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작가는 그를 일컬어 ‘복수(複數)의 화신’이라 말했다. 120여 명의 인물을 창조해내고, 그들을 통해 서로 다른 결의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그 주인공이다. 페소아 안에는 수많은 페소아들이 존재하는 까닭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페소아를 페소아답게 ‘보여주기’ 위해서 김한민 작가는 자신을 지워냈다. 어떤 구심점도 지향점도 설정하지 않고, 파편화된 모습 그대로를 담아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김한민의 목소리를 떨쳐내고, 김한민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지 말라고 주문한다. 진정으로 페소아를 만나고 싶다면 그가 남긴 작품과 직접 만나야 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페소아 :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複數의 화신』 (이하 『페소아』)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국내 최대 인문기행 프로젝트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우리 시대 전문가 100인이 거장을 찾아 떠나는 특별한 기록을 선보인다. 황광수 평론가가 셰익스피어의 자취를 따라 걸었고, 정치사회철학자 이진우가 니체를 만나러 알프스와 지중해로 떠났다. 전원경 인제대학교 교수와 『클림트』 , 유윤종 <월간 SPO> 편집장과 푸치니의 이야기도 출간됐다. 이들의 기록은 팟캐스트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을 통해서 엿볼 수 있고, 강연과 여행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김한민 작가는 『유리피데스에게』 를 시작으로 『웅고와 분홍돌고래』 , 『카페 림보』 , 『사뿐 사뿐 따삐르』 , 『그림 여행을 권함』 , 『비수기의 전문가들』 , 『STOP!』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이미지로 이야기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예리하게 현실을 파고드는 이야기로 성인 독자들을 사로잡는 동시에, 자연과 동물을 그린 작품으로 어린이들과 호흡해 왔다. 지난 9일, 신촌에 위치한 위트앤시니컬에서 김한민 작가를 만났다.
우리는 모두 조금은 페소아가 아닐까
요즘 ‘씨 셰퍼드(해양 생물 보호 단체, Sea Shepherd Conservation Society)’ 활동 때문에 바쁘시죠?
네, 지난 토요일에 ‘동축반축(동물축제 반대축제)’이 있었어요. 영장류 연구하는 저희 형과 같이 기획한 축제였고요. 다행히 날씨가 받쳐줘서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최근에는 동물권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이슈가 되고,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네, 관심이 정말 많더라고요. 막상 해보면 여전히 소수 이슈라는 건 느껴지는데요. 옛날 같은 소수는 아닌 것 같아요. 점점 퍼지는 소수라고 할까요.
‘동축반축’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지금은 작가로서는 대충 하고 있는 것 같고(웃음), 환경운동을 엄청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고민도 하세요?
아뇨.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제가 생각하기에 제일 중요한 일을 그때그때 해왔는데, 지금은 환경과 동물이 훨씬 중요해요. 몇 년 전만 해도 저한테 페소아가 전부였고, 여전히 중요하기는 해요. 그렇지만 우선순위라는 건 항상 바뀌는 거니까요.
놀라운 소식은 아닌 것 같아요. 계속 작품 안에서 동물과 환경 이야기를 하셨으니까요.
저는 되게 다행스러워요. 그런데 멀리서 보는 사람은 페소아라는 시인에서 갑자기 환경, 동물 이야기로 옮겨간 걸로 볼 수 있겠죠. 그런데 페소아도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페소아와 작가님 사이에 닮은 지점이 있다고 느끼세요?
그럼요. 스타일에 대한 다양성, 정체성의 다양성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책들을 보면 그림 스타일이 다 다르잖아요. 매번 다른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도 몇 번 했어요. 보통은 자기 스타일을 굳건히 하고, 그 스타일대로 밀고 나가는 게 더 유리하잖아요. 그림을 봤을 때 어떤 작가의 그림인지 알 수 있으면 여러 가지로 편해지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페소아를 보고 나서 ‘이게 나쁜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어떤가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최소한 세 개는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할 때의 나와 사생활에서의 내가 다르고, 연애할 때의 내 모습도 다를 수 있죠. 그게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그럴 때 이걸 고쳐야 되나 싶은 생각도 드는데요. 페소아는 저 우주처럼 복수가 되라고 말하잖아요.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복수가 되어서 완전히 폭발시키라고 말하고 있고, 본인은 거의 폭발시켰죠. 그래서 힘들기도 했지만 인문학사상 전례가 드문 작가가 나온 거고요. 페소아를 보면서 스타일과 정체성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걸 많이 배웠어요. 페소아한테서 많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페소아는 자기 안의 다양한 모습을 각각 분리해서 인격화했잖아요. 그래서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걸 통합해야 된다는 게 우리의 고민이고 갈등이니까요.
