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도 공간이 중요하다. 어디에서 나누는 대화인가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 도시건축가 김진애가 비교적 자주 드나드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국 근대문학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던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운영하는 보안책방에서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사진을 찍고, 책방의 마스코트 강아지 ‘연두’와 인사를 나눈 뒤 1층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김진애는 사진을 즐긴다. 사진작가가 원하는 포즈를 척척, 지나가는 팬들의 기념 촬영 요청도 흔쾌히 받았다. 작년 라디오 <KBS 열린토론>을 진행하면서 책 작업이 더뎠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18년에 나왔을 책. 김진애의 도시 3부작(『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 『우리 도시 예찬』 )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비판, 긍정이 같이 있는 책
5년 전부터 기획한 책이라고요.
머릿속에는 늘 구상이 되어 있었어요. 3부작으로 쓰고 싶어서 일부러 『도시 읽는 CEO』를 절판 시키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죠. 원래 책을 쓸 때 2년 정도는 걸려요. 사람들은 훅 읽고 지나갈 수 있는데, 잘 읽히기 위해서 애를 좀 쓰죠.
첫 장을 읽고 나니 가속도가 붙더군요.
이제는 도시 이야기가 조금은 대중적인 주제가 된 것 같아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가 인기가 꽤 있어요. 청취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약간의 자신감을 얻었죠. 방송하면서 이 책의 콘셉트도 조금 달라졌어요.
3부작 중 첫 번째 권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은 새로 쓰셨고,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와 『우리 도시 예찬』은 개정판입니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는 3부작의 주제 의식을 풀어 놓은 책이에요. 우리 주변의 도시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펴봤어요. 원래는 그림도 많이 실으려고 했는데, 자료를 많이 쓰면 독자들이 자료에만 심취해버려요. 도시 이야기를 듣게 하기 위해서 그림을 뺐어요. 만약 이 책이 반응이 좋으면 개정판을 만들 때는 자료를 더 보완해도 좋을 것 같아요.
공간에 관한 책은 그래도 꽤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도시’는 부동산으로 접근하는 책이 더 많죠.
도시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 현상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요. 아니면 구조에 관한 비판이죠. 현상과 구조를 연결하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잘 안 나와요. 저는 일방적인 예찬, 비판, 매도를 너무 싫어해요. 도시를 다룰 때는 비판하는 시각과 긍정하는 시각이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랑 비슷해요. 장점만 단점만 있을 순 없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도시에 관한 콤플렉스가 있어요. 그걸 인정해야 해요. 콤플렉스를 인정하지 않으면 예찬하는 태도가 안 생겨요. 긍정하고 예찬하면서 동시에 문제를 피해가지 않는 태도가 필요해요.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단정적인 이야기를 많이들 했는데, 전 동의하지 않아요.
“서울은 잡종 도시”라고 표현하셨어요.
20년 전부터 해오던 말이에요. 봉준호, 이명세, 박찬욱 감독이 왜 좋은 작품을 찍겠어요? 우리나라의 현실을 부정만 하지 않고 그렇다고 예찬만 하지도 않잖아요. 쓸데없는 도그마에 빠지지 않는 건 훌륭한 일이죠. 아쉽게도 도시 건축 분야에서는 이런 태도가 드물어요. 그게 늘 아쉽죠. 그래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도시 이야기를 꾸준히 들어온 청취자분들이 자주 하는 말씀 중 하나가 “내가 사는 도시에 대해 자부심이 생겼다”는 말이에요. 우리나라 도시 이야기가 기껏해야 얼마나 갈까 했는데, 3년이 됐잖아요. 이제는 독자들도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지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주제예요.
이 책이 인문교양서로 분류됐지만, 약간은 자기계발적인 느낌도 있어요. 도시와 인간의 성장을 연결하면서 썼으니까요.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처럼 읽고 싶으면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를 읽으면 되고요. 해외 여행을 가고 싶으면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 주말 산책을 꿈꾸신다면 『우리 도시 예찬』을 읽으면 됩니다.
아파트 중간중간에 길을 만들어야 한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는 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과 기록, 알므로 예찬 등 ‘12가지 도시적 콘셉트’를 중심으로 책을 풀어가셨는데, 이 책의 한계와 역할까지 짚으셨습니다.
