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귀재 더글라스 케네디가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동화로 돌아왔다. 산문집 『빅 퀘스천』에서 ‘우리의 삶이란 본질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던 저자는 이번에는 작심하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11살 아이 오로르에게는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남들과 다른 오로르에게 사람들은 ‘자폐아’라며 조롱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오로르의 눈에는 솔직한 마음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행해 보일 뿐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오로르의 모습은 프랑스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조안 스파르의 그림과 만나 마법 같은 이야기로 탄생했다. 스릴러의 제왕이 창조한 동화 세계가 궁금하다면, 더글러스 케네디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공동작업으로 탄생한 빛의 아이
『오로르』 는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동화입니다. 지금껏 써 오신 긴장감 넘치는 소설과 다르다는 점에서, 특별한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로 한 계기가 있나요?
어른들 세계의 문제를 아이의 시각으로 보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가정 문제, 학교 문제, 다른 사람들의 악한 행동, 집단 괴롭힘이 피해자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는, 또 가해자들도 역시 자신의 행동으로 스스로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 엄마와 아빠가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꿈이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등 많은 아이들이 겪는 일들을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쓰고 싶었죠. 그러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문제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누구나 문제를 겪으며 삽니다! 우리 주위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Illustration ⓒ 2019 by Joann Sfar
항상 한 가지 주제에 질문을 던져놓고 소설을 쓰시는 것 같아요. 이번 『오로르』 를 통해, 어떤 주제를 탐색하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자랐어요. 그래서 작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두 아이, 맥스와 아멜리아도 아주 특별하고 독창적이죠. (네, 저는 자부심 넘치는 아버지입니다.) 그래도 제 아이들은 세상 사람들 눈에 다르게 비춰졌어요. 오로르도 세상 사람들과 아주 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죠. 그러므로 이 소설에 숨어 있는 진짜 요점은 ‘다른 것은 특별하다!’입니다.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 조안 스파르와의 협업은 어땠나요? 공동 작업의 묘미를 전해주세요.
조안 스파르는 천재예요. 아주 재미있고 특별한 사람입니다. 파리의 카페에서 작업 때문에 처음 만났어요.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줄거리를 들려주세요.” 제가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조안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협업의 시작이었죠. 우리가 정한 규칙은 단순합니다. 제가 글을 쓰고, 조안이 그림을 그린다. 그게 작업의 규칙이었어요! 처음부터 서로를 신뢰했습니다. 조안은 저한테 인물이나 장소를 저의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건 피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그 제안을 존중했어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안이 만들어 낸 세상의 모습에 감탄하고 매료됐죠. 조안이 오로르를 그리기 전까지는 저도 오로르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도 못 했어요. 조안이 그린 오로르를 보자마자 저는 생각했어요. ’바로 이 아이야!’ 그러면서 이렇게 뛰어나고 휴머니즘적인 세계관을 지닌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작업할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인공 ‘오로르’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상하게 된 과정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소설가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먹고 삽니다. 들려주는 사람이죠. 언제나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씁니다. 사람들의 눈을 통해 읽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오로르처럼요.
‘문제 많은 어른 세계’에서는 장애가 있는 이들한테 편견을 갖게 되기가 쉽죠. 장애를 “멋지게 활용할 줄 아는” 오로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제 아들 맥스는 자폐증을 갖고 있습니다. 맥스가 5살 때, 병원에서는 맥스가 평범한 삶을 살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22년 뒤, 맥스는 런던 대학교 석사 학위를 땄고, 완전히 독립된 젊은이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 그렇게 되기까지 몹시 힘들었죠. 그렇지만 너무나도 특별한 아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봐왔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인생을 보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요.
Illustration ⓒ 2019 by Joann Sfar
인생의 핵심은 ‘끈기와 유연성’
오로르의 가족은 보통 동화에 나오고는 하는 ‘정상 가족’은 아니에요. 오로르의 엄마, 아빠는 이혼했지만, 질투, 우정 등 복합적인 감정을 나누는데요. 어떤 가족을 오로르에게 만들어주고 싶으셨나요?
제 부모님은 늘 심하게 싸웠습니다. 끔찍하고 볼썽사나운 이혼 과정을 겪어야 했죠. 그래서 오로르의 부모는 이혼으로 상처받고 약해지긴 했어도 서로에게 화내거나 적대적이지는 않게 그리고 싶었어요. 오로르의 부모는 맞지 않음을 알고 헤어졌지만, 한때 사랑하고 함께 아이들을 만들고 키운 사람들인 만큼 결혼 생활이 깨어진 것에 조용히 후회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각자의 삶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와 맞닥뜨려 당황하고 있죠. 이건 저한테 중요한 주제입니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각자 자신의 문제로 힘들 때도 있으며, 그건 절대로 아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었죠.
