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수 양희은이 윤종신, 이상순, 성시경 등의 후배들과 함께 곡을 만들고 노래해 싱글로 발표하는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뮤지션이 양희은을 만나 만들어내는 새로움은 ‘노래하는 사람’ 양희은의 존재를 재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엄마가 딸에게>는 2015년 발매한 ‘뜻밖의 만남’ 네 번째 곡으로, 마치 “자기가 커나가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악동뮤지션, 김세정, 폴킴 등과 거듭 콜라보를 하기도 했던 <엄마가 딸에게>. 이 곡이 다시 한 번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찾았다. 지난 10월 출간된 그림 에세이 『엄마가 딸에게』 는 김창기, 양희은의 시적인 가사와 키큰나무의 서정적인 그림이 더해져 포근한 온기를 느끼게 한다.
엄마가 딸에게, 딸이 엄마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엄마가 딸에게』 를 통해 엄마와 딸이 마주 보고 대화를 해나갈 수 있다면, “혹시 이 노래가 물꼬를 틔우는 역할을 했다면” 족하다는 가수 양희은. 따라서 그가 세상의 모든 딸에게 전하는 말은 “더 많은 소통을 하고, 후회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였다.
노래의 불씨를 키워
2016년에 발표한 곡 <엄마가 딸에게>가 그림책으로 출간이 되었어요. 기분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그러게요. 그림책으로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어요. 생각 밖이었는데요. 그림책 제안을 주셨을 때 좀 더 간단하게 사람들에게, 엄마에게, 딸에게 다가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콘셉트를 잡거나 생각을 미리 하고서 무엇을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냥 이쪽에서 얘기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요. 할만 하면 하고 그래요.
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책으로 만들어졌으니 이제 더 오래 남게 되겠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네, 활자는 오래 가죠. 노래는 허공에 전파되었다가 사라지면 끝이지만 책은 오래 남겠죠.
그림은 마음에 드셨어요?
좋았어요. 끝부분이 좋더라고요. 엄마가 딸의 방에 들어가서 이불 덮어주고 가만히 보다가 딸의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엄마와 딸이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나오죠. 그 부분이 좋았어요.
<엄마가 딸에게> 뮤직비디오에는 동생 분이기도 한 양희경 배우가 ‘엄마’ 역할로 등장했잖아요. 하나의 노래가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로 나오는 게 흔치 않은 일인데요.
맞아요, 희경이가 뮤직비디오 찍은 것도 울림이 컸죠. 이 곡은 여러 번 다른 가수와 같이 부르기도 했죠. 악동뮤지션, 폴킴, 김세정, 이런 가수들과 콜라보를 해봤어요. 타이미가 랩을 붙인 버전도 있고요. 그게 좀 별나죠. 이런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또 이렇게 그림책으로 나오고, 생각해보니까 정말 다양하네요.
곡 스스로가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것 같아요.
자기가 커나가는 거죠. 곡은 가수의 의도와는 상관 없어요. 노래는 들어주는 사람 것이니까요. 불러주거나 들어주거나 하면서 그 노래의 불씨를 키워 다시 가수 가슴으로 돌려주거나, 하는 것이죠. 가수가 무엇을 의도했던 간에 말이에요. 게다가 의도한 대로 세상이 되질 않아요. 특히 노래나 음반은 자기가 뭘 의도했다고 해도, 그대로 풀리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예요. 요새 큰 기획 회사 같은 곳에서는 그것을 자본으로 가능하게도 할 수 있겠죠. 우리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꿔볼 일이에요.
이 곡으로 젊은 팬들도 많아졌죠? 콘서트에도 엄마와 딸이 함께 많이 왔다고요.
보면 알잖아요. 얼굴이 비슷하니까 엄마와 딸이구나 하죠. 보면 손수건을 꺼내 그렇게 울고 그래요. 같이 울고 있어요. 같이 울고 난 뒤에 엄마와 딸이 가슴을 터놓고 얘기를 했는지는 확인할 바 없지만 일단은 같이 운다는 것. 물론 그걸로 다 된 건 아니에요. 그 다음에 이야기가 시작되고 앙금을 서로 얘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일단 같이 공감하긴 해요. 혹시 이 노래가 물꼬를 틔우는 역할을 했다면, 그만큼이면 족한 거예요. 내 몫은 거기까지죠.
좋은 노래, 오래 가는 노래
가사가 원래는 엄마의 이야기였는데 딸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는 생각에 2절 가사를 직접 쓰셨다고요.
