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스팔트 밑에 몇만 년 전 조상이 묻혀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땅속 유물은 인간이 지구에 생존한 역사의 흔적이자,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이다. 고고학은 이러한 유물을 통해 과거 인류의 문화, 사회 조직, 생활 양식 등을 연구한다.
『강인욱의 고고학 기행』 에서 고고학자 강인욱은 벌교 조개무지부터 카자흐스탄의 황금 인간까지 다양한 고고학의 면면을 다룬다. 깨진 토기 조각을 이어 붙이고 흙으로 뒤덮인 석상의 색을 추론한다. 그릇 바닥에 남아 있는 성분에서 술을 마셨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유물 발굴이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다. <인디아나 존스>의 황금 유적도, 어느 민족이 우월하다는 절대적인 증거도 없다. 그저 인류가 지구에 출연한 이후 지속되는 고민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우리는 왜 죽은 사람을 기리는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유물이 발견되는 건 무엇 때문인지, 인류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시작된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고고학
『유라시아 역사 기행』 이후 4년 만에 낸 책이에요. 이번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2015년 『유라시아 역사 기행』을 낼 당시에는 한국에서 유라시아가 생소한 곳이었어요. 지금은 유라시아 철도 등으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데, 유라시아 다음으로는 ‘고고학이란 무엇인가’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대중강연을 하면서도 고고학이 무엇인지 가르쳐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할 만한 책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보물찾기나 황금 탐험에 관한 흥미용 인문서는 많았지만, 고고학이 제시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번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무덤, 불, 술, 음악, 색채 등의 소재로 고고학을 엮었어요. 소재 선정 기준이 있었나요?
결국 인간이었습니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제가 느끼는 고고학이기도 했고요. 보통은 우리나라 무덤에서 토양 성질 때문에 인골이 나오지 않아요. 처음 러시아에서 발굴했을 때가 기억이 생생합니다. 무덤에서 유골이 같이 나오는 거예요. 심지어는 인골의 대퇴골 사이에서 아이 뼈가 나온 적이 있어요. 어떤 젊은 여성이 출산 중에 죽었다는 뜻이죠. 결국 제가 보는 유적은 죽은 사람을 보내는 마지막 사랑의 현장이었어요. 제가 보는 모든 유물은 그들의 가장 처절한 감정이 녹아있는 물건이었고요.
생로병사의 ‘사’가 무덤이라면, 희로애락의 ‘락’은 음악이나 술이 되겠네요.
그렇죠. 침이나 문신도 사실은 사람을 고쳐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병’이 될 수 있겠죠. 환각 음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은 그들의 병을 고치는 수단 중 하나였고, 문명의 생존과 멸망은 인간의 ‘생’과 이어져 있어요. 인간의 오감 면에서도, 얼마 전 발해와 부여 유적에서 지금 쓰는 형태와 같은 귀이개가 나오는 걸 보면서 이게 얼마나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했을까 떠오르는 거죠.
개중에는 쓰고 나서 책에 안 실은 부분도 있을 거고요.
이번에는 작정하고 시간을 비운 채 책을 썼어요. 1,500매를 쓰고 편집자님과 왔다 갔다 하면서 절반 이상을 날렸죠. 제가 재미있어서 쓴 글이지만 제삼자가 읽으면 재미없는 내용을 뺐거든요. 처음에는 글을 없애는 과정이 전쟁 같았는데, 결과물로 나온 책이 너무 예뻐서 개인적으로 책의 절반은 편집자님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고고학이 위대한 이유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하셨죠?
실제 강연이 성사되기까지는 딱 1년 걸렸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고고학 강연을 처음 하기 때문에 제작진분들도 잘 나올지 가늠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직도 고고학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대중에게도 고고학이 민족주의와 결부되었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언론 보도가 큰 문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보통 언론은 ‘우리나라 최초’ ‘최대’ ‘세계적 기록’ 같은 것만 부각해요. 고고학을 올림픽으로 만들어버리죠. 얼마 전에도 서원 하나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됐어요. 그건 세계인이 우리를 인정해준다는 뜻이 아니라 그 문화유산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리는 게 목적입니다. 무조건 타이틀을 땄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고고학이 민족주의라는 탈을 쓰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위대해서 고고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밝히기 때문에 고고학이 위대해진다고 생각해요. 민족주의의 탈을 쓰지 않더라도 고고학은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고대부터 한국이 모든 나라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어요.
