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섬진강의 너른 품에서 2년여를 보냈다. 그동안 작가는 더 자주 미소 짓게 됐고,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누군가는 의아해할 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때로 지인들조차 묻곤 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담긴 것은 그 질문들에 대한 공지영 작가의 대답이다.
섬진강 가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 후배 H와 J, S가 찾아왔다.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밀리고, 부모님의 부모 노릇을 하느라 지치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매일이 지옥 같고... 저마다의 고민과 고통을 안은 채였다. 그 곁에서 작가는 말한다. 오랜 시간 자신을 마주하며 깨달은 사실들을. 기쁨보다 고통에서 더 많이 배운 것들을. 이를테면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고, 결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한 이야기다.
나를 끌어올린 원동력은 자존감
섬진강에서 지내신지 2년 됐나요?
2년 조금 넘었어요.
예전보다 표정이 더 편안해지신 것 같아요. 주변 분들이 그런 이야기 하세요?
네. 내가 봐도 그래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번에 찍은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서울에 있을 때하고 거기에 있을 때 표정이 달라요. 거기 있으면 약간 얼굴에 빛이 난다고 해야 되나. 피부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많이 타기는 했는데, 저는 조금 탄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건강해 보이고. 거기 있으면 찡그릴 일이 없고 매일 쳐다보면서 ‘너무 좋아’ 그래요. 마트에 갈 때도 ‘강물이 너무 예뻐’ 그러고요(웃음). 제일 가까운 마트가 차를 타고 5분 정도 가야 하는데, 강변의 길을 따라 가야 되거든요. 강물이 되게 예뻐요. 그러니까 어떻게 안 좋을 수가 있겠어요.
제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예요. 이보다 더 잘 맞는 제목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처음부터 생각하고 썼어요. 몇 년 전부터 계속 이 접속사를 외웠어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면 참 좋더라고요. 실생활에서 되게 유용했어요.
‘그래서 (…)’라고 생각할 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생각할 때, 괄호 안에 들어가는 말은 어떻게 변한 것 같으세요?
‘그래서’ 인간들은 다 믿을 수 없고 ‘그래서’ 이 세상은 지옥 같고, 그런 거죠.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면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하니까 ‘아직도 하늘에 별이 뜨고, 너는 그 별을 쳐다볼 수 있는 눈이 있잖아’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노래 가사처럼. 그런 생각하니까 되게 좋았어요.
책속에 세 명의 후배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평소에도 지인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는 일이 많은가요?
제가 불행의 원당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처음 보는 사람도 자기 이야기를 하고는 해요. 다행인 것은, 제가 많은 고통들을 겪어봐서 그런지 세상에 이해 못 할 고통이 거의 없더라고요. 아마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이 와서 물어보는 것 같아요. 많이들 물어봐요.
지나온 고통이나 시련이 남겨준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요. 제가 굉장히 편안하게 살았고 부모님도 되게 좋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만약에 저에게 이런 일들이 없었다면 달랐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렸을 때는 마음속으로 살짝 ‘어머, 저 사람 왜 저래?’ 하고 생각했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나 자신이 엄청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말 이 세상 어리석음은 다 해봤기 때문에(웃음). 누가 그런 짓을 해도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저럴 때가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마음으로 경멸 같은 걸 안 하니까 사람들이 조금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똑같은 깨달음을 얻는 건 아니잖아요. 깨달음을 못 얻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죠. 삐뚤어지는 사람도 많죠.
맞아요. 경험과 나 자신이 능동적으로 상호작용을 계속 해야 깨달음을 얻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가장 나를 끌어올렸던 원동력은 자존감이에요. 자존감 혹은 책임감. 자존감은 뭐냐 하면, 내가 일시적으로 후져졌다고 해서 내 존재 자체가 후진 것이 아니라는 긍지예요. 그러려면 자기 양심에 비췄을 때 자신이 있어야 돼요. 선의에 대한 긍지가 있어야 돼요.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돼요. 제가 맨날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이런 일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이 일에 영향 받아서 내 남은 인생을 망치면 너무 억울하다’, ‘이제부터는 내 책임이야’라는 거였어요. 예를 들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놈이 와서 난데없이 뺨을 때렸어요. 그건 내 책임이 아니죠. 그렇지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서 남은 하루를 보낼 것인가는 내 책임이죠. 뺨 맞은 게 억울하다고 하루 종일 그러고 있으면 그건 내 책임이에요.