맞아요. 페소아도 통합의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하나로 통일시켜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거나 강박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다르게 말하면, 통합의 의지보다 다양성에의 욕구나 의지가 더 강했던 거죠. 그렇게 해서 더 마음이 편했다기보다는, 자칫 정신분열이나 자아분열증적인 증세가 될 수 있었는데도 ‘약’으로 돌리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독’도 있었어요.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걸 문학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술과 담배로 달랬던 것 같아요. 페소아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확증을 할 수 없지만요.
페소아 본인도 ‘내가 정신병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면서요?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요. 흥미로운 사실이었어요.
자신에게 정신이상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살았던 할머니도 늙으면서 가벼운 증세들을 보였는데, 그걸 보면서 자신에게 실제로 의학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죠. 페소아는 엄청 공부벌레였기 때문에 혼자 조금 고민해 보는 정도가 아니라 온갖 문헌들을 찾아봤어요. 정신병리학, 임상학, 심리학, 어떤 것이든 찾아서 읽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조금 놓은 것 같아요. 미쳤으면 미치는 거지, 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리스본에서 만난 페소아
공부벌레라는 점에서도 페소아와 닮지 않았나요(웃음)? 그림도 그리시고, 소설도 쓰시고, 번역도 하시고, 해양 과학과 관련해서 공부도 하셨잖아요.
해양 과학 공부는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했죠. 바다 속 환경은 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내가 다이버가 되든 뭐가 되든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 돼요. 그래서 나름대로 조금 공부를 했는데요. 페소아는 저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도 거의 2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잖아요. 아마 선생님들보다 더 똑똑했던 것 같아요. 웬만한 교수들보다 더 많이 읽었고, 더 많이 봤고, 언어도 더 잘하고, 시도 더 잘 쓰고, 그러니 특별히 뭘 더 얻었겠어요. 일기를 보면 불만을 토로하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학교를 그만둔 후에 공부는 더 열심히 했죠.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주위 문인들한테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페소아는 굉장한 공부벌레여서 여러 분야에서 해박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파리에서 페소아의 장서 목록을 가지고 전시회를 했는데, 그 정도로 책도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 전시회에 대해서는 ‘굳이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웃음).
저는 웃겼어요. 페소아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저처럼 페소아를 공부하는 사람은 되게 궁금하죠. 그렇다고 그 사람이 읽었던 책을 다른 나라로 옮기면서까지 전시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박물관에 있는 건 괜찮지만요. 한국의 경우에는 페소아가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이니까 정보들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유럽에서는, 특히 프랑스나 포르투갈 같은 곳에서는, 페소아의 너무 작은 것까지 다 알 정도예요. 워낙 유명한 작가가 돼서 너무 사사로운 것까지 다 출판되거든요. 저도 작가이지만, 제가 쓴 잡글까지 다 출판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오히려 오해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게 작가한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본인은 원치 않을 수도 있고요.
네. 그리고 페소아는 굉장히, 굉장히, 완벽주의자잖아요. 특히 자기 이름으로 나가는 시와 작품에 대해서 그렇죠. 어느 정도였냐 하면, 시에 날짜 붙이는 걸 싫어했어요. 시라는 건 영원성이 있어야 되는 거라서, 어떤 시간적인 한계에 규제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에 날짜가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을 만큼, 그 정도로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러니 자기가 그냥 휘갈겨 쓴 노트까지 출판된다는 건 페소아가 용납하지 않았을 일인데... 물론 책임은 페소아한테 있어요. 그걸 하나도 안 버리고 다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자기가 대단한 작가가 될 걸 알고 있었어요. 어쨌든 많은 연구자들이 너무 많은 걸 노출시킨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어쩔 수 없죠. 대작가가 된 운명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죠.
대부분의 작품이 파편화된 상태로 남아있는 것도,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이죠?
