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책을 두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나도 글이 쓰고 싶어졌다”다. 한 독자는 “잘 팔리는 글쓰기 책은 희망보다 절망의 도구”라고 『강원국의 글쓰기』를 평했는데, 이것 또한 큰 상찬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책 덕분에 주 5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책만 읽고 있으려니 손이 간질간질했다. 일로 하는 글쓰기 외의 글이 몹시 쓰고 싶어졌다. 당장 블로그를 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평소 쓰지 않는 친절한 문체로, 하지만 특정 독자층을 상상하면서.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회장님의 글쓰기』로 소위 대박이 났다. 강연만 해도 충분히 먹고 남을 상황. 강원국은 진짜 쓰고 싶었던 책을 쓰기로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세 번째 책 『강원국의 글쓰기』 . 대통령, 회장님의 글은 고스트 라이터로 썼다면 이번 게임은 다르다. 기업에서 17년, 청와대에서 8년, 출판사에서 3년, 글로 밥벌이를 하면서 터득한 글쓰기 노하우를 집약했다. 글 좀 읽는 사람들은 안다. 강원국처럼 쓰고 말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그의 민낯이 궁금했다. 글과 말이 잘 이어지는지, 어우러지는지. 지나친 겸양이나 과장은 없는지, 왜 이렇게 다들 강원국이 좋다고 안달하는지 샅샅이 캐보고 싶었다. 365일 이어지는 강연, 라디오 출연은 지나치게 소모적인 일이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30여분 대화를 나눴을까? 강원국의 캐릭터가 읽혔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느끼하지 않은, 상대의 마음을 귀신같이 읽고 있으나 굳이 먼저 아는 체하지 않는, 독자와 밀당하는 법을 아는 작가였다.
나다운 글을 써야 한다
아주 오랜만에 ‘글쓰기 책’을 읽고 설렜다. 뭔가 다른 글, 독자의 마음을 완벽히 꿰차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그렇다면 성공이다.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에 부합하는 반응이다.
누군가 묻더라. 『회장님의 글쓰기』 , 『대통령의 글쓰기』와 차별성이 있느냐?고. 그래서 답했다. “자기 이름이 더 중하지 않나?” 당연히 가장 알토란 같은 책일 거라 기대했다.
그전의 두 책은 내 글쓰기 방법이 아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떻게 쓸까?를 생각하면서 쓴 글이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내 방법이다. 겹치는 부분을 없애려고 염두에 뒀지만, 일일이 체크하면서 쓰진 못했기 때문에 100%라고는 확언할 수는 없다.
책 제목에 ‘강원국’의 이름을 걸어도 될 때가 됐다고 생각했나?
글쓰기 하면 강원국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 이오덕 선생, 유시민 작가를 넘어서려면 자꾸 쨉을 날려야 하지 않겠나? 유시민 선배만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같은 책을 쓰란 법은 없으니까. (웃음) 물론 우리 두 사람은 느낌이 다르다. 나는 유시민 선배처럼 타고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뛰어난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에 애를 먹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글쓰기 사전’을 생각했다. 노하우 40가지를 사전처럼 정리해볼 요량이었는데, 우선 좀 재밌게 읽혀야 하니까. 글 속에 40가지를 숨겨놓았다. 그걸 찾아본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된다.
2014년에 두 권을 썼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2017년에 개정판 출간) 후속작이 생각보다 늦게 나온 셈이다.
그 사이 책을 두 번 썼는데 엎어졌다. 한 번 엎은 건, 괜히 잘나가는 책을 두고 새 책을 내면 독자들이 헷갈려 할 수 있으니까 좀 기다리자고 했다. 그러다 최순실 사태가 잠잠해졌을 때 다시 썼는데, 몇 달 후에 다시 읽어 보니까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도저히 낼 수가 없겠더라. 불과 몇 달 사이였는데 차이가 확 났다. 그 때 책을 안 낸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강원국의 글쓰기』 는 만족하나?
4년 만에 낸 책이고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한도 끝도 없이 든다.
어떤 면에서?
