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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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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던 시기를 지나다 올해 1월, 43회 이상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큰 격려가 됐다는 윤이형 작가. 그는 책을 한 권 낼 때마다 “여전히 무섭다”면서도 쓰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에서 계속 써야 했다고 말했다. 2015년 겨울부터 2019년 6월까지의 기간에 발표한 작품을 묶은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  에는 대통령 탄핵 집회에 나가려는 기혼 여성(「작은마음동호회」), 아이를 갖고 싶은 레즈비언 여성(「승혜와 미오」),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를 고민하는 여성(「피클」), 트렌스젠더 동생에게 용기 내 다가가려는 여성(「마흔셋」) 이 등장한다. 이들은 방황하고, 오해 받고, 그러나 끝까지 ‘작은마음’을 놓지 않는다. 이 마음이야말로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변하듯 그렇게. 그렇다면 윤이형 작가가 희망하는 것은 “함께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우리가 마지막이 아닐”(353쪽) 것이라는 믿음으로 ‘작은마음동호회’라는 깃발 아래 잠시 틈을 내어 모인 사람들의 연결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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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제목이 정말로 좋았어요.


‘나 좀 소심하다’고 표현할 때 “나 작은마음동호회 회원이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이런 말이 보통명사처럼 있기도 한가 봐요. 친구 유형진 시인의 포스팅에서 빌려온 말인데요. 유형진 시인도 이런 동호회 회원이라고 말하기에(웃음)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블로그 친구들과 자신을 부르는 말이라는 거예요. 무슨 모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알 것도 같고 그렇잖아요. 먼저 집회에 못 나가고 있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쓰다가 이 사람들을 뭐라고 이름 붙이면 좋을까, 했는데 딱 맞는 것 같아서 허락을 받고 제목으로 빌려 왔어요.

 

‘작은마음’이 ‘큰마음’의 반대는 분명히 아니죠. 말하자면 훨씬 세밀한 마음이라고 할까요. 중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부자유해요. 묶여 있는 게 너무 많고요. 사회 참여 같은 것을 하고 싶지만 생각을 하다가도 그만두게 되고, 아예 얘기도 안 꺼내고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하지만 같은 사람이잖아요. 의식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고요. 다만 부자유한 상황 때문에 생각조차 잘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또 주인공이 친구 ‘서빈’에게 갖는 복잡하지만 염려하고 좋아하는 그런 마음은, 작은 것이지만 실은 어떤 대의보다 중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제가 이런 생각을 평소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 ‘선한 마음’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수아」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그냥, 선한 인물을 현실에서 보기가 너무 힘들잖아. 소설 속에서만 가끔 볼 수 있잖아. 그게 너무 좋으면서 마음이 힘든 거야.”(327쪽) 또 「이웃의 선한 사람」은 ‘선함’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고요.


선한 마음이 뭔지 저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다만 타자를 적대적인 태도로 막아버리지 않고,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상황이 암울해도 약간의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나를 기준으로, 나만 옳고, 그런 거 말고 저 사람도 옳을 수 있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을 바꿔 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세상을 지속될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태도가 나아가 연대를 가능하게 할 거예요. 「피클」에서도 피해자들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잖아요.


아이 엄마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고립돼서 살게 돼요.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 그렇더라고요. 집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너무 바쁘죠. 소통도 거의 못하고요. 그래서인지 제 안에 이어지고 싶은 욕망이 있나 봐요. 그게 본격적인 연대로 가기도 하고, 마음만 가기도 하지만요. 결국 혼자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해서 잘 됐던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그랬어요. 20대 때부터 주로 혼자 있었어요. 그러다 공동체를 만든 것이 가족일 텐데 좋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묶여 있게 되니까 자꾸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고, 문제가 있다면 한 명이라도 더 모아서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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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연대자들의 역할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뭔가요?


그게 「피클」이었던 것 같아요.

 

「피클」을 보면 직장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한 ‘유정’이라는 인물이 망상이 있다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 받게 되잖아요. 이른바 ‘피해자다움’이죠.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요.