지나간 일에 휘둘리지 않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 일이 일어난 것이 내 탓인지 아닌지 빨리 구분할 수 있도록 계속 공부하고 연습한 거예요. 설령 내 탓이었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이미 일은 일어났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보면,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거든요. 그러면 그 일에서 반성할 거 있으면 반성하고 교훈 얻을 건 얻고, 그러고 나서 남은 하루는 더 잘 지내도록 애쓰는 거죠. 그런 게 인생에도 적용되면 그렇게 낙담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아야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건데, 그게 ‘내려놓기’, ‘비우기’와 연관돼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나머지는 빨리 포기해야 돼요. 그러면 삶을 즐겁고 알차게 보낼 수 있어요.
산책하는 삶을 살 거예요
사실, 한 인간이 바꿀 수 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없어요. 심지어 나도 못 바꾸잖아요. 항상 무슨 일이 닥치면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데, 진짜 없더라고요. 그러면 나머지는 내려놓는데, 내려놓기가 너무 힘이 드니까 기도라는 걸 하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은 제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거니까 조금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요. 기도하고 ‘하느님 뜻대로 하십시오’, ‘부처님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 나면 모든 기도가 다 이루어지는 거잖아요(웃음). 그러니까 마음이 편한 거죠.
작가님이 마음을 돌보는 데 신앙생활이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맞아요. 신앙생활이 나의 자존감에 엄청난 도움이 됐어요.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 신이 너를 너무나 소중하게 여긴다는 메시지를 받은 거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내가 내 양심에 비추어서 크게 잘못하지 않았으면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 이렇게 나를 소중히 여기는데, 누가 감히 나에게 그럴 수 있어?’ 하고 자존감이 고양되는 거죠.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죠. 결국 기도라는 건 신이 대답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 속의 참자아가 대답하는 걸 수도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계속 하다 보면 흔들리지 않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내가 어쩌겠어요.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을 붙들고 괜히 진 뺄 필요 없죠.
그러니까요. 그리고 예수도 사람들이 투표해서 매달아 죽었는데, 내가 뭐라고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겠어요. 그런 마음 없어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행복하지도 않고요.
상처가 되는 말들은 오래 곱씹게 되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시나요?
생각을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고요. 그냥 ‘저 사람이 내가 상처 받고 불행해지기를 원하는구나, 저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되기 싫어’ 하는 거죠(웃음). 원래도 그렇게 되기 싫은데 그 사람이 원하니까 더 싫은 거예요(웃음). 그럴 때는 나한테 계속 좋은 걸 해줘요. 예를 들면 화분을 사온다든가, 아직도 하동에는 꽃이 너무 많거든요, 길에서 꺾어다 예쁜 꽃병에 꽂아두면 그런 생각이 조금 사라져요. 아니면 지인들한테 전화해서 ‘내가 오늘 맛있는 거 사줄게, 우리 남해 바다 갈래?’ 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하동에서 경치를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없어져요. 그래서 제가 거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위로들이 너무 많이 널려 있으니까.
“한 번뿐인 내 인생 이런 식으로 살다 죽기는 싫다”는 생각이 힘들 때 작가님을 붙잡아줬다고요.
정말 웃겼던 게, 그 생각이 제일 심하게 났던 때가 있었어요. 살이 10kg이 쪘을 때였는데(웃음), 아랫배는 늘 나온 거니까 상관없는데 갑자기 10kg이 찌니까 윗배가 나오는 거예요. 그랬더니 앉아있을 때 늑골이 너무 아프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아니,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이렇게 아프면서 살아야 되나? 정말 싫다, 이렇게 살다 죽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웃긴 이야기는, 다른 건 그렇다고 쳐도, 반신욕을 하는데 늑골이 너무 아픈 거예요(웃음). 요새는 조금 살이 정돈되고 나니까 너무나 편안해요(웃음).
‘이렇게 살다가 죽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뒤이어 ‘그럼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라는 생각도 드셨을 텐데요.
