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 독자의 선택을 받은 『엄마의 말하기 연습』의 박재연 저자가 새로운 책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로 돌아왔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말들’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명쾌하다. “결국, 듣기 어려운 말은, 화자가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공감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가로막는 모든 말”이라는 것.
상대의 말에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 말 속에 감춰둔 진짜 마음을 알아채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지, 화자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그 말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무언가를 자극했거나. 원인과 상황은 다양해도 본질은 같다. 많은 이들이 말 속에 자신의 욕구를 담아내는 데 서투르고, 상대의 말에서 진짜 욕구를 읽어내는 방법도 잘 모르는 데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반응하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는 “우리가 그간 잘못 배워온 대화”를 함께 배우고 연습해 보자고 제안한다.
박재연 저자는 오랫동안 비폭력대화, 죽음학, 인지행동치료, 심리도식치료를 배우며 임상 경험을 쌓아왔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에서 다양한 사례를 통해 ‘단절의 대화’ 양상을 보여주고 원인을 설명하며, 어떻게 하면 ‘연결의 대화’로 나아갈 수 있는지 해법을 제시한다. 제대로 듣고 바르게 말하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는 대화 안내서다.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대화를 망친다?
이번 책은 밀도가 높은 것 같아요. 많은 내용들이 빼곡히 담겨있다고 할까요.
대한민국의 어른들을 위한 책이지만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서른다섯부터 쉰다섯 사이의 독자들을 생각하면서 썼어요. 그 즈음 되면 뜻대로 되지 않는 많은 관계들을 경험하거든요. 제가 만나는 분들도 40대 중후반, 50대 분들이 많아요. 제일 많이 하시는 말 중에 ‘저 사람이랑 일 못하겠다’, ‘저런 사람 처음 봤다’, ‘저 사람만 없으면 살 것 같다’가 있는데요. 핵심은 그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이 고통스럽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말을 통제할 수가 없거든요. 상처가 되는 말을 잘 받아서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주체의식을 가질 수 있는 대화 습관을 어떻게 연습해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책을 쓰게 됐어요.
좋은 대화란 어떤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대화를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안타까운 대화를 하고 있는데, 주옥 같은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는 다 능숙해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첫 번째는 자신이 원하는 걸 솔직하게 표현해봤더니 상대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든지, 그래서 어려서부터 ‘내가 솔직하게 원하는 걸 말하면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배웠다면 어른이 되면서 원하는 걸 말하는 용기를 갖지 못했겠죠. 그보다는 에둘러 표현하거나, 침묵하거나, 참거나, 참았다가 공격적으로 표현하거나, 부탁하지 않았지만 상대가 알아서 해주기를 기대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거죠. 이건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와 연결돼 있어요.
그럴 것 같아요.
우리는 참고 인내하는 것이 좋은 거라고 배웠잖아요. 여성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해왔고, 남성들은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교육받아 왔어요. 그런데 대화의 목적은 문제 해결도 아니고, 헌신과 인내도 아니에요. 서로가 연결되는 거거든요. 어쩌면 연결감은 타고난 본성 중에 하나인데, 우리는 그걸 잃어버린 거죠. 대화에서 연결감을 되찾아가는 것이 핵심이에요. 그러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굉장히 달라져요. ‘너에게도 욕구가 있었고, 나에게도 욕구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둘 다 충족할 수 있을까?’라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죠. 그걸 다시 탐색해가는 것이 대화 훈련의 핵심이에요.
항상 ‘연결의 대화’를 강조하시는데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 ‘단절의 대화’가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단절의 대화에도 유형이 있을까요?
우선은 대화의 변수를 살펴봐야 하는데요. 일단 직장과 일터에서 단절의 대화가 일어나고 표면화 되는 이유를 살펴보면, 핵심은 힘이에요. 파워 오버와 파워 언더가 존재하는 조직이고, 그 안에 돈이라는 물질이 개입되잖아요. 그런 장소에서는 단절의 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가정, 그 중에서도 부부 사이인데요. 부부 사이에서 대화의 변수는 자아성찰이에요. 핵심적인 신념(핵심 신념, core belief)이 형성돼서 굳어지는 나이를 20세 정도로 보는데요. 법적으로 20세 이후에 결혼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전혀 다른 성격으로 형성된 사람이 만난 거예요. 두 사람이 잘 지내기 위한 대화의 변수는 자아성찰이에요.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가, 내가 어떤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는가, 돌아봐야 되는 거죠. 세 번째는 부모와 자녀 사이예요. 이 관계의 대화의 변수는 역지사지예요. 이해의 마음이에요. 우리 아이가 어떤 마음일까, 나는 어릴 때 어땠는가, 생각해 보는 거죠.
