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는 1998년 결성된 힙합 그룹이다. Soul Train의 멤버로 활동을 하면서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해졌다. 조PD, DJ Uzi, Ra. D, 태완, MC 메타 등의 뮤지션과 함께했던 시기였다. 당시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에서 속사포 랩을 구사하던 손전도사는, 손아람 작가가 래퍼로 활동했을 때 쓴 예명이었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는 손아람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자 실제 사건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Fact Fiction)이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시작과 끝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면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의 힙합 문화가 펼쳐진다. 힙합에 빠진 이들은 사회적 성공이나 부귀영화를 꿈꾸지만, 음악을 하려는 근거는 성공이 아니었다. “힙합만큼은 순수하게 사랑했다”.
『소수의견』 과 『디 마이너스』 , 여러 칼럼과 방송에서 보인 손아람의 모습은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손전도사와 겹쳐 보이지 않는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를 읽다 보면 그저 ‘무모한 사람들’이 겹쳐 보일 뿐이다. 작가 손아람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그는 “이 책을 보라”라고 말한다.
이 책이 아니라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작가들에게 10년 전 본인이 썼던 소설을 다시 보라고 하면 대개 괴로워하시더라고요.
말도 안 되게 괴롭죠. 개정해야 하는 건지 절판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했어요. 다른 유명한 작가들도 자기 첫 책은 부끄럽다고 할 텐데, 제가 쓴 다른 책과는 달리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는 색깔이나 글을 써가는 방식도 달랐고요. 차라리 습작에 가까워요.
한국의 힙합 1세대를 목격한 사람으로서 그 시대 힙합의 오마주 혹은 역사가 담겨 있어요.
역사라고 하면 거창하고, 팬픽션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초의 시작 지점에서 같이 한 건 맞아요. 20년이 지나고 뒤돌아보면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활동 시기상으로는 개척자인데, 지금의 문화를 개척했다고 말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팀은 아니었어요. 힙합의 조상이라고 하기에는 사실도 아니고 부끄럽죠.
요즘 힙합 신을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일 것 같아요.
그 당시 힙합을 해서는 미래를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없을뿐더러, 미래가 있다고 말하고도 다들 착각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안 믿고는 버틸 수 없으니까요. 음악으로 성공하겠다고 가사로 말하지만 실제로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었고 다 가짜인 거죠. 지금 힙합 신과 그 당시 차이는 음악으로 성공하는 게 정말 가능해졌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저희가 할 때는 특유한 힙합의 태도가 일종의 거짓말이었어요. 지금 친구들은 훨씬 거침없이 하면서 그 도구를 자기 삶의 도구로 잡을 수도 있는 시대를 살고 있죠.
‘나’가 많은 부분 허구라고 선을 그어놓고 시작했지만, 실제 ‘손아람’이 많은 부분에 들어가 있어요.
그게 이 책에 제가 가지는 부끄러움이자 실수일 거예요. 작가로서 제가 만약 지금 책을 썼다면 이렇게 절대 쓰지 않을 거거든요. 나만 쓸 수 있는 구체성을 가진, 실화에 바탕을 둔 방식으로 저 자신을 끼워 넣다 보니까 소설 속 등장인물이 재구성되어 있음에도 실제처럼 읽히죠. 굉장히 무책임하기도 하고 장난치고는 너무 나간 장난인데, 이제는 누구나 저를 작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걸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그런 것들이 부담스러워요.
그런데도 개정판을 낸 이유가 있다면요?
실수가 있다면 글쓰기의 전략적인 면인데, 제 삶의 어떤 부분을 분명 담고 있어요. 2005년에 처음 썼을 때 저한테는 중요한 시기였어요. 이 책이 없었으면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을 거예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활동을 중단하고 방황을 많이 하다가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를 쓰면서 극복할 수 있었고, 다행히 제 이야기였기 때문에 소중한 글이기도 해요.
생각했던 독자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손아람이라는 작가를 알고 싶어서 그의 책을 읽는다면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를 빠뜨리면 안 될 것 같아요. 제 책 중에서는 가장 이질적이면서 저에게 가까운 부분을 제일 많이 담았어요. 작가로서 써야 할 글을 선택한다는 의식을 갖기 전에 써서 오히려 더 솔직한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손아람의 진실을 보려면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를 읽어야겠네요.
네, 정확해요. (웃음)
마음이 돌아가는 방식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디 마이너스』나 『소수의견』도 그렇지만,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야말로 청춘의 이야기가 될 텐데요.
