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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그냥, 사람』, 무겁지만 읽어주셨으면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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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차별이 사라져서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오래전부터 이 희망적인 말에 저항하고 싶었다는 홍은전 작가. 그가 꿈꾸는 세상은 차별 없는 세상이 아닌 싸우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이다.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에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이기 때문(27쪽)이다. 사범대 4학년, 임용고시를 뒤로하고 찾아간 노들야학에서 ‘중력이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최근에 알게 된 동물권 운동을 보면서 노들야학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내가 자라온 세상에선 누구도 그것을 ‘문제’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문제를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 현실을 바꾸거나 최소한 직면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끝인 줄 알았던 거기가 최전선이었다. 나는 그런 이들의 저항이 세상의 지평을 넓혀왔다고 믿는다. (228쪽)



무겁지만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2쇄를 찍으셨다고요. 소식 듣고 기분이 어땠나요?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구나 싶었죠. (웃음) SNS에 후기 올라오는 속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책이 나오고 약 2주 사이에 누군가가 책을 사서 읽고 심지어 쓰기까지 한 거잖아요.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후기가 많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서 고마웠어요.

후기가 정말 많이 보이더라고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친구한테 이 책을 선물했는데요. 친구가 피곤해서 퉁퉁 부은 다리를 벽에 올려놓은 채로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냈더라고요. 빨리 읽고 싶다면서 신나 보이는 모습으로요. 그런데 다음 날 오전에 장문의 문자가 왔어요. 책을 읽고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요. 죄책감이 들었대요. 아마도 책을 읽고 어떤 내적 갈등을 겪었나 봐요. 

친구분이 솔직하시네요. 가볍게 잘 읽었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아침부터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예요. 언제나 내적갈등이 충만하고 그걸 잘 말하는 친구고요. 그래서 저는 ‘아, 내가 내 친구마저도 죄책감이 들어서 읽지 못하는 책을 썼구나’ 싶었어요. (웃음)

그런 후기를 들으면 어떤가요 ? 

반반이에요. 사실 이 책을 내고 처음 들은 피드백도 비슷했어요. ‘역시 내 인생에 대박은 없구나’ 싶었죠. (웃음) 그러다 나중에 ‘무거운 내용이지만,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메시지들을 봤어요. 사실 제가 남의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어서 자랑을 잘 못 하는데 책을 냈으니까 팔아야 하잖아요. 읽으라고 쓴 글이니까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이야기해야겠다 싶었어요. 이 책은 무겁다. 그렇지만 읽어줬으면 좋겠다고요. 내 인터뷰이들이 힘을 내서 나에게 말해준 것처럼 나도 힘을 내서 말해보겠다. 이런 식의 다짐을 하고 있어요. 

‘신문에 칼럼을 쓴다는 건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는 것 같다’라고 했는데 책을 내는 건 어떤가요?

책을 내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글을 더 써야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쓰는 게 너무 힘들거든요. 출판사 대표님은 칼럼을 모아서 책으로 묶자고 하면 제가 반대할 줄 알았대요. 그런데 저는 “괜찮아요. 저만 글 안 쓰면 돼요” 했어요. (웃음) 서문만 썼죠. 서문 쓰는데도 몇 개월 걸렸어요. 무얼 써야 하는가가 항상 어렵잖아요. 계속 ‘뭘 쓰지?’ 생각하다가 길고 긴 서문을 쓰고 말았죠. 

고민 끝에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서문을 썼어요. 어떻게 쓰게 됐나요? 

‘활동가 글쓰기’라는 강의를 요청받고 어떻게 인권기록활동을 하게 됐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쓴 글이었어요. 사실 요약하면 별거 아니에요. 노들야학을 그만두고 나서 인권활동가들이 저에게 세월호 참사 유가족,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자고 했고 저는 ‘네 알겠습니다’ 한 거예요. 듣고 기록하는 일은 제가 계속해 왔던 일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고요. 그러니까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하게 됐다’고 설명하면 되는데 서문을 쓰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본 거죠. 노들야학을 그만뒀을 때, 산티아고를 갔을 때, 산티아고 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 산티아고에서 얻지 못한 걸 서울에서 찾은 것. (웃음) 

선유도공원에서 찾으셨죠. (웃음)

산티아고에서는 내내 우울했어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무기력한 상태였죠. 망한 것 같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그랬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 선유도 공원에서 무언가 반짝하는 선명한 감정을 만난 거죠.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왜 우울했을까를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정말 혼자가 됐다는 걸 인식했고, 지금까지 혼자 살아본 적이 없었고, 어떻게 살지를 끊임없이 말해주는 존재들 속에서 살아왔고, 노들야학을 나오고 나서 무엇을 잃었는지를 절감한 거예요. 서문을 쓰면서 그 과정을 다시 처음부터 재생해본 것 같아요.  



