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요일은 상황에 따라 시를 추천하고 매일 시를 배달해주는 큐레이션 검색 앱이다. “위축되어가는 장르인 시를 최소한 하루에 한 편이라도 읽게 하고,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독자 대중이 더 많은 시 콘텐츠를 손쉽게 향유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로 시작해 이제까지 20만 명이 시요일을 이용했다. 시요일 론칭 1주년을 맞아 펴낸 『당신은 우는 것 같다』에서는 그동안 이용자들이 자주 검색했던 ‘가족’, 그중에서도 아버지를 주제로 안희연 시인과 신용목 시인이 각각 20편의 시를 엮어 아버지와의 경험을 떠올린 산문을 덧붙였다.
그렇게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울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이 그저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뿐인, 가장 가깝고 가장 서먹한 사이를 시인들은 어떻게 그려냈을까. ‘삶과 죽음이 싸우듯, 사랑과 미움이 서로를 찌르고 희망과 절망이 자리를 바꾸듯’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시인들은 시에서 각기 다른 아버지를 읽어 내렸다.
아버지를 정면으로 다뤄보겠다
시요일 1주년을 기념해서 책이 만들어졌어요. 시를 종이책으로 보는 게 익숙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시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안희연 : 저는 스마트폰에도 익숙한 세대라, 시가 꼭 화면에 안 될 건 없다는 생각해요. 사실 사람들 곁에는 늘 시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고도원의 아침 편지’가 이메일로 왔었다면 지금은 매체가 바뀐 거겠죠. 시요일에 소개된 시 중에서 반응이 좋았던 주제를 다시 책으로 엮었으니, 상호작용이 잘 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신용목 : 실질적으로 시의 생태장에 기여하는 건 시인선을 내는 출판사와 단행본 시장이었는데, 이제까지는 그런 장에서 벗어나 주제에 맞게 시를 골라서 내는 시선집이 더 많이 팔리고는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시집 시리즈를 내는 창비가 ‘시요일’을 만든 건 새로운 장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매체로 생태장에 기여하는 조건을 만든 거죠.
시를 하나씩 소개하고 산문을 엮는 방식이었어요. 이제까지 읽어왔던 시집을 다시금 복기하는 과정이었을 텐데, 시를 고르실 때는 어땠나요?
안희연 : 의외로 바로 떠오르는 시도 있었고요, 묶으면서 이런 시가 있었지 하고 떠오르는 시도 있었어요. 주로 에피소드를 생각하면서 시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아빠 손바닥에 올라와 있던 기억은 꼭 쓰고 싶어서 아버지와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소녀의 목소리로 된 시집을 많이 찾아보고, 애호하는 시인들 시집을 다 꺼내놓고 뒤적이는 시간이 있었어요.
다시금 발견한 시는 어떤 건가요?
안희연 : 김수영 시인은 평소 정말 좋아하던 시인이었는데 이사를 하면서 집에 시집을 두고 가서 잊고 있었어요. 갑자기 떠올라 부랴부랴 언니에게 부쳐달라 부탁하고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나와 아버지와 지렁이」를 찾기도 했고요. 아버지와 불화하는 이야기에서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세계와 불화하고 날 선 목소리를 가진 여성 시인을 떠올리다가 김언희 시인의 「당신의 얼굴」까지 오게 됐어요.
신용목 : 정호승 시인은 워낙 유명하시지만, 「아버지들」은 아버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찾다가 만난 시이기도 해요. 고재종 시인의 「땅의 아들」도 오래 지난 시였지만 책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읽게 됐어요.
안희연 : 아버지와 관련된 시가 없을 것 같은데 많아요. 오히려 그중에서 스무 편을 고르는 게 어려웠어요. 결국 시적으로 좋은 시, 아버지에 관해 절절하게 이야기하는 시를 골랐다기보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물리는 시를 기준으로 뽑았어요. 너무 아버지에 관한 시만 스무 편을 싣고 싶진 않아서요. 젊은 시인도 많고, 오히려 아버지와 관련 없는 외국 시를 고르기도 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를 다룬 시는 정말 많아요. 자주 말해지는 소재는 자칫 진부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요.