그렇죠. 그리고 페소아는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는 수많은 생각들을 하나로 통합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걸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보니까, 여기저기에 써놓았던 거예요. 아마 디지털 시대에 살았다면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기는 해요. 우리도 노트, 스마트폰, 노트북, 데스크탑 등 다양한 곳에 기록하잖아요. 그렇게 엄청나게 쓴 거죠. 그때는 그런 디바이스는 없었지만 카페에 있는 작은 종이 위에 쓰기도 하고, 컵 받침대에 쓰기도 하고요. 그런 게 굉장히 많죠.
지금 시대에 페소아가 살았다면,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창작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영상도 만들고요.
맞아요. 멀티 아티스트가 됐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죠. 페소아는 디바이스가 필요 없었던 사람인 거예요. 지금 우리가 증강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페소아는 그런 디바이스가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현실을 증강시킬 수 있는 거죠.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인터넷 디바이스와 완전히 끊고 굉장히 외골수 같은 길을 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둘 중에 하나였을 것 같아요. 중간은 없었을 것 같아요. 조금 극단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니까.
포르투갈에는 얼마나 머무셨어요?
4년 조금 넘게 있었는데요. 그 사이에 프랑스에도 오래 체류했기 때문에 3년 반 정도 될 것 같아요.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았어요. 그런 걸 안 하는 편이라.
『페소아』 집필 제안을 받고 떠나신 건가요?
아니에요. 이미 포르투갈에 가 있었어요. 페소아를 연구해보고 시를 읽고 싶어서 갔던 건데, 중간쯤에 제안을 받았어요. 4년 정도 머무르면서 반은 포르투에 있었고 나머지 2년은 리스본에 있었는데요. 리스본에 있었을 때 제안을 받았어요.
이전에도 포르투갈에 가셨었나요?
한 번도 없었어요. 페소아는 그 전부터 좋아했지만, 저는 원래 아프리카에 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저희 형이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왔어요. 대화를 하면서 포르투갈이 굉장히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흔히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아주 나쁘게 말하자면 거의 스페인의 속국처럼 생각하는 건데, 어쩌면 유럽 사람들이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리스본에 다녀온 저희 형이 여기는 스페인과 너무 다르다고, 오히려 저한테 잘 맞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가봤죠. 처음에는 형이랑 같이 갔어요. 그때 대학의 교수님들도 만났고, 페소아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다고 했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갑자기 동양에서 페소아를 공부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니까 그랬겠죠.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어요.
리스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만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페소아에 대해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을까요?
물론이죠. 굉장히 달랐겠죠. 일단 한국에 있을 때 저는 포르투갈어를 전혀 못했어요.
단시간 내에 배우셨네요?
비교적 단시간이긴 한데, 제가 스페인어에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덜 부담스럽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해를 하면 안 되는 게, 포르투갈어랑 스페인어가 닮아있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달라요. 처음에 갔을 때는 읽기만 조금 읽고 말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어요. 수업시간에도 진짜 고생 많이 했죠. 그런데 몇 개월 지나니까 빨리 배울 수 있더라고요.
페소아는 항상 ‘사이’에 있어요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게 페소아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됐나요?
페소아를 위해서 포르투갈어를 배운 거죠. 이 사람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봐요. 나도 작가이고 책을 쓰지만, 나를 읽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울 사람이 있을까. 아마 페소아는 저 말고도 그런 사람이 되게 많을 거예요. 언어 하나를 통째로 배울 만큼의 가치가 있는 세계인 거죠. 저도 ‘이 시인은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페소아가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했죠. 자신이 만든 잡지를 두고 한 이야기인데요. ‘포르투갈은 그곳의 풍경과 이 잡지만으로도 알 가치가 있다’고 했죠.
이번 책에서 ‘페소아 되기’를 시도하셨는데요. ‘이런 점에서만큼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페소아는 못 되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부분도 있어요?
올해 출간될 예정인 페소아의 시선집이 있는데, 사실 저는 그 책이 먼저 나왔으면 했어요. 작품을 먼저 알고 작가한테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그 시선집에 「해상송시」라는 작품이 나오는데요. 900행이 넘는 엄청난 시예요. 저는 그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주의가 산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읽기만 해도 몇 시간이 걸려요. 그러면 쓰는 건 어땠겠어요? 페소아 본인은 그런 엄청난 대작을 한 번에 썼다고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런 작품을 완성해낼 수 있는 건 엄청난 일인 것 같아요. 그런 건 제가 범접할 수도 없고, 상상으로도 하기 힘들어요. 도대체 이걸 어떻게 썼을까 싶죠.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어떤가요?
