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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어떻게 이겼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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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누른 스물셋 무명작가의 등장’, 이 흥미로운 이변의 주인공은 작가 정연주와 그녀의 소설 『기화, 왕의 기생들』 (이하 『기화』) 이다. 지난해 5월, 예스24는 웹 사이트 내에 새로운 코너 ‘e연재’를 개설하면서 정연주 작가의 『기화』를 선보였다. 그리고 10월부터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제3인류』를 20회에 걸쳐 연재했다. 한국에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인 만큼 베르베르의 『제3인류』에 대한 기대는 뜨거웠고, 공개와 동시에 조회수 1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은 확신에 가까웠다. 그러나 『기화』의 열기는 그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뜨거웠다. 『제3인류』를 제치고 조회수 1위를 굳건히 지켜낸 것. 이미 4개월 전에 연재가 종료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기화』는 누적 조회수 32만여 건을 기록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12월에는 2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영화화 판권도 계약한 상태다.

『기화』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기생 ‘가란’의 사랑과 성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걸인 출신으로 기방의 부엌데기로 살아가던 그녀는 궁기(宮妓)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고, 상처를 간직한 채 왕위에 올라 망나니라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가는 왕 ‘이훈’과 만나 운명 같은 사랑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사랑과 상실의 감정들과 함께 권력에 대한 욕망, 그로부터 비롯되는 암투와 배신까지도 두루 조명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필체와 눈앞의 영상을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는 『기화』를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기화, 왕의 기생들』, 목숨 걸고 필사적으로 썼어요

『기화』의 독자들은 작품 속에 그려진 섬세한 감정들과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에 한 번 놀라고, 그 모두가 스물셋 어린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이런 작가가 어디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걸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e북을 출간한 바 있다. 『인어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야수의 청혼』『붉은 매듭』『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도깨비 각시』에 이르기까지 판타지 소설 분야에서 차근차근 내공을 쌓던 중이었다. 그런 작가에게 역사 로맨스인 『기화』는 분명 모험과도 같은 길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녀는 그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일까. 그 시작에는 예스24 과의 만남이 있었다.

“예스24 담당자 분께서 말씀하시길, 제 필체가 담담하니까 판타지 소설보다는 동양 로맨스 소설에 어울릴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때마침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었는데, 조선을 배경으로 역사 로맨스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의하셨죠. 처음에는 남장물을 떠올렸었는데 양효진 작가님이 「파란만장 태자호위담」 을 연재 중이셔서 포기했고요. 담당자 분께서 ‘망나니 왕을 갱생시키는 기생의 이야기’가 정말 핫할 것 같다고 하셔서,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 3개월 동안 시놉시스를 다듬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기화』는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연주 작가는 지금과 같은 뜨거운 반응을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매력적인 소재와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스스로 ‘목을 내걸고 쓰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썼기 때문이다. 처음 『기화』의 연재 제의를 받았을 때, 정연주 작가는 이제 막 전업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이전까지 그녀는 세무회계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자세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소설을 쓰면서 이중생활을 해왔던 것. 이루 말할 수 없는 피곤함이 몰려와 고단한 시간들이 계속됐지만 소설 쓰기의 즐거움과는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전업 작가로 살아갈 것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세무사 사무실 일이 싫었던 건 아니에요. 힘들긴 했지만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전공하기도 했고, 좋은 직장 동료들과 일하는 게 즐겁기도 했어요. 하지만 소설을 재밌게 읽고 쓰던 사람이 책도 거의 읽지 못하고 숫자만 계속 보고 있다 보니까 감성이 메마르는 느낌을 받았어요. 뭐라고 할까, 내가 회색으로 죽어가는 느낌 같은 거예요. 점차 감성이 마모되어 가면서 삭막해져가는 게 느껴지는데, 못 견디겠더라고요. 마침 그때 연재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일과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었죠.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계가 온 거예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죠.”

정연주 작가가 처음 부딪힌 벽은 가족들의 만류였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누구도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겠다고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1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천만 원을 담보로 설득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보장받았다. 기한은 1년, 그 뒤에도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건이 뒤따랐다.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보다 더 애가 타는 이는 그녀 자신이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작가로서의 능력을 입증해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 속에서 『기화』의 연재 제의를 받았을 때 작가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 작품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필사적인 노력 끝에 마침내 『기화』는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작가는 ‘이제 작가로 계속 소설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기화』를 끝내고도 독자들의 반응을 얻지 못하면, 직장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면서 작품을 계속 쓰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작가의 길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기로 한 거죠.”

정연주 작가에게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열어 준 작품 『기화』. 이 작품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 중에는 분명 작가의 절박한 심정과 간절한 바람, 그리고 무서운 집중력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일리 없다. 『기화』가 가진 매력 혹은 힘은 무엇일까.

