사이트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올린 게 시작이었다. 한두 개씩 달리는 댓글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계속 썼다. 어떤 때는 하루에 세 편도 올렸다. 자극적인 소재를 쓰는 건 싫었다. 귀신도 안 믿었기에 귀신 이야기도 쓰지 않았다. 제일 무서운 게 인간이어서 인간 이야기를 썼다. 한 사람이 쓴다고 믿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어서 ‘혹부리 영감’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다.

 

삼백 편이 넘게 쌓인 이야기는 대리사회의 김민섭 평론가가 기획을 맡아 『회색 인간』으로 시작해 총 5권의 소설집으로 묶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공장에서 탄생한 작가라지만, 공장은 이야기가 담긴 장소였을 뿐이다. 인터넷 댓글로 시작한 작가는 이제 공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가 되었다. 카페가 아직 어색하다는 이 작가는, 그의 글은 이제 어디를 향하게 될까. 

 

피드백을 받으면 무조건 나아져요


작가로 유명해졌어요. 인터뷰도 많이 나오고요. 가족들 반응이 어때요?


올해 책 나오고 어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셨어요. 사실은 전화할 때마다 매번 작가님, 작가님하고 부르셔서 부담이에요. 아마 바깥에서도 자랑을 엄청 하고 다니시나 봐요.


공장 동료분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인터뷰 오는 길에도 박카스 사 들고 갔어요. 외모 관리 좀 하라고, TV 나오는데 그렇게 다녀도 되냐고 타박만 받았어요. 제가 공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시는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는 늘 인세 이야기가 나와요. 궁금하실 분이 있으니까 다시 여쭤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3년은 아무것도 안 해도 먹고 살 정도로 벌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거의 5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정도는 번 것 같아요. 공장에서 일할 때의 몇 달 어치 월급을 한꺼번에 받으니까 돈을 이렇게 많이 벌어도 되나 싶을 정도예요. 작가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고 한마디 했다가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말 듣긴 했어요. 지금도 딱히 돈 쓰는 건 없어요. 어머니에게 꼬박꼬박 부치는 돈이랑, 부산 갔을 때 킹크랩 사 먹은 정도예요.


공장을 그만두면서 당분간은 맛있는 거 먹고 여행을 다니겠다고 게시판에 올리신 적이 있어요.


여행은 직접 하니까 다르더라고요. 차멀미가 심해서 여행은 가봤자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만 갔어요. TV 나오는 맛집 중에 혼자 가도 될 만한 곳을 골라서 가기도 하고요. 예전에 배달시켜 먹으면 죄책감이 들어서 주로 집에서 대충 먹었는데, 돈이 한 번에 들어오니까 2, 3만 원짜리 먹어도 되지 않나 싶어서 저번에는 난생처음 아귀찜을 시켜 먹어봤어요. ‘내가 아귀찜을 시켜 먹는구나, 성공했구나’ 싶었어요. 


작가로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점점 더 많이 생기잖아요. 독자들을 만날 때는 어때요?


최초로 독자들과 만난 게 사인회였어요.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댓글 달아주시던 분이 암 투병 중이었는데 꼭 보고 싶다고 하셔서 열었어요. 첫날에는 거의 땅만 보고 있었어요. 최근에 도서관에서 행사하는데 그분이 또 오셨더라고요. 처음에는 말도 못하더니 지금은 많이 늘었다고,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주셨어요.

 

스스로도 말 솜씨가 늘어났다고 느끼세요?

 

이제는 사회자가 있으면 아무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혼자 말해야 하는 자리는… 처음에는 나름대로 PPT도 준비해서 한 시간 반짜리 강연을 갔는데 10분만에 끝내 버렸어요. 그래서 남은 시간은 제발 질문해 달라고 했었죠. 그 다음에는 고등학교에 강연하러 갔는데, 제가 고등학교를 처음 가 봤거든요. 학생들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거기서도 사실 준비한 건 20분 만에 끝났는데 학생들이 호응이 너무 좋고 잘해줘서 마음 편하게 했어요. TV에서만 볼 줄 알았는데 자기 티셔츠 벗어서 사인해달라는 친구도 만나고요.  

 

많은 경험을 하셨네요.

 

초반에 비하면 정말 많이 나아졌죠. 