페소아는 상당히 내성적이었죠. 연재 한 번 제대로 못 해봤을 정도로요. 저는 성격상 그렇지는 않고요. 어떻게 보면, 페소아도 내성적이지만은 않았어요. 발언을 해야 될 때는 굉장히 용감했죠. 소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용감하게 나서서 독재정권을 상대로 용기 있는 발언을 한 경우도 있었고요. 페소아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찾다 보면 결국은 어딘가에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만나게 돼요(웃음). 개인적인 차원으로 국한시킨다면 소심한 면, 대담한 면, 당찬 면, 소극적인 면, 모든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페소아가 자기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점은, 우리한테도 다 그런 씨앗이 있다는 거예요.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너무나 많은 공통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건데, 그걸 스스로 억압하느냐 페소아처럼 해방시키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페소아는 일관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잖아요. 말을 바꾸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하고요. 자료를 찾다 보면 화나거나 지칠 때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맞아요. 그래서 페소아를 공부하다 보면, 페소아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웬만하면 단정을 하지 않고 결론을 유보하는 약간의 요령이 생겨요. 다른 부분은 ‘사람의 생각은 어차피 변하기 마련이니까’ 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두 가지 점에 있어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어떤 건가요?
첫 번째는 정치적인 입장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감각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거예요. 그런 문제들과 관련해서 계속 상반된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짜증이 나거나 혼란스럽죠(웃음). 예를 들면 노예제에 관해서 페소아의 입장을 정리해 보고 싶은데 찬성과 반대 의견이 똑같이 나와 있는 거예요. 감각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이야기를 보면 ‘감각적인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 것’, ‘흔히 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립되는 것으로써 감각적인 것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 감각주의라고 생각돼요. 그러다가도 오히려 감각적, 감성적, 감상적인 모든 걸 배제하는 게 감각주의 같기도 하거든요. 감각주의는 페소아한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 한쪽으로 치우고 넘어갈 수도 없는데, 그렇다 보니까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본인이 여기에서 이야기한 것과 저기에서 이야기한 게 달라요. 게다가 극적인 요소까지 넣어서 ‘캄푸스’는 이 이야기를 하게 만들고 ‘카에이루’는 저 이야기를 하게 만들기도 하고요(웃음). 어떤 때에는 의도성까지 있어요.
‘페소아를 말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으셨겠어요.
제일 좋은 건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연구자는 가능한 한 그것들을 하나로 정리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하고요. 신진 연구자 같은 경우에는 그 안에서도 어떤 일관성을 발견해서 정리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 사이에서 페소아가 보이겠죠. 제가 산문집 『페르난두 페소아 : 페소아와 페소아들』의 후기에도 썼지만, 페소아는 항상 어디와 어디의 사이에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어느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느냐’고 질문할 수 있는데, 그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아요. 명확하지 않아요. 그 조차도 페소아가 이야기해주는 거죠. ‘사람은 사실 명확해 보여도 그렇지 않아’라고.
작가님께서 엮으신 페소아의 시선집이 올해 안에 출간될 예정이죠?
네, 올해는 무조건 나올 거예요. 문학과지성사와 워크룸프레스에서 두 권이 나와요.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올 책은 페소아의 본명에 집중해 있고요. 워크룸프레스의 책은 페소아의 이명들에 집중해 있어요. 각기 다르죠.
저를 지워내고 싶었어요
우리나라에서 페소아가 대중적으로 알려진지 얼마 안 됐잖아요. 초기에 어떤 모습으로 소개하는지가 굉장히 어렵고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제가 번역자나 학자였다면 달랐을 것 같은데, 저는 작가잖아요. 그러니까 저만의 색깔이 강한 편이기는 한데요. 시인이 시인을 소개하거나 작가가 작가를 소개하는 경우를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 재밌기는 한데, 확실히 연구자가 아니다 보니까 ‘내가 본 페소아’가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걸 처음부터 굉장히 의식했고 배제하고 싶었어요. 페소아가 셰익스피어처럼 이미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면, 제 색깔대로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굉장히 학자적이고 번역자적인 자세로 페소아를 대했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객관화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굉장히 겸손한 자세로 했던 거죠. 저를 내세우기보다.