사람이 말하다 보면 생각이 더 명료해지지 않나? 책 쓸 때 생각나지 않았던 게, 강연하다가 떠오르면 미치겠다. (웃음)
글쓰기 노하우 40가지를 찾는 게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숙제일 텐데,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건 ‘독자를 염두에 둔 글쓰기’다. ‘독자’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체화라고 할까? 훈련이 된 것 같다. 그동안 나의 글쓰기는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이었다. 대통령은 내 글을 어떻게 생각할까? 회장님은 내 글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민해야 했으니 검열이 심한 편이다.
『회장님의 글쓰기』 의 카피가 ‘상사의 마음을 사로잡는 90가지 계책’이었다.
독자를 상사 대하듯 하면 좋은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강원국의 글쓰기』에도 직장인들을 위한 꼭지가 많았는데, 그러면 너무 자기계발서 느낌이 난다고 해서 생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원고를 쳐냈다. 아무래도 이 책의 주 독자가 직장인이라는 생각했는데, 내가 또 출판사에서 하는 말은 잘 듣는다. 저자의 말을 들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도 맞는 이야기고.
이번 책의 카피는 ‘남과 다른 글쓰기’다. 남과 다르게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을 한 줄로 답한다면?
나다운 글을 써야 한다. 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가능한 글쓰기다.
책에 아내 이야기가 계속 나오더라.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하나의 전략으로 읽혔다.
아내 이야기가 나오는 건 내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단 나는 아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결혼한지 29년이 됐는데, 대학 1학년 때부터 4년 동안 연애를 했으니 33년을 지지고 볶으면서 산 셈이다. 아내도 현재 잡지사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묘한 게 아내는 법학, 나는 외교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글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평생 글동무로 지내다 보니 아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내가 강원국의 모든 글의 첫 독자이자 열렬한 지지자이더라. 18쪽에 이렇게 썼다. “그렇다면 글쓰기 자신감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내 글에 호의적인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생각난 분한테 당장 전화했다. “내 곁에 오래 있어달라고” 청했다.
(웃음) 중요하다. 글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미국의 긍정심리학자 ‘바바라 프레드릭슨’은 “성공한 조직은 칭찬과 긍정이 부정적 반응보다 3배 정도 많다”고 했다. KBS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을 보면, 서양과 동양 학생을 대상으로 공부에 대한 생각 차이를 실험을 통해 비교했는데, 서양인은 더 잘하기 위해 힘쓰는 데 반해, 동양인은 못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글에는 네 가지 반응이 따른다. 지적, 위로, 격려, 칭찬이다. 네 가지 모두 선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글쓰기에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역시 칭찬이다.
아내가 이번 책을 두고는 어떤 말을 해줬나?
『대통령의 글쓰기』 보단 안 팔리겠네? 너무 욕심내지 말라고 했다. (웃음)
그렇다면 첫 번째 책은?
나를 다시 봤다고 하더라. 깜짝 놀랐다고. 뭐에 놀랐냐고 물으니, 첫 번째는 그렇게 당신이 고생한 줄은 몰랐다, 두 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이 깊은 사람인지 몰랐다, 세 번째는 ‘당신 참 글 잘 쓴다’였다.
인정하나?
(웃음) 『대통령의 글쓰기』를 내고 나서 다시 읽은 적이 한번도 없다. 궁금하기도 하지만, 얼굴이 화끈거려서 못 보겠다. 왜 이렇게 썼나? 민망할 것 같기도 하고. 후회할 것 같기도 해서 안 본다.