맞아요. 제가 새로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건축가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선생님, 저 여기서 수도원처럼 살다가 죽을 거니까 그렇게 지어주세요’라고요. 남은 인생은 꽃 가꾸고 기도하면서 조용히 있다가 죽고 싶어요. 진짜로. 그래서 집도 그렇게 지어달라고 부탁드린 거고요. 요새 지리산 개발하면서 하동이 조금 시끄러운데, 반대에 앞장서 달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평소에 연락도 안 하다가 연락하고 찾아오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나 이제 애국 그만할 거라고. 제가 SNS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한 번만 인용해 달라고 부탁했을 거고 저는 그걸 거절하기가 너무 힘들었을 것 같은데, SNS를 그만두니까 나 이제 좋은 일 그만하고 살 거라고 했더니 금방 수긍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새 너무 편해요(웃음). 이제 천천히 산책하는 삶을 살 거예요. 수입도 많이 줄어들겠지만 더 적게 쓰고, 환경 조금 더 생각하고, 꽃 가꾸고, 천천히 산책하면서.. 천천히 살려고요. 애국 그만하고.
거절을 하면 관계가 끊어질까 봐 두렵잖아요. 책에 보면, 후배 S가 이런 말을 해요. “혼자 죽을까 봐 무서워.” 낯설지 않은 마음이에요.
다들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원하지 않는 모임에도 나가게 되고...
그런 거죠. 아까 이야기했듯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계속 생각했었는데, 저는 노년에 혼자 있는 삶을 너무 살아보고 싶은 거예요. 어제 갑자기 생각났는데 다음 책의 제목은 ‘참된 고독’이 될 것 같아요(웃음). 참된 고독 속에서 살고 싶거든요. 왜냐하면 이제는 나이도 많고,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자연하고 조금 더 가깝게 있으면서, 옛날만큼 사람들하고 있는 게 그렇게 즐겁지 않아요. 지금도 하동 내려가면 바로 튤립 심어야 되거든요. 튤립 천 개를 샀어요. 튤립 심을 생각에 너무 즐거워요(웃음).
누구나 자신에게 상처 주는 사람과의 관계는 정리하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주변에서 ‘사회생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혼자 사는 거 아니지 않느냐’ 하는 말들로 간섭을 하거든요.
그렇게 간섭하는 사람도 다 정리해야 돼요(웃음). 그런데 연습을 많이 해서 여유가 생기면 관계를 끊지 않고 조금 거리를 둘 수 있게 돼요. 그리고 사람이라는 건 또 다른 길목에서 좋게 만날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싸우지 말고, 예를 들어서 누가 나한테 ‘너 왜 이렇게 다리가 굵어? 너 왜 이렇게 살쪘어?’라고 이야기하면 그냥 ‘어머, 내가 잊어버린 약속이 있어’ 하고 집에 가서 그 사람의 연락을 받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몇 번 시도하다가 안 해요. 눈치를 채는 거죠. 아니면 며칠 후에 문자를 보내서 ‘내가 요새 정신이 없어서 문자 답장도 못했네, 바쁜 일 끝나면 보자’고 해요. 그 정도로 조금 떼어놓으면 돼요. 그 사람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우리가 또 어떤 중요한 순간에 만날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하는 게 비겁한 게 아니에요.
나의 시선으로 내 몸을 바라보면
흔히 연륜이라고 하죠, ‘살아 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유명한 철학자가 이야기했죠. 극복된 상처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고요. 극복되지 않은 상처는 대물림되고. 아주 유명한 이야기인데, 상처를 소화해낸 사람은 그것을 대물림하지 않아요. 제가 책에서 카잔차키스의 말을 인용했잖아요. “행복이란 무엇인가, 모든 불행을 살아내는 것이다. 빛이란 무엇인가, 온갖 어둠을 응시하는 것이다.” 이게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이에요. 이외에 아무 방법도 없어요. 상처를 받았으면 그 상처를 끝까지 들여다보는 거예요. ‘당신이 어디에 상처 받았는가’가 결국 ‘당신이 무엇이 집착하고 있는가’예요. 그러니까 자꾸 봐야 돼요. 내가 무엇에 가장 많이 상처 받고, 무엇을 또 회복하려고 하는지. 거기에서 자기의 약점이 보여요. 그걸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조금씩, 저절로 회복이 돼요. 뭘 하려고 할 필요 없고 그냥 보면 돼요. 아는 순간에 조금씩 치유의 길로 들어가요. 그러니까 알면 돼요.