한국과 유라시아도 평소 우리가 보지 못했던 많은 교류가 있었어요. 하지만 유사하다고 해서 그 땅이 내 땅은 아니에요. 많은 분이 한국과 무엇이 비슷하니 그 땅이 한국 땅이고 우리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을 하세요. 역사에서만은 이상하게 그런 일탈이 당연시되고 있는 거죠. 히틀러도 고대사를 이용해 아리아 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독일 사람을 하나로 뭉치려고 했거든요. 20세기 초 일본도 위대한 야마토 민족이 열등한 한국과 중국을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우리나라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환단고기』 도 이제까지 일본과 독일에서 발견된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조심해야죠.
어떻게 보면 현대 사람의 눈으로 역사를 읽기 때문이 아닐까요? 현재 자민족중심주의가 득세하기 때문에 역사도 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요.
두 가지 측면인 것 같아요. 하나는 말씀하신 대로 자국 중심의 이기주의가 강화되고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지나치게 우리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나온 폐해 같아요. 보통 한국사를 한국사라 부르지 않고 국사라 부르는데, 자신들은 다르다는 거죠. 해방 뒤에도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서 한국사만이 훌륭하다는 역사관이 이어진 것 같아요.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황금이나 보물은 볼 수 없을지라도 저녁에 비싸지는 않으나 맛있는 맥주를 드시게는 할 수 있을 겁니다(70쪽)”라고 하신다고요.
정말 관심이 있는 학생은 일단 삽질을 해보라고 현장에 보내요. 아무리 공부를 하더라도 땅을 직접 긁어보고 토기 한 편 찾을 때의 즐거움을 알고 있으면 그게 더 좋거든요. 물론 책으로서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만, 현장을 느끼는 게 가장 먼저인 것 같아요.
책을 읽어보니 삽질도 고고학에서는 실무 기술이더라고요. (웃음)
러시아에서 저도 삽질을 많이 했는데, 다른 분들 체격이 좋다 보니 제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매일 밤 삽자루를 개량하고 삽날을 갈아서 나름 노하우를 얻었습니다. 요즘에는 갈수록 삽질하는 일은 적어지고 있어요. 한국에는 포크레인이 대신하고 있거든요. 여기도 경제논리가 작용하는 것이죠. 인부 삽질보다는 기계가 더 싸니까요.
국내에도 학생들이 체험할 만한 현장이 있나요?
사실 한국은 특이한 경우인데, 국내에서는 현재 대학교 교수들이 발굴하는 걸 금지하고 있어요. 고고학과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 제일 좋을 텐데, 제가 직접 지도하는 학생들은 해외로 데리고 나가 실습합니다.
왜 그런 법이 생긴 건가요?
한 마디로 대학 교수들이 공부하고 연구를 해야 하는데 왜 돈을 버냐는 거죠. 구제 발굴과 4대강 사업을 통해 발굴 기관이 난립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인 고고학이 아니라, 공사장에 들어가 구제발굴을 하는 하청업이 대부분이 되었죠. 그래서 고고학 교수가 발굴하면 상업적인 이득을 챙길까 봐 걱정인 거예요. 사실 제자들은 현장에서 많이 고생하거든요. 건설업과 비슷하게 상업적인 업자 취급 받을 때도 많대요. 그래서 이청규 한국고고학회 회장님이 추천사로 “한국의 젊은 고고학도들도 단숨에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고고학 안내서라고 말씀해주셔서 기뻤어요. 지금 고생하는 젊은 고고학자에게 던지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진리로 가는 과정
고고학이 다루는 시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요?
추정치는 다 다르지만 호모 에렉투스부터 전체 인간 역사를 가정하면 대략 190만 년입니다. 인간이 글자를 쓴 건 그중 5천 년이에요. 인류 시간의 99.99%는 고고학이 담당하는 거죠. 시간과 공간 영역에서는 문헌사학보다 훨씬 큰 범위를 다루고 있어요.
작가님도 여러 지역을 다뤘다고 들었어요.
