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이상한 그림’. 노석미의 그림을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울리지 않는 그림과 글의 조합, 거기서 비롯되는 왠지 모를 어색함,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노석미의 그림을 이보다 잘 표현 수 있을까.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도시보다 자연이 편했던 노석미 작가는 40대 초반 경기도 양평으로 이주했다. 직접 땅을 찾아 터를 잡아 살면서 ‘아름답고 이상한 그림’들을 그리고 글을 썼다. 자신의 그림처럼 군더더기를 빼고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한 날들이었다. 오십을 앞두고 양평에서 보낸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섬광처럼 떠오른 단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매우 초록’. 10년 동안의 글과 그림을 묶은 책의 제목도 『매우 초록』이어야 했다.
매우 초록. 그 쾌감은 엄청나다. 길들에는 거의 인적이 드물다. 도의 접경 지역들은 대개 그런 것 같다. 지형이 험하고, 사람이 모여 사는 면내 같은 거점 지역으로부터 거리가 있다. 사람이 귀하게 보이고 그만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중략) 작은 강, 작은 길 등이 조화를 이루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 길에 작은 트럭이 털털털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내가 갖고 있는 네모난 틀 안에 잘 넣어보려고 하지만 항상 내 세계는 그것에 비해 초라하다. (332쪽)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함께 있을 때, 그 느낌이 좋아요
최근에 인터뷰를 많이 하셨더라고요. 힘들진 않으세요?
신간 나왔으니까 홍보해야죠. 생각보다 똑같은 걸 묻는 분들은 없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서울에 오신다고요.
두세 번 이상으로는 안 오려고 하고요. 한 번 올 때 두세 가지 일을 해요. 오늘도 일정이 많습니다. (웃음)
서울에 방문하면 꼭 하는 일이 있나요?
꼭 하는 일은 없고요. 대체로 친구들 만나서 밀린 수다를 떨죠. (웃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오면 여행 온 것 같아요. 제가 홍대 졸업했거든요? 그래서 홍대가 익숙했는데 요즘은 낯설어서 재밌어요. 이런 느낌 때문에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울을 보게 되고요. 예전에 서울 살면서는 관찰 안 했거든요.
10년 동안 쓴 글과 그림이 묶였어요. 책을 내야겠다고 언제 생각하셨나요?
양평으로 이사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잖아요. 딱 그 전까지의 이야기를 『서른 살의 집』이라는 책에 썼는데 그 책을 낼 때부터 다음 버전의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른 살의 집』이 일종의 열린 결말이거든요. 이후의 계획이 있어서 일부러 그렇게 마무리 한 거예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책을 낼 거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책을 내기 위해서 글을 쓴 건 아니지만, 출간을 염두에 두긴 했고요. 본격적으로 책 형태로 정리한 건 3년 전 출판사와 계약한 다음부터예요. 그동안 썼던 글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챕터를 만들어 정리했죠.
글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진 않더라고요. 의도한 건가요?
집 짓는 이야기로 시작하니까 글에서 시간의 흐름이 보일 거로 추측하더라고요. 부제가 ‘40대 이야기’라 더 그런 것 같은데 그렇게 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자서전은 아니니까요. 내용뿐만 아니라 문장으로 남기고 싶은 것들을 살렸어요. 그래서 어떤 내용을 쓴 책이기도 하지만 문장이라고도 말하고 싶어요. 글을 쓰다 보면 ‘이 문장은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부제가 ‘어쩌면 나의 40대 이야기’예요. 왜 ‘어쩌면’이 붙었을까요?
출판사에서 프롤로그에 있는 문장을 부제로 뽑은 거예요. 원고를 다시 읽어봤는데 ‘아 나의 40대로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프롤로그에 ‘어쩌면 나의 40대 이야기’라는 문장을 넣었고요. 출판사에서는 그냥 40대 이야기라고 하면 진부하니까 그 문장을 고른 것 같아요. 화두를 잘 잡아야 하니까요. 저도 텍스트 작업을 하니까 형용사, 부사를 어디에 어떻게 쓰냐에 따라 뉘앙스가 얼마나 달라지는 잘 알죠. 재미있어요. 원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적이지 않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표현을 접목하는 걸 좋아해요.
