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동자들이 저곡가를 견디지 못하고 농촌에서 올라온 농민들의 자식이었으니, 자신의 고향과 부모를 등지고 밥을 번 셈이다. 이것이 한국 산업화의 근본적인 고통이다. 농민의 자식들이 농촌을 버려야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농촌의 처절한 희생 속에서 만들어진 나라다.(78쪽)
『대한민국 치킨전』의 저자 정은정이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를 펴냈다. 농촌 사회학자로서 전작에서 치킨과 자영업에 집중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농업을 이야기한다. 그 중심에는 故 백남기 농민이 존재한다. 보성에서 농사짓던 농민이 2015년 11월 서울에서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다. 경찰이 쏜 물대포였다. 그리고 이듬해 9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운명한다.
고인은 그날 왜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을까? 국가 폭력으로 사람이 쓰러졌다. 이 사태에 누가 책임졌을까?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쪽에 맞선 사람들은 어떻게 연대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이다. 이 책은 백남기 농민의 평전은 아니다. 고인의 삶을 복원하는 동시에 저자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사회에 지니는 의미를 탐색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폭력, 농민ㆍ농촌ㆍ농업, 연대를 기록한다.
4년 전 『대한민국 치킨전』 인터뷰 이후로 4년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 책이 그렇게 많이 소비될지 몰랐어요. 덕분에 치킨팔이 하며 강의 많이 다녔고요. 아이 키우고, 책은 쓰던 게 있었는데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 작업하느라 멈췄죠.
누군가 백남기 농민에 관한 책을 쓴다면, 자신에게 오리라 예견하셨다고요.
노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쪽에 농업 농촌 농민에 관한 대중서를 쓸 수 있는 대중작가가 없어요. 제가 독보적인 게 아니라, 자원이 없는 거죠. 농민들이 돌아가시면 평전이 나오긴 했는데, 주로 큰 남성 작가들이 썼고요. 저는 백남기 농민 투쟁을 보면서, 이건 사모님과 따님들의 투쟁이고 여성들 문제라 생각했거든요. 또 제가 가톨릭 농민회와 오래 활동했고, 그래서 운명이라기보다는 확률상 제게 올 거라고 알고 있었죠.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표지 디자인과 제목입니다. 표지, 제목에 관해서 설명해주세요.
다행히 윤성희 사진 작가가 개인 작업으로 투쟁 과정을 다 찍어놓아서, 그 사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어요. 표지에 쓰인 사진인 아스팔트가 상징하는 게 있는데요. 먼저 백남기 어르신이 쓰러진 장소입니다. 그리고 농민들이 정치적 요구를 하러 서울 갈 때 아스팔트 농사 지으러 간다고 표현하시거든요. 다음에는 씨앗인데요. 이 책이 마냥 슬프진 않은 게, 씨앗을 뿌렸잖아요. 씨앗을 뿌린다는 건 생명을 심는다는 의미입니다. 뿌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달랐죠. 백남기 농민이 우리밀을 파종하고 왔는데, 수확은 다른 농민이 하셨어요. 이런 의미를 담은 표지, 제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진행형인 국가폭력
이 책이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담는 듯합니다. 첫 번째가 국가폭력이죠?
처음 이 책 집필할 때는 제가 농촌사회학 연구자이니까 농촌 농업 문제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자료, 증언 접하면서 국가폭력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게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게 많아요. 어르신이 쓰러지고 나서도 너무나 많은 모욕, 외면이 있었고 이게 당연한 절차로 진행됐어요. 절차적 민주주의는 달성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죠. 국가폭력으로 사람이 쓰러졌다면, 관련한 사람이 조사받는 게 당연한데 그렇지 않았죠. 경찰청장은 명예롭게 퇴임했고, 살수 요원은 약간의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흐지부지라고 해야 할까요. 넘어갔어요. 가족들 입장에서는 해결된 게 아니죠. 그런데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었고, 해결됐다 생각하는 거 같아요.
