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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책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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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수

소설가 장강명의 두 번째 산문집 『책, 이게 뭐라고』는 그가 2017년부터 2년간 진행했던 동명의 팟캐스트 이름이다. 출판사 21세기북스에서 제작하고 뮤지션 요조와 함께 진행했던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프로그램을 맡았지만, 책에 대해 말하는 일 이상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작가이기 전에 많은 책을 탐독하는 독서가이기 때문이다. 2011년 장편 소설 『표백』으로 데뷔한 장강명은 이제 10년차 중견 작가가 됐다. ‘미감’은 부족하지만, 이제 자신의 책 표지에 의견을 내기도 한다. 물론 매우 조심스럽게. 『책, 이게 뭐라고』는 경쾌한 표지와는 달리 묵직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책, 이게 뭐라고~’를 읊조릴 수밖에 없다. 장강명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그는 “아직도 책을 진지하게 읽는 독자 분들께 이 책이 어떤 위로로 다가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오히려 ‘읽고 쓰면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실제로는 편리한 면죄부로 쓰이는 것 아닐까 의심한다. 힘들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읽고 쓴다는 쉽고 재미있는 일만으로 자신이 좋은 인간이 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책, 이게 뭐라고』, 156쪽




책에 관한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

두 번째 에세이를 출간하셨어요. 『5년 만에 신혼여행』과 표지 색깔이 같네요? 우연일까요? 일러스트 작가님이 같은 분인가요?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에세이도 흰 바탕에 파란 선 일러스트였네요. 말씀 주시기 전까지 몰랐어요(제가 이렇게 둔합니다). 일러스트 작가님은 다른 분이세요. 이번 일러스트는 오혜진 작가님께서 정말 고생해 주셨어요.

부제가 “읽고 쓰는 인간”입니다. 47쪽에 나오는 표현이기도 한데요. 제목 아래 부제를 적은 건, 출판사의 의견이었나요? 책을 다 읽고는 이 부제가 더욱 책과 밀접하다고 느꼈어요.

예리하십니다. 사실 책 제목으로 ‘읽고 쓰는 인간’과 『책, 이게 뭐라고』, 이렇게 두 가지를 검토했어요. 출판사에서도 내부에서 의견이 갈렸고, 저도 결정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읽고 쓰는 인간’은 내용과 썩 어울리는데 에세이보다는 인문서처럼 무거운 느낌이고, ‘책, 이게 뭐라고’는 제가 진행했던 팟캐스트 이름과 겹쳐서 헷갈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다 제목의 느낌이 약간 가볍지 않나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결국 ‘책, 이게 뭐라고’를 낙점하면서 ‘읽고 쓰는 인간’도 아까워서 그렇게 표지에 넣게 되었어요. 

만약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없었을까요? 

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팟캐스트를 몇 회 진행했을 때부터 제가 무척 재미있고 유익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이미 ‘언젠가는 이 이야기로 책을 한 권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히 무슨 내용을 쓸지는 몰랐어요. 그러다가 1년여가 지난 다음에 팟캐스트 경험을 바탕으로 ‘읽고 쓰는 세계’와 ‘말하고 듣는 세계’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재처를 찾고 에세이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단행본으로 나온 글은 그때 연재 글들을 좀 고치고, 독서에 대해 틈틈이 썼던 기고문 등을 더한 거예요.

벌써 10권 이상의 책을 쓰셨어요. 이제 중견 작가라고 할 수 있잖아요? 스스로 “미감이 부족하다”고 하셨지만, 이제는 책에 관해 의견을 종종 내시는 것 같아요.

사실 책이 한 권 만들어지기까지 작가뿐 아니라 편집자,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이 협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책의 디자인 같은 문제에 대해 작가가 얼마나 의견을 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처음 책을 낼 때에는 아예 제 의견을 전달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조금 전달했어요. 출판사에서 저에게 단계마다 의견을 구하며 배려도 많이 해줬고요. 이번에 제가 의견을 전한 것 중 하나가 표지 일러스트의 제 얼굴에 대한 수정 요청이었어요. 초안 속 제 얼굴이 너무 똘똘하게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똘똘하게 생기지 않았다’고 눈을 좀 더 작고 처지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최종 결과물을 본 지인들이 “이건 장강명 그 자체”라고 말씀을 전해주시더라고요.