‘매우 초록’이라는 제목도 비슷한 느낌이에요. ‘시’ 같은 표현이랄까요.
양평에 살면서 자주 보는 풍경을 그렸는데 그 풍경들이 너무나 초록색인 거예요. 다른 말이 필요 없었어요. 초록, 그린이라는 말 자체가 감탄사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이걸 그대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그린’이 아니라 ‘베리 그린’이라고 하고 싶었고요. 아주 자연스럽게 떠오른 표현이에요. 알고 있던 단어도 아니고 원래 있는 단어도 아니죠. 2년 전에 한 전시회 이름도 ‘베리 그린’이었어요. 전시회 끝나고 책 제목 정할 때 ‘베리 그린’이라는 제목을 쓰고 싶었는데 ‘베리 그린’은 영어니까 ‘매우 초록’으로 바꾼 거죠.
어떤 글에서 작가님의 그림을 ‘아름답고 이상한 그림’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 ‘맞아 이거야’ 싶었어요.
아주 적확하게 표현하신 것 같아요. ‘이게 뭔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관련 있겠지’ 하고 막연하게 연상하는 거 있잖아요. 그런 게 제 그림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죠.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단어가 같이 있을 때 일어나는 어떤 감정. 그런 걸 좋아하고 추구해요.
목표는 ‘더 뺄 수 없는 지점’까지 가는 것
그림에 텍스트가 있는 게 작가님 그림의 특징이잖아요. 텍스트도 영감처럼 떠오르는 건가요?
맞아요. 어떤 상황에서 텍스트가 떠오를 때도 있고 이미지가 떠올랐다가 그 이미지와 연상되는 텍스트가 나중에 떠오를 때도 있어요. 텍스트와 이미지로 편집 작업을 하는 건데요. 이런 걸 할 때 재미를 느껴요.
‘더 뺄 수 없는 지점까지 가는 것’이 그림 그릴 때의 목표라고요.
더 뺄 게 없는 상태가 완성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려요. 그 상태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의 상태예요. 군더더기나 장식 없는 그림이요. 장식이 없어도 충분히 완성도가 있는 것들 있잖아요.
글에서도 그런 태도가 느껴졌어요.
드러나겠죠. 장식하는 거에 별로 자신이 없어요. 해본 적도 없고요. 장식이 많은 글을 읽을 때 피로를 느끼기도 하고요. 꼭 필요한 게 아닌 것들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잖아요. 그런 글이 많거든요. 심지어 장식이 전부인 것도 많고요.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안 좋아하니까 안 하려고 하죠.
뺄 수 있으려면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도 하셨죠.
욕망이 많으면 머리가 아프잖아요. 내 것이 될 수 있는 건 머리를 아프게 하지 않아요. 그런데 내 것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헷갈릴 때 힘든 거잖아요. 이럴 때 판단을 잘해야 해요. 결국 자신을 잘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남의 건 잘 보이잖아요.
글을 쓰다 보면 나를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누가 읽어줬으면 좋겠고, 읽기에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것만 올려요. 독자가 있다는걸 알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어떤 작업을 한다는 건 무대에 벌거벗고 올라가는 거예요. 아무리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어서 자신을 숨기려 해도 독자들은 알죠. 저도 독자로서 전시를 보러 가면 다 보이거든요. 그린 사람의 수준이나 상태를 알 것 같아요. 이렇게 무서운 게 독자이고 관객이죠. 이런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만큼 숙성됐는지 알아야죠. 그리고 숙성하려고 노력하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박수받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작업을 하기가 정말 어렵죠.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면 말이 많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시를 하고 책을 내는 건 결국 자신을 마주하는 일인 것 같아요.
