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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경쟁하지 않을 자유를 아이들에게 선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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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아이들은 정답을 맞히는 훈련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는다. 정답으로 가는 길을 탐구하고 그 과정을 말로 설명하도록 훈련된다. 수학 문제를 푸는 순간에도 논리를 찾아내고 정확한 어휘로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정해진 단답형의 인생이 아니기에 그들의 길목은 미어터지지 않는다. 순간의 실수로 인생이 미끄러지는 법도 없다. 그들이 가는 속도는 더디지만 매 순간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해준다.(258-259쪽)

 

구구단을 2년 동안 배운다. 알파벳을 3년 동안 배운다. 수영이든, 외국어든, 악기든, 뭘 배워도 일주일에 한 번씩만 수업이 있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과 ‘재미’를 놓치지 않게 하는 것.”(94쪽) 이것이 프랑스 교육의 핵심이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월경독서』 ,  『파리의 생활 좌파들』 ,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등을 쓴 목수정 작가는 “한국에 훨씬 익숙한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이 프랑스에서 주로 자란 아이가 프랑스 교육을 받는 것을 바라보는 입장”을 기록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파리에서 딸 ‘칼리’를 낳아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경험하고, 칼리의 나이 만 세 살 때부터 다시 파리로 가 프랑스 공교육이라는 자장 안에서 교육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교육이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철학의 구축이라는 사실이었다. 프랑스 학교에는 사생대회도, 등수도, 신체에 관한 어떤 규율도 없다. 미술 교사가 추리소설을 쓰게 하고, 영어 선생님이 유튜브로 청년들의 난민 캠프 활동 영상을 보여주고, 역사 선생님이 가상의 마다가스카르 여행을 숙제로 내준다. 경쟁은 타인과 하지 않고, 오직 어제의 나와 한다. 목수정은 말한다. 경쟁하지 않을 자유를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자고. 아이들에게 다른 출구를 열어주면 그것이 큰 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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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걱정해요


오랜만에 오시는 것 아닌가요? 한국에 얼마나 계셔요?

 

한 달 정도 있을 예정이에요. 이제 이틀째예요. 1년 만에 온 건데요. 올 때마다, 조심스러워요. 갈수록 더 그런 느낌이에요. 한국 사회가 보면 갑들이 다 갖고, 을, 병, 정들이 싸우도록 놔두잖아요. 혜화역 시위 때도 그랬고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도 방해하는 분들이 계시고요. 편의점주 분들도 최저임금 인상되면 힘들다, 고 하시는데요. 너무나 명확한 을과 병과 정들끼리의 싸움이에요. 이런 싸움이 격화되어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죠. 갈등과 혐오가 격화된 세상에 딱 들어오니 여러 가지로 조심하자는 생각을 하게 돼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외국에 살더라도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을 하셨잖아요. 프랑스에 살지만 한국 사회를 계속 바라보고 계신 거죠?

 

소통하는 많은 분들이 해외에 계신 분들이에요. 놀랍게 같은 빈도로, 그리고 더 자유롭게 한국 사회에 대해 얘기해요. 그나마 저는 한국에 자주 오잖아요. 그분들은 안 오시거든요. 그런데도 똑같은 강도로 얘기하고, 똑같이 걱정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있는 곳에서도 같은 이슈로 집회 하고 그러는 거죠. 쉽지가 않아요. 아무도 그 사회에서 우리를 봐주는 사람이 없는데 모여서 집회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요. 열정적으로 해외에서 시위를 같이 했고요. 한국에서는 별 관심이 없지만 그것이 우리들한테는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이제 연대체도 만들어졌고요.

 

연대체가 있나요?


『개성공단 사람들』을 쓰신 김진향 교수님을 모셔서 유럽 순회 강연도 했어요. 이제 우리가 북맹(北盲)으로부터 탈출해야 하니까요. 이런 것들이 과거 한인회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촛불집회나 세월호 유가족들과 연대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서 진행되고 있어요. 주로 세월호 때 만들어졌고, 여러 활동을 같이 하죠.

 

이번 책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에 대해 “아이가 11살 때 쓰기 시작한 책이 13살이 되어 마무리되었다”(405쪽)고 하셨는데요. 처음에 책을 쓰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처음에는 더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공적인 이야기로 막 갔어요.(웃음) 30년 이상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라는 저의 위치가 있잖아요. 한국에 훨씬 익숙한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이 프랑스에서 주로 자란 아이가 프랑스 교육을 받는 것을 바라보는 입장이 있으니까 사적인 얘기를 해도 공적인 이야기가 되겠다고 생각했죠. 칼리 아빠는 철저하게 프랑스 사람이고요. 그의 20대 때 직업이 교사예요. 철저한 교육관이 있어서요. 그런 것만 써도 되겠다 싶었는데 하다보니까 프랑스 교육을 좀 더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양쪽을 다 다루려고 했어요.