하하하! 똘똘하신 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이 제목을 고집하셨는지 알겠더군요. 정말 “책, 이게 뭐라고?!”를 마음에 품고 사시는 것 같아요.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보니 묵직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출판계를 바라보는 시선, 전자책 이야기와 예의와 윤리 등이요.

책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는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다 담아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제가 책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그렇게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요. 어떤 때에는 부담 없는 오락거리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인생을 걸 만한 무언가이기도 하고요. 전체적으로 앞부분은 다소 가볍고 뒤는 제법 심각해졌는데, 쓰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원고를 쓸 때에는 독자를 너무 생각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신나게 풀었네요.

신나신 것 같았어요. (웃음) 그리고 팟캐스트 팀에서 사진을 찍어주고는 팀원들이 내내 놀렸다는 사진이 있잖아요. 다시 한번 공개가 가능할까요?

바로 이 사진입니다. 하하. 



작가님을 보면, 농담의 주인공이 되는 걸, 꺼려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맞나요? 물론 그것에 애정과 신뢰에서 발현될 때 말이죠. 

저도 사람이니까 놀림거리가 되는 일을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데,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일 같지는 않네요. 그리고 놀림거리가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얼마나 어른스러운지가 드러나는 거 같아요. 그나저나 ‘캘리포니아 쌍둥이 사진’은 뭐라 반박할 말이 없는 완벽한 놀림감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매달리는 이유

49쪽에 ‘진지충’을 이야기하면서 작가님의 방어 전략은 “시니컬해지는 일”이라고요. 그 시니컬한성격이 발목을 잡을 때는 없나요? 또는 시니컬이 내 전략인데, 너무 착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에게 도저히 시키컬하기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사실 그 시니컬함이 발목을 굉장히 많이 잡는 거 같습니다. 저는 성격이 좀 내성적이고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려는 성향이거든요. 시니컬함도 아마 그런 성향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보니 늘 다른 사람과 일정 거리를 두게 되는데, 그래서 친한 친구도 많이 없고, 다른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저에게 다정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몹시 서툴게 대하게 되고요. 상대가 저에게 호감을 품고 잘해주는데 저는 요령이 없어 쩔쩔 맬 때 미안하다는 마음마저 들어요. 이제는 그런 성격을 고치기에도 나이가 들어서,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책에 "지인이 내 책의 사인본을 중고서점에 팔아도 화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작가님의 SNS에 책을 살 것처럼, 또는 산 것처럼 써놓고 책을 빌려 읽거나 안 사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감정이 없나요? 서운하거나 또는 굳이 왜 거짓말을 하냐는 등의 마음이요. 

네, 괜찮습니다. 사실 작가들에게는 덕담으로 “책 사서 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독자들께서 그런 부분들을 너무 짐스럽게 느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역시 중견 작가의 태도입니다. 이번 에세이의 테마는 책, 읽기, 쓰기, 작가일 텐데요. 또 다른 키워드는 ‘예의’와 ‘윤리’로 읽혔어요. 작가님이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라고 느꼈습니다만. 

예의, 윤리, 의미라는 키워드는 저도 이 책 원고를 쓰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에 대해서 오래 고민하게 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듭니다. 제가 딱히 종교적인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매달리게 되는 거 같아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고, 세계나 다른 사람과 옳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예의는 분명히 사람들 간의 일이고, 의미는 아마 저와 세계 사이의 일인 것 같고, 윤리는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더 고민해보려 합니다.

매월 고정적인 인세가 확보된다면, 강연 및 방송도 안 하고 싶은 게 모든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요? 물론 그 안에서 즐거움과 배움도 있겠지만요! ‘소설가 장강명’이 바라는 ‘작가 장강명’의 최고 컨디션은 어떤 상태일까요? 

몇 년 전, 베트남의 나트랑이라는 휴양지 호텔에서 아내와 며칠간 머문 적이 있어요. 한번만 비용을 내면 뷔페식당이나 수영장을 비롯한 각종 호텔 시설을 추가 비용을 낼 필요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무척 즐겁게 휴가를 즐겼습니다. 그런 곳에서 두세 달 머물며 판타지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을 시도할지, 그렇게 했을 때 글이 잘 써질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얻은 게 많은 것처럼 방송을 하면서 배운 점도 많고, 독자와의 만남도 하고 나서 뭉클하게 힐링된 것 같은 때가 자주 있어요.

최근에 네이버웹툰 매니지먼트 소속으로 들어가셨더라고요. 계기가 있을까요? 