저는 성장기 때 부모가 심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장남인 저한테 제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주 미성숙한 태도였죠. 그런 경험이 저한테는 나쁜 기억으로 남았어요. 그리고 제 소설 어디에나 있는 죄책감의 씨가 됐죠. (그렇지만 죄책감을 제 소설들에서 잘 이용할 수 있었죠!) 그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저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키울 때 아주 확실하게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불행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확고하게 전달하고 싶은 말이죠.
산문집 『빅 퀘스천』에서는 ‘우리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위기와 동행하며 본질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반면, 오로르는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작가님의 인생관에 변화가 있었나요? 아니면, 삶의 비극성에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신 것인지요?
아주 좋은 질문이군요! 저는 인생이 경이로우면서도 비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화책에 비극을 넣고 싶지는 않았어요. 누구나 어느 시점에서는 비극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지만, 고난과 슬픔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어른을 상대로 말할 때와 어린이를 상대로 말할 때 분명 달라져야 합니다. 오로르는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에서 살기도 하지만, ‘지금 여기’ 하루하루의 현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죠. 저는 끈기와 유연성이 인생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힘든 일 뒤에는 좋은 일이 온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새기고요. 그게 이 책의 바탕입니다.
꾸준히 뛰어난 장편소설들을 써 오셨어요. 성공한 작가가 되려면 20년은 투자해야 한다고 하셨고요. 지치지 않고 글쓰기를 이어온 비결이 있다면요?
일주일에 엿새는 글을 씁니다. 매일 일정한 양을 씁니다. 작가로 살아가려면, 창의력에 대한 의심, 자신에 대한 의심이 언제나 따라다닌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건 작가로서 살아가는 일부죠. 그 과정에서 거절, 실망, 좌절을 수없이 겪는다는 점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역경에 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해요! 이제 저는 22편의 작품을 발표했고, 각각 나름대로 즐거움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를 타이릅니다. ‘네가 발표한 소설들을 세계 각국의 독자들이 읽고 있어. 너는 행운아야!’
Illustration ⓒ 2019 by Joann Sfar
소설 이외에 최근의 관심사가 궁금합니다.
클래식 음악, 재즈, 영화, 연극을 아주 좋아합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정기 관람권을 끊습니다. 1년에 영화 100편, 연극 100편을 봅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재즈 클럽에 갑니다. 문화에 푹 젖어서 지내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작년에 본 최고의 영화는 한국 영화입니다. <기생충>은 걸작이에요.
한국 독자들이 작가님의 신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향후 집필 계획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신작 소설 『오후의 이자벨』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미국 남자와 연상의 프랑스 여자가 30년에 걸쳐서 밀회를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 말에 파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만남을 이어갑니다. 성적인 열정과 성애를 다룬 소설이며,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살지 않는다면 과연 열정은 더 뜨겁게 불탈까 하는 문제도 다룹니다. 또 ‘한 명의 상대에게만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부일처제가 과연 정말 필요할까?’ 하는 문제도 제기합니다. 이 소설은 『오로르』 처럼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죠. 어쨌든 『오로르』 2편은 프랑스에서 이미 출간됐어요! 곧 한국에서도 출간되기를 기대합니다.
* 더글라스 케네디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다. 195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런던, 파리, 베를린, 몰타 섬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다수의 소설과 여행기를 출간했다. 조국인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작가로 유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특히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프랑스문화원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고, 2009년에는 프랑스의 유명 신문 <르 피가로> 지에서 주는 그랑프리상을 받았다.
한때 극단을 운영하며 직접 희곡을 쓰기도 했고, 이야기체의 여행 책자를 쓰다가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부터 시작해 파타고니아, 서사모아, 베트남,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 세계 2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풍부한 여행 경험이 작가적 바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장인물에 대한 완벽한 탐구, 치밀한 구성,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스토리가 발군인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현재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간되고 있다. 2009년 국내에서 첫 출간된 『빅 픽처』는 최고의 화제를 이끌어내며 현재까지 국내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에 등재되어 있다.
오로르더글라스 케네디 저/조안 스파르 그림/조동섭 역 | 밝은세상
더글라스가 쓴 최초의 전체연령가(?) 소설이자 클라스가 다른 힐링 소설 『오로르』. 스스로를 위한 아름다운 이야기 한 조각을 음미해 보기를, 평생 함께하고픈 이들과 나눌 이야기를 구해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