작가에게도 뚜렷한 캐릭터가 필요한데, 강원국은 뭐랄까. 친근한 아저씨? 속에 있는 말 다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 불쌍하게 보이고 싶었다. (웃음) 왠지 도와주고 싶은 캐릭터가 내 설정이다. 글쓰기 책을 보면 잘난 체들을 많이 하지 않나? 이렇게 써라, 저렇게 쓰라고 말하다 보면 계속 잘난 척이 되는데, 그러면 독자들이 불편하다. “제가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당신처럼 힘들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실제 내 모습이기도 하고. 책은 텍스트로 읽기도 하지만, 저자의 육성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저자가 캐릭터를 갖고 있을 때, 훨씬 더 와닿는다. 나는 세 가지 방법을 썼다. 비틀기(의외성), 돌려치기(반전), 바보 되기(가학)이다. 마지막 웃기는 한 줄을 먼저 썼다. 이 한 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앞에 자락을 깔고 공을 들인다. 소설 작법을 주로 활용했다. 소설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 가운데 먼저 배경으로 자락을 깔았다.
“글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라고 했다. 이 문장을 읽는데 통쾌하더라. 끝끝내 “나는 관종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보는데, 멀미가 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이 욕구를 너무 누르고 산다. 나는 그동안 너무 눈치를 보고 살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누군가를 위한 글을 썼으니까. 그래서 이에 따른 반작용도 있는 것 같다. 말과 글에 관한 책이 지금 많이 팔리고 있지 않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집단에 묻어가는 태도로만 살 수 없다. 말에서 이제 글로 넘어간다. 누구라도 글을 쓰고 잘 쓸 수 있는 세상이다.
독자를 내 편으로 두고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 책에서 가장 좋았고 인상적이었던 글쓰기 노하우는 ‘독자의 마음을 사는 법’이다. 285쪽에서 “독자를 읽고 독자 비위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 작가”라고 했다.
직장 글쓰기를 예로 들어보자. 상사에게 관심이 있고 상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내 글의 독자인 상사의 취향과 성향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상사와 가깝지 않으면 상사가 가진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 상사에게 자신의 기획이나 아이디어를 표현할 기회가 없으니, 상사가 보고서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글재주가 있고 아이디어가 많아도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독자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도 했다.
글은 독자가 읽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독자는 내 글을 읽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내 글의 주인이 된다. 독자가 이해하고, 동의하고, 공감하고, 설득당하고, 감동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 이것이 글쓰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다. 우리가 직장에 가면 상사의 안테나에 잘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나? 마찬가지다. 독자 입장에서 쓰려고 자꾸 노력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 혼자 쓰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독자를 앞에 두고 쓰는 게 좋다. 왜 혼자 쓰려고 하나? 글쓰기는 2인3각 경기다.
출판사에서 편집주간으로 약 3년간 일했다. 편집자로 일한 경험이 책 쓰기까지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물론이다. 일단 편집자의 마음을 잘 안다. 책은 저자와 편집자가 함께 걸어가야 한다. 편집자가 내게 무얼 기대하는지 나는 안다. 결정적으로 어떻게 써야 잘 팔리는 지도 알고. 1년 이상 출판사에서 고민해봤으니까, 전혀 안 한 분보다는 나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출판사에서 2년 이상 일하면 책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책을 쓰고 싶다면 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것보다 출판사에서 일해보는 게 좋다. 취업이 어려우면 무급으로라도.
“글도 기교보다는 그 사람 자체가 얼마나 솔직하고 진실하며 진정성이 있는가에 달렸다. 글을 잘 쓰려면 잘 살아야 한다.”(317쪽)고 했다.
강연을 가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잘 살아라.”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사람들이 막 감동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왜 좋나? 그 사람이 좋기 때문이다. 그 분처럼 살고 싶고, 따르고 싶기 때문에 좋은 거다. 좋아하는 사람의 글은 어떻게든 좋은 거다. 좋아하는 사람의 글은 다 좋은 거다.
(웃음) 정답이다.
내가 호감이 있는 사람이 되면, 내 글은 좋아진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면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살면 쓸 거리가 생긴다. 이오덕 선생님이 “삶은 곧 글”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나? 어찌 보면 사는 것과 쓰는 것은 맞물려 갈 수밖에 없다.
강원국은 선플이 확실히 많더라. 그래도 종종 악플이 달릴 텐데 어떻게 대처하나?