노들야학, 재미있어서 했어요

노들야학을 그만두고 방황했다는 이야기는 있는데 왜 그만뒀는지는 나오지 않더라고요.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제가 노들야학을 한 건 의미 있어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거든요. 처음 5년은 정말 미치게 재밌었어요. 그다음 5년은 재미와 의미가 엎치락뒤치락했고 그러다 어느 시점이 지나니까 의미만 남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노들야학은 5~60명이 상시로 만나는 곳이에요. 그 많은 사람과 매일 사는 건데 함께 산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무언가를 견뎌야 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견뎌도 될 만큼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인데 그 과정에서 오는 긴장이 계속 누적된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재미는 줄어들고 의미만 남으면서 내가 싫기도 하고, 교장 선생님이 밉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더라고요. 좋아서 한 건데 좋지 않으니까 힘든 거예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꼭 이렇게 안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직장이든 7년 정도 있으면 고비가 오는데 저는 13년 했으니까요. 예전에는. 좋은 것도 많고, 싫은 것도 너무 많았는데 노들야학을 그만두기 전 2~3년은 싫은 것도 없고, 좋은 것도 없는 상태가 되더라고요. 그게 싫었어요. 이렇게 기쁨도, 슬픔도 못 느끼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괴로워도 그 괴로움을 견딜 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싶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노들야학 때려치울 거야’가 아니라 ‘괴롭지만 즐거운 무언가를 다시 열심히 해보고 싶어’ 이런 마음이요. 

노들야학의 무엇이 재밌었나요?

얼마 전에 은유 작가님하고 인터뷰했거든요. 작가님이 뭐가 즐거웠냐고 물어봤는데 제가 대답을 못 했어요. (웃음) 은유 작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기쁨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라고요. 그 말을 듣고 계속 생각해봤는데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라일리라는 사춘기 아이가 집을 떠나서 방황하고 집에 돌아오는 장면이 나와요. 라일리의 부모님이 화를 내지 않고, 돌아와서 기쁘다고 하면서 셋이 끌어안는데요. 그전까지는 선명하게 나뉘던 기쁨, 슬픔, 분노의 구슬이 이때 뒤 섞여요. 이런 감정을 경험하면서 성장한다는 게 영화가 주는 메시지이기도 한데요. 노들야학을 하는 기쁨도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 슬퍼하는게 지나고 나면 기쁨이 돼요.

함께 슬퍼하는 기쁨이라니. 멋진데요.

노들야학을 나오고 나서 기쁜 일이 생겨도 혼자 기뻐하니까 외롭더라고요. 기쁘지만, 혼자 기쁘니까 슬픈 일이 되는 거예요. 노들야학에 있을 때 우리에게 수많은 슬픔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슬픔을 함께했다는 게 지나고 나면 다 웃을 일인 거예요. 지금도 종종 노들야학에 놀러 가는데 갈 때마다 소외감을 느껴서 ‘다시는 안 와야지’ 이런 생각을 해요. (웃음) 자기들끼리 재밌다고 웃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나 싶어서 들어보면 다 고생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저는 같이 못 웃으니까 어느 순간에는 심술이 나더라고요. 나만 소외되는 것 같고, 저한테 별로 관심도 없고요.

충분히 반겨주지도 않고요? (웃음) 

그러니까요. (웃음)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고 가기 싫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됐죠. 내가 이들과 함께 웃으려면 고생을 함께 해야 하는구나. 고생은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저 사람들의 기쁨만 가지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구나 하고요. 그래서 같이 기쁘려면 같이 고생을 하든지 아니면 여기와는 인연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생하면서 새로운 기쁨을 찾아야 하는구나 싶었죠. 



‘차별받는 사람’에서 ‘저항하는 사람’으로

함께 슬픔을 겪으면서 알게 되는 기쁨이 있다고 했는데 노들야학에서 일할 때보다는 혼자 일하는 일이 많아졌잖아요. 인권기록활동가로 글을 쓰면서는 어떻게 그런 기쁨을 찾나요?

이건 제가 이 글쓰기를 그만둬봐야 알 것 같아요. 무엇이 기쁜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그렇군요. 지금은 안에 계시니까. 