신용목 : 아버지는 가부장제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함의하고 있어요. 최근 여성주의 관점이나 가부장적 질서의 반성과 비판이 가해지는 지점을 생각하면 앤솔로지로 아버지를 다루는 것은 사실 실패할 확률이 높죠. 어머니로 했다면 더 폭넓고 사랑받을 만한 주제이긴 했을 거예요. 그럼 과연 아버지라는 존재가 왜 그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을까, 부재한 사람이 아닌데 왜 부재한 것처럼 다룰까 그걸 정면으로 다뤄보겠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였던 듯해요.
시인 둘이 각자의 아버지를 이야기한 것도 또 하나의 의도였을까요?
신용목 : 아버지에 대한 뻔한 서사보다는 외진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골에서 크고, 안희연 시인은 도시에서 자라셨죠. 나이 차도 12년 나고요. 또 안희연 시인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저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돌아가셨으니 이러한 결핍을 하나로 묶어서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작가들의 숙제, 아버지
안희연 시인님은 처음에 가족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하자 첫 마디가 “정말 쓸 거야?”였다면서요.
안희연 : 저한테는 아버지라는 대상이 진부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거든요. 워낙 일찍 돌아가셔서 오히려 청탁이 들어왔을 때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어떤 기억을 쓸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서 하겠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부재한 사람들은 아버지를 말하는 것 자체가 상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아버지가 빈칸으로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걸 채워가는 과정이 오히려 더 무궁무진하고, 실제로도 이 책을 통해 부재했던 아버지를 만나신 분들은 과거의 기억을 자꾸 꺼내고 그 빈칸을 채우는 느낌이 있어서 오히려 저한테는 진부한 접근은 아니었어요.
두 분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지만, 무엇보다 어렸을 때의 아버지로 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용목 : 저도 말씀드릴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아버지가 부재한 분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할지 익숙하지 않은 거죠.
안희연 : 어떤 독자분은 제 글에 대해 ‘너무 슬퍼요…’ 하고 별말씀을 안하시더라고요. 저한테는 아버지가 빈 공터처럼 남아있어서 애절하고, 다른 알록달록한 것은 신용목 시인이 하신 느낌이었달까요? 신용목 시인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너무 재밌고, 부럽기도 했어요. 저에게는 없는 기억이니까요.
신용목 시인의 글에서는 아버지와 심각하게 불화하는데,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오는 지점이 있었어요. 신병훈련소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장면이라든지요.
신용목 : 다 사실들이에요. 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는 지점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책에는 짧게 썼지만, 만약 아버지와 거리가 좀 가까웠다면 구구절절 이럴 수 있느냐 썼을 거예요. 그때 기억이 처음엔 싫다가도 용서가 되고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시절이 온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방식으로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서커스 보러 가는 이야기도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죠. 파출소에 전화해서 사생활 침해로 고소하겠다고 한바탕 뒤집어졌던 일이 떠올라요.
강렬한 경험과 기억을 묻어두고 있다가, 시간이 흐르고 복기했을 때는 다른 감정으로 길어 올려지기도 했을 텐데요.
안희연 : 시를 쓰는 것과는 정말 다른 감정이었어요. 얼마든지 아름답게 아빠와의 추억을 포장하고 드라마를 만들어서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담백하고 또박또박한 문장으로 쓰려고 애를 썼고, 기간이 짧아서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생각이 들 만큼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많이 울면서 썼어요. 저에게는 영원히 가지고 있는 크기의 슬픔이기 때문에 멀리서 봐도 여전한 거리가 유지되고, 쓰고 나서도 변한 것 없이 그 질량 그대로 저에게는 보존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고 솔직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같이 감당해왔던 가족들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고,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던 언니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어요.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신용목 : 지금도 가족들에게 책을 안 보내줬어요. 이 책은 제가 아버지에 대해 갖춘 예의, 혹은 아버지를 추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형들이나 어머니는 또 자기 방식대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방식이 따로 있겠죠. 가족 중에 글쟁이가 한 사람 있다는 이유로 모든 가족이 글쟁이의 시선대로 그려지고 추억이 해석되는 것도 조심스럽고 불안해요. 특히 산문에서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 이야기를 썼을 때 상처를 주거나 노출되길 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안희연 : 엄마는 제 기억에 오류가 많다고 하나하나 다 짚어주시면서도, 마지막에는 그 오류조차 너의 아빠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언니는 오히려 책이 나오니까 좋아했어요. 제가 상처이자 선물이겠지만 그래도 선물 쪽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둘 다 맞다고 대답해 줬거든요. 언니에게는 최대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선물은 된 것 같아요.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작가들의 숙제가 아닐까요? 가장 옆에 있으면서 어떻게든 쓸 수밖에 없는 소재예요.
