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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정우성,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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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출간한 에세이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 정우성은 인터뷰에 앞서 한 가지를 요청했다. “책과 관련된 질문에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배우, 영화에 대한 질문보다는 ‘난민’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되고 2015년 6월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배우 정우성. 그에게 묻고 싶었던 사적인 질문들을 빼야했지만 책을 쓴 의도, 의미를 다시 살피게 됐다. 정우성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평등, 책임감, 존중’ 같은 단어를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온화하고 견결한 말들 속에서 흔한 미사여구는 필요 없었다.

 

 

공감과 이해로 가는 작은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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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가 문을 연 게 2001년. 연예인이 명예사절로 임명된 건, 정우성 씨가 처음이에요. 수락을 굉장히 빠르게 했다고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하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이니까요. 왜 많은 사람을 두고 내게 제안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고민을 길게 하진 않았어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받으셨을 때는요?

 

사실 책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5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요. 활동을 한번 되돌아봐도 좋을 것 같았어요. 백지 상태에서 썼다면 부담이 컸겠지만 유엔난민기구와 활동하며 했던 인터뷰, 기고문 등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새로운 책을 썼다는 느낌은 크지 않아요.

 

만들어진 책을 보니까 어떤가요?

 

쓰길 잘한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고, 난민에 대한 정확한 팩트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루트로 이 책을 접해도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난민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던 사람,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했던 사람,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 등 누구라도 좋으니 한 번쯤 눈길을 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에요.

 

제목을 자꾸 곱씹게 되더라고요. “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뒤의 말이 생략됐겠죠?

 

결국 공감인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과 소통하고 나면,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하지만 경험이 없이는 공감이 어렵죠. 난민에 대해 막연히 멀게만 느끼는 분들을 저는 정말 이해해요. 우리 사회에 가짜 뉴스가 너무 많잖아요.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무작정 이해를 요구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책이 공감과 이해로 가는 작은 통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 5월, 74만 명이 모여 사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 ‘방글라데시 쿠투팔롱’을 방문하셨어요.

 

쿠투팔롱 난민촌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7년 12월이었어요. 그해 8월 폭력 사태의 기억이 생생한 사람들을 만났죠. 워낙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곳이에요. 산 하나를 깎아서 만든 난민촌이라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유엔난민기구와 협력단체,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더라고요. 로힝야 난민들이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을 위한 영구적인 해결책이 요원해 보인다는 거예요. 난민촌에서의 생활이 아무리 안정적이라고 해도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니까요. 국제사회가 함께 힘을 합쳐서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의 자발적이고 안전한 귀환의 조건에 합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해요.

 

현장에서 난민을 만날 때,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감정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은 난민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자세히 듣고, 대중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순간순간 어려울 때가 있을 것 같아요.

 

매년 난민 현장을 방문했지만 전혀 훈련이 안 돼요. 2017년 이라크에 갔을 때 얼굴에 화상을 입은 10세 소녀 ‘호다’를 만났어요.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인인 호다는 우릴 보고 웃기만 해죠. 차마 어떻게 다쳤는지를 묻지 못하니까, 옆에 있던 마뇨레가 ‘피융~ 후와’ 하며 포탄이 떨어지는 모습을 흉내 냈어요. 포격으로 얼굴에 상처가 난 걸 이야기해준 거죠. 순간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어요. 위로 한 마디를 못하고 있는데, 호다의 어머니가 오히려 저를 위로해줬어요. 자신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딸을 위해 매일매일 소원을 빈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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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

 

딱 1년 전이죠. 예민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찾아오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어요. 당시 제주포럼 ‘길 위의 사람들: 세계 난민 문제의 오늘과 내일’ 대담에 참여하기도 하셨는데요.

 

정말 뜨거운 이슈였잖아요.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바로잡고 싶었어요. 첫째는 전쟁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도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오해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매우 엄격한 난민 심사 과정이 있어요. 여권 확인하고 간단히 면접만 하는 수준이 아니에요. 난민지위협약과 국내 난민법에 따라 국제 기준에 맞춰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걸쳐 진행해요. 난민 신청자는 그 과정에서 자기 신분을 완벽히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범죄자나 테러리스트가 난민 인정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난민이 제3국 정착을 희망한다’는 것도 잘못된 사실이죠.

 

제가 캠프에서 만난 거의 모든 난민들은 고국으로 가길 원했어요. 평화를 되찾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큰 꿈이었죠. 이들은 현재의 상태를 안정된 일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보호국에 머물러도 그곳에서 영구적으로 정착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자녀의 치료나 교육 등의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체류하기를 원하는 경우에 귀화를 신청하기도 하는데요. 귀화 과정 역시 매우 엄격하고, 귀화에 성공했더라도 결국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작년 11월,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지부티’를 방문했을 때, 예멘인을 만나시기도 했어요. 수만 명의 예민인들이 2015년에 발발한 내전을 피해 제일 처음 거쳐간 국가입니다.

 

원래 예멘을 방문하고 싶었어요. 유엔난민기구 측에 예멘 방문을 제안했는데,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어요. 그래서 방문하게 된 지부티는 인구 97만 명의 세계 최빈국 중 하나지만 3만 명 가까운 난민을 최선을 다해 보호하고 있는 관대한 나라였어요. 예멘 난민 4천 5백 명은 수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곳에 머물고 있는데, 나라가 워낙 가난하다 보니 난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죠. 그래서 지부티를 떠나 말레이시아로 가게 됐고, 거기에서도 오래 있을 수 없어 제주도로 오게 된 거였어요. 그곳에서 19살 로자라는 소녀를 만났어요. 한여름이면 기온이 50도까지 오르는 작은 인접국 ‘지부티’가 세상의 전부인 소녀가 제게 말하더라고요. “대한민국은 친절하고 관대한 나라라고 들었다.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예멘을 떠난 게 아니라고. 아저씨가 가서 전해 달라”고.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어요.

