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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NGO 활동가 곽은경, 정착하지 않는 삶을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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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봄날

지난 10월, 출판사 남해의봄날은 ‘행동하는 멘토’ 시리즈 첫 번째 주인공으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 곽은경의 이야기를 담은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를 펴냈다. 국제사회에서는 ‘로렌스 곽’으로 더 많이 불리는 곽은경은 스물다섯에 파리행 비행기에 올라, 제네바의 국제 NGO 팍스 로마나 세계 사무총장을 역임, 국제 NGO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NGO에 대한 리포트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NGO 활동가에 대한 저서는 많지 않았다.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가 더욱 특별한 지점은 곽은경과 그의 오랜 벗, 작가 백창화가 함께 집필한 책이기 때문이다. 곽은경이 한국을 떠나 세계 각국의 어둠을 밝히고 있을 때, 백창화는 한국에서 평범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작은 도서관 관장으로 살아왔다. 곽은경과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언제나 그와 같은 꿈을 품어온 백창화는 2년간 파리와 제네바, 인터라켄을 오가며 곽은경의 삶을 복기했고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를 탄생시켰다.

“왜 그런 나라들만 돌아다녀요? 그러니 수상해 보일 수밖에요.” 2003년 5월, 곽은경이 아르헨티나 브에노스아이레스 공항 직원에게 들었던 말이다. 곽은경은 라틴아메리카 지역 주요 NGO 연석 회의 차 볼리비아 산타크루즈로 출장을 가던 중, 비행기에서 정신을 잃었다. 응급 치료를 받고 환승 수속을 밟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내렸지만 그는 입국 심사를 거절 당했다. 25년 동안 100여 개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처음 당해보는 일이었다. 아르헨티나에는 1초도 머무르지 않을 것이란 말을 했지만, 공항 직원들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나타나 그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대륙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곽은경. 한 공항 직원은 그에게 “한국 국적을 가진 여자가 프랑스에서 혼자 살면서, 요주의 나라들만 골라 다니니 의심을 살 수 밖에 없지 않냐”며 추궁했다.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시에라리온, 나이지리아, 케냐 등. 곽은경은 한 해도 정착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국제 연대활동가로 이름이 난 곽은경은 1987년, 파리에 본부를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에서 NGO 활동을 시작해 비행기에서 기절하기를 여러 번, 귀 고막 한 쪽을 잃고,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감수하며, 국제사회에서 소외된 나라의 생존과 인권, 평화를 위한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가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처참한 빈곤과 학살의 현장에는 언제나 ‘NGO 노마드’ 곽은경이 있었다. 이 인터뷰는 국제 NGO 활동가의 치열했던 인생을 돌아보기보다는 개인의 삶을 버렸지만 그 또한 행복했다고 말하는 한 사람의 속내가 궁금해 시작한 질문들이다. 곽은경 저자는 인터뷰를 마치며 한 마디를 보탰다. “관심을 갖는 것 만으로도 이 세계는 좀더 나은 곳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실천이 더해지면 더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 수 있겠지요?” 혹여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를 통해,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면 관심에만 멈추질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권과 평화는 스스로만이 만들 수 있다.

로렌스 곽은 나의 멘토이자, 나의 영감이며 언제나 닮고 싶은 거울이다. 국제 인권과 시민단체의 발전을 위한 그의 업적은 비교 불가능하다. 그는 항상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인권운동가로 단 한 번도 지름길을 선택한 적이 없었다. 아시아 여성으로서 여러 형태의 차별과 삶이 던져준 도전에 맞서 그는 남보다 세 배나 더 열심히 일하며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심지어 무급 풀타임으로 일할 때도 그는 옳다고 여기는 일이라면 온 마음을 쏟아 일했다. 나는 그런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그가 부르면 언제든 함께 일하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 앤 베아트리스 (말레이시아 연대활동가)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 저자, 곽은경과 백창화 ⓒ남해의봄날


깨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는 오랜 친구인 백창화 작가와 함께 엮은 책입니다. 나의 인생이 누군가의 글로 전해진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일 텐데요. 타인의 시선으로 본 나의 삶이 어떻게 다가왔나요?