백남기 농민을 이야기하면서 광주를 뺄 수 없잖아요.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너무 소설같다고 이야기했을 거 같아요. 백남기 농민이 중앙대에서 잡혀간 게, 1980년 5월 18일 오전이에요. 계엄군에 끌려가서 김대중 내란 음모랑 엮어서 고문 당했죠. 광주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 당했어요. 이후로 문민 정부 들어서고 나서 5.18 유공자 신청을 받았는데, 어르신은 신청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나 명백하거든요. 잡힌 곳은 서울이지만 계엄군에 잡혔고 날짜가 1980년 5월 18일이에요. 아주 핍진한데, 절대로 신청하지 말라고 가훈처럼 이야기했어요. 왜냐하면 죽은 자들이 있는데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는 거죠. 그렇게 광주를 평생 안고 계신 분인데,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평생 음택이 광주로 정해질 거라고는요. 작가로서 소름이 돋았죠. 너무 부끄러워서 안 보겠다, 안 가겠다 했는데 몸을 누이시게 된 곳이 광주가 되었죠.
국가폭력도 문제이지만, 2차 가해도 심각하지 않았습니까?
윤서인과 김세의에게 9월에 구형, 10월에 확정이 났어요. 이 때 초고는 다 넘겨져서, 마지막 교열이었는데 듣자마자 집어넣었어요. 유죄 판결이라고 책에 영원히 기록하기 위해서요. 집요함이 있었죠. 네덜란드에서 아이 키우는 직장인인 백민주화를 불러들이는 건, 악행이거든요.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은 사람에게 인간의 윤리를 져버리는 행동들을 곳곳에서 했어요. 윤서인, 김세의가 했고 강용석이 변론을 맡았어요. 이들이 가장 유명인이기도 하고, 시민 입장에서도 화가 나서 꼭 남기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의 악행에 대해서요.
살수 요원 이름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 많이 했어요. 재판과정을 보며 확신했죠. 넣어야겠구나. 제 지인들도 살수 요원이 무슨 죄가 있나 명령한 사람이 죄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재판을 봤더니 그게 아닌 거죠. 이 두 명이 얼마나 뻔뻔한가를 알았고 이 두 명이 처벌을 받아야지만 부당한 명령에 거절할 수 있는 제도, 문화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이 두 명이 처벌받아야겠구나, 확신했어요.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문제를 묻고 싶었어요. 재판 과정에서 살수 요원이 자기 가족이 알까 봐 걱정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피해자 가족이 들으면 모욕감이 들었을 거예요. 두 사람의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찰 제도의 뻔뻔함이기도 하죠.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넣었죠.
쌀값은 우리가 농민, 농촌을 대하는 태도
두 번째 주제가 농촌, 농민입니다.
보성 사람 백남기 농민이 왜 서울에 왔나에 집중했습니다. 그 분은 지역을 지키고, 중앙으로 안 오려고 노력했던 분이에요. 그날만큼은 왜 왔는지 알 거 같아요. 쌀값이죠. 쌀값은 농촌, 농민을 바라보는 관점이잖아요. 물가 상승률만큼도 오르면 안 된다, 그냥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결국에는 농민이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오셨어요. 고향을 지키지 못하고요. 쌀값을 해결하지 않으면 반복될 문제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에요.
지금 쌀값이 한 공기로 치면 200원인가요?
네. 지금 목표값을 한 가마니 19만 6천 원으로 해서 국회에서 협상하려 시작하는데, 이렇게 올라도 밥 한 공기로 나누면 230원이에요. 커피 자판기 한 잔이 300원이거든요? 그 돈으로 시중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럼에도 쌀값은 여전히 200원대에 묶으려 하는 거죠. 민중총궐기 대회 때 농민 구호가 쌀값 21만 원을 보장하라였는데요. 농민이 갑자기 무리한 주장을 한 게 아니에요. 박근혜 이명박 정권에서도 후보 시절에는 농민 표가 필요하니까 그때는 23만 원까지 하겠다고 공약을 내기도 했어요. 안 지켰죠. 2015년 11월 당시 쌀값이 15~17만 원, 전라도는 14만 원까지 주저 앉았어요. 심각성을 알아서 백남기 농민도 오랜만에 서울로 와서 집회 참석하신 건데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21만 원 도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아직 이 싸움이 끝난 게 아니죠. 완벽한 미완의 싸움인 거죠. 농민 주장이 한 공기에 300원을 보장해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가계에 부담이 될까요? 정치만 탓할 순 없어요. 쌀값은 농촌 농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기도 하거든요. 농촌 농민은 능력이 없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온 게 우리 역사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우리에게 성찰, 반성을 요청하는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욕, 악플도 많이 달리더라고요.