네. 그리고 이 기쁨이야말로 잘 납득이 안 돼요. 안 기뻐요. (웃음)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열은 있어요. 그런데 그게 글을 썼을 때 그 순간뿐이고 대부분의 시간이 괴롭고 외로워요. 물론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내 감정을 언어화한다는 희열을 주는 엄청난 것인데요. 사람이 살아가는 힘을 주는 데는 언어로 하는 일 이른바 인간적인 관계보다는 노들야학에서처럼 함께 하는 시간, 약속을 지키는 관계, 이를테면 동물적 관계와 가까운 것들이 더 도움을 주지 않나 싶어요. (잠시 침묵) 글을 쓰는 기쁨이 뭐예요?

저요? (웃음) 말씀하신 것과 비슷해요. 내 경험이나 생각, 감정을 언어화한다는 기쁨이 있어요. 그리고 이게 너무 좋으니까 나만 알 수 없어서 알려주고 싶고,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아, 이것을 나만 알 수 없어. 중요하네요. 적어야겠다. 알아줬으면 좋겠다. 

저한테 되물으신 분은 처음이라 당황했어요. 

(종이에 적으며) 그런가요?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너무나 중요한 말이네요. 출판사에서 노들야학에 이 책을 선물하면서 연판장 같은 걸 써달라고 했어요. 홍은전에게 한마디씩 해달라고요. 그중에 어떤 친구가 한 말이 가장 좋았는데요. “아, 이거 하면 누가 알아주나 했는데 네가 알아줘서 좋다”였어요.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저도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차별받는 사람이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는 말이 좋았어요. 제가 노들야학 사람이라면 우리를 알아주는구나 싶을 것 같아요. (웃음) 

노들야학의 이야기를 담은 『노란들판의 꿈』 초판을 읽고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차별이 사라져서 노들야학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요. 좋은 말이죠. 좋은 뜻으로 한 말이고, 심지어 노들의 동문, 노들야학을 만든 사람들이 한 말이었어요. 그런데 왠지 그 말이 듣기 싫고, 무슨 뜻인지 알지만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노란들판의 꿈』 개정판을 낼 때가 돼서야 서문에 ‘나는 차별받는 사람이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쓸 수 있었죠. 

노들야학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문장이었던 것 같아요. 

차별받는 집단에는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저항하는 사람들인 모인 곳은 모두가 주체잖아요. 나는 비장애인이지만, 누굴 돕지 않았고, 그냥 나의 세상과 싸운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썼어요. 노들은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할 사람들이고, 세상에 마지막에 누군가 살아남아야 하면 노들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른 똑똑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아야 한다고요. 그런데 쓰고 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웃음)

네, 너무 좋았어요. (웃음)

제가 쓰고도 ‘아, 내가 이러려고 책을 썼구나’, ‘이 말을 하려고 그 고생을 했구나’ 싶었어요. (웃음) 그런데 이것도 초판을 낼 즈음, 그 고생을 할 때는 쓰지 못했던 거예요. 언어화가 안 됐는데 그 이후에 누군가가 그렇게 말해줬기 때문에 그다음에 쓰게 된 거죠. 출판사에서 낸 책 소개 글에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나중에 제가 페이스북에 다시 써야겠어요. 작고 연약해서 우는 게 아니에요. 남들 앞에서 우는 건 강인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고 대단한 저항이거든요. 



저건 우리가 하던 거다

탈(脫)육식을 선언하셨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DxE(비폭력 직접행동 동물권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모임에 나가고 있어요. 가서 그분들이 하는 이야기 듣고, 쓸 수 있을 때는 글을 쓰면서 지내요. 동물권 운동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채식’이 아닌 ‘탈육식’이라고 표현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DxE에서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정확히는 ‘동물해방물결’이라는 곳에서 ‘탈육식’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DxE는 ‘채식’이나 ‘탈육식’보다 동물들의 고통, 인간이 어떻게 동물을 착취하는지를 더 많이 이야기해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채식’과 ‘탈(脫)육식’이 다르게 느껴지네요.

둘은 같은 목표를 가졌고, 완전히 분리될 수 없지만 조금 달라요. 비거니즘이 밥상 이야기, 인간이 채식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면 탈(脫)육식은 자기 밥상과 도살장을 연결해요. 왜 자꾸 인간들 이야기만 하느냐고, 동물들이 착취당하고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거죠. DxE의 활동이 장애인 운동방식과 굉장히 비슷해서인지 저는 그쪽이 더 끌리더라고요. 

동물권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 장애인 운동을 처음 만났을 때 비슷하다고 하셨죠. 어떤 점에서 비슷한가요?

