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청탁하지 않아서, 매일 글을 쓴 사람이 있다. 1992년생 작가 이슬아. 학자금 대출 2천 5백 만원을 갚기 위해 <일간 이슬아> 수필 연재를 기획. 2018년 2월부터 6개월간 SNS로 구독자를 모집해 1주일에 5편의 글을 전송했다. 매일 밤, 자정이 될 무렵이면 구독자들은 메일을 보내왔다. “12시 정각에 글 보내실 거죠?”, “오늘도 설마 지각하는 거 아니죠?” 매일 용기를 내서 글을 썼다. 과거의 이슬아를 가공해서 미래의 이슬아에게 편지를 쓰듯. 누구에게는 수필로 누구에게는 소설로 읽히지만 현재의 이슬아는 다짐한다. “독자가 건네는 말에 쉽게 행복해지거나 쉽게 불행해지지 않도록 튼튼해지고 싶다”고. 첫 만화 에세이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와 독립 출판물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동시에 출간한 ‘셀프 연재 노동자’ 이슬아를 만났다.
하나하나 기쁘거나 슬프지 말자
구독자를 모집하다가 저자가 된 지금, 기분이 어때요?
책을 낸다는 일을 너무 고대해서 ‘드디어’ 라는 느낌이었는데요. 아직도 너무 얼떨떨하고요. 제가 진짜 책을 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간 출간 제안을 많이 받으셨죠? 웬만한 출판사에서 모두 눈독 들인 저자라고 들었어요.
종종 기획안을 받았는데요. 제가 쓰긴 너무 어려운 주제가 많았어요.
이를테면요?
자유분방, 솔직당당, 발칙한 20대.
아.. 부담스러웠겠어요.
두려운 카피였어요. <한겨레21>에 ‘연애인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스스로를 ‘연애인’이라고 명명했으니 제 실수이긴 한데요. 자유분방, 당당 같은 타이틀은 피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그렇지 않기도 하고요. 연애, 사랑 이야기를 쓰는 건 사실이지만 20대를 대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두 책이 동시에 나와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려웠고 실수도 많았지만 재밌는 점도 많았어요.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연결되는지를 직접 경험했으니까요. 출판 전문가가 있는 이유도 정확히 알게 됐고요. 앞으로 웬만하면 출판사랑 계속 하고 싶어요. (웃음) 두 책의 시기가 겹쳐진 건 10월에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 행사에 『일간 이슬아 수필집』으로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에요. 원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가 먼저 나올 예정이었어요.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2015년부터 2년간 웹사이트에 연재했던 만화인데 주인공이 ‘복희’와 ‘슬아’예요. 이슬아 작가의 모녀 일기라고 생각할 독자들이 많을 거예요.
실제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어떤 기억들은 과장되고 축소되기도 하잖아요. 기억이란 너무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이 책을 논픽션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어요. 저를 낳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오해로 쓰인 책이 맞을 거예요.
‘엄마’를 주제로 한 책을 내는 일이 두려웠다고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성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조심스러워져요. 이 만화는 제가 엄마로부터 받은 것들을 기억해서 쓴 글인데, 어떤 좋은 표본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은 같을 수 없잖아요. 살아가는 여건도 다를 테고요. 제가 쓴 글이 어떤 모성 신화 같은 것을 강조하지 않길 바라지만,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한 엄마는 ‘복희’뿐이니까요. 엄마가 돼 보지 못한 사람이 엄마에 대해 글을 써도 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겐 모녀 만화라기보다 “‘복희’라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한 소녀의 서사”로 읽혔어요.
그랬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우정, 연대 그런 것도 느꼈어요.
(웃음) 슬아와 복희는 가장 가까운 관계이니까요. 복희가 너그럽고 다정해서 슬아는 유년기 내내 실컷 웃고 울 수 있었어요. 만약 복희와 슬아가 또래였다면 친구가 됐을 거예요. 슬아는 복희에게 친구로서 갖는 예의를 지켰을 거고요.
엄마께서도 만화를 보셨을 텐데 어떤 반응이었나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다만 걱정하시죠. <일간 이슬아>를 연재하면서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욕도 많이 들어서요. 너무 많은 말을 들어서 살짝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의 제목을 궁리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아.. 너무 부끄럽네요. 너무 유난을 떤 것 같아서요. (웃음)
책 띠지에 “SNS 세계의 셰에라자드 이슬아 작가의 책’이라고 적혀있어요.
그 카피 때문에 엄청 놀림을 받고 있어요. 친구들이 제가 오면 “와, 셰에라자드 왔다”고 막 놀리고. 제가 원래 저자세 마케팅 밖에 못하는 사람이라서요. 쑥스럽지만 띄워 주시니 그냥 실려 가보자 생각하고 있어요.
독자의 마음을 훔친 건, 사실이잖아요.
돈만 좀 훔쳤죠.