쌀값이 중요한 게, 농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유도 있겠죠?
책 말미의 인터뷰이 김영호 전농 전 의장님과 이야기하다 결론 내렸는데, 쌀값을 지킨다는 의미가 농촌을 지킨다는 거예요. 전라도가 농도이고, 최대 곡창 지대죠. 쌀값이 보장 안 되니까 다른 환금 작물을 심어요. 시설재배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 경기도 북부권 양평 딸기 농가는 주저 앉을 수밖에 없어요. 전라도가 따뜻하고 지대가 싸기 때문에 생산비가 낮아요. 양평 농가는 애써서 시설 갖춰 놨는데, 내부 경쟁에서 밀리겠죠. 이렇게 쌀값 보장이 농촌 자체를 지키는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생태적 관점에서 시설 재배가 늘어나는 건 좋지 않거든요. 순환 구조가 깨지잖아요. 모가 자라고, 들판에 푸른 색이 넘치고, 가을에는 황금 들판이 있고, 이런 장면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순기능이 있어요. 그런 면까지 생각하면, 쌀값은 지탱시켜줘야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안 먹으면 북한에 보내도 되고, 가난한 나라에 보내도 되고요. 지혜를 발휘하면 되는데 무조건 안 된다는 건 안 하겠다는 거죠.
기억해야 할 사람들
마지막 주제가 연대인 것 같습니다. 이한빛 PD를 이야기하셨어요.
부친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세월호 가족, 이용관 선생님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인데, 이분들이 손을 잡는 장면이 드라마틱했어요. 아직 내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죠. 이한빛, 백남기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본 폭력과 국가 폭력이거든요. 국가, 자본이 딱 붙은 나라가 한국이죠. 한국형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 노동자를 억압하는 방식이잖아요. 이한빛 의식이나 백남기 의식이 비슷하다 생각해요.
이 책이 평전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자면, 주인공이 백남기 농민이라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인데요. 이런 구성을 취한 이유가 궁금해요.
일단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백남기 어르신 사모님, 따님이 아버지 생전이면 이런 작업을 허락하지 않을 분이라고요. 이름 없이 살다가 고향 산천에 묻히려 한 분이죠. 유족의 확신이고, 그 뜻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책에는 함께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세월호 가족이나 이한빛 PD 부친처럼 가장 슬픈 사람이 슬픔을 알아보고 손을 잡은 데 감명이라면 감명이고 저도 울림이 있어서 그렇게 한 거고요. 어쨌든 저도 씨앗을 뿌리고 싶었던 거죠. 맨 처음에 젊은 이종혁 농민을 넣은 건, 족쇄입니다. 이제 도망 못 간다, 계속 농사 짓고 있어야 한다, 농담처럼 이야기했죠. 그런 작은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국내에 나온 평전은 6개월 정도에 걸쳐, 다 읽어본 거 같아요. 영웅처럼, 원래 비범한 사람처럼 묘사한 책도 많은데, 제 취향에는 안 맞았어요. 실무자를 많이 담으려 했어요. 우리사회가 데모쟁이에 대해 지닌 편견이 있잖아요. 촛불혁명이 이뤄졌다면, 뒤에 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었어요. 큰 어르신들은 섭섭해 했죠. 이런 책을 준비 중이라면 당연히 자신에게 갈 거지, 했을 텐데 저는 처음부터 투쟁본부에 명망가는 안 찾아간다고 이야기했어요. 그건 제 의도와 부합하지 않는다고요. 인터뷰하러 가면, “나를요? 내가 왜요?” 하는 사람을 부러 선정했죠. 그분들이 막상 인터뷰하면 말 안 시키면 큰일 날 뻔했겠다 싶을 정도로 사안에 대해 잘 이야기하셨고요.
보통 고인 기억하는 글에서는 미담을 많이 넣지 않나요. 그런 이야기도 거의 없었죠.
일부러 안 넣었어요. 일단 가족들이 괴로워했었어요. 이 싸움 통해서 사생활이 너무 과하게 드러났거든요. 살림살이, 부엌까지. 언론의 폭력이죠. 허락 안 받고 촬영해갔고요.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이든 한 사람의 삶은 복잡한데요. 제가 직접 뵌 분도 아닌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책에 넣어서 문자로 남긴다는 게 저는 책임질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소위 말하는 공생활에 대해서만 썼어요. 에피소드는 많이 들었죠. 워낙 자상하고 성품이 훌륭한 분이거든요. 평전 작업이 나온다면 그런 이야기도 실리겠죠.