유정이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 것은 사적인 발화와는 구별이 되는 공식적인 발화예요. 보통은 사적인 이야기들과 공적인 피해 사실에 대한 발화가 뒤섞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게다가 요즘은 미디어 환경 때문에 누구나 쉽게 검열할 수 있어요. 모두가 모두를 검열하죠. 특히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그 검열이 너무나 극심해서 조금만 잘못하면 ‘이러는데 네가 무슨 피해자냐’가 되는 거예요. 피해자의 편에 선다는 건 피해자가 하는 일상의 모든 말을 사실로 믿고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고요. 피해자의 피해 사실 발화가 막히지 않도록 길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피해 사실 자체가 투쟁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고요. 때문에 피해 사실이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공동체가 해석을 같이 도와야 해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는 데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서 이것이 사실이라는 걸 세상에 알리는 일이 공동체와 연대자들의 역할이라고 배웠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특히 타인의 피해 사실로 인해 내가 스스로 잊고 있던 나의 피해를 비로소 얘기하게 된다는 점도 중요할 것 같아요.


저도 여성이니까 당연히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데요. 그것을 말로 하거나 누구에게 알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거죠.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거예요. 피해 사실을 말한 뒤에 펼쳐질 일이나 잃는 것들을 생각하면 너무 벅차니까요. 시간이 많이 지나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요. 주인공 선우도 자신의 생계 수단인 회사의 책임자에게 피해를 입었지만 그런 자기의 어떤 부분을 완전히 부정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생각하면 그런 사람도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 건 다른 피해자를 보고 그에게 공감할 때 비로소 말을 해서 이어질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저도 선우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말이 사랑이었다거나 호감이었다는 식의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는 아주 전복적인 이야기인데요. 이 작품은 진짜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싶더라고요.


다들 “딸 같아서 그랬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도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거거든요. 그게 어떤 기분인지 말을 해보고 싶었어요.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


작가님과 2016년 초에  『러브 레플리카』  출간으로 만나 인터뷰 한 적이 있잖아요. 공교롭게도 이후에 한국에 사는 여성으로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됐어요. 작가님 역시 작품 활동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한국의 모든 여성들에게 그 시기가 격변기였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그 중 한 명이에요. ‘강남역 살인사건’ 때부터 생각이 많이 달라졌고요. ‘문단 내 성폭력’ 이슈가 터졌을 때 충격을 굉장히 많이 받았죠. 그때 준거집단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완전히 뒤집어지면서 작품도 변화하게 됐어요.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 게 그 이후였고요. 욕망이 먼저 생겼던 것 같아요. 뭔가 계속 쓰긴 했었는데 성별을 신경 쓰지 않고 쓰거나 오히려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인 목소리를 사용해서 쓰기도 많이 했던 것 같거든요. 나의 삶임에도 얘기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그것들을 그냥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커져서 쓰다 보니 지금에 이른 것 같아요. 전부 제가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고요. 어쨌든 저 자신이 우선이었던 것 같아요.

 

2015년 겨울부터 2019년 6월까지의 기간에 발표한 작품이 묶였어요. 지금의 작가님이 갖고 있는 고민과 가장 닿아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마흔셋」의 주인공이에요. 늙어가는 여성인데 저와 상태가 되게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 40대 중반이 되는데요. 신체적, 정신적으로 늙어가는 게 너무 느껴져요. 늙어가는 것을 계속 느끼고 있고요. 이제는 세상의 주변부에서 젊은 세대를 뒷받침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별로 아닌 것 같고 그렇죠. 저의 감각 같은 것이 낡아가고 있다는 걸 계속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감각이 낡아가고 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던 건지 궁금하네요.


저는 20대 친구들도 있는데요. 대화를 하면 말이 통하다가도 다른 게 느껴져요. 성장 배경도 다르고 하니까요. 이 친구들은 너무 심한 경쟁 속에 처음부터 놓여 있었고요. 경제적인 환경이나 기타 상황도 너무 안 좋아요. 기성세대로서 나는 참 편하게, 책임을 안 지고 살아왔구나 그런 생각이 계속 들어요. 미안할 때가 많고요. 그런 와중에 젊은 분들이 저와 비교했을 때 훨씬 정치적이고 생각도 깊게 하고 뛰어난 면이 많아서 많이 배우기도 하거든요. 그러면서 ‘나는 진짜 이제 낡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말씀처럼 같은 여성이어도 경험치가 워낙 다르죠. 한편 가끔은 너무 큰 차이를 느껴서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고, 계속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작가님도 그러시겠죠?


