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일본으로, 이어 2000년 미국으로 진출했던 이상훈이 4년 반 만에 다시 한국행을 결심했을 때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야구하자!”였다. 팀에서 맡게 될 막중한 책임,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 등 고민할 것이 많았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로지 야구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밖에”(187쪽) 없었던 것이다. 이후 2004년, 갑작스레 은퇴를 선언하고 록밴드 리더로 변신, 다시 야구인으로 돌아오기까지 『야구하자 이상훈』 은 ‘야구하는’ 이상훈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모두 담아냈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 『시민을 위한 도시스토리텔링』 을 쓴 김태훈 작가는 “이상훈 선수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 때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야구하자 이상훈』 은 “결과물이라기보다 과정”이라고 말했다.
마운드와 홈 사이의 거리, 18.44
부제에 ‘18.44미터의 약속’이라고 되어 있죠. 18.44라는 숫자는 이상훈 선수가 사인에도 기재하는 숫자인데요. 여기에 담긴 생각을 들려주세요.
이상훈 : 그냥 제 닉네임이나 마찬가지예요. 주로 자기 팀 이름을 쓰거나 하는데요. 저는 마운드와 홈 사이의 거리인 18.44를 쓰게 된 거죠. 그것이 제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거예요.
김태훈 : 2002년 이상훈 선수가 한국에 돌아올 때 홈페이지에 썼던 글이 있어요. “18.44미터를 못 던질 때까지 마운드에 오르겠다.” 그때 LG팬들이 감동을 많이 받았고, 복귀전 때도 팬카드에 그 숫자를 써서 응원하고 그랬거든요. 18.44라고 하면 마운드과 홈의 거리지만 그때부터 LG팬들은 이상훈 선수를 떠올리게 됐죠.
이상훈 선수에 대해 쓰기로 했을 때의 일화가 흥미로워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신문 지면을 받고, 이상훈 선수에 대해 쓰기로 결정한 후 지인이 이상훈 선수와 연결해주겠다고 해요. 그리고 다음날 곧바로 이상훈 선수에게서 전화가 왔잖아요.
김태훈 : 이상훈 선수와 연락할 방법을 찾고 있었어요. 신문사에서도 잘 못 찾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이상훈 선수의 부인 분과 잘 아시는 지인께서 이 이야기를 전해주셨던가봐요. 근데 그 얘기를 듣고 이상훈 선수가 제게 바로 전화를 한 거예요. 이상훈 선수 입장에서는 ‘전화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웃음) 너무 간단한 거죠.
이상훈 선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 전부터 갖고 있었나요?
이상훈 : 없었어요.
그렇다면 신문 인터뷰나 책 출간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어요?
이상훈 : 인터뷰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고요. 책은 고민을 조금 했어요. 나에 대한 것을 책으로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요. 인터뷰도 그렇지만 책은 더 진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고, 무게감이 조금 달랐죠.
김태훈 작가님은 책 쓴 소감을 “행복했다”고 제일 앞에 밝히셨어요. 왜일까요?
김태훈 :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는 캐릭터를 쓴다는 게 굉장히 즐겁고, 행복하더라고요.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구성하는 거잖아요. 오해 받고 있는 부분도 있고, 덜 알려진 부분도 있고, 바로잡을 부분도 있으니까요. 가령 2002년 플레이오프 때, 추운데도 이상훈 선수가 반팔을 입고 경기를 했잖아요. 당시 기사는 그냥 반팔 입고 경기했다는 식으로 나왔었거든요. 그걸 정확하게 “언더셔츠의 소매를 잘라 반소매 차림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수정했죠. 전체적으로 책 내용에 대해서 이상훈 선수도 마음에 들어 해서 기분 좋게 책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왼쪽부터) 이상훈 선수, 김태훈 작가
그 이상훈은 지금도 그대로 이상훈
서술 방식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은 소설처럼 읽히기도 하거든요.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텔링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김태훈 : 이 사람이 그때 왜 그런 말을 했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가 쉽게 취할 수 있는 건 ‘그 사람 원래 그래’ 같아요. 낙인을 찍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꼬리표가 붙어버린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어요. 저는 왜 이상훈이라는 사람이 중요한 기로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치 영화 <조커>에서 그 조커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조커가 됐는지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납득할 수 없는 과정이 몇 번 있었거든요. 2002년에 준우승을 하고도 이후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부분이나 2003년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광환 감독이 경질된 부분이 같은 것이 그렇죠. 물론 프로는 구단의 결정에 따라야 해요. 그렇지만 과정에 있어서 최소한의 납득이 되는 의사소통이 없었잖아요. 그런 부분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2004년 당시에 마운드를 떠날 결심을 하면서 사흘을 앓았다는 대목이 나와요. 당시 은퇴를 만류하기 위해 암 투병 중인 팬 분이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고 하고요.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는 상황들이 있었어요.