거리가 멀어 아주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백창화 씨는 마음으로 굉장히 가깝게 느끼는 친구입니다. 친구의 시선이, 마치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새삼 느낄 수도 있었고요.

1987년,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로부터 취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빈약한 영어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한국을 떠났습니다. 25세 나이에 파리 행을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25세는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이미 성인이잖아요 자기가 사는 사회에 세상에 대한 책임을 지는 나이이지요. 저의 25세는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나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랑스에 가게 된 동기는 세 가지였어요. 호기심, 책임감 그리고 신앙심.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많은 생각과 경험을 했고 세상에 대한 책임 의식을 느꼈습니다. 가톨릭이라는 종교는 내게,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세계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26년 전, 다시 선택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해도 파리 행을 선택하셨겠지요.

대부분 NGO 활동하시는 분들이 그렇듯이 가진 건 몸뿐이라고(웃음), 젊었을 때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고 제대로 돌보지 않고 관리에 소홀했던 점을 이제 와서 많이 반성하고 있지요.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준비를 하고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해서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여건이 많이 좋아졌어요.

국제 NGO 활동가로 일하며 100여 개국을 돌아보셨습니다. 단 하루도 정착하지 않는 삶, 이것이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사실 굉장히 피곤하고 힘든 삶이죠.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낯선 타인이었던 사람이 오늘 나의 친구가, 동료가, 가족이 된다는 것, 그렇게 남과 내가 ‘우리’가 되어 함께 세상을 바꿔간다는 것은 언제나 경이롭고 행복한 경험입니다. 모든 개인은 나약하고 작은 존재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아주 미약한 한 사람의 도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그 힘들이 모여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희망적입니까? 이러한 것들이 지난 25년간 제가 NGO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에서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세상을 구한다는 건 착각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고 알리는 일에 헌신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이 깨지는 시간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실망한 적은 없었나요?

깨지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거기에 좌절하지 마세요. 물론 저도 처음에는 부끄럽고, 마음 아프고 실망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성공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고요. 세계 곳곳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짐을 함께 짊어지고, 조금이나마 그들이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들의 환경을 바꿔나가는 일에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깨진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은 간혹 너무 처참하거나 가슴 아픕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아주 작은 변화에도 희망을 봅니다. NGO 활동은 결실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빨리 결실을 보고 성공을 이끌어내기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변화를 모색하고, 어디에서 용기를 얻을 것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곽은경으로 살았던 25년과 2003년 로렌스 곽이라는 이름도 갖게 된 지금. 두 이름의 의미가 조금 다를까요?

이름이나 국적이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권에 찍힌 국적은 제게 있어 활동기관과 정서에 따른 신분증일 뿐, 제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은 바꿀 수 없고 여전히 내 모국은 한국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국적은 제게 큰 의미가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곽은경이든 로렌스 곽이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로렌시아라는 이름은 원래 저의 세례명이라 제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이름이기도 하고요. 다만 곽은경으로 산 한국에서의 25년은 유년기와 청년기였기 때문에 보살피는 쪽이기보다는 보살핌을 받는 시기였고, 홀로서기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로렌스 곽으로 산 25년은 넓은 세상에서 정말 홀로서기 해야만 했던 시간이었지요. 홀로서기는 결코 혼자 사는 삶, 외로운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 행동에 책임을 지고 이웃을 보살필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더불어 삽니다. 우리가 가깝고도 먼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25년간 국제 NGO 활동가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눈앞에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고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 때, 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할 수 있죠. 그렇지만 힘들긴 하지만 춥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위기를 처했을 때 더 에너지를 발산하는 편입니다. 어떻게든 부딪쳐서 바꾸고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물론 NGO 활동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때론 고되고 때론 어려움과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추위를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작고 힘 없는 개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으고, 연대활동을 하는 것이지요. 어려움을 느낄수록 신앙에 의지하게 되고, 서로에게 힘이 되려 노력하니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것 아닐까요?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때는?

개인적으로 인생을 살며 추웠던 순간이 있기는 합니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 나와 홀로서는 과정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데, 마침 건강이 안 좋았을 때 그때가 가장 추웠어요.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어떤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들이 우리를 만나고 조금씩 변화하면서 자신의 삶, 나아가 이웃의 삶을 변화시키고 자기 사회를 변화시키고 우리가 속한 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등장했을 때 그들을 바라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차별에 저항하기 시작한 인도 달리트 여성들, 끊이지 않는 내전 속에서 가족과 공동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연합한 콜롬비아 여성들을 비롯해 이런 사례는 매우 많았습니다. 덕분에 저의 지난 25년이 행복하고 의미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후회되는 일이 있나요?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은.