나중에는 ‘김한민이 본 페소아’도 만날 수 있을까요?
후속 연구나 번역이 더 많이 나와서 어느 정도 안정기를 이룰 때, 진짜 독창적인 ‘나만의 페소아관’ 같은 걸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현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읽었고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조금 합의하는 부분들, 팩트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들 위주로 담았다는 거예요. 그래도 제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건 ‘최대한 균형 잡힌 페소아 소개’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죠.
“이 책은 페소아를 찾아 떠난 기행문이라기보다 ‘체류문’에 가깝다.”고 쓰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첫 번째 의미는, 저는 여행하는 걸 안 좋아해요.
정말요? 페소아와 달리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웃음).
아니에요. 페소아와 거의 비슷한 정도인 것 같아요(웃음). 저는 여행하는 걸 귀찮아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그냥 그 도시에 계속 있고 싶지, 뭘 보고 싶은 게 별로 없어요. 여행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여행기를 썼다고 말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림 여행에 관해서 책을 쓰기는 했지만 그건 조금 특수한 거고요. 점점 더 여행을 안 좋아하고 있는 중이에요(웃음). 그런데 체류는 좋아해요. 그래서 체류문에 가깝다고 썼어요. 오해가 없어야 될 것 같았거든요. 여행기라고 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어디를 가보고, 페소아의 발자취를 쫓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회의가 있어요. 페소아에게 영향을 받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페소아가 갖고 있던 여행의 무용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여행이 무용하니까 자동적으로 여행기 자체는 거의 무용에 가깝게 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한 사람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그 부분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죠.
결국은 페소아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셨어요(웃음).
그런 셈이죠. 저는 언어가 더 중요하기는 했지만요. 그걸 막을 필요는 당연히 없는 거고,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죠. 어쨌든 이 책은 체류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해요. ‘리카르두 레이스’도 그렇게 말했어요. 자기가 거짓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윤리적인 게 아니라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요. 저도 그래요. 정확하지 않은 말 되게 싫어해요. 그래서 한사코 체류기라고 적어놨는데, 실제로도 그랬어요. 계속 리스본에 있었으니까요. 완전히 다르거든요. 리스본에 한 번 들러서 설레는 마음으로 에그타르트를 먹는 심정과, 체류하면서 이민국에 가고 언어를 배우는 심정은.
여행 때마다 그림 도구를 가지고 가시잖아요. 포르투갈에도 챙겨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책 속에 작가님의 그림이 없어요. 왜 안 넣으셨어요?
페소아에 대해서 한 번 그린 적은 있었어요. 누가 부탁을 해서 잡지에 그렸었는데요. 제가 리스본에 살았기 때문에 페소아를 그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페소아에 관한 온갖 기념품들이 너무 많거든요. 중절모, 동그란 안경, 콧수염, 나비넥타이, 그게 너무나 아이콘화 되어서 지겨웠어요. 그런데 그걸 빼고 페소아를 그리는 것도 쉽지 않고. 저는 별로 페소아 자체를 그린 적이 없어요. 리스본에서 그린 그림들의 대부분은 『비수기의 전문가들』에 나왔죠. 페소아의 심상, 시상에 젖어서 그린 건 많아요. 그렇지만 나도 중절모를 그리거나 중절모를 조금 다르게 그리는 거엔 별로 의미를 못 찾았어요.
지금은 어떠세요?
이제는 서울에 왔기 때문에 아이콘화 된 페소아의 기호조차 그리워서 그리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전혀 그런 게 배고프지 않았어요. 오히려 배가 불렀죠. 포만감을 넘어서 지겨웠기 때문에 똑같은 거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결국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 책에서 가능한 저를 지워내고 싶었거든요. 어쨌든 김한민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페소아에 더 주목하고 싶었어요.
저는 『불안의 책』 을 모르겠어요
『불안의 책』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죠. 누군가 한 줄 평을 묻는다면 “내게는 ‘잠 못 드는 밤을 위한 책’이었다”고 답하실 거라고요.