원래 전공은 만주 지역의 고조선이었습니다.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제가 러시아권에서 공부한 거의 최초의 사람이라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고학적 정보와 연구를 거쳐야 했어요. 자연스럽게 중국, 러시아, 몽골 등도 다뤄야 했고요. 심지어 10년 전에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해 지역 발굴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모스크바랑 블라디보스토크는 비행기로 9시간 걸리는데, 같은 나라라고 해서 두만강 유역까지 모스크바를 발굴했던 방법으로 연구했던 거예요. 저는 처음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제자들에게는 누구는 중국, 어떤 학생은 알타이, 다른 학생은 부여 등 세부적으로 연구하라고 나눠주고 미리 외국어를 배우라고 독려하고 있어요.
고고학에서 유물은 퍼즐 조각이 너무 많이 없어진 퍼즐 같아요. 유물의 시간적 차가 너무 크고 합리적으로 추론하려고 해도 함정에 빠지기 쉬울 거고요.
고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예컨대 천문학자들은 몇천 광년 떨어진 거리를 보고, 화성에 가본 적이 없어도 화성을 연구하죠. 모든 학문은 멀리 바라보는 지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주어진 자료를 하나하나 맞춰가는 과정은 느리지만, 늘 진리로 가는 과정이라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도 함정에 빠지는 순간이 많았을 텐데요. 어떤 방법으로 고고학적 추론을 만들어내나요?
교차 검증과 함께 언제라도 제 발견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고학은 가장 많은 변화가 있는 미래학문입니다. 어떤 유물이 나오느냐에 따라 매일매일 가설이 바뀔 수 있어요. 그리고 유물을 발굴하는 순간에는 오히려 상상력을 억제하려고 합니다. 유물을 눈앞에 두면 생각지도 않은 게 피어오르거든요. 그걸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하고, 학생들 가르칠 때도 그런 점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상상력을 억제하라는 말은 생소하네요. 보통은 상상력을 펼치라고 할 것 같은데요.
유물이라는 게 보다 보면 별생각이 다 들어요.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이상 상상을 함부로 논문에 넣을 수는 없죠. 논문에 넣을 수 없었던 혼자만의 메모를 한 번쯤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세상에 보내고 싶었어요. 이 책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써본 것 같아요.
두만강 유역의 침통과 침도 처음에는 뼈바늘로 생각하셨다고요.
제가 주장했던 게 10년만 가도 소원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해요. 2년 전에도 제 설을 엎은 적이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을 가지고 한국의 청동기 기원이 기원전 9세기에서 8세기라는 논문을 썼는데, 얼마 전에 그보다 500년 앞선 주거지에서 새로운 청동기 유물이 나왔어요. 유물은 사실이기 때문에 기존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했어요. 오히려 주장을 바꾸는 것보다 새로운 자료가 나왔는데도 귀를 막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죠. 책에 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도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지 않아요. 사실 그가 발굴한 건 트로이 유적이 아니라는 비판이 들어왔을 때 그는 듣지 않았어요. 뒤늦게라도 인정했으면 존경할 수 있었겠죠. 실패를 인정하는 게 진정한 고고학자라고 생각해요.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서 유물 검증 방법도 많이 바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장 현대 학문이라는 거죠. 계속 새로운 방법이 나오거든요. DNA 조사만 하더라도 제가 대학생일 때는 없었어요. 당시 유일한 방법은 사람의 뼈 크기를 재는 거였죠. 모든 방법을 알려면 힘들지 않냐 하시는데, 보통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엔진의 원리까지는 잘 모르잖아요. 운전법을 제대로 알면 돼요. 모든 고고학자가 과학적 방법의 원리를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유물에는 어떤 방법이 좋다는 걸 계속 숙지하고 있어야 하죠. 새로운 방법은 계속 공부해야 하고요.
과학이 인문학이 맡아왔던 질문,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더 많이 답하는 추세예요. 이렇게 간다면 인문학이 좁아지게 될까요?