자연이 마냥 뽀송한 게 아니거든요
많은 사람이 막연하게라도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을 꿈꾸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일단 우리가 근본적으로 생명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도시의 삶은 생명체가 행복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그런데 여러 요인으로 사회적 동물이 되었고, 그렇다 보니 쉽게 할 수 없는 거고요. 사회적 동물에서 ‘동물’보다 ‘사회적’이 더 세진 거 아닐까요?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동물의 죽음도 많이 목격하신다고요.
당연한 거죠. 자연이 마냥 뽀송뽀송하지 않거든요. 자연은 자연이기 때문에 슬퍼요. 생명체의 삶과 죽음은 그냥 슬프더라고요. 그런데 그거를 잊고 사는 거예요. 도시에서 살면 더 잊기 쉽죠. 내가 죽어가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자각할 시간 없이 살죠. 자연하고 같이 살면 죽음을 자주 목격하니까 자각하고 배우게 돼요. 저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이거든요. 목격할 줄 몰랐고, 몰랐던 시절과 많이 달라졌죠.
양평으로 이사한 이후로 그림도 환해졌다고 들었어요.
환경이 달라져서 그림이 밝게 바뀐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지 않겠나 싶어요. 원래 젊었을 때 그린 그림은 대부분 암울해요. 저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평균적으로 그래요. 그게 젊음의 상징 같아요. 젊은 작가인데 그림이 밝으면 이상한 거예요. (웃음) 젊을 때는 대체로 음울하고 뾰족하고 삐딱한 게 정상이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마모되고 둥글어지는 거죠.
그러네요. 자연스러운 변화군요.
반대로 나이 들었는데 음울하고 뾰족하면 또 그것처럼 꼴사나운 게 없어요. 작가로서도 젊었을 때는 마음속에 분노가 있으면 표출해야 하고 그 표출이 바로 내가 지향하는 예술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어떤 표출, 배설 상태 딱 거기까지인 예술을 하는데 젊은 작품이란 게 원래 그런 거 같아요. 밀도가 부족하고 완성도가 낮지만 뾰족하고 신선한 느낌. 어떤 게 더 좋다, 안 좋다 하기는 어렵지만요. 두 가지를 다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거리’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띄었어요. 작가님에게 중요한 키워드 같더라고요.
거리라는 주제로 작업을 많이 하긴 했어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한 건 맞아요. 거리는 관계에서 비롯된 단어잖아요. 관계가 항상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사람이고요. 그런데 상대방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 같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이럴 때 문제가 생기죠. 어떤 일치가 일어나면 행복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힘들어요. 그렇다고 관계를 포기할 수 없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주목하게 된 게 ‘거리’인 것 같아요. 과연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하는 것들이요.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가늠하면서 사는 거 같고요. 예전에는 이 정도 거리가 적당하다고 느꼈는데 나중에 보면 아니고 그렇잖아요. 지금 내가 아는 게 항상 정답은 아니더라고요.
나는 탐미(耽美)적인 사람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별로 없다고 쓰셨더라고요. 그래서 동물이 좋은 건가요?
동물과 상대적 개념으로 두는 건 아니고요. 탐미(耽美)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보니까 매사에 탐미(耽美)적인 태도를 갖게 돼요. 그게 어떤 저의 비극이고, 저와 비슷한 일을 사람들이 대체로 겪는 감정이죠. 아름다운 상태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관대하지 않은 거예요. 아름답지 않을 것들에 대해서요.
어떤 부분에서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는지 궁금해요.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시나요? (웃음) 조금 복잡한데…. 아름다움에 엄격한 태도를 취하니까 매사에 뾰족하고 상냥하지 않은 상태가 돼요. 매사 상냥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다’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잘 안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고요. 인간관계 잘하는 사람이 보면 나 같은 사람은 재수 없는 거예요. ‘안 예뻐도 예쁘다고 하면 안 돼?’ 하겠죠. 힘들더라고요. 인간관계에서는 지켜야 할 선이 있잖아요. 그런 게 너무 어려워요.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거기에 충실한 게 저한테 중요한데 인간은 그렇게 살 수 없는 거죠. 너무 복잡하니까요. 물론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아름답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과연 존재 자체를 온전히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려운 숙제 같아요. 저도 인간이어서 그렇겠죠.