이상훈 : 문 열어주기 싫었어요. 아무리 팬 분이라도 오셔서 저를 달랜다고 될 일이겠어요?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되는 결정인데요. 그래도 결국 집 안으로 모셔서 그분과 얘기를 했고요. 오히려 제가 납득을 시키고 보내드렸죠. 그런 상황이 힘들었어요.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든 일들이 자꾸 온 거예요. 다른 사람들을 제가 설득을 시키고, 납득시켜야 했죠. 저는 그만둘 때 이미 여태껏 야구를 하면서 겪은 것보다 지금 그만두면서 겪는 것이 더 힘들겠다, 그런 생각했었거든요. 이미 각오를 하고, 은퇴를 결심한 거였어요. 그 결정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서 겪어야 했던 힘든 과정 중 하나였던 거예요.
김태훈 : 그 상황에서 야구계 쪽으로 조금만 오면 더 혼란스러울 거잖아요. 미안하기도 하고요. 특히 SK쪽 팬들이나 감독,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는데요. 당시 조범현 감독이 이상훈 선수를 따로 불러서 “차라리 (시즌 끝나고) 나와 함께 그만두자”고까지 말씀을 하셨대요. 그렇게 어렵게 한 결정이니까 이후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수 없었던 거죠.
그럼에도 은퇴를 결심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상훈 : 그동안 많이 해온 이야기인데요. 저 나름대로 너무 많은 고통이 있는 상태에서 LG에서 SK로 넘어왔고요. SK에서 야구를 하는데 야구선수 같지가 않았어요. 야구공을 던지는데 야구선수 같지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연봉을 받으면서, 또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에요. 이건 그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그래서 그만뒀어요.
책에 이상훈 선수가 은퇴한 2004년부터 2012년까지의 이야기를 상세히 기술하려고 했다고 밝히셨잖아요. 이유도 들려주세요.
김태훈 : 그 시기는 알려진 게 드물어요. 개인 레슨장도 운영했고, 여자야구팀 감독도 했는데요. 팬이나 이상훈 선수를 좋아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그 기간이 일종의 블랙박스이기 때문에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이상훈 선수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 때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이상훈은 지금도 그대로 이상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정말 중요한 것은 팬들이에요
2011년 만난 여자야구팀 ‘떳다볼’의 감독 시절을 책에는 “치유의 시간”(273쪽)이라고 밝히고 있어요.
김태훈 : 이상훈 선수가 떳다볼 이야기를 참 길게 했어요. 저도 그 이야기가 인상 깊어서 떳다볼 팀 선수들을 따로 만나 인터뷰 하기도 했죠.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선수들이 들려준 이야기예요. 선수들도 말해요. 2012년 ‘익산시장기 전국여자야구대회’에서 대단한 팀워크와 야구에 대한 희열을 느꼈다고요.
이상훈 : 저와 성별이 다른 사람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보는데 색달랐어요. 제게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는데요. 야구는 다 똑같다고 얘기하지만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차원도 다를 수 있고, 대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지금 생각나는 건데요.
연습을 거의 실내에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한 번은 야구장을 빌렸어요. 근처에서 밤에 술을 먹고 있는데 눈이 오는 거예요. 아침까지 오면 쌓이겠더라고요. 그때 ‘눈이 오면 선수들이 무슨 마음으로 야구장에 올까’ 싶어서 같이 술 먹던 동생과 야구장 옆에 차를 세워두고 잔 다음 아침에 일어나서 야구장에 쌓인 눈을 다 치웠어요. 거의 내야 뒤쪽까지요. 그렇게 제 마음을 보여준 거예요.
그토록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떳다볼 선수들도 그렇고, 고양 원더스 투수코치 시절 만난 선수들도 그렇고요. 이상훈 선수도 마찬가지죠.
김태훈 : 이상훈 선수와 인터뷰를 할 때 제일 먼저 들려준 이야기가 조상진 감독님 이야기였어요. 이상훈이라는 사람을 볼 때 그 부분이 아주 중요한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야겠다거나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거나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야구를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야구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거죠. 그 마음이 떳다볼 선수들을 만나면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나 싶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어린이들도 그런 야구를 즐겨야 하지 않아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야구를 접했기 때문에 이상훈이 다른 선수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프로는 물론 돈을 받고 하는 거지만 돈을 받았으니까 하는 것 이상이 있잖아요. 돈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요. 그때 팬들은 그 선수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죠.
