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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맥락 있는 여행 에세이, 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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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은퇴를 한 이후 출간한 책  『어떻게 살 것인가』  (2013년 3월)에서 유시민은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고 싶다. 자유롭게, 그리고 떳떳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첫번째 여행 에세이를 출간하며 진행하는 인터뷰에서 “저 팔자 좋지요?”하며 웃고 있다. 그는 지금 사는 것이 참 좋다고 한다. 이런 주제로 이런 책을 쓰면 어떨까, 하고 착수하기 전에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어떤 책이 나올까?’하며 설렌 마음이 든다. 영락 없는 글쟁이, 본인 말로는 지식 소매상, 유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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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 쓰는 과정이 가장 즐거웠어요


여행기를 낼 계획이라는 말씀을 꽤 예전부터 하셨습니다.


출판사에게 처음 제안을 받은 것이 5년 전인 것 같네요. 1권에 나온 도시들 네 곳은 2016년에 여행을 했는데, 글을 쓴 것은 작년이에요. 그렇게 늦어진 이유는, 네 도시만 가서 쓰기가 좀 이상하더라고요. 다른 도시들도 다녀보고 비교해보면서 감이 와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원고를 묵혀 놓고 다른데도 다녀보고 1권 초고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획을 하고 5년 지나서 첫 권이 나온 셈입니다.

 

아내이신 한경혜 선생님이 사진으로 참여하셨어요.


같이 일하러 다닌 거죠. 이 기획 제안을 받았을 때 사실 전 긴가민가했어요. 제가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것도 아니고 여행 에세이를 써본 적도 없어서 할 수 있을까, 이런 것 때문에 망설였는데 제 처가 얘기를 듣더니 좋아하는 거에요. 제 처가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여행 책을 내려면 사진이 필요한데 사진 찍을 분을 따로 구해 동행하면 비용이 많이 들 거 같다. 당신이 사진을 배워서 사진을 찍으면 호텔방 하나만 잡아도 되고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해서 제 처가 사진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한 2년 정도 사진을 배우고 찍을 만하다 싶게 된 2016년 봄부터 다니기 시작한 거죠. 저희는 나이 차이가 3년 있긴 해도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여서 함께 여행 다니는 것 괜찮은 거 같아요.  둘만 다니니까 안좋은 점이 있기는 해요. 밥 먹을 때 시킬 수 있는 메뉴가 많지 않다는 것?(웃음)

 

굉장히 편안하게 읽혔습니다.


여행 에세이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이전 책들은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이런 주제를 가지고 썼으니까 내용에 이론적인 것도 들어가고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에 대한 저의 의견이 안 들어가면 책이 안되지요. 여행은 정답이 없지요. 옳고 그름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취향의 문제여서, 제 취향에 맞는 내용, 제 취향이 비추어 봤을 때 중요한 거, 제 취향으로 볼 때 괜찮았던 것 위주로 글을 쓰니까 쓰는데 부담이 덜했고 독자들도 크게 부담 가지고 읽을 내용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까지 책을 수십 권 써왔는데, 작업하는 과정 자체는 이번 책이 제일 가볍고 즐거웠어요. 스트레스를 거의 안받았습니다.

 

각 도시를 4박 5일 일정으로 다니셨어요.


이 책 기획하면서 유럽 여행에 대한 책을 다 살펴봤어요. 이미 있는 스타일의 책이라면 내가 쓸필요 없다라고 생각했어요. 검토를 하면서 느낀 것이 정보는 많이 들어있는데 맥락이 없어서 잘 읽히지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맥락을 만들어야겠다고 한 편으로 생각했어요. 또 한 편으로는 단기 여행자에게 와 닿는 책을 쓰자는 것. 이스탄불 뒷골목에 지금도 끈을 달아서 쿠키와 차를 올려 보내는 곳이 있어요. 그런데 4박 5일 여행자들이 이런 곳에 가기는 쉽지 않죠. 단기 여행자의 눈높이에 맞게 그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곳,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일정을 짰지요. 그리고 여기에 콘텍스트를 붙여야겠다고 기획을 한 거죠. 여행 에세이의 종 다양성을 확충한 효과는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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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출발은 아테네에서 할 수 밖에


아테네가 첫번째 도시입니다. 처음부터 아테네를 첫번째 도시로 염두에 두셨나요?  


유럽의 중요한 도시, 아름다운 도시, 사람들이 자주 가는 도시, 이런 곳을 조사 하다 보니까 결국 출발은 아테네서 할 수밖에 없을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정식으로 아테네를 여행가기 전에 사전답사 느낌으로 미리 갔었어요.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요. 그렇게 다녀오고 이 도시를 제일 먼저 와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해졌어요. 대충 다니면서 봤는데도, 우리가 유럽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아테네서 출발했더라구요. 역시 순서로 보면 여기를 제일 먼저 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지요. 그 맥락에서 로마, 이스탄불, 파리, 이렇게 연결이 된 거에요. 아테네 다음에 유럽의 문화 수도 역할을 했던 도시가 로마이고, 서로마 제국 망하고 나서는 콘스탄티노플 즉 이스탄불이고, 오스만 제국이 말기로 막 갈 때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곳이 파리이지요. 1권은 이렇게 유럽의 중심 도시 별로 했고요, 2권부터는 가까운 곳을 묶어서 쓰려고 합니다.

 

각 도시를 사람으로 비유한 것이 재밌었어요.