관계 유형은 달라도 대화가 어그러지는 이유는 비슷한가요?
같은 이유가 있는데, 저희는 그걸 ‘자동적 생각’이라고 표현해요. 20년 동안 굳어져 온 신념 체계가 만들어낸, 툭 떠오르는 침투적인 생각을 말하는데요. 자동적 생각의 여섯 가지 패턴-판단, 비난, 강요, 비교, 당연히, 합리화의 대화 패턴을 반복할 때 그 대화는 실패해요. 조직에서 파워 오버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파워 언더에게 말을 하면 당연히 대화는 어그러지죠. 파워 언더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다음부터 자신의 역량을 최소한만 발휘해요. 그러면 대화는 또 어그러지죠.
부부 사이는 어떨까요?
그런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조직원이 배우자를 만날 때 ‘내가 얼마나 피곤한 하루를 보냈는지 알아?’ 하면서 ‘네가 배우자라면 당연히 나에게 맞춰줘야지’라고 합리화를 해요. 그렇게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아이를 보면 ‘너 숙제 했어, 안 했어? 너 누구 닮아서 그래?’ 그러는 거죠. 이 말을 들을 때 우리 아이가 어떤 마음일까 하고 역지사지로 생각하지 않고 말하면 그 관계 또한 단절이 되는 거예요. 조직과 가정, 사회적 관계는 도미노처럼 서로 연결돼 있어요.
예로 들어주신 말들이 낯설지 않아요. 책에 나온 사례들을 보면서도 느낀 건데요. 우리가 나누는 말들이 생각보다 식상한 것 같아요. ‘자동적 생각’이 몸에 배어있는 거죠.
그렇죠? 조금 지겹지 않으세요? 저희는 워크숍을 할 때 자동적 생각을 실컷 나누게 해요. 솔직하게, 자신이 했던 말들을 다 날 것으로 뱉어내게 해요. 처음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고 하시던 분들도 누군가 먼저 터트리면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해요. 그러고 나서 제가 말하죠. ‘어떤가요? 여기 새로운 말이 하나라도 있나요? 다들 지겹지 않으세요? 이제 그만 버리고 싶지 않으세요? 우리가 다른 말을 배워봐야 되지 않겠어요? 본성적으로 타고난 언어를 다시 회복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요. 그러고 나서 시작해요. 자동적 생각이 우리 몸에 다 차버려서, 다른 말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르거든요. 정말 슬픈 일이에요. 학교나 가정에서 이런 걸 배우지 못하고, 머리는 과도한 지식으로 충만한데 마음에는 정서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모이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배우는 거예요.
생각을 말하지 말고 욕구를 말하세요
“대화 훈련을 통해 희망하는 것은 ‘자동적 생각 그만두기’가 결코 아닙니다. ‘자동적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기’입니다”라고 쓰셨어요.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달라지나요?
완연히 달라져요. 책 속에 자동적 생각을 그린 표가 있는데, 저희는 그 표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서 바탕화면에 저장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그리고 두 가지 과제를 내드려요. 첫 번째는 ‘한 주 동안 무엇을 말했는지 찾아보기, 그리고 그 말을 안 하려고 하지 말기’예요. 그런데 점점 안 하고 싶어져요. 하지 마시라고 하면 저항감이 올라오기 때문에 다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그렇지만 말하고 나서는 꼭 찾아보시고 소리 내서 읽으세요’라고 말씀드리는데요. 예를 들어서 ‘이딴 식으로 할래?’라고 말했다면 (표를 보고서) ‘아, 내가 자동적 생각에 비난과 강요를 섞었구나’ 하고 큰 소리로 말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상대를 보면 ‘미안해’라는 말이 나와요.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고 분류해보는 건데요. ‘저 사람이 지금 자동적 생각 중에서 비난을 하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흔히 ‘마음챙김’이라고 하는 알아차림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요.