잠 못 드는 밤에 쓰일 수 있는 책이고요. 잠 못 드는 밤을 달래줄 수 있는 책이에요. 잠 못 드는 밤에 가장 읽기 좋은 책이고. 실제로 페소아가 ‘수아르스’로 빙의돼서 밤마다 쓰기도 했죠. 밤이랑 되게 어울리는 책이에요. 밤과 새벽. 그래서 제가 ‘잠 못 드는 밤을 위한 책’이라고 썼는데요. 그게 『불안의 책』을 폭력적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아요. 다양하고 파편화되고 너무나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책이잖아요. 만약 ‘불안의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해 주세요’라고 물어봤다면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책입니다’라고 한 마디를 했을 것 같아요(웃음). 사실 『불안의 책』 번역 제안을 몇 번 받았는데, 고민 중이에요. 이미 여러 권이 나왔고, 물론 포르투갈어 번역은 한 권밖에 없지만, 이걸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한다면 제목도 조금 바꾸고 싶기는 해요. ‘잠 못 드는 밤의 책’이라든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불안의 책』 과 페소아를 ‘폭력적으로 환원시켜서’ 말하는 걸 보신 적도 있어요?
있죠. 저도 들은 이야기이지만, 『불안의 책』을 보고 ‘너무 스위트하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속된 말로 ‘허걱’ 했거든요. 왜냐하면 이 책에는 굉장히 까칠하고, 되게 날카롭고, 거의 준엄할 정도의 비판도 들어 있잖아요. 스위트하다는 말과 반대로 ‘굉장히 웅장한 책’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래도 될까 싶어요. 제가 볼 때 『불안의 책』에 대해 설명할 때 제일 자연스러운 반응은, 제가 정답을 제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누가 물어봤을 때 ‘음...’이 적당한 표현이에요. 할 말을 찾는 거죠. 『파우스트』도 그렇고 바이블도 그렇고 금강경도 그렇고,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는 건 걸작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아니잖아요. 어떤 때는 걸작이나 경전에 조금 더 가볍게 접근할 필요도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그 풍부한 걸 하나의 말로 환원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사실 『불안의 책』 몰라요. 제가 어떻게 『불안의 책』을 알겠어요.
『불안의 책』과 관련된 챕터에는 파편화된 글을 실으셨어요. 『불안의 책』의 형식이 그렇듯이요.
편집자 분들 사이에도 여러 의견이 있었어요. 읽기 좋게 해야 되는 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저는 웬만하면 그냥 살리자고 했어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는 『불안의 책』 모르겠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그 책에 대해서 제가 해설자인 양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저도 파편화되어 떠오르는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죠. 그런 면에서 그냥 정직하게 쓴 것 같아요.
‘그래서 페소아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도 대답은 같겠네요. ‘모르겠어요’라고 답하실까요?
그렇죠. ‘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걸 이야기한다면’ 하고 말하겠죠. 페소아를 1년 정도 공부했을 때 잠깐 한국에 들어와서 독자와의 만남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 제가 한 이야기 다 후회해요. 그 이후로 달라진 것도 있거든요. 진짜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점점 그런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요. 이번 주에도 그런 시간이 있는 것 같은데(웃음), 가능한 1인칭으로 말하고 싶어요. ‘나는 이렇게 느꼈다’고 말할 수는 있잖아요. 불경에 보면 항상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하는데, 저는 그 문장으로 시작하는 게 마음에 들어요. 페소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게 조심스럽고 싶고요. 이 책이 제 부담을 덜어줬으면 좋겠어요. 페소아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면, 제가 이런 이야기를 안 해도 될 거잖아요. 어차피 사람들이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받아들일 테니까요. 그렇지만 지금처럼 페소아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상태에서는 약간 부담이 있고 신경을 쓰는 거죠. 페소아를 아끼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가능한 한 잘 소개하고 싶은 심정이 있어요.
이번 책을 쓰실 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페소아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나는 이렇게 봤다’는 이야기를 하신 거 아닐까요?
맞아요. 제가 꼭 말하고 싶은 건 이 책에서 끝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앞으로 나올 페소아의 산문, 이미 나와 있는 『불안의 책』 , 곧 나올 시선집까지 반드시 도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페소아 읽기’가 최소한 시작되는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페소아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고 ‘이런 사람이구나’ 단정하지도 말고, 제 말을 믿지도 말고요(웃음). 페소아를 직접 확인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페소아김한민 저 | arte(아르테)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나 수년간 그곳에 체류하면서, 리스본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작가를, 하나이자 여럿인 이 신비로운 인물을 깊숙이 탐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