2차 저작권 시장이 커지면서 판권 관련 문제가 굉장히 복잡해졌어요. 계약 내용을 제대로 제가 이해하는 것인지도 자신이 없어졌고요. 기존에는 한 작가가 신뢰하는 출판사 한 곳에서 계속 책을 내면서 그 출판사가 그런 업무들을 대신해주는 관행이 있었는데, 그런 모습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로 고민거리였는데 마침 좋은 제안이 왔기에 저는 글 쓰는 일에 집중하면서 다른 문제들은 회사의 힘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작가 에이전시 업체도 점점 생겨나는 추세라고 들었습니다.

에세이집에서도 밝혀 주신 『책, 한번 써봅시다』는 언제 출간 예정인가요? 

지금 원고를 95% 이상 썼고, 11월에 출간 예정입니다. 앞으로 출간 계획은 마음속에는 대강 있지만 제가 자꾸 스스로 정해놓은 마감을 어기는 바람에 밖으로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요. 당장 집중하는 원고는 『재수사』라고 가제를 정한 범죄소설인데, 현재 책 두 권 분량만큼의 원고를 쓴 상태입니다. 열심히 써야 합니다.

아내 분이 강력 추천하셨던 책 『좋았던 7년』은 읽으셨나요? 에세이집에 상당히 많은 책이 등장하는데, 이 책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아직 못 읽었습니다.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면서 ‘읽어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있네요. 아시다시피 ‘읽지 않은 책들의 왕국’은 점점 커져만 가기에.


©방문수


책을 읽으면서 ‘회색 인간’이 되었다

192쪽에 “에세이는 세계와 맞선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쓰셨잖아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한 소설가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 맞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위로보다는 도전이라고 할까요?

저한테는 너무 진지한 소재이자 주제인 책에 대해서 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어떤 각오를 내비칠 수밖에 없더라고요. 또 책을 둘러싼 환경이 워낙 나날이 어려워져가니까, ‘이대로 죽지 않겠다!’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드러난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쓰다가 몇 번 『소설가의 각오』를 쓴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생각나서 속으로 웃었어요.

그렇다면 이 에세이의 목적성은 무엇일까요? 

사실 제가 원고를 쓸 때에는 구체적인 목적을 지녔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대로 썼는데요, 아직도 책을 진지하게 읽는 독자 분들께 어떤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제 처지도 전하고, 책 얘기 이런 건 어때요, 하고 수다거리도 제안해보고요.

『책, 이게 뭐라고』의 주 타깃 독자는 누가 될까요? 

읽고 쓰는 일을 진지하게 사랑하는 저의 동족들이요.

작가님이 이 책의 마케터가 되었다고 가정을 해볼게요. 주어진 마케팅 비용은 약 1천만 원. 어떤 이벤트를 하고 싶나요?

저자를 협박해서 한국의 모든 독서 팟캐스트에 강제로 출연시키겠습니다. 1천만 원은 마케터와 저자가 적당히 나눠 갖는 것으로!

좋은 방법입니다. 도서 팟캐스트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지만요! 우선 <책읽아웃> 출연부터 해야겠죠? 

그럼요. 하하. 

성실한 작가라는 인상을 꾸준히 느낍니다. 성실함에 무언가를 플러스 한다면, 어떤 특징을 갖고 싶으신가요? 

요 몇 달 너무 게으르게 보낸지라 ‘성실한 작가’라는 말을 듣기가 부끄러워요. 지금은 빨리 성실해져야 하고요,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날카로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저는 작가로서 어떤 날카로움이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무뎌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성실함과 날카로움을 놓지 않고 꾸준히 작가 생활을 하면 뭔가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책을 통해, 인간 장강명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회색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단순하게,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보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흑백을 자세히 보고 음영을 비교하면 검은 것도 완전히 검지 않고 흰 것도 완전히 희지 않다는 사실을 겨우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 음영을 설명하는 것은 긴 언어로만 가능하고, 그게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신가요? 지향점 같은 것이 있나요? 상투적인 질문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여쭙니다. 

언젠가 꼭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설, 읽고 잊을 수 없는 소설, 소일거리가 되지 않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이런 소망을 꿈꾼다고 이룰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여전히 책을 진지하게 탐독하는 독자들에게 ‘더욱 진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요?

저는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점점 더 파편화된 ‘스낵 정보’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허황된 공상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시대일수록 가야 할 길은 긴 사연을 읽고 균형 있게 쓰는 일에 있다고 느껴요. 그 일을 지키는 우리가 시대의 희망입니다. 진지하게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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