NGO 활동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한 분 한 분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지만, 때론 일정이 너무 바쁘고 시급해서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도 모자랄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아프리카에 내일은 유럽에 다음 날은 인도에 가 있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려다 보니, ‘다음에 방문할 때 꼭 더 잘해드려야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연이라는 게 얼마나 오래갈지 또 얼마나 빨리 끝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거라, 다음 번에 방문했을 때 그 분이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더 잘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듭니다. (곽은경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하며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를 전했다. 저자는 평소 수도꼭지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또한 그만큼 웃음도 많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처한 곳이 많아서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매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후회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자산인 체력을 소홀하게 관리했다는 겁니다. 몸이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쳐야지 하는 일도 생기가 돌고, 일에도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데 최근 그 힘이 많이 부족한 걸 느낍니다. 그래서 한국에 갈 때마다 찜질방, 한의원 같은 곳들을 찾아 다니고 있어요(웃음). 이 일을 시작하고, 가족 경조사에 한 번도 참석을 못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 돌아가실 때에 임종도 지키지 못했어요. 자녀로서의 도리, 형제로서의 도리를 못한 것이 미안합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① 카탈루니아 출신 젊은 시인 카를레스와 함께
② IMCS 아시안 팀 동료들과 함께-카를레스, 헬렌, 마누 신부님과 이 성훈 안셀모와 함께
③ 2011년 6월 유엔 인권 이사회가 열리는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열린 소수민들을 위해
인권 옹호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 사이드 이벤트
④ 아프리카 코디네이터 자격으로 아프리카 대륙 참가자들과 함께


‘다른 이와 함께하는 삶’을 행복하게 여기는 인생

말레이시아 연대활동가 엔 베아트리스 씨는 곽은경 저자를 두고 ‘나의 영감, 언제나 닮고 싶은 거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자에게 가장 소중한 멘토는 누구인가요?

딱 정해진 한 사람의 멘토가 있기보다는, 매 순간,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많은 멘토가 있습니다. 제게 멘토는, 우러러 봐야 하는 스승이기보다는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동료입니다. 한국에서 가톨릭학생운동을 할 때는 바로 위 선배였던 강경희 안젤라(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 선배가 든든하고 좋은 멘토였고, 파리에서는 함께 활동한 동료 카를레스(카탈루냐 시인, 교수)가 좋은 멘토였습니다. 카를레스는 나이도 나보다 조금 어린데, 늘 세상을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바라보는 친구입니다. 처음 프랑스에서 제가 많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에 늘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 우리가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농담처럼 부르던, 프랑스의 앙투안 신부님도 제겐 훌륭한 멘토입니다. 제가 제일 처음 맡은 지역이 아프리카였는데, 기본적인 지식도 하나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에 대한 모든 것을 마치 족집게 과외 선생님처럼 알려주신 분입니다. 유머와 위트가 인생에 그리고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앙투안 신부님은 아무리 좋은 자리나 좋은 직책, 높은 급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 밖에 현재는 고인이 되신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 투투 주교님도 있고, 세계 곳곳에 저의 멘토는 무척이나 많습니다. 제가 멘토로 생각하는 이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성과보다는 심성, 그들이 일과 삶에 대해 가지는 자세.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이고 또 자기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삶을 살고, 어떻게 다른 이들과 함께 더불어 변화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지가 제겐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여준 사람들이 제게는 모두 멘토입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존경스럽다는 마음을 갖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크게 성공하고 돈을 벌고 높은 직책에 있는 이들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존경스럽지는 않지요.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 대해서 성실하고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삶이 행복해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제가 세계 곳곳에서 만난 인권피해자와 분쟁피해자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너무 착하고 법 없이도 살수 있는 많은 좋은 분들이었지요. 이 분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입니다. 가령 인도에서는 달리트라는 이유만으로 폭행과 겁탈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 제가 만난 좋은 사람들은 아주 오랜 시간,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그렇게 많이 빼앗기고 당하고 살면서도 늘 마음이 맑고 깨끗하고 착해서 먼저 용서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저에게 많은 지혜와 교훈을 주었습니다.