 

난민에 관한 가장 큰 편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난민이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성격을 가진 대규모 집단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난민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위험에 봉착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목숨을 위해 도피한 사람들이죠. 우리도 전쟁 앞에서, 박해 앞에서 언제든 갑자기 난민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난민은 각자의 이야기와 서로 다른 성품, 역사, 피신의 이유, 목적과 꿈을 가진 개개인이에요.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서 규정한다면 결코 난민에 대해 이해할 수 없어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으신다고요.

 

한마디로 정리할 순 없어요. 하지만 길가다 넘어진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되잖아요. 일으켜 줘야 하는 거잖아요. 언제부턴가 우리 모두가 타인에게 손을 뻗는 일에 의식 검열이 너무 심해진 것 같아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에요. 눈앞에 누군가가 어렵다고 한다면, 큰 도움은 못 돼도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언젠가 ‘난민을 돼 도와야 하죠?”와 같은 질문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날이 온다면, 더 나아가 더 이상 한 명의 난민도 발생하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친선대사로서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이룬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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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달라지지 않아요

 

5년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개인 정우성이 얻은 것이 있다면요?

 

감사! 감사죠.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게 없다는 걸 알게 해줬으니까요. 제게 정말 소중한 걸 선물했죠.

 

정우성의 주요한 연관 검색어가 ‘난민’이 됐잖아요. 부담감은 없나요?

 

글쎄요. 저는 제가 배우이기 전에 한 시민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라서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면 안 되고, 직장인이라서 사회에 대해 발언하지 못한다면 누가 과연 말할 수 있을까요? 정치권에서 시민들에게 “당신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마. 그냥 가만히 있어”라고 한다면 사회가 발전할까요? 이게 진짜 정치일까요? 조금 더 마음이 있는 사람, 여유가 있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회가 나아질 수 있으니까요.

 

책임감도 느끼실 것 같아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무일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책임의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일이잖아요. 내가 하는 말에 책임질 만한 생각을 갖고 있어야죠. 마음속에 있는 건 결코 보이지 않아요. 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셨잖아요. “행동하는 양심.” 실천이 중요하죠.

 

마음은 있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좀 기다리면 돼요. 기다리면 기회가 오고 실천하게 돼요. 주변에서 제게 말해요. “활동에 지장 없어? 너 이래도 괜찮아?” (웃음) 저는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가끔 후배들이 “저도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요. 저는 이렇게 말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기가 넘어가면 행동으로 나올 때가 있으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라고요. 꼭 누구처럼 해야 한다는 건 없어요. 마음이 생겼다면 자기답게 하면 돼요.

 

대한민국이 유엔난민기구의 민간 후원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라고 들었어요. 1위는 스페인이고요.

 

맞아요. 상대적으로 기업의 후원금은 부족한 편이고, 정부의 공여금도 한계가 있지만, 개인 후원 차원에서는 우리가 앞에 서는 나라예요. 대한민국 국민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후원보다 더 중요한 건 난민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라는 것,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난민 문제를 남의 나라 문제라고 생각하고 외면하지 않는 것, 내가 사는 곳의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국제 사회에까지 넓히는 것이야말로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한정의 지원이라기보다는 일상의 복원”(125쪽)이라고 하셨어요.


난민들이 언제까지도 난민 캠프에만 머물 수 없으니까요. 전쟁이 끝나 하루 빨리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전쟁이 쉽사리 끝나지 않으니까요. 일자리를 얻고 자족할 수 있어야 견딜 수 있어요. 난민들은 지원금보다는 일자리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고 싶어 해요. 수공예품 등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나름의 경제 활동을 해 가려는 난민 커뮤니티도 적지 않아요. 유엔난민기구도 난민들이 캠프 안에 고립되어 살기보다는 레바논에서처럼 가급적 난민 캠프 밖에서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길 바라고 있어요.

 

 

존중하려면 거리감이 필요하죠

 

책에 자주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존중’이에요. 난민과 우리, 다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일상 생활에서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거리감. 거리감을 어떻게 잘 유지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의미에서의 거리감인데요.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하면 오해를 하게 돼요. 내가 당신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착각하게 되죠. 서로를 좀 어렵게 대할 필요가 있어요. 나쁜 어려움이 아니라 배려가 깃든 어려움을 갖는다면, 서로를 존중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멋있는 사람일까요?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 멋지지 않나요? 사심을 버릴 줄 아는 사람도 멋지죠. 우리는 너무 사심에 차 있잖아요.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요?

 

개인적인 꿈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어요.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만족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 그것이 소망이라면 소망일 수 있겠지만요. 배우로서의 꿈은 제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척 흔한 말이지만 맞다고 생각해요. (웃음)

 

두 번째 책을 쓴다면, 배우 정우성의 이야기가 될까요?

 

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면 이번 책도 내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 제 이름으로 두 번째 책이 나온다면, 5년 이후의 난민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정우성


배우.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해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똥개>, <강철비>, <증인>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됐고, 2015년 6월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정우성 저 | 원더박스
난민촌에서 난민들을 만나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과 유엔난민기구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라는 그는 자신이 이런 확신을 갖기까지 경험한 것들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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