불편한 것들을 계속 보게 하고, 이런 방식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많은 운동처럼 보이는 게 비슷해요. 고깃집 가서 음식을 폭력이라고 말하고, 불편한 도살장의 영상을 도시로 전송하고, 밸런타인데이에 상의를 벗고 우유를 소비하지 말라고, 이것은 폭력이라고 시위하는 것들을 보면 얼마나 불편해요. 노들야학이 지하철을 막고, 버스와 도로를 점거했던 것과 비슷하죠. 보면서 ‘저건 우리가 하던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작가님도 불편하셨다고요. 

그랬죠. 이마트에 들어가서 포장된 고기에 꽃을 올리는 영상을 보면서 ‘설마’ 하면서 조마조마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해서 얻을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알았죠. 이 사람들은 아주 진지하구나. 이들이 원하는 게 뭔지, 말하려는 게 뭔지 알아야겠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주 중요한 말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싶었어요.

또 알아주셨네요. (웃음) 

네 제가 알아줬어요. 욕으로 샤워를 하는 그들의 마음을요. (웃음) 이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는 게 아니라 평화를 깨기 원한다는 걸 알았어요. 비건은 평화, 비폭력을 말하잖아요. 맞는 말이죠. 그런데 DxE가 말하는 건 불화예요. 그리고 이 평화가 어디서 왔는지 말하고 싶어 해요. 노들야학이 운동하는 방식과 정말 닮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DxE를 노들야학에 초대했어요. 

분위기는 어떘나요? 

시너지가 장난 아니었죠. (웃음) 사실 초대하고 나서는 조금 걱정했거든요. 제가 무언가를 많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을요?

‘나는 개가 아니다’, ‘우리는 소, 돼지가 아니다’, ‘우리에게 등급을 매기지 말라’. 이런 구호들이 장애인 운동에서 중요했거든요. 동물로 취급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그렇게 전했는데 DxE는 ‘인간도 동물이다’, ‘동물을 착취하지 말라’고 하는 단체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불편할 수 있죠. 그래서 그날 조금 긴장했어요. 그런데 활동 영상을 보고 나서 우리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메시지보다 방식을 보고 서로를 알아본 거죠.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겠다고요.

왠지 뭉클하네요. 분위기가 상상돼요.    

다들 굉장히 들떴었죠. 박경석 교장 선생님은 DxE 활동 영상을 보고 밧줄을 선물하기도 했고요. 노들야학에서 투쟁할 때 쓰려고 아껴 놓은 밧줄이 있었거든요. 점거할 때 서로 묶으려고요. 

슬픔과 고통을 목격하고 삶이 달라질 때 얻는 기쁨이 분명 있지만, 목격하는 것 자체가 유쾌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계속 그 일을 하는 작가님의 동력은 뭔가요?

기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냥 제 눈이 그쪽으로 가요. 그리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이 안 믿어주지만, 노들야학을 하면서 얻은 기쁨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고통과 연대하는 기쁨이 커요. 

기쁨이라는 건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했잖아요. 동물들의 고통을 봤다는 기쁨이 있어요. 내가 알아줬잖아요. 그들의 고통을(웃음) 

고통을 알아주는 기쁨이라니 새로워요. 

몰랐어도 되는 건데 알아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있어요. 몰랐으면 그냥 잘 살았을 텐데 알게 돼서 내 삶이 아주 크게 바뀌어야 하지만, 바뀌어서 기쁜 거죠. 이런 기쁨이 크니까 슬픔을 마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가르켜서 “사람 같다”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동물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익숙하지 않은 말이니까. “사람 같다”고 표현하는 거죠. 반려동물은 사람이 아니고, 우리는 동물이 맞잖아요. 내가 동물이라는 걸 느낀 후에 오는 해방감이 아주 커요.



만약 단 한 명한테 이 책을 권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주시겠어요?

아직 꽃님 씨한테 책을 못 드렸어요. 꽃님 씨가 자신이 모은 돈을 기부했잖아요. 그걸 보면서 제가 부끄러움과 존경을 느꼈고, 나도 무언가를 함께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서 인세의 절반을 노들야학과 DxE 기부한다고 했으니 꽃님 씨한테 드리고 싶어요. 

꽃님 씨가 책 받고 뭐라고 하실까요?

모르겠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당해보면 인터뷰를 하는 마음을 알듯이 꽃님 씨가 기부한다는 걸 글로 쓸 때는 몰랐는데 돈을 기부해보니까 마음이 복잡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주면서 “꽃님 씨 드디어 당신의 마음을 알았다”고 할 것 같아요. 얼마나 번민이 많았느냐고요. (웃음)




*홍은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했고, 차별에 저항해 온 장애인들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노란 들판의 꿈』을 썼다.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와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도 했다. 문제 그 자체보다는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차별받는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인권의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외에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등을 펴냈다. 




그냥, 사람
그냥, 사람
홍은전 저
봄날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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