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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저자를 만나다] 모순을 끌어안는 정병일지 - 백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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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제목이 제 이야기였어요. 저는 자살 충동을 굉장히 자주 느끼는 편이고, 자살 충동만큼 배고픔도 잘 느껴요. 항상 뛰어내리는 상상에 골몰했는데, 친구가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그러면 신나서 떡볶이를 막 먹는 제 자신이 너무 싫었던 거죠. 왜 죽고 싶은데 떡볶이 먹어? 하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거예요. 되게 모순적인 마음인데, 다들 제목을 보면서 ‘아, 이거 난데?’ 하며 많이 사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떡볶이를 생각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웃음)


기분부전장애를 다룬 책이에요.


우울증을 뭉뚱그려 하나의 병으로 여기지만, 공황장애라든가 불안장애처럼 기분부전장애도 우울증에서 파생하는 질병 중 하나예요. 만성 질환이라 초기 발병 기간을 2년 이상으로 잡는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앓아서 거의 10년 이상 앓았어요. 그동안 병원을 많이 다니면서도 정확하게 맞는 질환을 찾지 못해 ‘난 왜 이렇게 유난일까?’ ‘난 왜 이렇게 약하고 예민하고 어두울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지막으로 간 병원에서 기분부전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보니 딱 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으로 낸 계기는 무엇인가요?


비슷한 증상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블로그에 내원 기록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고, 문예 창작이 전공이라 책을 내는 건 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막연히 에세이를 내고 싶긴 했지만 콘셉트나 주제를 잡기 어려웠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가 제가 앓고 있는 병이었어요.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꽤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잘 몰라서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백세희-(5).jpg


 

정신 질환은 신체 질환보다 편견을 받을 때가 많아요. 


정신병을 왜 편견을 가지고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해도 제가 그렇게 느끼지 않아서 개의치 않았거든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용기를 냈느냐 물어보는데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이야기하니까 상대방도 가볍게 받아들이더라고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만든 책이에요. 순식간에 2천만 원이 모였어요.


처음에는 200부 정도 찍을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모여서 깜짝 놀랐죠.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양이라 대행업체를 이용해 발송했어요.


아무래도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고, 겪어본 분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맞아요. 숨겨져 있는 걸 드러냈더니 많이 공감해주더라고요.


프롤로그에 마르탱 파주의 『완벽한 하루』를 인용했어요.


제게 큰 의미가 있는 책인데, 스물다섯 살 남자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권총 자살을 떠올리고 종일 자살을 생각하는 이야기거든요. 어두운 내용 같지만 엄청 웃기기도 해요. 책에서 빛과 어둠이 따로따로 가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행복과 우울함이 동시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너무 힘든데 친구랑 만나면 농담하는 제 모순적인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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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과의 대화를 그대로 싣기도 했어요.


많은 정병일지가 감정의 나열에 그쳐서 전문가의 해결법도 들어간 책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어요. 타인의 감정을 나열한 것으로 위안은 받을 수 있지만 직접적인 해결 방법을 제공해준다는 느낌은 없었거든요.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은 거리가 조금 멀게 느껴졌고요. 그래서 제가 어떤 상태인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제 상태를 진단하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아 주는 대화를 그대로 실으면 우울을 한번쯤 경험해본 사람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리뷰를 읽을 때는 어땠어요?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어요. 자기 일기장에나 쓰지 책까지 냈느냐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거든요. 악플이 생각보다 없어서 많이 안도했어요. 그다음으로는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은 사람들이 다들 숨어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자기 자신이 발가벗겨진 느낌이라는 리뷰도 있었고, 제3자가 되어서 상담실에 앉아 있는 것 같다는 분도 있었고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단지 우울만 있는 게 아니라 외모 강박이라든가 자기 검열, 남과 비교하는 것, 알코올 의존, 피해 의식 등 공감할 부분이 많기도 했고요.


3쇄까지 나오고 2,000부가 나갔어요. 곧 절판된다고 들었는데요.


1인 출판사인 ‘흔’을 통해 6월 중순에 정식 출판할 예정이에요. 디자인은 어느 정도 바뀌겠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게 나갈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백세희 작가의 책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책도 내고 싶어요. 늘 에세이를 쓰고 싶었거든요. 우울이 아닌 다른 소재로 쓴다면 제 ‘찌질의 역사’를 쓰면 어떨까 싶어요. 굴욕적인 사건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아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하는 일에도 끙끙 앓는 이야기를 엮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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