고맙다고 댓글을 쓴다. 하지만 진심은 아니다. 고맙다고 댓글을 달면서 트라우마를 없애는 거다. “당신이 정말 잘 봤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저는 가장 두렵습니다”라고 거하게 칭찬하면서 대댓글을 달면, 그 분은 “미안합니다. 제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다시 댓글을 쓴다.
“구성요소를 알면 글이 써진다”고 했다. 소설 목차를 보며 가슴이 뛰었다고. 『강원국의 글쓰기』 목차를 다시 꼼꼼히 읽었는데, 위트가 넘친다. 이 목차를 읽고서 이 책을 안 읽고는 못 배긴다.
예스24에 자주 들어온다. 책을 검색해서 보면 목차가 쭉 나오지 않나? 목차를 보면 얻는 게 많다. 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독자를 끌어당기기 위해서 구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목차야말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책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붙들어두는, 치밀하게 짜인 각본 같은 거다. 책과 친하지 않은 분이라면, 목차를 꼼꼼하게 봐라. 이 책, 무슨 내용이야? 살까 말까 고민될 때 목차를 보면 책을 잘 알 수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을 쓴 은유 작가가 말했다. “비밀글만 쓰면 늘지 않는다.” 『강원국의 글쓰기』에도 같은 결의 이야기가 나온다. “투명인간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 문장을 읽고 보니, 강원국이 다시 보이더라.
어쩌면 이 문장이 『강원국의 글쓰기』 의 핵심이다. 혼자 일기를 쓰고 SNS 비공개로만 글을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독자를 두고 써야 글이 는다. 독자를 내 편으로 두고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독자를 내 편으로 두려면 특정 독자를 만들 필요가 있다. 막연한 독자는 없는 것과 똑같다. 독자는 중력 같은 존재다. 마음껏 활개 치고 싶을 때, 나를 자꾸 당긴다. 그런데 생각해봐라. 중력이 있으니까 글을 쓸 수 있지, 진공 상태라면 글을 쓸 수 있겠나?
온라인 글쓰기는 호객 행위라고 했다. 독자는 즉각적으로 감응하거나 응답할 수 있는 글에 반응한다고.
온라인 독자는 다이제스트를 좋아한다. 정리해줘야 한다. 또한 패러디를 좋아한다. 아포리즘을 즐긴다. 명언이나 멋진 구절, 랭킹, 유행, 영상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핫해야 한다.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고 한동안 공감이 '빵'이었다. 메아리 없는 글쓰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내가 읽는다고 생각하고 계속 썼다. 누가 읽지 않아도 축적된 자료는 내게 소중한 추억이 되니까. 한 사람이라도 읽는 사람이 있으면 써야 한다. 그 사람에게 고마워서라도 써야 한다. 회사에서는 니즈(needs)로 썼고 블로그와 페이스북은 원츠(wants)로 쓴다.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쓰면 그건 라이크스(likes)다.
어떤 강연을 가도 후회한 적이 없다
강연을 상당히 많이 하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려면 체력이 많이 소모되지 않나? 글 쓸 힘을 어떻게 비축하는지 궁금하다.
글과 말은 서로 오가야 한다. 말하기 전에 써보고 써본 것을 말해야, 글쓰기와 말하기를 잘할 수 있다. 어떤 작가들은 글만 쓰는데, 말을 하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을 잘하는데 글을 안 쓰는 사람들은 글을 좀 써야 한다. 그러면 말이 더 정교해지고 깊이가 생긴다. 쓰기 전에 말해보면 알아듣기 쉬운 글을 쓸 수 있다. 강연을 하면서 이 점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에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청중들의 진심 어린 눈빛을 자주 접하면, 강연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정말 그렇다. 단 한 명이라도 내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어 경청하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내가 나를 표현하는 즐거움, 인정 받는 즐거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는 즐거움이 한꺼번에 온다. 어떤 강연을 가도 후회한 적이 없다. 천 번이 넘는 강연을 했어도 ‘오늘은 잘못 왔다’ 생각한 적이 없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게 또 하나 있다. 강원국에게 인복이 많다는 사실이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내 인생을 쭉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누군가 나를 항상 도와줬다. 최순실 같은 사람도 나를 도와줘서, 『대통령의 글쓰기』가 잘되지 않았나. 이번에는 유시민 선배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 『역사의 역사』가 『대통령의 글쓰기』와 같은 날 출간되고, 쪽수도 같고, 책값도 같다. 유시민 선배 책이 지금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등이다. 나는 계속 선배한테 엮여 가야 한다. 내가 조금만 따라가도 나는 선전하는 거다. 같이 하고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선배는 모르겠지만 나는 좋다. (웃음)
칼럼이나 기사를 읽을 때, 인상이 찌푸려지는 글이 있나?