만약 조상진 감독과 야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이상훈 : 모르죠. 그렇지만 학교에서 야구를 하는 선수와 저희 분위기가 다르긴 했어요. 제가 그 팀에 있어보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게임을 해보면 알잖아요. 우리는 자유로웠고요. 게다가 감독이라는 사람이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팀 성적이 아니었어요. 우승도 해봤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우연한 재미였고요. 산에 가서 김치찌개 끓여 먹고, 도룡뇽 알도 잡아먹고, 홀딱 벗고 수영하던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라고 생각해요.
“야구는 행위예술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셨는데요. 이상훈 선수가 생각하는 야구의 예술적인 면은 어떤 건가요?
이상훈 : 본인 것을 갖고 있어야 해요. 자기만의 어떤 것. 전체적으로 보면 옛날에는 예술인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최근에는 그냥 틀에 박혀서 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무한한 연습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나오는 게 야구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순간적인 것이 자기도 모르게 나올 때가 있거든요. 그런 게 옛날에는 많았다고 봐요. 투박하지만 말이죠. 옛날에는 야구를 했고, 지금은 게임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런 식으로 말로 표현되지 않는 내막이 있는 거죠.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도 좋고, 공 회전수가 전광판에 찍히는 것도 좋아요. 선수의 행위가 숫자로 구분되어서 연봉과 연결되잖아요. 프로는 나를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긴 한데요. 점점 그 쪽으로만 간다는 게 조금 아쉬울 뿐이에요.
김태훈 : 이상훈 선수의 야구 해설을 들어보시면 조금 달라요. 보통 해설자 분들은 어떤 상황이 오면 그 상황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한 매뉴얼을 말씀하시죠. 요즘 워낙 ‘데이터야구’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이상훈 선수는 투수가 마운드에 서서 하는 행동 얘기도 많이 해요. 결정적인 안타를 맞았거나 실투를 한 다음에 투수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많이 보거든요. 사실 그것이 선수 입장에서는 더 중요할 수 있는 거죠.
이상훈 : 예전에도 데이터야구를 했었는데요.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었어요. 참고는 되는데요. 결국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만약 이 투수가 바깥쪽 다음 몸쪽을 던졌다가 바깥쪽 나가는 공을 던지면 헛스윙 삼진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헛스윙이 안 될 수도 있고, 안타가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또 저는 반대 투구도 되게 좋아하는데요. 반대 투구를 던졌을 때 어떻게 던졌느냐에 따라 사실 안 맞을 가능성이 훨씬 많아요. 그런데 반대 투구를 해서 맞잖아요? 그러면 아주 큰 실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분명한 건 이 투수는 반대 투구로 승리를 거뒀던 경험이 있다는 거예요. 또 정말 중요한 것은 팬들이에요. 팬은 치킨에 맥주 마시면서 선수들이 치고, 달리고, 뛰는 걸 원하잖아요. 기록에 관심 두는 팬도 있겠지만 그 비율은 인간적인 것보다 낮다고 생각해요.
이상훈 선수가 후배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은 무엇인가요?
김태훈 : “공을 던져라”라는 말일 거예요. 간단한 말이지만 많은 의미가 있죠. 또 처음 만나서 들은 얘기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유니폼 입은 사람’이라는 말이었어요. 유니폼을 입었을 때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이상훈 선수에게는 정확하게 있는 거죠. 유니폼 입은 사람의 대척에 있는 것이 ‘넥타이 맨 사람’이고요.
공을 던지는 상황은 천차만별이다.(중략) 요컨대 위기 상황에 볼 카운트가 몰려 있어도 투수가 위축되지 않고 원하는 공을 던질 때 비로소 ‘공을 던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299-300쪽)
이 책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도 묻고 싶어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으면 하나요?
김태훈 : 이 책은 결과물이라기보다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을 통해 과거 이상훈 선수에게 감동했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이상훈을 만나보면 좋겠어요. 기억을 제대로 해주는 거죠. 그게 제대로 된다면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서로 소통하면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상훈 : 그냥 있는 그대로 읽어주시면 돼요. 있는 그대로 쓴 거니까요.
야구하자, 이상훈김태훈 저 | 소동
이상훈은 불꽃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뒤처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대했다. 최고의 자리를 추구했지만, 낙오자도 자기 존엄을 지키며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따뜻한 리더십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