 

그래서 인터뷰도 수록이 된 거군요?


그렇죠. 내 경험만 이야기하면 편협한 얘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담았어요. 그러면서 내 편견에 대해 나도 확인하고 그랬죠. 책이 400페이지가 넘는데요. 너무 무거우면 안 될 것 같아서 10꼭지 정도는 뺀 거예요.

 

이번 책은 교육에 관한 이야기지만 교육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프랑스 사회가 가진 개인에 대한 존중은 한국 사회에 꼭 전해져야 할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먼저 “프랑스에는 유아에게만 쓰는 특유의 단어가 없다”(77쪽)는 말이 흥미로운데요. 


한국에 ‘노키즈존’이 많아서 놀랐어요. 그 자체에 대한 충격도 있지만요. 그렇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도 있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주변에 폐를 끼친 일도 있을 거고요. 프랑스는 그게 전혀 없거든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폐를 끼치도록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고요. 별로 폐를 끼치지도 않아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유아 시기부터 교육을 받는 거죠. 식탁 예절도 그렇죠. 저도 칼리에게 한 번도 가르친 적이 없는데 어디선가 배웠어요. “지금 식탁에서 일어나도 돼요?”라고 물어봐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요. 간식도 아무 때나 안 먹고요. 하루 딱 한 번 정해진 시간에 먹어요. 자기들이 마음대로 마트에서 사먹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자는 시간도 철저하고요. 이러한 기본적인 생활의 틀이 철저하게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폐를 끼치거나 어른이 아이를 저지하고 혼내는 모습을 볼 일이 없어요.

 

아주 일찍부터 한 명의 시민으로 키우는 거죠.


돌도 안 된 아기, 젖병을 들고 먹는 아기에게도 같은 식이에요. 아기가 젖을 달라고 울어도 서두르지 않아요. 천천히, 보호자가 자기 리듬대로 하는 거죠. 아기를 바라보면서 “내가 우유를 타고 있어, 곧 줄게, 기다려.”라고 해요. 그러면 아기가 진짜 울음을 멈추고 기다려요. 아기들도 보호자의 리듬에 맞추는 거죠.

 

그러니 어린이도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하고요. 어른의 말에 반드시 수긍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존재들인 거잖아요.

 

칼리와 약속이 있어서 외출을 하려는데 갑자기 칼리가 안 나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시간도 없고 해서 약속을 그렇게 어기면 안 된다고 제가 막 화를 냈는데요. 칼리가 “그렇게 화를 낼 필요는 없잖아.”라고 했어요.(웃음) 그걸 그림으로 그려두었더라고요.

 

 

‘자유, 평등, 박애’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학생들과 선생님이 수평적인 관계예요.


학생들도 선생님에게 문제제기 할 수 있고요. 선생님들도 그 비판을 빨리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어요. “그래, 맞다.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거예요.


프랑스 사회도 문제가 아주 많아요. 그래도 그나마 좋은 것은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확실하다는 거죠. 제가 인터뷰한 한 학생은 지금 대안학교를 다니는데요.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에 화를 내고 그것을 찾기 위해 대안학교를 선택했어요. 참 다르죠. 우리는 구호와 현실이 완전히 유리된 것에 너무 익숙해요. 하지만 이들은 구호가 그대로 현실이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게 참 감동이에요. 프랑스도 자유와 평등, 박애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하지만 그럴 때 훨씬 더 크게 사람들이 분노하는 거죠.

 

수사(修辭)로만 남는 게 아닌 거네요.


우리는 ‘그건 수사일 뿐이야’에 너무 익숙해요. 누가 교훈을 쳐다보고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를 테면 ‘5공’때 ‘정의사회구현’이 슬로건이었잖아요. 정의사회구현과는 정반대에 있는 사회의 수사일 뿐이었죠. 지금 말하는 ‘노동존중사회’도 똑같아요. 노동 존중이 되지 않은 현장에 사람들이 별로 분노하지 않잖아요. 노동자들만 그것에 대해 얘기할 뿐이죠. 안 지켜지고 있는 것을 분노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거예요.