마지막에는 농민 열사 분들의 삶을 수록했습니다.
책 쓸 때부터 염두에 두었어요. 여력이 되면 영정도 넣고 싶었지만 소실된 자료가 많았어요. 늘 마음이 아팠던 게, 생각보다 너무 많이 돌아가셨어요. 홍덕표, 이경해 이 분 정도를 기억하는데, 활동하다 지역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신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리드문에 농민 열사 분들 중에는 유난히 불의의 사고, 교통사고가 많다고 썼죠. 이건 당연히 농촌 인프라 문제거든요. 얼마 전에 충남 농민회 오랫동안 활동하셨던 회장님도 심근경색이 왔는데, 응급차가 너무 늦게 왔어요. 도시에서는 무난하게 넘어갈 일이었는데도,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계세요. 저는 농촌 다니다, 마음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는데요. 바로 아기를 볼 때입니다. 밤에 열 나거나 아프면, 어떡해요. 이런 시스템에 대해 우리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농촌은 소멸해버릴 거라 생각하는 거 같아요. 여태까지 이렇게 많은 농민이 죽었다, 생존의 권리를 요청했는데 죽임을 당한 거다, 이 책에서 강하게 드러내고 싶었죠.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잠시 등장했어요.
제가 집요해요. 기록자로서 남겨야 할 게 미담보다는 악행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좋은 사람은 빨리 까먹어요. 그래서 사회학 하는 게 서글프죠. 좋은 이야기를 쓴 게 거의 없잖아요. 제 원칙은 이렇습니다. 악인의 기록은 반드시 남긴다, 코믹하게 남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읽게 만든다. (웃음)
농촌에 희망은 있을까
우리사회가 맛집, 요리를 향한 관심은 높은데 그 근간인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관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괴리를 어떻게 보시나요.
더 심각해지고 있죠. 남자 고등학생 선호도 직업에 셰프가 드디어 올라왔어요. 얼마 전까지는 야구 선수, 연예인, 법관, 공무원 이렇잖아요. 여기에 셰프가 등장했다는 데 굉장히 놀랐어요. 청소년이 환상을 보는 거죠. 요리를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얻을 수 있겠다? 완벽한 판타지죠. 어느 나라든 먹는 거에 관심은 많아요. 우리나라도 그렇고요. 담양을 검색어로 치면 연관 검색어가 담양 맛집이 나오잖아요. 온 국민 관심사가 맛집인데, 첫 출발인 농업 문제에는 관심 없는 사회가 우리사회고, 그게 우리 삶을 모순으로 이끌죠. 잘 먹고 건강하고 싶은데 농촌은 버리는 거죠. 이게 전혀 안 맞거든요. 저는 이 괴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만, 희망도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치킨전』같은 책을 쓴 거죠. 4년 전 인터뷰 때도 치킨은 끝났고, 삼겹살을 보고 있다, 50퍼센트 이상 기업이 양돈에 진출했다고 말했는데요. 저의 답답한 운명인지 소임인지, 희망 없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네요. 어쩔 수 없죠. 제가 정책을 짜는 사람은 아니니, 일단 적어 놓는 걸로 농촌 농민 보기에 덜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 제목에 들어간 ‘씨앗’이 백남기 농민이 뿌린 우리 밀 씨앗이기도 하죠? 여기에도 의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밀이 거의 절멸될 뻔했습니다. 미국산 밀이 흔하니까, 국가에서 수매를 안 해줬죠. 그런데 농민들이 소실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인간이 못 만드는 게 딱 하나가 있는데, 바로 씨앗이거든요. 씨앗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농사입니다. 가톨릭 농민회, 한살림, 우리밀살리기 운동본부 이런 쪽에서 밀을 살리려고 엄청 애를 썼어요. 이미 씨앗이 소실된 수준에서, 백남기 농민은 전라도 보성에서 열심히 채집하신 거죠. 동네 어르신이 도시락에 간직했던 걸 달라고 해서 얻었는데, 사람들이 농사를 안 지으니까 밀농사 짓는 방법도 다 까먹었어요.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복원 아닌 복원을 했는데, 지금도 자급율이 채 1퍼센트도 안 되어요. 수매를 안 해주니까요. 선거 때마다 대선 후보들이 자급율을 10퍼센트 올리겠다, 이렇게 이야기는 해요. 우리밀이라고 하니 이미지가 좋잖아요. 그런데 전혀 수매 안 해 주고 소비량 떨어지니까, 또다시 한 번 그런 위기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올해 보리 생산량이 늘었어요. 하곡, 하면 밀과 보리인데 밀값이 보장 안 되니 다 보리로 가는 거죠. 그러면 보리값이 폭락하죠. 이 악순환의 꼬리를 끊는 게 정치거든요. 개별 소비자에게 맡길 수 없는 거고. 정책적으로 우리 밀 소비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모아야 하는데, 그런 일조차 하지 않고 있죠.