“매력적인 요소들을 철저하게 계획해서 넣기는 했어요. 신분 상승이라는 코드도 그렇고요. 모든 로맨스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의 매력도 뛰어났죠. 일단 여자 주인공이 당찬 캐릭터이다 보니까 현대 여성들하고 맞아 떨어졌던 모양이에요. 운명이라든가 사랑에 이끌려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자들이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여자 캐릭터, 그 당당한 모습을 좋아하셨던 것 같고요. 또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도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상처 받았지만 사실은 상당히 괜찮았던 남자 ‘이훈’이 있었고, 키다리 아저씨 같은 ‘윤재민’이 있었죠. 무엇보다 『기화』는 러브스토리에만 치중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에 대한 자아실현과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미숙했던 사람이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견디고 성장해서 더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담았죠. 그 부분에 많은 공감을 가져 주셨던 것 같아요.”

상처를 딛고 일어서며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가란’ 만큼이나 ‘이훈’이라는 인물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훈’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만든 생채기 속에서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가 ‘가란’을 만난 후 정체성을 회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정적인 순간을 보여주는 한 마디의 대사에서 『기화』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훈이 대왕대비인 권인교에게 ‘소자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대사는 시놉시스 초반부터 있었어요. 그 말을 하기 위해서 모든 과정을 새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대사 딱 하나를 놓은 다음에 시놉시스를 짰거든요. 절대 빠질 수 없는 장면이었죠. 이훈은 남들이 망나니라고 부르는, 굉장히 패륜적이고 정무도 돌보지 않는 왕이잖아요. 심지어 본인이 왕이라는 것 자체도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자신의 숙적 앞에서 ‘소자가 왕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수천 번씩 그렸어요. 어떻게 보면 그 순간을 위해서 달려갔던 거죠.”




단행본 『기화』, 제가 봐도 연재 때보다 더 재밌어요

판타지 소설 작가로서 정연주 작가가 쌓아온 내공은 『기화』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한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 작가의 상상과 창작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궁에 입궐하는 기생이라는 뜻의 ‘궁기(宮妓)’라는 단어 자체가 정연주 작가가 새로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연산군이 궁궐에 기생들을 불러들이면서 ‘가흥청’이라 명명했던 것에서 착안해 ‘궁기’라는 새로운 존재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기생들에게 1패?2패?3패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토대로 해서, 궁기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험인 ‘기패시험’을 떠올리기도 했다.

“판타지는 지어서 쓰는 이야기고 역사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잖아요. 판타지는 만들면 되지만 역사는 공부해야 되죠(웃음). 아시겠지만 제가 공부를 별로 안 좋아해요. 학창시절에 국사 점수가 안습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역사를 바탕으로 써야 되니까 머리가 너무 아픈 거예요. 그래서 아예 생각을 바꿨어요. 고증을 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픽션으로 밀고 나가자고요. 어설픈 고증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드라마 <해를 품은 달>도 상당한 픽션을 가지고 시작했잖아요. 기화도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다 픽션이에요. 제대로 된 고증은 많지 않고, 고증 되어 있는 자료를 각색해서 소설에 맞게 2차 가공을 거쳐서 만들어냈죠. 그래서 소설에 있는 그대로 믿으시면 곤란해요(웃음).”

예스24의 코너에 『기화』를 연재할 당시에도 1장의 원고를 얻기 위해 5장 이상의 분량을 버려 가며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였던 작가는, 이번 단행본 발행 과정에서도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이야기이건만, 더 재밌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3주 동안 출판사에서 합숙을 하다시피 하면서 고쳐나갔다. 캐릭터에 힘을 실어 부각시키고 이야기의 개연성을 높여나가는 그 과정은 전면적인 수정이라 부를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시간들이 너무 재밌어서 문제였다고 말한다. 빨리 해치워 버리고 싶은 게 아니라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

“작품을 연재할 때는 끝까지 다 써놓고 나서 고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미진한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죠. 아무리 노력해도 그걸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숙제예요.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쓸 수 없는 비애라고 할까요(웃음). 근데 연재할 때만의 맛은 있는 것 같아요. 날 것 그대로의 원고이기 때문에 필체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죠. 수정을 하면서 고치는 게 없으니까요. 연재 당시의 작품은 원래 전하려던 메시지나 스토리가 좀 더 강하게 담겨있되 조금 더 투박하다고 할까요(웃음). 단행본으로 다시 작업할 때는 초반부는 거의 건드리지 않았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아예 이야기를 갈아엎었어요. 이야기를 다시 구성하면서 견고하게 만들었죠. 아마 단행본이 더 재미있으실 거예요(웃음). 제가 봐도 단행본이 더 재밌거든요. 왜냐하면 연재는 혼자 썼지만 단행본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다시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재밌을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작품이 거듭 새로워지는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작가인 정연주는 『기화』의 영화화에 있어서도 제작진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기화』가 영화로 재탄생되는 과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어요. 그 분들이야말로 영상매체의 전문가 분들이잖아요.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손 놓고 있는 게 낫겠더라고요. 영화로서 『기화』는 연재 작품 혹은 단행본 작품과는 다를 것 같아요. 조금 더 고풍스럽고 섹시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모든 이야기를 영화 한 편에 담다 보니까 기승전결도 훨씬 뚜렷해질 것 같고,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 같아요. 어떻게 나올지 저도 기대돼요. 하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변주하든 그건 영상매체의 자유라고 생각해요. 원작과 꼭 같이 가라는 법은 없잖아요. 더 재밌게 변주해서 나올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죠.”