상대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면 될 텐데, 그러지 않고 자기 안에서 답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럴수록 오해는 더 커지죠. 책에서 ‘관찰부터 시작하라’고 강조하신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판단을 유보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후설(Edmund Husserl)이라는 철학자가 ‘비판단으로 돌아가라’고 했거든요. 비판단이라는 건, 판단이 나쁘다는 개념이 아니라, 판단을 보류한 채 관찰로 돌아가라는 말이에요. 판단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어요. 그러나 ‘내가 판단을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어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진짜 관찰의 명언이거든요. ‘물에 들어가면 춥겠지?’가 아니라 ‘저기 물이 있구나’ 하고 그냥 보라는 거예요. 그저 본 대로 들은 대로.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만 해도 대화가 끝나는 경우도 있어요. 제 아들이 방 청소를 너무 안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방문을 열고 보니까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쉬고 있더라고요. ‘왜요?’ 하고 물어보기에 ‘아니야, 그런데 바닥에 수건이 있어’ 그랬어요. 그랬더니 ‘아, 미안해요’ 하면서 바로 주워서 ‘엄마, 이것 좀 넣어주실래요?’ 하더라고요. 우리는 그날 싸움은 피한 거예요. 저는 그냥 본 것만 이야기한 거죠.
마셜 로젠버그 박사의 말을 인용하셨어요. ‘우리의 모든 말은 부탁이거나 감사의 표현’이라고요. 나를 베고 찌르는 말들도 ‘부탁 또는 감사의 표현’인 걸까요? 애써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를 위해 좋은 일일까요?
세상에는 이른바 ‘아가리 파이터’가 존재하죠. 그 사람들을 이해할 것인지 차단할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에요. 그런데 우리에게 정말 듣기 힘든 말을 하는 대상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사무치게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아주 측근들이에요. 그리고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들이죠. 매일 문을 걸어 잠그고 같이 자는 사람들, 싸워도 다음 날이 되면 같이 밥을 먹어야 되는 사람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나한테 돈을 주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당신에게 필요하고 소중하고 중요한 대상이라면 그 말을 들으라는 거예요. 그게 당신의 삶에 실질적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상사라면 당신한테 월급을 주기 때문이고, 부모라면 당신이 그 안에서 행복한 관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 자녀라면 당신의 마음속에 좋은 부모가 되고픈 핵심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일단은 ‘그 사람의 말을 들을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해야겠네요.
그렇죠. 말을 들어야 할 대상이라고 해도 이런 마음이 들 수 있어요. ‘왜 매번 내가 양보해야 하지?’, ‘왜 맨날 내가 지는 기분이 들어야 되지?’ 그런데 정말 내가 지는 것인지 따져보자는 거예요. 어느 날 저희 엄마가 새언니에 대한 불만을 저한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저는 새언니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돼서 ‘엄마, 서로 조금만 이해를 해보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제 가슴을 찌르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네가 대화 선생이라며?’ 그 말부터 듣기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잖아요. 들어주자니 내가 지는 기분이 들고요. 그런데 엄마가 한 번 더 찌르시는 거예요. ‘네가 밖에서나 대화 선생이지, 지금 누굴 가르치려고 들어? 그리고 너 지금 누구 편이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제 방으로 갔어요. 물론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어요. ‘내가 저런 말을 들어야 돼?’, ‘내가 대화 선생이어도 그렇지, 저런 말까지 들어줘야 딸이 되는 거야?’, ‘도저히 못 하겠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합리적 판단과 공감이 필요해요. 저 말을 들을 것인지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돼요. 그 다음에는 내 마음과 엄마 마음이 어떤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엄마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는 거예요. 만약 제가 엄마와 싸웠다면 저한테 득이 됐을까?
한동안 계속 속상하셨겠죠.
저는 ‘엄마는 말을 들어봐야 될 대상이고, 엄마의 말을 들어보는 것은 내가 지는 게 아니라 이기는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가서 ‘엄마, 섭섭했어?’ 그랬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엄마가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거예요. ‘엄마도 언니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잘해주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돼서 너무 속상해서 공감 받고 싶었을 텐데, 그렇지?’ 그랬더니 엄마가 하염없이 우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방에 들어가시더니 조금 후에 ‘밥 먹을래?’ 하셔서 저는 엄마가 차려주신 밥 먹었어요(웃음).