오히려 파이를 키우는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밝혀지는 경우가 있어요. 가족인 줄 알았던 인골이 알고 보니 사촌과 팔촌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토기에서 술의 흔적이나 약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뇌과학도 제가 연구를 하면서 많이 도움이 됐어요.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죽음에 임했을 때의 감정은 전 세계 공통이라는 걸 뇌과학이 밝히거든요. 고대 사람들도 사후세계를 보았기 때문에 사후세계를 위한 상징물로 무덤을 가득 채웠을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홍산 문화의 나비와 곤충의 형상을 설명할 수 있죠.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문학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팔다리를 붙여주는 기분이 들어요.
한 삽 파면 끝이에요
구제발굴에 대한 문제점도 짚어주셨어요.
고고학은 파괴를 전제로 한 학문이에요. 제일 좋은 발굴은 하지 않은 발굴입니다. 하지만 발굴하지 않으면 가치를 알 수 없어요. 무조건 파괴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유물이 파괴되는 이유가 경제 발전이라면, 경제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은 국가는 유적 보존을 잘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력이 있기 때문에 유적을 보존할 수 있어요. 무조건 경제 발전을 반대한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구제발굴을 너무 당연시하면 안 된다는 거죠.
경주에서 집을 고치려고만 하면 유물이 나와서 함부로 이사를 못 한다는 ‘웃픈’ 농담을 들은 적이 있어요.
현대인의 삶의 질도 고려해야죠. 유적을 위해서 사람이 희생되어서도 안 돼요. 유적은 사람들과 공존할 때 진정한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있거든요. 한국은 그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경주는 아예 70년대에 다른 도시로 옮겼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경주 자체를 유적 공원으로 만들었으면 어느 나라보다 좋은 유적공원이 되었을 거예요. 지금은 옮길 수도 없고, 유적이 이렇게 많이 나오니 놔둘 수도 없어요. 궁극적인 해결은 이미 좀 어렵지 않나 싶어요.
춘천시의 레고랜드 부지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적이 발견됐지만, 경제 논리에 밀려 빠른 속도로 발굴을 마치고 선사 유적 테마파크를 만든다고요.
얼마 전에도 어떤 분이 레고랜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셔서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화장을 하든 묻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일갈한 적이 있어요. 이미 50년 발굴할 양을 5년 만에 파헤쳤어요. 껍데기밖에 안 남았는데 유적공원 세우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하지만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발굴을 기획하고 허락했는지는 밝혀야죠. 문제 없었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문제가 없다면 공개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겁니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 이런 유적이 나왔다면 50년씩 두고 천천히 발굴했을 거예요. 매우 안타깝죠.
‘불가역성’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해 주셨어요. 고고학 발굴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요.
한 삽 파면 끝이에요. 한 번 파면 없어지는데 신중해야죠.
“새로운 것이 나오면 전쟁 같이 소비하는 요즘이라 그런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정 또한 절실해진다(235쪽)”에는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아쉬움이 드러나기도 했어요.
고고학은 후회의 학문이기도 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르게 팔걸’ 하고 늘 생각하죠. 정말 좋은 유적인데 공사와 주민들 항의 때문에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고고학은 파괴지만, 파괴하지 않으면 알아낼 수 없거든요. 저희가 약간 파괴했기 때문에 더 심한 파괴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책에 실린 유물을 보면 감탄이 나와요. 땅에 묻힌 걸 훌륭하게 복원해 냈잖아요.
유물도 자기 운명이 있어요. 고고학자를 잘못 만나면 황당하게 발굴 되기도 하고, 고고학자를 잘 만나면 제대로 복을 받죠.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유물 하나하나는 엄청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고고학자의 피땀이 서려 있어요. 그리고 결국 저도 유물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이 책도 결국 유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어느덧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을 전하고자 했어요.
책을 읽고 독자들이 고고학을 어떻게 생각했으면 하나요?
고고학은 사람 자체를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의 모든 기억과 추억, 역사는 우리의 죽음과 함께 마무리됩니다. 그 죽음의 봉인을 해지한 게 고고학이에요. 고고학자의 역할은 황금을 캐는 게 아니라 죽어있는 것을 부활 시켜 인간을 밝히는 거예요. 망각된 사람들을 끄집어내서 그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거죠.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강인욱 저 | 흐름출판
흙투성이 유물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읽어내는 현미경이자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마중물로서, 독자를 기꺼이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이제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물 이야기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