호칭에 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갤러니 노’에서 ‘미스 노’로 바뀌셨는데 지금도 양평의 마을에서 ‘미스 노’로 불리나요?
네. 여전히 ‘미스 노’예요. 또는 ‘노 선생님’이라고…(웃음) 양평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 작가라는 인식이 좀 생겨서 그런지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자꾸 저를 ‘선생님’이라고 해요. 별로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어쩔 수 없어요. 그들이랑 거리가 더 짧아지지 않으니까요.
불리고 싶은 호칭이 있나요?
작가의 세계에서는 작가라고 불리는 게 편하긴 해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작가라고 부르면 이상해요. 제가 사는 마을에는 작가가 흔하지 않으니까요. 그냥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우리나라는 이름을 안 부르는 문화잖아요.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친구가 돼야 서로 이름을 부르죠. 친구가 돼도 나이가 다르면 언니, 동생이 되고요. 존대 문화가 없어지면 훨씬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
온전히 이름으로만 불리는 일이 드문 것 같긴 해요.
예전에 종로에 있는 영어 회화학원에 다녔어요. 선생님이 처음에 영어 이름을 지으라고 하잖아요. 이름이 다 ‘마이클’, ‘톰’ 이래요. 어느 날 종로를 걷다가 회화반 친구를 만난 거예요. 본명을 모르니까 “마이클”하고 불렀죠. 종로 한복판에서 소리치며 마이클이라고…(웃음) 얼마나 편해요. 그 사람의 이름만 알면 되잖아요. 어떤 역할로 부르는 문화야말로 우리나라의 특수성인 것 같아요. 상황이 지나치게 계급적인 거죠. 이런 호칭 문제가 다들 불편할 텐데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바꾸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님 영어 이름이 뭐였는지 궁금한데요.
제 이름이요? 두 개였는데 한 번은 줄리, 한 번은 잼이었어요. 먹는 잼(jam) 아니고 잼(zam)이요.
직접 지은 건가요?
둘 다 선생님이 만들어줬어요. 잼(zam) 영어로 보석이라는 뜻인데 제 이름 석미를 풀이하면 ‘아름다운 돌’이잖아요. 그래서 잼(zam)이라고 지어줬죠.
그러고 보니 이름이 아주 탐미(耽美)적이네요. (웃음)
무슨 그런 말씀을요. (웃음) 여자 이름에서 가장 흔한 게 미(美) 아닌가요? 우리 가족 돌림자가 ‘석’ 자였어요. 다 남자 형제이고 저만 여자인데 딸이니까 ‘석’ 자에 억지로 ‘미’를 붙인 것 같아요. 제 이름이 드물긴 해요. 동명이인이 별로 없고 사람들이 이름을 잘 잊지 않더라고요. 중고등학교 때 별명이 ‘돌미’였어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전시도 자주 하는데 혹시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짧은 미래만 결정해요. 내년 일정 정도요. 전시랑 출간 준비해야죠. 나이 드는 걸 체감하면서 막연하게 더 늙기 전에 다른 삶을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긴 하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지는 않아요. 이러다 또 자연스럽게 다른 방식으로 살 수도 있겠죠. 일단 현재 삶이 좋아요. 루틴이 생겨서 아주 편안해요. 남들이 보기엔 불편하게 사는 것 같지만요.
매우 초록노석미 저 | 난다
서로 얼굴을 익히고 가까이 지내는 일의 사귐. 자연과 사귀게 하는 책, 사람과 사귀게 하는 책, 동물과 사귀게 하는 책, 그렇게 나 자신과 사귀게 하는 책. ‘매우 초록’은 어쩌면 그 사귐이 통한다 하였을 때 유레카 하며 알아먹고 내뱉는 우리만의 암호 우리만의 구호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