청소년 소설에 가까운 청춘 소설이죠. 표현 방식은 미흡해도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서사예요. 『소수의견』도 비교적 젊은 변호사가 국가와 부딪쳐가는 이야기였고, 『디 마이너스』는 운동권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 실제 만나기는 드문 유형의 사람들이거든요. 비현실적인 감각으로 자기가 상처받든 극복하든 일단 부딪치는 유형의 사람들이요. 비현실적으로 꿈밖에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부딪쳐 가는 이야기를 매우 좋아해요. 그게 심지어 제 삶과 직접 결합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무모한 사람들이 그려져요.
저도 그렇게까지 무모한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사람을 옛날부터 좋아하고 어떤 면에서는 존경해요. 처음 만난 게 음악을 하면서였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저랑 비슷한 제도권 아래서 공부하던 사람들만 봤는데, 스무 살 남짓한 Ra.D나 태완 같은 캐릭터를 실제로 보니 완전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안전망 따위 하나 없이, 뭔가를 이루어낸다는 보장 없이 미친 듯이 음악만 하는 거예요. 대개 불안하면 자기 일에 집중력을 못 가지게 마련이잖아요. 이를테면 글 쓰는 걸 아무리 좋아해도 직업이 되고 내 돈벌이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집중력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태도 없이 음악을 하는 거예요. 그 시간을 또 즐거워하고요. 대학에서 훨씬 머리가 좋고 사회를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올바르고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저는 반대편 사람들에게 더 매력을 느꼈던 거죠.
왜 이런 사람들은 무모할까요?
순수하게 개인적인 의도와, 대의로 표현되는 사회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개인적인 이유일 것 같아요. 대의에 사로잡힌 자기 삶의 관성이 결국 책임감으로 바뀌어서 자기 삶을 완성하고 싶다는 욕망이요. 이만큼 살아왔는데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를 자기 삶의 완성이라고 표현하는 행위, 그게 결국 저는 개인적인 이유라고 보거든요.
사람들을 소설 속에 그려내는 데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도 그래요. 이야기를 떠올릴 때 세계와 배경, 사건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인간이 제게 주는 영감을 바탕으로 배경과 사건을 붙여요.
좋은 예술가로 인정받는 것 이상으로 사회적인 걸 바꾸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무모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은 욕망과는 또 다를 것 같아요.
인물을 표현한다는 것은 순수하게 내 기예로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마음이 돌아가는 방식 같아요. 세계가 이렇게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모습을 글로 표현하려는 욕망은 머리로 하는 거죠. 저 매력적인 사람을 내 이야기에 담아내고 싶다는 건 마음이 이끌리는 쪽이에요. 무모함이 저를 설득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 사람이 제게 감동을 줘요. 제가 의식하는 세계의 모습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고요. 둘이 완전 다르지 않은 게, 아주 엉뚱한 사람에게 끌리진 않거든요. 부동산 투기에 대한 열정으로 큰돈을 버는 사람이 저에게 감동을 주진 않아요.
가슴이 따르는 방식보다는 머리로 쓰는 모습, 강연하거나 칼럼을 쓰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어요.
고민이에요. 제가 글쓰기로 직업을 택했을 때는 머리로 하는 게 좋아서 택한 게 아니거든요. 만일 그랬다면 소설가로 시작하지 않았겠죠. 다른 글쓰기는 제 표현과 생각을 드러내는 기술이 중요하다면, 문학적 글쓰기는 숨기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늘 문학에 매료됐었어요. 심지어 역사적인 저서라 할지라도 잘 썼다고 감탄하는 것 외에 한 번도 작가가 주장하는 방식대로 제 삶을 움직여야겠다고 설득된 적은 없어요. 늘 감정으로 설득하는 방식에 움직여 왔고 그런 글을 쓰고 싶었어요. 하다 보니 계속 하고 싶지 않았던 길로 끌려가게 되네요.
끌려가는 것 치고는 말하기를 힘들어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머리를 더 쓰는 사람이고 광기를 부리는 유형의 예술가는 아니에요.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이기도 해요. 요즘은 정작 저를 부르는 건 다 강연회나 칼럼 자리예요. 칼럼은 쉽게 털어낼 수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끌려가는데, 소설은 긴 호흡이 필요하잖아요.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고민을 많이 해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과 칼럼을 쓰는 머리를 화해시키려고 하나요?
화해보다는, 그 두 개가 그냥 저인 것 같아요. 머리로 세계를 바라보는 저와 그 세계에서 마음에 안 들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바꾸는 데 기여하겠다는 정치적인 제가 있어요. 다행히 그 두 개가 다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두 개가 늘 담겨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예쁜 말 하는 건 제 역할이 아니에요
올해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와 『세계를 만드는 방법』을 출간했어요.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에서는 이준석 씨와 같이 대화를 주고받았어요.