『기화』가 영화화 되는 데에는 정연주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이 큰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기화』를 읽은 독자라면 한 번씩은 감탄한다는 그 생생한 장면들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고등학교 때 디지털 영상학을 공부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죠. 어떻게 장면 전달을 해야 사람들이 메시지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배웠거든요. 그게 글에 녹아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어렸을 때는 만화영화만 봤는데 커서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어요. 저희 세대는 영상 매체와 깊숙이 관계를 맺고 있다 보니까 시각적으로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요. 아마 그런 부분들이 글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해요. 저는 영상매체와 글은 엄밀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작품이 영상으로 제작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작품을 쓰는 동안 머릿속에서 영화 한 편이 계속 상영되고 있는 거죠. 판타지 배경의 글을 쓰면 애니메이션처럼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고요. 『기화』같은 역사 로맨스를 쓰면 풍경이라든가 느낌,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아른거리는 거죠. 그렇게 머릿속에서 장면을 그리면서 써요.”




인터넷 소설은 다 똑같다고요?
왜 같은 이야기들이 반복될까 생각해 봐야죠


아마도 작가들에게 가장 많이 쏟아지는 질문 중에 하나는 ‘언제부터 작가를 꿈꿨나요?’일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들은 많은 경우 아주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뻔한 기대와 예측은 정연주 작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녀는 작가를 꿈꾸거나,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적이 없노라고 답했다. ‘그럼, 타고난 천재?’라는 의문을 품게 마련인데, 그녀의 지난 이력을 살펴보면 의문은 이내 확신으로 바뀐다. 중학교 시절 미술부에서 활동했던 작가는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실수로 캐릭터 부문이 아닌 시나리오 부문에 지원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 번도 시나리오를 써본 적 없었던 그녀는 덜컥, 당선이 되고 만다. 이후에도 그녀는 e북 작가로 활동하기 전까지 소설의 구조나 작법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베르베르보다도 더 사랑받는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걸까.

“첫 작품을 쓰기 전부터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작법은 배우지 않았지만 소설을 어떻게 써야 될지는 대충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만화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요, 장면을 이미지화하는 건 그때부터 굳혀진 것 같아요.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본 소설이 해리포터였어요. 이후에는 판타지 소설, 무협 소설, SF 같은 장르 소설을 계속 읽었고요. 그러다가 중학교 도서관에 오니까 신세계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대여점에서 빌려 읽었거든요. 중학교 때는 거의 도서관에서 살았다고 보시면 돼요. 소설책은 거의 다 읽었고요. 그 외에도 경제학, 시사, 수필도 재밌으면 빠짐없이 읽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사서 선생님이 저한테 공부는 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 제가 1년 동안 책을 70권 읽었다고요.”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글쓰기는 시작됐다. 처음 시작은 패러디 소설과 팬픽을 쓰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재밌었지만 작가를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글 쓴다는 것에 매력을 많이 못 느꼈어요. 그때는 차라리 그림 그리는 게 훨씬 더 재밌었고요. 당시 집안 사정이 많이 안 좋았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밥 벌어먹지 못하는 것들은 다 소용 없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글 쓰는 건 순전히 취미였죠. 중학생 때부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라셨지만, 저는 빨리 취업 하고 싶어서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했죠.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 번도 해본 적 없고요. 처음 판타지 소설을 썼던 것도 취미로, 재밌어서 시작했던 거죠.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을 갖겠다고 말한 그 순간 누구보다 간절해졌죠. 생활이 달렸잖아요(웃음).”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학창 시절, 정연주 작가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도서 대여비를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월 천만 원 이상의 인세를 받는 인기 작가가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그 누구도,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 커다란 변화 앞에서 마음껏 들떠있다 한들 누구도 힐난하지 않을 텐데, 그녀는 혹여라도 자신이 초심을 잃을까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은 ‘초심을 잃지 말아야지, 까딱 잘못하면 옛날 일 생각 못하고 크게 한 번 깨지겠구나’ 하는 거예요. 사람이 갑자기 높이 올라가면 굉장히 좋을 것 같잖아요? 오히려 무서워져요. 이 아래가 얼마나 밑바닥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높은 데서 떨어지면 얼마나 아플지도 알고 있는 거예요. 그거에 대해서 겁을 집어먹게 돼요. 굉장히 조심스러워지고요. 그래서 항상 기초적인 것과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전업 작가로서 처음 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둔 만큼 부담도 크게 작용할 터였다. 한껏 높아진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거짓말이 아닐까. 『기화』가 그녀에게 안겨준 것은 달콤한 성공만이 아닐 것이다. 꼭 그만큼 작가의 어깨는 무거워졌을 것이다. 아울러 다음 행보에 대한 고민도 짙어질 수밖에.