책을 쓸 때, 세속적인 허영심을 부추기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도시에 대한 의미와 느낌, 그리고 자존감은 높이 띄우고 싶었고요. 하지만 도시 공간들에 관해 상세하게는 설명하지 못했어요. 그랬다가는 엄청 두꺼운 책이 될 거니까요. 저자로서는 어디까지나 ‘도시적 콘셉트’를 전개하는 일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이 콘셉트에 익숙해지면 도시를 보는 눈에 좀더 구조적 시각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러면 현상의 현란한 자태에 덜 속게 되고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바람을 키울 수 있죠. 무엇보다 정책에 대한 분별력이 커졌으면 좋겠다는, 저자로서의 바람이 있었어요.
두 번째 콘셉트가 ‘권력과 권위’입니다. 청와대, 국회, 청사 등을 소재로 다뤘는데 ‘권력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유독 크다고요.
책을 쓰면서 이유를 곰곰이 살펴봤어요. 아마도 권력 공간이 그 도시를 대표하는 공간이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권력 공간에 얽힌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하기 때문일 텐데요. 얼마 전에 ‘청와대’ 이야기가 카드 뉴스로 만들어졌더라고요. 정말이지 비서를 부르면 최소 1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면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거리가 멀면 관계도 멀어져요. 권력자가 따로 있을수록 가까이 다가서는 접근성이 줄어들어요. 청와대 공간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자주 소환되는 게 백악관이잖아요? 백악관은 대통령 집무실과 모든 비서진 프레스룸이 같은 건물에 모여 있어요. 긴밀한 소통이 가능하죠. 백악관도 처음부터 지금 모습은 아니었어요. 큰 화재 후 리모델링 비용을 아끼려고 흰색으로 건물 전체를 칠했고, ‘화이트 하우스’라는 이름을 얻은 후 외양은 지키고 전체 구성은 끊임없이 진화했죠.
권력 공간에 물을 수 있는 것으로 세 가지를 꼽으셨는데, ‘인정할 만한 존재감’을 부여한다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이에요. 주눅들게 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자긍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니까요. 예를 들자면, 민주정 아테네의 꽃은 아크로폴리스가 아니라 아고라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아고라는 어느 한 건축물이 아니라 신전, 공회당, 시장, 광장, 연설대, 공연장이 섞인 공간이잖아요.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있는 동시 철학자의 토론, 소크라테스 재판이 벌어진 곳이죠. 상인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직접 민주주의가 펼쳐진 거죠. 고대 아테네에서는 궁궐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어요. 수많은 경호원에 둘러싸여 시커먼 승용차에 오르는 지금의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이죠.
초고층 아파트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을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는데, 저는 아파트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주거 특성상 아파트에 살지 않을 수 없어요. 저는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는데, 공동주택이 곧 아파트죠. 우리는 더 근사하게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데, 너무 업자들에게 휘둘려요. 자본의 논리로만 흘러가는 거예요. 사는 방법을 두고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데, 자기네들끼리 담을 쌓고 게이트를 만들고 오아시스 성체를 만들어버려요. 이건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일이에요. 저는 단지형 아파트가 아니라, 길을 만드는 아파트, 가로형 아파트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는 다 지하에 넣고, 우리만의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도시의 삶이 있는 아파트를 지어야죠. 재건축을 할 때도 발상전환을 해야 해요. 아파트 중간중간에 길을 만들어야 해요.
아이와 노인은 초고층 아파트에 살면 안된다고요.
제가 초고층 자체를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오해예요. 초고층 자체에는 이의가 없어요. 탁월하게 설계된 초고층을 보면 한껏 고양되기도 해요. 다만 아파트용으로 세우는 초고층은 반대입니다. 일단 초고층은 창문을 열 수 없어요. 또 발코니에 나가기 어렵죠. 그리고 소방용 사다리차는 22층까지 닿는 게 일반적이에요. 위급한 상황이 일어나면 초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위험을 피하기 어렵죠. 초고층은 보기에 멋져요. 일하기에도 괜찮아요. 하지만 그건 잠깐이에요. 살기엔 상당히 나빠요.
하지만 여전히 인기가 많죠.