 

그런 종류의 냉소는 사회에 대한 신뢰 부족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수정된다는 공감대가 있는 사회라면 더 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자신이 믿는 가치를 주장도 하고, 그 주장이 가끔 이뤄지기도 하고 해야죠. 그런 경험이 필요해요. 사실 그 방법밖에는 없거든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역사를 이끌어 왔던 것은 87년 6월 항쟁이니, 촛불혁명이니, 이런 것이지 법이 먼저 바꾼 것 별로 없어요. 먼저 움직이지 않았죠.

 

바로 그 지점에서 세월호와 촛불혁명을 거친, 특히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일찍부터 시민으로 교육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일 거예요.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정말 시위를 많이 하고요. 조직이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많이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화되기도 하고 그러면 또 새로운 조직이 생기죠. 최근에도 전국고등학생협의회 대표로 누가 당선되었다, 하는 뉴스가 있었어요. 마치 과거 한국에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에 누가 당선되었다, 하고 뉴스 나왔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들은 어쩌면 대학생들보다 더 격렬하게 단결해서 싸웁니다.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모의투표를 하고 그러잖아요. 프랑스 학생들은 지난 대선 때, 1차와 2차 투표 사이에 2차 투표 거부 운동을 직접 했어요. ‘르펜도 안 된다, 마크롱도 안 된다’는 깃발을 든 거죠. 투표권이 없음에도 했고요. 그게 무의미하지 않았어요. 마크롱 당선 당시 역대 무효표가 제일 많이 나왔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엄마가 보기에 가장 놀라운 과목은 시민윤리다.”(249쪽)라고 하셨잖아요. 시민윤리, 어떤 것인가요?


저희 학창시절에 국민윤리 과목이 있었어요. 주로 배웠던 게 어떤 철학가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는지, 하는 것이었죠. 니체는 뭐라고 말했고, 칸트는 뭐라고 말했는지를 배우는 건데요. 프랑스의 시민윤리는 참 미묘해요. 과목이 있는데 담당 교사가 따로 있지는 않아요. 고등학교는 잘 모르겠는데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역사 과목 교사가 2주에 한 번 이 과목을 가르쳐요. 다른 과목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잖아요. 담당 교사도 없고, 2주에 한 번 돌아오고, 시험도 당연히 안 보고요. 무엇보다 교과서가 없어요. 특정 내용을 암기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져주는 거죠. 그렇게 어떤 태도를 익히게 하는 건데요. 칼리는 이 수업이 참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깊게 남는 과목인 거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이 시간이 아니면 할 수 없던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이 시간에 삶에서 제일 필요한 것을 배운대요.

 

삶에서 진짜 필요한 것, 교과서 바깥의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네요.


저는 칼리에게 항상 물어봤어요. 학교에 왕따가 없느냐고요. 없다고 하더니 어느 날 왕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이 시민윤리 시간에 왕따에 관한 교육을 받은 즈음이었더라고요. 아마 그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피해자 아이가 신고를 결심한 것일지도 몰라요. 이후 역할극을 하면서 다시 따돌림에 대해 교육을 했고요. 조를 짜서 역할극을 했는데 공교롭게 칼리 그룹에 왕따 주동자가 피해자 역할을 맡게 됐대요. 그런 식의 교육이 진행되는 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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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비교는 없어요


“경쟁의 대상이 옆 사람이 아니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157쪽)라고 적은 문장을 읽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국은 완전히 경쟁 사회예요.


칼리가 중학교에 갔더니 아이의 모든 성적, 계획과 관련된 것들을 인터넷에 접속해서 볼 수 있더라고요. 비번을 주고 학부모와 아이, 교사가 함께 보는 건데요. 점수는 있지만 등수는 안 나오는 거예요. 나오는 것은 1학년 1학기 때와 2학기, 지금의 점수 그래프죠. 나의 성취도 변화를 보여주는 거고요. 반 평균만 나와요. 학년 평균은 없어요. 당연히 등수도 없고요. 모든 게 반 중심이에요. 기껏해야 30명 정도인데요. 반 평균을 기준으로 나는 어떤 과목을 잘하고 어떤 과목이 부족한지만 확인할 수 있어요. 그걸 보고 내가 누구를 따라잡아야지, 생각할 일이 전혀 없잖아요. 아주 자세하게 여러 가지 그래프를 컴퓨터에서 보여주는데 거기에 타인과의 비교는 없어요. 오직 나를 분석할 수 있을 뿐이죠. 저는 그래서 너무 안심이에요.

 

안심이요.

 

어떤 종류의 경연대회, 경진대회도 없어요. 한국은 눈만 돌리면 경연대회잖아요. 그러니까 뭘 해도 나의 우열을 평가 받아야 하죠. 칼리가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참 좋아요.