상대가 힘듦을 토로할 때, 제일 좋은 듣기 태도는 어떤 건가요?
첫 번째는 그 사람의 말을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거예요. 두 번째는 복합 반응으로 그 사람 말 속에 숨겨져 있는 감정을 말해줘야 돼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생각과 말을 구별하지 못해요. 예를 들어서 엄마가 ‘새언니가 열흘에 한 번 전화하는데, 그러면 되겠니?’라고 한다면, 열흘에 한 번 전화해서 섭섭했다는 게 엄마 마음인 거예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니?’라는 건 생각이잖아요. 그럴 때 ‘그때 엄마 마음은 섭섭했던 거야?’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다시 생각으로 가거든요. ‘응, 네가 생각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지?’ 그러거든요.
맞아요. 동조를 구하죠.
그때는 그 사람의 감정을 다시 한 번 짚어주면서 감정의 원인을 찾아줘야 돼요. ‘엄마가 원했던 건 주기적으로 소식도 알고 싶고 반갑게 통화도 하고 싶었던 거야?’라고 하는 거예요. ‘새언니가 전화 안 해서’라는 말만 빼면 돼요. 이건 아주 미묘한 차이이지만 의식에는 엄청난 전환을 갖고 와요. 엄마는 ‘아, 내가 소통하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구나. 그래서 며느리가 자주 전화해주기를 바랐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 욕구가 충족이 안 돼서 섭섭했던 거예요. 감정의 원인을 욕구에서 찾아주는 게 핵심이에요. 그 사람이 정말 바라던 것을 찾아주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의 욕구를 모르겠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모를 때는 그 사람한테 물어봐도 돼요. 그런데 비난이 아니라 질문을 해야 돼요. ‘무엇 때문에 그러셨는지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당신을 이해하고 싶은데 몰라서 그럽니다, 그러니까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하고요. 대화에는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요. 당연히 기술도 필요하지만 그건 세 번째예요. 첫 번째는 상대를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돼요. ‘저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걸 모르는구나, 나도 내가 원하는 걸 모르는 것처럼.’ 연민을 가지고 우리는 똑같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다가갈 용기가 필요하고요. 세 번째는 기술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생각을 말하지 말고 욕구를 말하세요.
SNS 대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SNS로 소통하는 시대입니다. 한정된 메시지를 가지고 온갖 해석을 시도하게 되죠.
SNS 대화를 할 때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가 진실이에요. 면대면 대화를 하면 여러 가지 정보가 존재해요. 상황에 대한 정보가 있고, 시각적 정보가 있고, 목소리의 뉘앙스나 톤을 들을 수 있고, 말의 내용이 있어요. 그런데 SNS 대화에는 말의 내용 하나만 남아요. 예를 들어서 상사가 팀원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아주 친절하게 ‘나는 이런 게 중요한데, 이렇게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해?’ 하고 적어서 보냈는데, 메시지를 읽고 30분이 지나도록 답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네..’ 이렇게 답장이 온 거예요.
답장을 받고 생각이 많아졌겠는데요?
그 팀원이 ‘생각해 보니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음... 네’라는 의미로 보낸 건지, 아니면 ‘(하아...)...네..’라는 의미인지 모르는 거예요. 30분이라는 공백 동안 급한 일이 있었는지 사고가 났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알 수 없어요. 그러니까 SNS 대화를 할 때 우리가 외워야 되는 원칙은 ‘나는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걸 알면 소통을 할 때 자세히 보내줘야 돼요. 말의 내용만 있을 때는 정보가 줄어들었으니까 해석이 다양해질 수 있는데, 이 해석의 다양성을 좁혀주는 말하기가 가장 잘 말하는 거예요.
‘악성 댓글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하셨어요. 그런 글을 보면 속으로 “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에 대한 이야기군요”라고 외치라고도 하셨죠.