한국 농업에도 정책이 있지 않나요.
한국은 소농(가족농) 지향점이 거의 없죠. 대농 중심으로 가는 거고, 옳지 않죠. 저는 공간적 개념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세먼지 많고, 답답한데 건물만 들어서면 끔찍하지 않겠어요? 그야말로 아마겟돈인데요. 생태적 상상력을 높이는 방법이 필요해요. 농촌이 지켜져야 되니까 농민이 필요한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겠죠. 오로지 먹거리 문제, 푸드 이런 것만이 아니라 국토라는 공간이 지켜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농촌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고향세 도입 이야기가 나오는데, 잘 안 될 거 같아요. 우리나라는 이제 고향이 없으니까요. 농촌 기억을 가진 세대가 없는데, 내 세금이 지역으로 간다는 게 용납이 안 되겠죠.
농업 선진국은 어떤가요. 농업 이야기 나오면, 우리도 선진화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 나오잖아요.
거기도 보조금 싸움이죠. 미국도, 유럽도 다 보조금으로 농사 지어요. 마치 거기는 특출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아는데, 전혀 안 그렇거든요. 특히 쌀은 전세계에서 우리 농민이 젤 잘 짓는대요.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좋아요. 생산성이 없는 게 아니에요. 그런 건 전혀 안 알려져 있고, 미국 농민이 혁신적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보조금 농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고민으로 끌고 가는 건데, 확실히 농촌 문제는 개별 해결은 어려워요. 공공성, 공공 지향에 대한 아이디어에 대해 지지를 해줘야 할 거 같아요. 최소한 비난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 책은 협박하는 의도도 있어요. 농촌 망하면 우리가 죽는다는 협박이죠. 심각성을 잘 몰라요. 원론적인 말인데, 농민에 대한 직군, 농업이라는 산업, 농촌이라는 공간을 함께 해나가지 않는다면 우리 삶을 결국 위협할 거거든요. 더 많은 오염, 오염된 먹거리를 어떻게 견딜 거예요? 아무리 좋은 수입산 유기농도 국내에서 농약 치고 재배한 식품보다 안전하지 않거든요. 그 착각을 박살내야 합니다. 농산물은 신선도의 문제인데, 멀리서 온 게 결코 우리에게 이득일 리가 없어요. 후손들에게 초록색도 좀 보여줘야겠죠. 농촌을 지켜야 하는 데는 정말 명쾌한 이유가 있어요. 따비 출판사가 농업, 농촌 이야기, 이렇게 돈 안 되는 이야기를 펴내고 있는데요. 저는 따비가 우리나라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필요하고요.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
다음 책은 어떤 소재로 준비하시나요.
지금 하다가 멈춘 게 너무 많네요. 이것 저것 건드려서 수습 안 된 게 많아요. 불량 식품 사회사를 준비하다 멈췄는데요. 『대한민국 치킨전』을 쓰면서 자영업이 심각하니, 르포르타주를 구성해보려고 했어요. ‘남양주 만인보’라고요. 멀리 찾지 말고. 우리 동네를 둘러봤죠. 미용실 원장님, 오래된 병원이 새로운 기기에 밀리는 과정, 이런 걸 보고 충격 받았는데요. 그런 걸 담고 싶었어요. 이번 책에서 인터뷰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배운 걸 잘 써 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한국 자영업 문제에 천착해보고 싶어요.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정은정 저/윤성희 사진 | 따비
국가폭력에 희생되었으나 오로지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던 백남기 농민의 삶을 기리고, 그의 뜻을 잇기 위해 자신의 마음과 시간과 몸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