저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의제를 공감의 기준으로 삼는 여성들도 있고, 페미니즘 담론에서 소외된 중노년 여성이나 어느 입장에 공감은 해도 몸이 아파 행동에 나설 수 없는 여성, 당면한 삶의 문제 때문에 사회 변화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여성들도 있을 거예요. 저는 소설가로서 오히려 이렇게 담론에 들어오지 못하는 여성들 쪽에 더 관심이 가요. 한편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여성으로서는 우선 각각의 입장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고 느끼죠. 차이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연결되어 같이 가면 좋겠지만 꼭 같이 가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도 있는데요. 서로 가려는 방향이 너무 다르다면, 억지로 연결하는 게 오히려 차이를 뭉개는 일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깊이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역시 답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 같기도 해요.

 

그렇다면 내 공동체 안에 있는 남성에 대한 생각도 묻고 싶어요. 「피클」에서도 주인공 ‘선우’도 남편과는 아예 대화가 안 돼죠. 이런 갈등을 겪는 분들이 실제로도 정말 많을 거예요.


저도 그런 경험이 많지만 정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람을 뒤틀어놓기 너무 쉽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이 제도 안에 들어와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또 금방 벗어날 수도 없어요. 제도 개선을 해야 할 텐데 단순히 가사분담 정도로는 안 될 것 같고요. 글쎄요. 그냥 여성들이 더 많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이 육아에도 영향을 주나요?


네, 고민이 많이 돼요.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요. 곧 이성과도 친해질 것이고, 이성을 좋아할지 동성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더 친밀해지는 시기가 올 텐데요. 어떻게 해야 여성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갖지 않고 대하게 할 수 있을지가 저에게 아주 큰 문제예요. 일단 자원이 너무 부족해요. 학교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계셔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거든요. 페미니스트 교사 분들이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고 계신데 학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절실한 문제예요. 게임, 유튜브 등에 여성혐오적인 콘텐츠가 너무나 공기처럼 스며 있잖아요. 그걸 학부모가 다 확인하고 차단할 수 없어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정말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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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문제


보이지 않는 존재들, 용, 로봇처럼 아주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하고 계시잖아요.


문예지에 용을 써서 좀 이상하게 볼 수는 있을 텐데요.(웃음) 그냥 용 얘기를 너무 쓰고 싶었고요. 왜 용을 쓰면 안 되는지 잘 모르겠기에 쓴 거예요. 오히려 저의 고민은 다른 데 있어요.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문제를 다른 것으로 치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었거든요. 책의 앞쪽에 묶은 소설은 그래서 쓴 건데요. 비현실적인 설정을 빌려 얘기하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어요. 무슨 얘긴지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직설법을 좀 많이 쓰는 것 같고요. 그냥 얘기를 해야지 은유를 빌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었죠.

 

「승혜와 미오」, 「마흔셋」 등 소수자의 이야기도 많아요.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라서 주류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내면은 주류로서의 정체성이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적응을 못할 때가 더 많고요. 소수자가 주변에도 많고, 많이 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세계의 일부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소설에 등장시키는 것도 그냥 제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기 때문이었어요.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혹은 조심하는 부분도 있으신가요?


모든 사람이 자기와 다른 정체성의 사람들을 어느 정도 타자화하죠. 소수자를 소설에 쓰면서 나도 노력을 한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타자화를 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마흔셋」의 ‘재경’도 그런 인물인데요.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오히려 너무 조심해서 대하는 게 역으로 타자화가 되고요. 그래서 동생 재윤이 오히려 당혹스러워 하잖아요. 그런 부분은 당사자들에게 비판 받으면서 고쳐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소수자도 모두 개별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전형에 맞지 않는 의외의 모습이나 다양한 모습들이 있을 거고요. 그 개별성을 살리면서 대상화, 타자화를 피하는 것이 숙제인 것 같아요.


 

 

작은마음동호회윤이형 저 | 문학동네
일상에서 감내해야 하는 사적이지만 끈질긴 고민부터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의 문제까지, 작가는 지금 우리의 내면을 가장 뜨겁게 울리는 아우성에 귀기울여 정확하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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