“사실 『기화』를 쓰기 전에도 실패한 일이 많았는데요. 그런 걸 보고 배워서 앞으로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몰랐어요. 어떤 게 맞는지, 어떤 게 시장성이 있는지, 또 어떻게 써야 내 글이 가장 잘 나오는지 전혀 모르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거쳤으니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알잖아요. 그 길을 걷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도 알고요. 방향을 알고 그 길을 따라서 노력해야 된다는 것만 알면, 그 다음부터는 순전히 제 몫인 거예요.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제는 그 몫을 어떻게 달성하느냐가 관건인 거죠.”

언젠가 그녀가 뛰어 넘어야 할 벽들 중 하나는, 인터넷 소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봤다. 그것이 괜한 기우가 아니라는 듯, 정연주 작가는 e북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그러한 편견들을 무수히 많이 체감했다고 말했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부족, 그렇기 때문에 e북 작가는 종이책을 출간한 작가와는 뭔가 다르다는 편견. 인터넷 소설과 그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선 긋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단순한 흥미 위주의 휘발성 짙은 작품들 일색’이라는 평가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는 것. 이렇듯 바깥으로부터 규정지어진 한계에 대해 정연주 작가의 생각을 들어봤다.

“저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휘발성이 짙다고 하더라도 사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거든요. 남들은 찍어낸 듯이 내용이 똑같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똑같은 얘기가 계속 나오는 걸까’를 생각해 봐야 해요. 저는 독자들이 그 얘기를 좋아하고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많이 나오는 만큼 선호한다는 얘기예요. e북 시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 독자들이 원하는 니즈가 다 담겨 있어요. 그런 점은 한 번 눈여겨봐야 해요. 종이책으로 나올 때는 각자 소장해서 읽기 때문에 보이지 않아요. 반대로 인터넷 시장은 적나라하게 잘 보여요.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구나, 저런 얘기는 싫어하는구나’ 라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그럼 저희는 ‘이런 이야기를 원하시니 거기에 우리들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담아서 더 좋은 글을 제공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죠.”

인터뷰를 마치며 정연주 작가에게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 물었다. 그 안에서 그녀는 이상의 편견과 한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비책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인터넷 소설은 종이 위에 인쇄된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 담긴 작가들의 바람과 메시지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끊임없이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기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계속해서 주인공이나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 처럼요. 그건 제가 살면서 느낀 감정들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가는데 사실은 그 안에 의미가 있었던 것들이기도 하죠. 그런 것들을 계속 던져주고 싶어요. 한 번쯤은 뒤돌아보고, 한 번쯤은 생각할 수 있고, 한 번쯤은 잠깐 쉴 수 있는,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현재 정연주 작가는 예스24의 코너에 「가희, 사랑할지어다」를 연재 중이다. 궁궐 안으로 한정된 역사 소설의 무대를 벗어나 보고 싶었다는 그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조선 시대의 브리더(breeder)인 ‘개지기’라는 존재를 새롭게 창조해냈다. 이야기는 계모에 의해 버림받고 개지기의 딸로 성장하게 되는 가희와 그녀의 이름을 빌려 살아가게 되는 계모의 딸,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에 대한 것이다. 아울러 정연주 작가는 다가오는 여름에 선보일 작품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기화』만큼이나 깜짝 놀랄만한 소재일 거라고 귀띔하는 그녀의 들뜬 미소를 보니, 『기화』에서 시작된 작가의 작은 신화는 올 한 해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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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 왕의 기생들정연주 저 | 들녘
『기화, 왕의 기생들』 은 연산군을 떠올리게 하는 조선의 망나니 왕 이훈과 걸인 출신으로 ‘왕의 여자’의 자리까지 올라서게 되는 기생 가란의 사랑이 모티브가 되는 소설이다. 두 인물 외에도 가란을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돕는 채홍준사 윤재민, 이훈의 감춰진 상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권력을 유지하려는 대왕대비 권인교, 가란을 제거하기 위해 대담하고 위험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 자월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배신과 암투, 갈등과 사랑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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