신용목 : 제 첫 시집은 아버지 이야기가 정말 많았어요. 다 아버지예요.
안희연 : 신용목 선배님 시 중에 하나 골라야지 했는데… 너무 많더라고요. (웃음)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
두 분 다 산문집을 내신 적이 있어요. 시와 산문을 쓸 때 다른 점이 있나요?
안희연 : 시는 시인 안희연이 쓰고 산문은 그냥 안희연이 쓴 것 같아요. 이게 정확할 거예요. 이 책은 시인이 쓴 게 아니고 어린 날의 제가 쓴 거고, 너무나 개인적인 기록이에요. 그래서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어요. 너무 사적인 것들을 많이 꺼내놔서 어디 가서 나를 감출 수도 없겠구나 싶었어요. 10년 넘게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비밀로 혼자 간직한 아빠의 사인 같은 걸 책으로 내놓았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안희연이 안희연의 글을 쓴 거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신용목 : 다른 상황과 조건이 쓰는 거죠. 최근 문단에서도 시와 정동이라고, 자신이 분위기 때문에 쓰는게 아니라 분위기가 자신으로 하여금 쓰는 거라는 논의가 일어나는데, 그것과 연결되지 않을까요.
안희연 : 왜 갑자기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고 그러세요.
신용목 시인의 글은 ‘시인 신용목’이 쓴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웃음)
신용목 : 지난 산문집은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쉬울 줄 알고 봤더니 시랑 똑같고 너무 힘들다고요. 읽고 나서 ‘이건 신용목 이야기야’ 하면 산문인 것 같고요, ‘어? 이건 내가 썼지만 내 것은 아니야’ 싶은 마음이 들면 시인 것 같아요.
서로 글을 봤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어요?
신용목 : 안희연 시인이 쓰는 산문은 한단계씩 밟아나가더라고요. 시가 건너뛰면서 다른 세계를 끌어당긴다면, 차곡차곡 한 문장 다음에 다음 문장이 오면서 생각의 순서를 밟아나가면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느낌을 줬어요. 이 과정이 좋았어요.
안희연 : 신용목 시인을 원래 되게 좋아해요. 평소에는 격의 없이 잘 놀리다가 가끔 제가 좋아했던 시인이라는 걸 망각할 때가 있어요. 이 산문집을 읽고 나서 든 가장 큰 마음은 제가 겉모습만 보고 늘 감춰져 있던 선배의 속살을 내가 본 것 같다는 느낌? 그게 웃기든 슬프든 아름답든 치열하든 온도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가 되게 좋아했던 시인 신용목을 다시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앞으로 두 분의 계획은요?
안희연 : 아마 시집을 묶어야겠죠?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로 내년 초에 새 시집이 나올 거예요. 신용목 시인님도 같은 시리즈로 낼 거고요. 산문보다 시에 집중하려고요. 맨얼굴이 아니라 거의 뼈를 보여줬기 때문에 산문으로는 당분간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요.
신용목 : 저는 계획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계획을 짜기 전에 밀려서 사는 기분이 들고, 유능하거나 천재적인 분들이 뭔가를 기획하면 그때그때 오는 걸 쓰고, 앞으로도 저에게 뭐가 올지 모르지만 성실하게 대면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페어로 붙어 다니시게 되겠네요.
안희연 : 그래서 신용목 시인에게 영혼의 단짝이 되겠다고 그랬더니 이미 단짝 아니었냐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당신은 우는 것 같다신용목, 안희연 저 | 미디어창비
아버지를 마냥 존경해야 하거나 연민하는 대상으로 그리지 않고, 시를 통해 그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를 성찰하는 시인만의 통찰력이 빛나는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