김창기 씨가 쓴 가사에 제가 딸 얘기도 붙이고 싶다고 해서 쓴 거예요. 엄마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얘기를 듣는 딸의 이야기도 들어줘야지, 생각했어요. 그래야 공평하죠. 주거니 받거니.(웃음)
저는 “너의 삶을 살아라” 부분만 들으면 눈물이 나요.(웃음)
엄마로 살면 자기 삶이 없으니까요. 자기 시간도 없고, 자기 삶도 없죠. 모든 걸 아이의 시간에 맞춰요. 애뿐이겠어요? 남편의 사정, 시가의 사정, 친정의 사정 등 모든 게 역할로만 가니까 ‘나는 어디에?’ 그렇게 되죠. 그러니까 정말 “네 삶을 살아라”처럼 절실한 말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제 결혼도 안 하고, 출산도 안 하는 거 아닌가요?(웃음) 나부터도 결혼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하면 “하지마! 뭘 하니!” 해요.(웃음) 이 세상에 여자한테 썩어서 거름이 되는 남자 봤어요? 여자는 다 썩어서 거름이 돼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썩어서 거름이 되면 그것으로 자라는 게 남자고요. 결혼하고 나서는 아내가 썩어서 거름이 되어주는 것이 남자 아니냐고 얘기를 하곤 하죠. 그러나 다양한 선택이 있겠죠. 모두 존중해요.
책 뒤에 “가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고인 얘기를 노래로 풀어내는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실으셨잖아요.
좋은 노래, 오래 가는 노래는 그렇다는 이야기인데요. 아주 오래 전에 한 얘기예요.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꾸준히 새 곡을 발표하시는 것도 그 이유인 거죠?
소통. 오프사이드로 밀려나는 게 싫어서요. 점점 오프-오프사이드가 되니까요. 관객들도 옛날 노래, 70년대 노래들만 원하는데요. 나는 같은 곡을 너무 많이 되풀이해서 부르잖아요. 지겨운 마음이 생기죠. 그러나 귀라는 것은 익숙한 걸 좋아하고, 눈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니까요. 귀가 갖고 있는 특성상 자기가 어렸을 때 같이 어렸던 그 노래를 듣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저는 솔직히 그게 그냥 답보상태인 것 같아서요. ‘뜻밖의 만남’을 하면서 젊은 사람들과 소통도 되고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는 게 싫어서 하고 있어요. 도태되기는 싫으니까요.
계속해서 새 곡을 만들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에서 굉장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곡이야 그냥 일로 한 건데요. 매일 아침 라디오 생방송을 하니까요. 거기 도착하는 편지는 정말 여러 사람이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마음을 열고 가슴으로 쓴 것이거든요. 그 진솔한 내용 덕분에 사실 나는 제자리에 있어도 현재진행형이에요. 한편 나는 금지곡이 하도 많고 그래서 솔직히 라디오로 숨었어요. 노래로부터 도망을 늘 해왔으니까 그런 면으로 보자면 노래에 대한 미안함이 늘 있죠. 노래를 라디오만큼만 열심히 했더라면 어떤 가수가 되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 생각 때문에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무언가 한 듯이 해봐야 그만둘 것 아닌가, 했어요. 뭘 했어야지 그만두죠. 뭐 발표도 안 하고 70년대, 80년대, 90년대 무렵이 끝인데 뭘 그만둬?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서 곡 작업을 해온 거예요.
작은 것이 중요하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만 20년을 진행해오셨잖아요. 방금 “노래로부터 도망을 해왔다”고 하셨는데 라디오를 진행해온 20년이 어떤 회복의 시간도 됐을까요? 노래에서 도망을 치는 마음은 어떤 걸까, 조금 더 여쭙고 싶어요.
워낙 금지곡이 많이 돼서 노래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숙제 같았어요. 너무 하기 힘든, 하려면 너무나 진이 빠지는 숙제, 진도가 안 나가는 숙제 같았죠. 그런데 방송은 늘 좋았어요. 그래서 라디오에 훨씬 마음이 많이 갔어요. 근데 라디오나 방송을 하고 돌아오면 노래한테는 항상 미안해요. 이렇게 있다가는 그냥 흘러간 옛 가수처럼 되어버리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TV에 나와서 웃기는 얘기 하고 그러면 요즘 젊은이들은 코미디언인데 노래도 잘하는 아줌마, 이렇게 보기도 했거든요. 그건 좀 아니다, 내 본업은 가수다, 한 거고요. 거기에 같이 음악 하는 친구들이 생각을 보태주니까 용기를 내서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요즘은 그렇다면 노래에 조금 덜 미안하세요?
네, 괜찮아요. 미안함이 조금 가시고 있는 중이에요. 얼마나 해야 완전히 가실지는 몰라요. 그러니까 계속 해야죠.