오히려 담담해지는 게 더 편안한 감각
『월간 채널예스』에 ‘이슬아의 매일 뭐라도’를 연재하고 있는데, 글을 읽다가 놀란 적이 있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도 실린 글인데요. “독자가 건네는 말에 쉽게 행복해지거나 쉽게 불행해지지 않도록 나는 더 튼튼해지고 싶다.”(529쪽) 1992년생 작가가 쓴 문장이라니, 어떻게 이런 태도를 벌써부터 가질 수 있을까, 감탄했어요.
사실 엄청 흔들려요. 칭찬 받으면 너무 좋아서요. 덜 좋아하려고 노력하는데, 왜냐면 비난을 받을 때 너무 슬프기 때문이에요.
칭찬은 이제 좀 질리지 않아요?
아니요. (웃음) 더 많이 듣고 싶어요. 아직 하나하나가 다 신기하고요. 놀라워요. <일간 이슬아> 연재할 때, 매일매일 메일함을 여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어떤 문장이 가 닿았을까, 가 닿지 못했을까를 상상해보면 문득 두려울 때가 있었어요. 다만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하나하나에 기쁘거나 슬프지 말자, 한번 연재하고 안 할 거 아니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 같아요.
총 구독자 수를 물어도 될까요?
총합을 정확히 몰라요. 재구독률이 높긴 했는데, 일부러 숫자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기억하게 되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어요.
독립출판물로 만든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1쇄를 700부, 2,3쇄는 1,000부를 찍었다고 들었어요. 2쇄를 더 찍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요.
원래 1쇄를 300부를 찍으려다가요 그래도 500부는 찍어야 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아주 혹시 몰라서 700부를 찍었는데 너무 금방 팔렸어요. 사실 1천 부는 말이 안 되는 부수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집에 책을 쌓을 공간이 없어요. 창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놀랄 만큼 빨리 팔려서 허겁지겁 주문했는데요. 그래서 저희 집 고양이가 많이 놀랐어요. 고양이 입장에서는 자신이 사는 공간에 큰 장벽이 생긴 거라 방에서 안 나오더라고요. 뭔가 두려운 마음도 컸는데요. 가장 힘들었던 건 포장과 발송이었어요.
수필집은 독립서점에서만 팔고 있죠?
물량을 채우느라 사업자등록증을 만들 시간조차 없었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단행본이라기보다 아카이빙에 더 가까운 책이라서요. 연재를 기록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어요. 4쇄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어요.
2011년부터 3년간, 한국누드모델협회에 소속되어 누드모델로 일했어요. 첫 번째 이유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시간 대비 가장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일이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의 몸의 용기를 주고 싶어서였다고요. 내 몸을 직관적으로 바라본 경험이 작가 이슬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궁금해요.
내 몸을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시작한 일인데, 지금은 제 몸을 그렇게 예뻐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그냥 내 몸에 무심한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왜냐면 사람들이 여자의 몸에 지나치게 유심하니까요. 오히려 담담해지는 게 더 편안한 감각인 것 같아요. 만화를 그릴 때 생각한 건, 너무 마르지 않은 여자를 등장시키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장래희망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소설가”라고 답한다고요.
“먼 장래의 일”이라고도 덧붙이고요.
「상인들」이라는 작품으로 2013년 ‘제5회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 당선된 적이 있어요.
네, 상금을 정말 알차게 썼던 기억이에요. (웃음) 지금은 창비에서 하는 소설 특강 수업을 듣고 있어요. 정세랑 작가님 수업인데 강의가 엄청 재밌어요.
작가로서 최후에 쓰고 싶은 건, 소설인가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면 수필을 쓰다 보니까 글에 대한 피드백보다는 인생에 대한 어떤 조언의 형식으로 답이 올 때가 많아요. 픽션 작가는 한 겹의 보호막이 존재하지만, 제가 쓰는 글은 주인공과 작가가 겹쳐지니까요. 본의 아니게 어려운 노선을 탄 셈이에요.
이슬아가 쓰는 모든 수필의 주인공을 ‘작가 이슬아’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나요?
피드백을 보면 그렇죠. 하지만 오해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고 느껴요. 어떻게 하나하나 정확한 이해를 바랄 수 있겠어요. 오히려 작가 본인의 이야기로 생각하기 때문에 더 놀아볼 수 있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아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성격을 묘사하면서 이런 문장을 썼잖아요. “모든 걸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남자”, “모든 것을 지나치게 별일 아니게 생각하는 여자.” 이슬아 작가는 어느 쪽과 더 닿아 있나요?
중간을 선호하지만 저는 듬뿍듬뿍 말하는 데 가까워요. 감탄도 헤프고 칭찬도 사과도 감사 인사도 되게 많이 말하는 것 같아요. 때로는 너무 많이 표현해서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해서 빈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쉽지는 않아요. 이번에 책을 내면서도 제가 ‘너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쓴 거예요. ‘너무’라는 말을 빼느라 고생했죠.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요?
뭔가 시기별로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시기를 타지 않는 답이 있다면,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좋아요. 사람에겐 당연히 어떤 어두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건강한 것을 지향하는 사람이 좋아요. 농담을 잘하는 사람도 좋고요.
대안학교 글쓰기 수업은 지금도 하나요?