 

문화 교육도 폭넓고 다양하게 받는다는 점이 눈에 띄더라고요. 교육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이루어져요.


칼리가 클라리넷을 배워요. 초등학교 때는 음악 특성반에서 친구들과 같이 했고요. 그만 둘 수도 있고 계속 할 수도 있는데 계속 하겠다고 해서 콩세르바투아르(Conservatoire, 국립음악원)에 갔어요. 콩세르바투아르는 대부분 공립이고요. 음악과 무용이 주 과목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 1:1교육을 받고요. 수업료는 소득별로 차등 부과되는데요. 칼리는 1년에 150유로(약 19만원) 정도 내요. 그런데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 칼리가 만화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알아봤더니 일주일에 3번 가면 교재비 포함 한 달에 40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프랑스는 그러니까 돈이 거의 문제가 안 돼요. 교육의 질은 또 아주 좋기 때문에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들은 계속 할 수가 없고요. 2년에 한 번 레벨 테스트가 있거든요. 하지만 그것 역시 누군가와의 경쟁이 아니에요. 7명이 수업을 하는데 다 올라갈 수도 있고, 다 떨어질 수도 있어요.

 

교육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주는 사회네요.


프랑스에서 ‘공화국’은 중요한데요. 이들은 공화국이라는 말을 프랑스라는 말 대신 쓰기도 할 정도예요. “나는 공화국의 학교 교장이다”라는 식이죠. 교육에 대한 절대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공화국의 출발인데요. 공화국을 만들고 귀족이나 왕이 갖고 있던 권력을 시민들이 가져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시민들 한 명, 한 명이 똑똑해야죠. 학교가 그래서 만들어졌고요. 당연히 그렇게 생긴 학교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는 거고, 프랑스는 그 때문에 대학교까지 거의 무상교육이에요. 심지어 칼리 아빠는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간다고 돈 내라고 하면 “왜 학교에서 돈을 내라고 해? 이게 무슨 공화국이야?”(웃음) 이래요. 큰돈이 아닌데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인 거죠. 그래서 뭔가가 후퇴할 때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아직도 ‘자유, 평등, 박애’는 필요하다”라는 말을 해요. 계속해서 이 가치를 환기시키는 거죠.

 

그런 가치가 현재 우파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조금씩 무너지고 있잖아요. 현재 프랑스 사회에서 느낀 공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뭔가요?


엄청나게 무너지고 있어요. 마크롱 집권 1년밖에 안 됐는데 제가 직전에 확인한 지지율이 34%였어요. 원래도 그렇게 높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우파들도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워낙 정도가 심하니까 폭동이 일어날 거라고 걱정을 해요. 불평등이 너무 심화됐거든요. 특히 대학교육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요. 이전에는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 대학을 못 갈 일이 없었어요. 웬만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는 거예요. 그런데 마크롱이 대학 입학시험을 보기 전에 서류, 면접을 접수하게 하고 그 대학에서 합격 여부를 통보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 평가 기준이 학교마다 달라요. 우스운 건 프랑스의 해외령, 예를 들면 타히티 섬 등에서도 파리로 진학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들을 받아주지 않는, 지역차별이 가능해진 거예요. 이런 일이 지금 막 일어나는 중이에요. 공화국의 원칙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느냐고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어요.

 

이런 장면을 칼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최근에 마크롱이 철도노동자가 누리는 지위상의 혜택을 없애겠다고 선언해서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을 했어요. 그때 고등학생들도 다 같이 파업을 했죠. 그중 일부가 집회에 참여했다가 학교에 들어와 있었는데 경찰들이 학교에 있는 학생들을 잡아간 거예요. 이틀 동안 구속을 시켰죠.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았어요. 그게 큰 문제가 됐었고, 그 얘기를 칼리한테 해줬더니 이 정부가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도발한 것 같다는 거예요. 아니면 겁주기라고요. 그렇다면 나도 한다, 하더라고요.

 

 

노동중심 삶에서 휴가중심의 삶으로


작가님도 칼리를 통해 새롭게 배운 것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중 정말로 바꾸기 어려웠던 교육적인 태도가 있었을까요?


이효리 씨가 “훌륭한 사람 되지마. 아무나 돼.”라는 말을 해서 화제였잖아요. 그 비슷한 생각을 칼리가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테니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해요.(웃음) 그런데 저는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야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어디든 말이에요. 어영부영 보내기보다 열정의 지점을 발견해서 가꾸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웃음) 생각이 있는 거죠. 그런데 보면 칼리의 인생관은 ‘La vita e bella(인생은 아름다워)’예요.(웃음)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교육 받으며 키워진 작가님의 목표지향적인 면과 대비되는 장면이네요.(웃음)


네, 칼리는 목표지향이 하나도 없어요. 얘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친구들과 뜨거운 우정을 나누는 것 같아요. 우정을 표현하고, 친구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고, 하는 거죠.