한국 NGO에서 함께 일하자는 요청을 받았지만, 프랑스에 머물겠다는 결심을 하셨습니다. 학연, 지연, 경제적인 환경 등을 말씀해주셨는데요. 한국 NGO의 한계(활동가로서 살아가기 힘든 여건)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프랑스에 머물겠다는 결심을 따로 한 것은 아니고 제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다 보니 정신 없이 일만 하다가 한국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NGO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것은 그 사회가 개방된 사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 NGO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해, 그들의 위치와 역할, 성과에 대해 한국 사회가, 사람들이, 그리고 국가가 제대로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평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민들은 “NGO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정기 기부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리 사건이 터지면 바로 정기후원을 끊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후원을 해야 건강한 후원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은, 기부를 하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기부만하고 본인의 일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돈을 내고는 손쉽게 큰 만족감을 얻지요. 활동에 참여하고, 지원하고 모니터링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돈을 준다고 자신의 몫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관심이 있어서 돈을 기부했다면,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 단체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질문하고 자료를 요청하고, 모니터링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부문화는 아직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회의 NGO를 신뢰할 수 있는 단체로 만드는 이들이 바로 기부자입니다. 그런 분들이 건강한 후원환경을 만드는 책임을 진 첫 서약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NGO에서 일하기를 꿈꾸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먼저 길을 개척하신 분으로서 조언을 한다면.

NGO란 말 그대로 비정부기구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회의 ‘주류’가 아닙니다. 안정적이지도 않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많은 청년들은 ‘주류’를 꿈꾸고, 국제사회의 화려함만 상상하고 막연히 NGO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들어와보면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아서, 때론 금방 도망가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본인의 심지가 굳센 사람들이 대개 오래 잘 버틸 수 있습니다. 다른 능력보다 굳센 마음,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세계를 보고, 많이 배우고 많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도전을 해보라 말해주고 싶어요. 꼭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길을 걷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꼭 도전해보라고요. 여건이나 환경은 열악하지만 이 일이 주는 보람과 가치, 긍지는 다른 어떤 주류에 속해서 자신의 삶을 꾸리는 것보다 더 큰 선물로 돌아올 겁니다. 다만 무작정, 무모하게 도전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해 사전에 열심히 준비해 두면 더욱 좋겠지요.

평생 처음으로 안식년을 맞이하셨죠.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계신데, 민박집 주인으로서는 까칠하고 불친절하시다고요? (웃음) 스위스를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안식년이라고는 선언을 했는데 결국에는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일들을 계속 하고,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를 다니고, 그 사이 책까지 쓰면서 오히려 더 바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인터라켄 민박집은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고령의 어머니께 맡겨 놓고 죄송한 마음도 있습니다(웃음). 25년 연대활동가로 살면서 안가 본 곳 없이 정말 많은 여행을 많이 다녀서인지, 여행자들의 삶이 마치 제 삶처럼 느껴져서 여행 온 친구들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민박집을 하면서 많은 한국 청년들을 만나게 되는데, 놀랍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안타까운 것도 참 많아요. 가장 안타까운 점은, 여행이 계획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입니다. 한국의 여행자들은 대게 틀에 박힌 여행을 하는데 그게 참 안타까워요.

작은 등산 가이드북 출간 계획은 진행 중이신가요?

아직 계획만 하고 있는데(웃음), 내년에는 조금씩 실행에 옮겨볼까 생각만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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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곽은경,백창화 공저 | 남해의봄날
국제사회에서 저명한 이름, 국제연대활동가 곽은경. NGO를 떠올리면 긴급 구호활동 혹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돌보는 연예인의 봉사활동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전부인 우리에게, 그는 냉엄한 국제사회의 높은 문턱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잔혹한 세상의 비극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영어 불어 어느 것 하나 완벽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그가 스물다섯에 한국을 떠나 전 세계 55개국 대표들의 투표로 국제 NGO 팍스 로마나 세계 사무총장으로 일하기까지 그 치열한 평화의 기록이 지구촌 아픈 역사와 함께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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