아테네는 어제의 미소년이 세상의 풍파를 겪은 주름진 철학자, 로마는 전성기를 다 보낸 은퇴한 사업가로 비유했지요. 파리는 내가 연락 안해도 너무 잘나가는 친구 느낌의 도시에요. 이스탄불은 딱 떨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이스탄불은 약간 억눌린 듯한 도시입니다.

 

아테네 편에 나오는 아스파시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회적 귀속, 계급이, 출신 지역이 뭐든 간에 비전과 재능, 열정을 가진 개인이 제도 속에서 무시당하고 억압당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그런 거에요. 자꾸 눈이 가더라구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페리클레스 이야기를 쓰면서 아스파시아 이야기를 안할 수는 없겠다, 싶더라구요. 스파르타쿠스, 검투사들의 이야기를 로마 편에서 쓰고 싶었는데 분량도 넘치고 해서 못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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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맥락을 찾아보기


케이사르가 어떤 인물인지 이제서야 가늠이 되더라구요. 콘텍스트로 읽기의 힘인가요?(웃음) 


카이사르 초상을 로마에 다니면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이사르를 기념하는, 모시는,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 없더라구요. 이 사람은 황제가 안 되었기 때문에 개선문도 없고 아무 것도 없더라구요. 포로 로마노, 거기 가보니까 원로원 건물이 있고 카이사르가 거기서 암살 당한 거잖아요. 2천 5십여 년 전에요. 거기서 감정이입해보는 거죠. 여행은 그런 재미가 있어요. 이 사람 뭐지? 어떻게 이렇게 모순된 삶을 살았지? 황제가 되지 못한 독재자였는데 왜 사람들은 카이사르를 오랬 동안 추앙하고 기억하게 되었을까. 단순히 드라마틱한 사건들 때문일까.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카이사르 얘기는 좀 써야겠다. 그런데 이걸 그냥 쓸 순 없고 어디에서 쓸까 고민하다가 그래, 포로 로마노 원로원 마당 거기 밖에는 없을 거 같다, 생각해서 연결해서 쓴 거죠. 곁까지 얘기인데 그 사람을 생각하며 포로 로마노를 거닐면 느낌이 좀 달라요. 그렇게 안해도 상관 없지만 기왕 멀리 갔는데, 그런 상념이나 감정에 한번쯤 원로원 마당에 서서 젖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면서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생각해 보고요. 그런 재미죠.

 

스스로 질문하고 맥락을 찾는 선생님의 능력을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그건 제 업이죠. 제 직업이니까, 제가 열심히 잘해야지요. 류현진 선수가 자기 일을 잘 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처럼 저도 제 일을 잘 하려고 노력을 하죠. 류현진 선수가 오늘 보스턴 레드삭스와 했는데 1회에는 수비가 우왕자왕하며 2점 내줬지만 그 뒤로 7회까지 엄청 잘 던졌거든요. 미국 해설자도 어린 선수들이 류현진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논평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류현진 선수가 연봉을 많이 받는 거겠죠. 야구팬들은 류현진 선수를 보면서 아름답다, 멋지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어린 야구선수들은 류현진 형이 던지는 것을 보면서 뭔가 얻어갈 수 있겠죠. 저도 지식 유통을 하는 사람으로서 여행 에세이를 통해 그런 일을 좀 더 잘해 봐야지,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류현진 선수가 공을 잘 던지는 것만큼 제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아니에요.(웃음)

 

가장 마음이 가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이 참 좋더라고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이 오드리 헵번을 깜짝 놀라게 했던 ‘진실의 입’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벽돌 지붕 위에 나무를 얹어놓은 소박한 성당이고 끊임없이 개보수하며 왔겠죠. 지하에 내려가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이 살았고 나중에 빈민 구호소 역할도 했던 공간이 나오는데 종교가 원래 뭔가, 사람들이 왜 종교를 만들었고 왜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었어요. 저는 무신론자인데 그래도 종교를 가진 분들에게 감정이입을 해보면 성스러운 느낌, 경건한 마음이 생기는 공간이었어요.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런 날 저녁이 되어 호텔로 돌아가면 정말 기분이 좋아져요.

 

지금까지 많은 책을 써오셨는데 어떤 전략이 있으신 거였나요?


전략은 없고 제가 쓰고 싶은 걸 써요. 그 시점에서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을 씁니다. 전형적으로 그런 책이 『청춘의 독서』  입니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처럼 상황상 저한테 과제가 떨어져서 쓴 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써왔어요. 어떤 제안이 들어와도 내가 쓰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안써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생기고 거기에 대해 공부를 하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요새는 책으로 별로 하고 싶은 얘기가 없어요. 역사, 정치, 경제, 별로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데 그래도 유럽 여행은 재밌지요. 여행을 다녀오고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제가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요.

 

예전의 삐딱하고 날 선 모습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약간 아쉬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필자를 찾아야죠. 더 날카롭게 할 수 있는 다른 필자를 찾아야지. 저보고 계속 그렇게 살라고 하면 힘들어요. 총량의 법칙이 있어서요. 지랄 총량이라고 하기도 하고, 열정 총량의 법칙이기도 한대,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죠.


일년에 1권씩 여행 에세이를 내시려면 체력 관리에 힘 쓰셔야 할 거 같아요.


원래 축구를 했는데, 요즘은 헬스를 합니다. 근력을 키워야 하니까요. 하루에 10km 걷는 것은 크게 몸에 부담이 안 올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유럽 도시 기행 1유시민 저 | 생각의길
각 도시의 건축물과 거리, 광장, 박물관과 예술품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에 얽힌 지식과 정보를 그만의 목소리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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