 

댓글로 인해 글이 점점 나아졌다고도 하셨어요. 뭐든 빨리 배우시는 것 같아요.

 

피드백을 받으면 무조건 나아진다고 생각해요. 중학교를 중퇴했으니 글쓰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어서 처음에 쓴 글 보면 엉망진창이에요. 상황에 오류가 있어요, 맞춤법이 안 맞아요, 결말에서 캐릭터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아요, 이런 댓글이 달리면 거기 맞춰서 다음에 쓸 때는 더 신경 썼어요. 맞춤법도 같은 걸 틀리면 또 틀렸다고 욕먹을까 봐 몇 번씩 보면서 억지로 외웠어요. 조언이 달리면 그게 100% 옳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따랐어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누가 의견을 제시하면 다른 분이 나서서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거든요. 두 분이 토론하고 다른 분이 끼어들면서 의견을 내다보면 결국 정답으로 가요. 마지막에 살아남고 ‘좋아요’가 많은 의견을 따르면 되니까 최고의 환경이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점점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오히려 더 글 쓰는 법을 알게 되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는 댓글이 많이 달리기도 했어요.

 

공장에서 글을 구상할 때면 영화 한 편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장면이나 영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그걸 글로 쓰는 거죠. 그래서 제 글에서 문단도 자주 나눠요. 문단을 나눌 때마다 장면이 바뀐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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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라도 나쁜 사람이 당했으면


항상 같은 이름의 등장인물을 쓰시더라고요. 김남우, 임여우, 홍혜화 등이요.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일일이 이름을 지을 수가 없어서, 같은 이름을 반복해서 썼어요. 이름을 지어줄 때마다 캐릭터의 배경이나 성격을 묘사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서요. 묘사한다고 또 길게 쓰면 이야기가 늘어지거든요. 그래서 남우는 ‘남우주인공’에서, 여우는 ‘여우주인공’에서 따 왔어요. 홍혜화는 혜화역 지다가다가 히읗이 세 개 들어가면 재밌을 것 같아서 홍혜화라고 지었어요. 공치열은 꽁치에서 나왔어요. 꽁치 하면 마르고 까불까불할 것 같아서요. 이야기마다 같은 이름에 비슷한 역할을 주는 거죠. 남우는 약간 상식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 최무정은 무정하고 차가운 이미지, 공치열은 어리고 철없고 동생 같은 역할을 계속 주다 보면 독자들이 저절로 이미지를 상상하거든요. 그럼 묘사를 안 하고 넘어가도 돼요.


요괴나 외계인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보니 외계인을 도구로 사용했어요. 외계인은 완전 말도 안 되는 소재는 아니잖아요. 요괴는 한 번 썼더니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줘서 여러 번 등장시켰었어요.


돈이나 건강 등을 걸고 사람들이 경쟁하는 구도가 자주 나타나요.


공포 게시판에 글을 쓰다 보니 기본적으로 무서운 글을 써야 했어요. 인간이 욕망하는 것들을 써야 인간이 왜 무서운지를 보여줄 수 있더라고요. 결국 인간이 차별, 욕망, 욕심, 불평등 이런 것밖에 없잖아요. 영원히 죽고 싶지 않다거나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욕망도 항상 있고요.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무엇이 인간인가’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지금도 현실에서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고 갑질을 하는 일이 많아요. 그걸 그대로 썼던 것 같아요. 누구나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는 것에 대한 분노와 화가 있고 잘못된 거라는 걸 알면서도 동시에 현실은 그렇다는 걸 알아요. 공감 포인트가 되니까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주로 인터넷 댓글에서 소재를 찾으신다고요.


어떤 부당한 사건이 일어나면 댓글로 욕이 엄청 달리잖아요. 그런 걸 보면 저도 공감하거든요. 현실에서 안 된다면 이야기 속에서라도 나쁜 사람들이 당하게 하고 싶었어요. 권선징악을 통쾌해하고, 어리석게 욕심내다가 어리석게 망하는 구조를 독자들이 좋아하니까 저도 많이 쓰게 되고요.


대부분 작가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에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님은 오히려 주변 상황은 안 쓰시는 것 같아요.