첫째, 자기도 잘 모르고 쓴 글일 때. 둘째, 한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 때, 즉 중언부언할 때. 셋째, 문장이 느끼할 때. 문장에 지나치게 멋을 부렸거나 화장을 진하게 한 글을 보면 좀 싫다. 콘텐츠가 없는 사람이 쥐어짜면 최악이다. 유시민 선배 같은 분이 쥐어짜면 멋있는 글이 가능하지만.
강원국에게 유시민이란?
나의 벤치마킹 모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주위에서 시샘도 많이 받을 텐데.
나는 안티가 많지 않은데 이유를 따져보면 내가 좀 불쌍한 캐릭터다. (웃음) 왠지 돌봐줘야 할 것 같은 캐릭터라서 미움을 안 사는데, 지금은 좀 질투를 받는다. 내가 60점이라는 걸 아는 친구들이 “강원국 얘 왜 이렇게 잘나가? 이거 아닌데” 생각한다.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나?
겸손하면 더 재수없다. 그냥 가는 거다. (웃음) 나는 예순을 향해 가면서 가벼운 사람이 되기로 작정했다. 내가 운으로 얻은 게 많다. 내 역량보다 더 얻는 게 생기면 그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환원하지 않으면 크게 당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도저히 해답을 못 찾겠다는 사람에게. 딱 한 마디만 해준다면.
하루에 세 줄만 써봐라. 내 삶이 바뀐다. 이건 틀림 없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쓰라는 게 아니다. 뭐가 됐든 세 줄이라도 써봐라. 뭐라도 한 번 써봐라. 인생이 달라진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어볼 작정을 한 독자에게는?
이 책은 숨은그림찾기를 해야 하는 책이다. 곳곳에 글쓰기 노하우가 숨어 있다. 총 40가지다. A4 한 장을 책상 위에 놓고, 40가지를 찾아 써봐라. 그러면 이 책을 다 읽은 거다. 힌트를 몇 개 말하자면 몰입으로 써라, 기억과 상상으로 써라, 습관으로 써라 등이다.
후속작도 글쓰기 책인가?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쓸 게 아직 많다. 청소년의 글쓰기, 직장인의 글쓰기, 여성의 글쓰기, 어르신의 글쓰기, 공무원의 글쓰기 등 정말 많다. 공무원들이 이제 글쓰기로 승진 시험을 본다. 그래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성들에겐 감정 치유의 글이 필요하다. 울분을 토해내고 한을 풀어야 한다.
형광들 불이 꺼지면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잠들지 못했다. 동트기를 기다렸다. 대학 시절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하고 집에 간 날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책을 읽었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신혼이던 아내에게 하소연하다 복받쳐 울었다. 나만의 분투였다. 투명인간으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나는 오늘도 아는 것이 재미있어 책을 읽는다. 동영상 강의를 듣는다. 생각난 것은 메모한다. 그리고 강의할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된 걸 말한다. 일상이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다. 이 네 가지가 리듬을 타며 나를 드러낸다. 누구의 간섭도 없고, 눈치도 보지 않는다. 날마다 새롭다. 하루하루가 충만하다. 스스로 고양되고 성숙해지는 것을 느낀다. 남처럼 살지 않는다. 내가 나로서 나답게 산다.
강원국의 글쓰기강원국 저 | 메디치미디어
앞으로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곧 글쓰기 강의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도, 하루 빨리 모든 이들이 자기 글을 쓰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