 

한국 사회가 난민에 대한 이야기로 또 뜨겁잖아요. 연대 의식이 부족한 사회에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아요. 칼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생각을 하게 되네요.


경쟁을 도구로 성적을 올리는 건 되게 쉬워요. 얘를 이기지 않으면 대학 못 가. 쉽잖아요. 그걸 정상이라고 보죠. 다른 방법은 없다, 건강한 경쟁이다, 라면서 미화를 하고요. 하지만 경쟁 아닌 방법으로 사람은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어요. 우리 사회는 그 방법을 열어놓지 않았어요. 그걸 모르니까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와서 빼앗겠다는 거야, 가 되는 거죠. 그렇지만 내가 베푼 선행은 돌고 돌아요. 반드시 나한테도 돌아오거든요.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한 거죠.

 

앞서 10꼭지 정도를 덜어냈다고 하셨잖아요. 뺀 것 중 아쉬운 건 없으세요?


노동인권교육과 장애인교육이요. 노동인권교육은 시민윤리 교육 안에 들어가 있는데요. 칼리가 본격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었어요. 1-2년 후에 배우는 것이라 제가 직접 본 게 없어 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어요. 역사와 연관이 있는데요. 프랑스 노동자들이 1936년에 한 달 동안 총파업을 해요. 그때 상황이 지금 한국과 비슷한데요. 좌파가 정권을 기적적으로 잡아서 억압되어 있던 노동자들의 모든 꿈이 실현될 것 같은 순간이었거든요. 2주 동안의 유급 휴가, 주 40시간 노동, 통상임금의 12% 상승, 실업급여 등을 당선된 정권이 다 공약했던 것인데 실현되지 않았죠. 그래서 선거 일주일 뒤에 파업을 시작해요. 그 파업이 전국으로 확산돼서 200만 명이 참가했고, 딱 한 달 됐을 때 총리공관에서 노조 대표와 만나 노동자의 요구를 전면 수용합니다. 이것이 프랑스 사람들의 삶을 전면적으로 바꾸었어요. 노동중심 삶에서 휴가중심의(웃음) 삶으로 바뀐 거죠.

 

그 이후에 2주 유급 휴가가 5주까지 확대된 거군요.


80년대에 5주 유급 휴가로 확대됐어요. 그래서 여름에는 한 달 동안 아파트 경비도, 택배도 휴가를 가고 없어요. 심지어 방송국도 재방송만 틀고, 모든 공연장이 문을 닫아요. 모든 사람들이 쉬는 거죠. 또 여름에 휴가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때 휴가를 가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1년 내내 휴가를 계획해요. 휴가를 중심으로 삶이 꾸려지는, 지금의 패턴이 만들어진 거예요. 1936년 총파업이 그것을 가져다줬기 때문에 사람들은 파업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해요. 그들이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삶이 없었으니까요. 불편하지 않은 파업은 없고, 파업을 하지 않는 한 가진 사람들이 더 가져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라는 것을 사람들이 역사책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우는 거죠. 또 교사들이 수시로 파업을 하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의 노조가 무엇이 있는지, 어떨 때 파업을 하는지,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배우지 않아도 학습이 돼요.

 

지금 한국 사회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가지고 하는 얘기들을 떠올리면 참 멀게 느껴지는 얘기예요. 52시간, 너무 많잖아요.


너무 많아요.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예요. 그러니까 오후 5시에 학부모 회의가 있으면 다 올 수 있는 거죠. 수요일에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면 보호자가 노동 계약을 할 때 “난 수요일에 쉴게”가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금요일에 쉬고요. 그게 가능하죠.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경쟁하지 않을 자유를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것은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이에요. 워낙 경쟁만이 삶의 방식이라고 믿어온 아이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 아이들에게 다른 출구를 열어주면 아이들은 분명히 그것이 의미 있는 출구라는 것을 알아보고 그쪽으로 갈 수 있을 거예요. 저도 한국에서 완벽하게 교육 받은(웃음) 사람인데 프랑스에서 다른 출구를 보고 깨달았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면 그게 큰 길이 될 수 있겠죠.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목수정 저 | 생각정원
프랑스 공교육의 모습을 비추며 우리가 교육을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상을 다시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이들을 교육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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