대화만 보면 대화하기 좋은 사람이에요. 생각의 방향이 맞아도 대화가 어려운 사람이 있고, 같은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어도 대화하기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어요. 같이 논쟁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는데, 이준석 씨는 생각은 안 맞지만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SNS에서 댓글로 논쟁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를 매우 논쟁적인 유형의 인간으로 알지만, 정서적으로 논쟁을 힘들어해요. 대화가 논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면 정서적으로 왜 이걸 하고 있어야 하는지 잘 못 받아들이거든요. 차단도 마음을 불편하게 해요. 다른 방식의 공격이잖아요. 언제 나를 공격할까 싶어서 팔로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느 시점이 지나니까 제가 못 버티겠더라고요.
그래도 SNS를 도구로 자주 사용하는 편이죠?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던 시기는 문화문제대응모임 활동을 할 때였어요. 다른 활동가들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고 일종의 입법 로비를 하기 위한 이슈를 만드는 활동으로는 SNS가 유용했거든요. 하지만 작가로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피드백을 주기 때문에 그걸 의식하면서 글을 쓰기 쉬운 도구라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슬슬 떠나야 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생각을 하죠.
문단 비판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하셨어요.
제가 등단 방식을 거치지 않았던 이유는 저항하겠다는 게 아니라 정말 작가가 꿈이 아니라서 몰랐어요. 진지하게 작가가 되겠다고 하면 힙합을 이야기하는 소설로 제 경력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랬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 같고요. 문단 비판은 사실 권력이라고 말했던 문단이 점점 작아지고 출판업계가 약해지면서 의미가 없어졌어요. 이런 방식으로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고 언젠가 대형 출판사도 불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결국 그때가 온 것 같아요. 지금은 문학 권력이라도 말하기도 민망한 느낌이 들어요.
권력 장을 성찰하면 자연히 자기 권력을 생각하잖아요. 작가님 스스로 자기 권력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을 것 같아요.
여러가지로 있죠. 일단 제가 무슨 말을 하든 훨씬 쉽게 공론화돼요. 심지어 공론화를 원하지 않았던 말조차 퍼지는 걸 보면서 말을 안 해야 된다는 고민이 들어요. 책을 쓰는 데 조금 더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책은 늘 안 팔리기 때문에 공정하거든요. (웃음)
『망국선언문』에 “언어로 주는 위안은 위약으로서 효과를 다했다”는 표현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싶어서 안달하는 책이 많이 나와요. 위약의 효과가 계속되는 게 아닐까요?
영원히 계속될 거로 생각해요. 사람들이 책을 살 때는 일종의 자기 최면적인 주술이 작동하고 있을 거예요. 그게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 최면이 실제로 작용해서 잠시 마음이 좋아진다면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위약만 있어서는 안 되죠. 약효는 의심스러워도 안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도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이야기 없이 위약만 있으면 문제죠.
책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공산당 선언』을 추천하기도 했어요.
출연자에게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논쟁적인 책을 최대한 많이 노출하는 게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웬만하면 『공산당 선언』을 집어 들지 않잖아요. 굳이 책으로 방송을 한다면 그런 책을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작진하고도 항상 그 이야기를 했어요.
스피커가 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이에요.
방송을 열심히 잘하면 스타가 될 거라고 믿지 않아요.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손아람이 할 수 있는 말이 다른 방송인과 다르기 때문에 부르는 건데 그럼 방송에서 쓸모를 다 해야죠. 가서 예쁜 척 예쁜 말 하는 건 제 역할이 아니에요.
작가 손아람이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관념적이고, 치우쳐 있고, 자기 관념을 수호하는 데 우선순위를 많이 두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아요. 여기에는 많은 지식인의 딜레마가 있어요. 저도 사실 관념에 가까운 사람이잖아요.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쪽에 가깝지만 선호는 반대 방향의 사람들에게 늘 가 있어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되고 싶은 사람을 꼽는다면요?
살아온 삶의 궤적으로 보자면 심상정 대표 같은 사람이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라서가 아니라, 만나면 늘 에너지가 가득하고, 기본적으로 낙관주의를 지니고 있어요. 세계를 보는 낙관이 아니라 자기가 쓰러지든 실패하든 자기 일을 하겠다는 자세와 활력이 있거든요. 아무래도 자기 자신보다 세계를 많이 생각하다 보면, 특히 싸우는 입장에서는 쉽게 좌절하거나 우울해지기 쉽잖아요. 다들 폐인처럼 있을 때 에너지가 넘쳐서 끝까지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멱살 잡고 끌고 나가는 것 같아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손아람 저 | 들녘
“음악이라기보다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힙합이라는 공통 관심사 하나로 뭉친 가수와 관객들은 공연 내내 위계 없이 함께 포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