대표적인 금지곡이 <아침이슬>이죠. 가수 양희은을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함께 떠오르는 곡이에요.
시작이 너무 그랬죠? 그 다음 너무 힘들었어요. 그 산을 넘기가. <아침이슬>보다 더 나은 곡, 더 나은 곡, 그런 생각을 스스로 했죠. 그래서 만들어진 <아침이슬>은 아니지만 그 노래의 파급 효과와 영향력이 컸다면 그걸 능가하는 곡을 발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강박이 있었는데요. 그러나 언제부턴가는 자유로워졌어요. 꼭 거대한 명제가 아니어도 된다고요. 아주 사소한 것도 노래가 될 수 있어요. 작은 게 큰 거니까요. 반드시 거대한 물결, 거대한 파도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작은 것이 중요하고 소중한 거예요. 그걸 잘 간직하고, 간수해야 해요.
1971년 데뷔하셨어요. 내년이 데뷔 50주년인데요. 이 시간을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시간이 잠깐 지난 것 같아요. 진짜 한 다섯 달 지난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빨리 지나갔을까, 해요. 그냥 하루하루 살았잖아요. 작은 게 큰 거라는 말이 그 얘기예요. 하루하루가 쌓여서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그렇게 해서 50년을 산 거죠.
올해 10월 ‘은관문화훈장’을 받으셨어요. 어쩌면 데뷔 50년을 앞두고 받은 큰 응원이었을 것 같은데요.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제 옆에 앉은 문화관광부 장관님이 알려주셨어요. ‘금관문화훈장’은 대부분 돌아가신 분들에게 많이 드리니까 ‘은관문화훈장’이 살아서 받을 수 있는 제일 영광스러운 상이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래요?” 했죠, 하하하.(웃음)
가장 생명력 있는 연대
노래하길 잘했다, 생각할 때가 있으세요?
방송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하죠. 특히 라디오가 그래요. 라디오를 좋아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해요.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설명하긴 힘든데요. 라디오는 소통이죠. 요즘은 반응도 금방 오잖아요. 문자, SNS 등으로 오니까 우리가 말을 하면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금방 알 수 있어요. 보이진 않지만 활자로 소통하는 거죠. 노래는 글쎄요. 현장에서 노래하지 않는 한 어떻게 알겠어요.
선생님께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관심이나 애정이란 말보다는 그냥 호기심인데요. 내가 부족한 게 많은 청춘을 보냈기 때문에 부족한 게 있는 애들을 잘 알아봐요. 힘들고, 외롭고 그런 사람들이 잘 읽혀요.
선생님을 생각하면 다정한 동시에 엄격한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 면이 있죠. 끊임없이 봐줄 것 같은데요. 봐주다가 딱 하나가 경우가 어긋나면 그걸로 왁 쏟아내는 것 있어요. 그래서 예전에 내 별명이 ‘화곡동 맨홀 뚜껑’이었어요.(웃음) 느닷없이 맨홀 뚜껑에 빠지는 것 같은 황당함이 있어서요. 하지만 나는 다 꼽아두고 있는 거예요. 적금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아주 사소한 일에 터지니까 당하는 사람은 너무 황당하겠죠. 어떻게 보면 무서울 수 있죠. 말도 안 하고 하염없이 봐주거든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인간됨’은 어떤 건가요?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은 아마도 그 인간됨에서 벗어났을 때일 텐데요. 선생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뭔가요?
분수를 아는 것. 신의가 있을 것.
앞으로 직접 책을 쓰고 싶은 생각도 있으세요?
그러게요. <여성시대> 20년을 하면서 쌓인 원고가 있으니까요. 추려서 해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모르겠어요.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닌데요.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을 거예요.
<여성시대> 박금선 작가님이 『인생, 어떻게든 됩니다』 출간 당시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양희은 선생님이 버킷리스트를 물으신 적이 있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거기서 힌트를 얻어 질문을 드릴까 해요. 선생님의 버킷리스트는 뭔가요?
오로라를 보고 싶어요. 추울 때 가야 하잖아요. 여행을 종종 하지만 겨울에는 안 가니까 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제가 추위에 약해서요.(웃음)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세상에서 가장 생명력 있는 연대는 엄마와 딸 사이, 그리고 딸과 딸 사이 같아요. 더 많은 소통을 하고, 후회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딸에게김창기, 양희은 저/키큰나무 그림 | 위즈덤하우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잘 하려고 애도 써 봤지만 따라가기가 버거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엄마 하는 말에 대답하기도 귀찮고 싫다. 힘들고 답답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