그야말로 심리적 조종자들이 하는 말들은 아주 훈련이 잘 되어 있어요. 어떤 워딩을 썼을 때 상대방이 괴로운지 알아요. 예전에 제가 세바시 강연을 했을 때, 저를 굉장히 아프게 했던 댓글이 하나 있었어요. ‘아버지를 팔아서 강의하는 사람’이라는 댓글이었는데요. 사실 제 내면에 그 목소리가 있었어요. ‘내가 아팠던,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버지에게 상처가 되면 어떻게 하지?’, ‘그렇지만 내 삶의 모든 이야기가 그런 것에서 시작이 됐는데, 그걸 빼고 나를 어떻게 설명하지?’ 생각했어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저로서는 용기를 내서 했었던 이야기인데, 거기에 심리적 조종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댓글을 남긴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은 그걸 어떻게 잘 알았을까?’ 생각을 해보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잘 아는 거예요. 그 사람이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은 내가 알 수 없더라도, 추측해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이 사람이 이렇게 자라온 사람이구나’라는 거죠.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그걸 덮어주는 거예요.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원치 않는 것에 다 대응하다 보면, 정작 원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는 다 떨어지고 말아요. 시간의 양만 봐도 거기에 대응하고 있다 보면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잖아요. 악성 댓글은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거죠. 우리가 그것만 알고 있자는 거죠.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법도 알려주셨어요.
아주 심플한 방법은 ‘미안하다’, ‘다음에는 다르게 하겠다’ 이 두 가지 말만 반복하셔도 돼요. 제발 다른 말 좀 안 붙였으면 좋겠어요(웃음). 하나만 더 붙인다면 ‘혹시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 달라, 내가 해보겠다’고 말하면 돼요.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의 마음이 좋아질 수 있을까’ 그 말이면 돼요.
자신이 상대를 아프게 했던 순간을 직접 말하라고 조언하셨는데요. 필요한 과정인가요?
네. ‘엄마, 내가 너무 나쁜 행동을 했어’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하라는 거예요. ‘엄마, 내가 물컵도 집어 던지고 큰소리 내면서 이 집에 다신 안 오겠다고 하고 나갔었는데...’라고 말하는 거죠. 그게 미안한 마음을 고백하는 방법 중에 첫 번째였고요. 두 번째는 자기 비난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세 번째는 충족하지 못한 핵심 욕구를 말하라는 거예요. 이게 제일 중요해요. 상대의 마음이 아픈 이유거든요. ‘엄마, 나는 지금 너무 후회가 되고 그 말을 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엄마아빠를 존중하고 싶었는데 그때 그러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라는 말을 하라는 거죠. 네 번째는 그때 왜 그랬는지 말하지 말라는 거고요. 다섯 번째는 ‘다음에 또 내가 화나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엄마가 알려줄래? 내가 노력해볼게’ 라고 말하라는 거예요.
중점적으로 말해야 할 것은 첫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내용이라고 하셨죠.
만약 엄마가 ‘그런데 그때 왜 그랬니?’라고 물어보면 ‘정말 답답했어, 내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던 것 같아’라고 말하지만 그 후에는 다시 ‘그렇지만 그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러워’라고 말하는 거죠. 이게 핵심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사과할 때 과도하기 자기비난이나 자기혐오를 한다든지, 아니면 그때 왜 그랬는지 합리화를 해요. 그 두 가지는 되게 잘하죠. 하지 말아야 될 건 너무 잘하고 해야 될 건 안 해요. 그래서 연습을 해야 된다는 거죠.
대화 방법을 연습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어떤 상대와 연습을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가장 친한 사람과 해보시는 게 제일 좋아요. 나쁜 관계를 풀어내는 일에는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들어요. 이미 친한 사람과 더 잘 지내는 방법은 기쁘게 연습할 수 있어요. 그래서 친한 사람이랑 해보기를 권유하고 싶고요. 그 후에는 가르쳐 보라고 하고 싶어요.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사람들을 가르치면 좋아요.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나눈다든지, 동호회 사람들과 해본다든지, 필요한 대상과 해보면 좋아요. 처음 일대일로 연습할 때는 친한 사람이랑 해보면 좋고요. 두 번째는 같이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하면 좋아요. 그 결과를 가지고 불편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저는 대한민국의 대화 문화가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외상의 국가거든요. 트라우마가 너무 많은 나라예요. 우리나라가 앞으로 자생력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해요. 생존하고 연결돼 있어요. 더 잘 살고 고상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게 대화예요. 저는 대한민국의 대화가 바뀌었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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