계속하고 있고요. 저희 집 서재에서 중년 여성들의 글쓰기 모임 ‘망원글방’을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중년이 아닌 분도 있는데요. 주로 40, 50대 여성이에요.
어떻게 만들어진 모임인가요?
제가 돈이 너무 없을 때 초등학생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고 전단지를 돌렸거든요. 어린이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때 한 어린이의 이모님이 똑같은 방식으로 성인 글쓰기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어요. 멤버를 직접 꾸렸는데, 홍삼 장사를 하는 분 등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분들이에요. 1년 반 정도 됐는데 주말마다 이 분들의 글을 볼 수 있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 초등학생들의 글과는 정말 차이 나는데요. 한 편의 글이 굉장히 압축적이라고 할까요? 상대적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문장의 속도가 엄청 빨라요. 주로 자신이 화자인 글을 쓰시는데, 합평을 한다기보다는 어떤 내용이 좋았는지 서로 편하게 나누는 모임이에요.
초등학생 글쓰기 수업을 할 때는 목소리가 좀 달라질까요?
똑같아요. “얘들아~ 나야! 나 왔어”라고 말해요. (웃음)
독자 분들이 이 대답을 음성으로 들으면 좋을 텐데, 너무 아쉽네요.
저는 아이들 글을 보면서 진짜 많이 배워요. 정말 미쳤어요. 너무 잘 써요. 저도 초등학생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요. 경직되지 않았으니까요.
“다 지나간다”는 생각을 정말 계속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의 추천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총 10명의 친구, 지인, 구독자에게 글을 받았어요.
자기 자랑 대잔치, (웃음)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말할 수 있는데, 정식 출판이 아니니까 하고 싶은 건 다해보고 싶었어요. 과한 시도였지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글을 넣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요. 제가 직접 원고료를 주고 부탁했어요.
매월 연재가 끝나면 구독자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늘 “마감 시간을 어겨서 죄송하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저는 ‘죄송할 거면 왜 맨날 죄송할 일을 하냐?’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슬아 작가님의 “죄송하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후의 사과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자정을 넘겨 글을 보내면 정말 많이 혼났어요. “오늘은 펑크냐?”, “당신은 정말 시간 약속이 엉망이다”라는 항의 메일도 많이 받았고요. 제가 글에 대한 피드백은 답장을 안 했는데, 시간 약속을 어긴 일에 대해서는 꼭 답장을 썼어요. 제가 약속을 못 지킨 거니까요. “정말 죄송하다, 그런데 내일은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씀 드렸죠.
힘들 때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이 있을 것 같아요. ‘다 지나간다’는 말이 될 수도 ‘사람들은 너한테 그렇게 관심 없어’ 같은 말도 생각할 것 같고.
방금 하신 말씀 다 맞아요. 정말 사실이에요. 독자 분들의 관심, 피드백 정말 감사하지만 이런 관심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요. 그래서 계속 “지나간다”는 생각을 정말 계속해요. 정말 힘들 때는 말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노래하거나 운동하며 시간을 보내요.
지금, 시간을 많이 쓰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운동이에요. 지금 필라테스랑 달리기를 하는데요. 그냥 생각 안 하고 직관적으로 몸으로 배우는 건 항상 즐거워요. 물구나무 서기도 계속 연습하고 있는데 언젠가 벽에 기대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게 제 목표예요.
일간지 1면에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는다면, 쓰고 싶은 글이 있나요?
일단 너무 두려운데요. 아무 이야기도 못할 것 같은데. (10초간 생각) 아! 생각났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 사진을 찍어준 동료 작업자 이다울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이 친구가 3년 동안 투병 중인데, 통증이 실제로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병명을 찾지 못했어요. 이런 케이스가 한국에도 꽤 많고 논문도 있는데요. 병명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당사자는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평소 저는 아픈 사람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가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일간지 1면이라면 의료계 사람들도 많이 보겠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많이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다울이는 지금 자신의 투병기(등의 일기)를 연재하고 있어요. 꼭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일간 이슬아>를 읽어준 구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두 권이 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맞아요. 정말 그래요. 아무도 안 읽어주면 안 쓸 테니까요. 독자는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에요. 어디에 있는지 모를 미지의 존재이고, 예측이 불가능한 너무 두려운 존재이지만 기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독자를 너무 생각하면 두려워서 글을 못 쓰니까요. 막 생각했다가 까먹었다가 그렇게 살아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간, 마음, 돈을 써서 제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고요. 정말 오래 하고 싶어요. 가늘고 길게요. (웃음)
미슬(미래의 미슬)이에게는요?
미슬아, 아프지 말아. 그리고 좀 부지런해지길. 아마 현슬(현재의 슬아)이가 어떤 많은 실수를 갖고 미래에 갈 텐데, 부디 잘 감당하길 바란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이슬아 저 | 문학동네
문득 나의 유년기와 내 등 뒤에서 조용히 서 있는 엄마를 돌아보게 하는 책. 연필로 그린 듯 슥슥 그린 만화와 함께, 자신의 범상치 않은 가족사를 빼어난 문장으로 묘사한 이슬아 작가의 필력이 빛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