언론이 잠잠하잖아요. 과장 광고를 싣고 미화하는 기사들도 많이 나오고요. 초고층 건물에 아파트를 넣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잘 팔리고 비싸게 팔리는 분양 사업이기 때문이에요. 초고층에 살아도 괜찮은 사람은 젊은 사람, 싱글족, 워커홀릭이거나 출장으로 집을 자주 비우는 사람이에요. 살림 안 하고 레지던스 호텔처럼 살고 싶은 사람, 물론 돈 걱정 없는 부유층이죠.
공간을 마스터하면 행복해진다
여행에 관한 접근도 인상적이었는데 대개 여행을 가기 전에 공부를 하잖아요. 그런데 여행 중 하는 공부, 여행 후 하는 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어요.
저는 공부하고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남편이 딱 그런 케이스예요. 아침부터 밤까지 밥 먹을 곳까지 다 짜서 여행을 준비하는데, 저는 별로 안 좋아하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요즘엔 저에게 옵션을 줘요. 1번, 2번, 3번 중에 택하라. 일단 이야긴 다 들어 놔요. 그런데 막상 여행을 가면 아무 데나 들어가죠.
도시 여행의 목적지로 ‘서울’을 택했다면, 추천하고 싶은 장소가 있나요?
저는 몇 가지를 딱 추천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 서울은 굉장히 좋아져서 갈 데가 정말 많아요. 서울 사대문 안의 지역은 어디를 가도 좋아요. 주말 하루 코스로 종일 걷는 것도 좋아요. 다만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는 게 좋아요. 이 동네가 어떻게 깨어나는지를 알려면 아침 식사부터 시작해야 해요. 전 여행을 가면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다녀요. 그래야 보이거든요.
달동네를 자주 가신다고요?
의외성이 있는 공간이거든요. 얼마 전에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갔는데 정말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달동네는 설계해서는 만들 수 없는 공간이에요. 건축가가 없는 건축, 도시계획가가 없는 도시의 정석이죠. 개별적인 변화와 다양성, 즉흥성, 의외성을 지닌 흥미진진한 곳이에요. 저는 달동네에 갈 때마다 ‘설계해서는 만들 수 없는 도시’라는 개념에 매혹돼요. ‘경직된 마스터플랜 마인드’로 만들어진 신도시와는 확실히 다르죠. 저도 전문가로 참여해 만들어온 신도시를 보면 한계를 느껴요. 어느 신도시를 가나 엇비슷한 설계해서 만드는 도시의 한계를 느끼니까요.
부록으로 ‘도시 주제에 관한 추천 도서’를 소개했는데 굉장히 상세하게 쓰셨더군요.
18권을 추천했고, 제가 도시에 관해 쓴 몇 권의 책을 소개했어요. 저의 성장과 함께한 책들이죠. 도시에 관한 대중적인 책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도시 주제는 정치, 경제, 사회, 행정, 문화,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도시만을 다룬 책보다는 도시에 관한 통찰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을 소개했어요. 『세기말 빈』 , 『행복의 건축』 , 『인간의 조건』등이 들어간 이유죠.
tvN <알쓸신잡>의 유일한 여성 출연자셨잖아요. 일하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욕을 먹어야 큰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평생 욕을 한번도 안 먹었으면 반성해야 해요. 뭔가를 안 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일이란 없어요. 좋은 사람만 되려고 하면 절대 자랄 수 없어요. 풀 타임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자라는 게 아니에요. 8시간만 일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자유 시간에도 생각이라는 건 할 수 있잖아요. 자기 성장을 위한 시간을 잘 가꿔야 해요.
다음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이번에 ‘도시 3부작’을 마무리했으니까 이제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우리를 억누르기도 하고 격려시키기도 하는 ‘공간’의 비밀을 책으로 써볼까 해요. 즉, 공간에 조종 당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거예요. 알게 모르게 설계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조종하려고 하거든요. 조종당하지 않는 법을 알고, 공간을 마스터하는 방법을 알면 행복해져요. 그리고 또 여행 이야기도 쓸 거고요.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김진애 저 | 다산초당
도시 또한 얼마든지 이야기로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도시 문제가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도시를 이해함으로써 우리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