다른 작가분들처럼 글을 쓰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재밌게 쓰는 게 목적이었지 제가 가진 생각을 담는 게 목적이 아니었거든요. 인터넷에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재미나 놀이로 댓글을 다는 것처럼요. 그리고 제 주변에 특이한 일이 없어서 넣을 만한 사건이 없었어요. 서울 올라와 10년 넘게 살았는데 친구도 없고, 집과 공장을 다니는 일을 반복했어요. 되게 재미없게 살았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도 주로 집에만 있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인터뷰나 강연이 있죠. 집에만 있다 보니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나가니까 재밌어요. 그래서 나갈 일이 있으면 좋아요. 그게 달라진 게 신기해요. 하지만 아직도 이유 없이는 안 나가요.

 

괜찮아요. 나갈 이유가 없으면 안 나가는 사람도 많아요.

 

아, 그래요? 저는 항상 집에만 있었거든요. 평생 산책이라는 말을 이해 못 하는 삶을 살았어요. 산책을 왜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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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사라진다는 아쉬움


지금은 카카오페이지에서 글을 연재하고 있어요.


이제는 독자들이 저를 아마추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작가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요. 그래서 봐주는 게 없어요. 최근에는 ‘초심을 잃었다’라는 댓글을 받아서 반성 많이 했어요. 제가 봐도 초심을 잃었다고 느껴져서요. 돈을 받으니까 부담도 있어요. 공짜로 올릴 때는 책임이 없으니까 마음껏 올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 짧아도 안 되고 너무 황당해도 안 되고요. 원고를 쓸 때와 올라갈 때 시간 차이가 나니까 바로 피드백이 반영되지 않는 게 제일 안타까워요.

 

공장을 그만둔 이후로 글쓰기에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공장에서는 단순반복 작업이고 지루한 시간이 너무 많으니까 한 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상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으면 점검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한 편 더 쓰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퇴근하고 집에 가서 씻고 앉으면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됐어요. 지금은 실시간으로 생각하고 뼈대만 구상해도 시작하다 보니까 자주 막혀요. 괜히 단어 생각 안 나고 막히면 인터넷 들어가서 검색하고 뉴스 댓글 달다가 시간이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산책해 보시는 게 어때요? 한 번 시도해 보세요. (웃음)


아, 산책의 효과가 그거군요. (웃음)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는 거였네요.


앞으로도 김동식 소설집이 계속 나오게 될까요?


아직 계획한 건 없어요. 출판사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홍보할 생각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잔인하거나 읽기 힘든 장면이 나오지 않고, 외계인과 요괴 등 아이들이 좋아할 소재가 많아요.


예전에 ’이건 초등학교 수준의 글’이라는 서평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게 악평이 아니라 맞는 말이었던 거죠. 저는 누구든 읽어주시면 감사해요. 학교에서 학생들이 책 읽기를 싫어하는데 제 책은 너무 재밌어하더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강연회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 친구는 요새도 연락하고 지내요. 최근 나온 책을 사인해서 부쳐주기도 했어요.


요새 자주 다니는 사이트가 있나요?


공포 미스터리 게시판은 거의 모든 커뮤니티마다 있는데, 요새는 활발한 게시판이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공포 게시판 활동이 굉장히 활발했어요. 창작글 올려주시는 분도 많았고, 어떤 분은 댓글로 단어를 달면 그걸로 짧은 소설을 짓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런 커뮤니티가 죽은 게 많이 아쉽죠.


앞으로 책을 더 많이 읽고 습작하라는 말과, 공부하지 말고 쓰던 대로 쓰라는 이야기를 동시에 들으셨을 것 같아요. 같이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생각도 혹시 하셨어요?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 무대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은 있죠. 글 쓰는 데 가장 큰 힘이 피드백이잖아요. 댓글이 적으면 힘이 안 나요. 지금은 카카오페이지 연재가 끝나면 어디에 써야하지 싶어요. 만일 더 이상 쓸 곳도 없고 찾는 독자도 없다면 다시 다른 공장에 들어가야겠죠.

 

 

 


 


 

 

회색 인간김동식 저 | 요다
갑자기 펼쳐지는 기묘한 상황, 그에 대응하는 인간들의 행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농담처럼 가볍게 읽히지만, 한참을 곱씹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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