인지를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의 차이가 굉장히 큰 거네요.
그걸 심리학에서 ‘의식화’라고 하거든요. 무의식에 있었던 것을 의식 속으로 끌어들이면 치유는 자동적으로 일어나요.
작가님에게도 그런 게 있었나요? 뭐였어요?
관계였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게 대중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사랑 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의 가장 큰 집착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실수를 너무 많이 연발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사랑 받고 싶고, 그러지 못해서 상처 받고...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걸 계속 바라봐야 돼요. 물론 마음이 아파요. 안 아픈 게 아니에요. 책에도 썼지만, 성숙해진다는 게 무감각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무엇이 먼저인지 순서를 잘 정해야 돼요.
이번 책에서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기 더 어려운 측면이 있을까요?
엄청 많죠(웃음). 우선, 단행본 제일 많이 판 저 같은 작가한테 맨날 ‘3번 이혼’이 따라다니잖아요. 작가의 결혼 횟수가 왜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제가 나중에 보니까 헤세도 3번 결혼했고, 헤밍웨이가 4번 결혼했고, 마가렛 미드도 3번 결혼했던데 그 이야기가 따라다니냐고요. 찾아봐야 나오잖아요.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진짜 촌스러워서 못 살겠어요.
작가님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외모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까요. 작가를 데려다 놓고 왜 자꾸 외모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말씀은 결례입니다,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이야기하신다고요. 그러면 바로 안티로 돌아서지 않나요?
그렇죠, 벌써 안티 됐어요(웃음). 그런데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리고 그건 제가 앞서 사는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책임감이에요. 개그 프로 같은 데서 여성 개그맨들 외모를 비하하고 그러는 것도 우리가 진짜 비판해야 돼요. 여자가 뚱뚱하면 어때서? 뭐 어쩌라고? 그거 정말 명예훼손이에요. 절대 하면 안 돼요. 그리고 여자들 스스로도 비하하면 절대 안 돼요. 농담으로라도 ‘내가 그렇지, 뭐’, ‘내가 하는데 잘 될 리가 있어?’ 이런 이야기 하면 안 돼요. 의도적으로 하지 말아야 돼요.
책에서 알려주신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연습이 있어요. 작가님은 ‘누구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물으셨죠.
이번에 후배가 한 구절에 밑줄을 쳐서 저한테 보냈더라고요. ‘내 거울 내 눈으로 보는데 왜 내 시선으로 못 보냐고, 젠장.’ 이 문장을 읽고 빵 터졌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러니까 내 몸을 내 눈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매스컴의 시선, 남자들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거죠. 그 부분을 항상 명심해야 돼요.
스스로에게 ‘넌 충분히 아름다워’라고 말하는 게, 작가님도 처음에는 힘드셨나요?
그 이야기는 정말 책 한 권을 써야 되는데요(웃음), 전혀 안 그랬죠. 거울을 보면 남한테는 안 보이는데 내 눈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검버섯이라든지 기미라든지. 그런 것만 보고 앉아 있는 거죠. 정말 미친 짓을 한 거죠. 젊었을 때 더 예쁘다고 생각할 걸, 아까워요(웃음). 그런데 지나간 거 어쩌겠어요.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니까 오늘 그렇게 생각해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나 자신’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의 자존심’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어요.
진짜 중요한 이야기예요. 이번 책을 쓰면서 저도 몸소 체험하게 됐는데, 편집장님이 카톡으로 ‘선생님, 앞으로 10매씩 저한테 보내세요’ 하는 거예요. 여태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제가 답장으로 ‘말도 안 돼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써서 보내려다가 지웠어요. 그때 저도 나와 나의 자존심에 대해서 생각한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자존심 상하는 말이에요. (원고를) 너무 안 쓰니까 10매씩 보내라고 한 거잖아요(웃음).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나한테 나쁠 게 없는 말인 거예요. 그래서 ‘괜찮은 생각이에요’ 하고 답장하고 나서 저 자신한테 되게 놀랐어요. 내가 이걸 이렇게 수용하는구나. 잘한 거죠, 그러니까 책이 나왔잖아요(웃음). 책이 거의 완성되고 나서 제가 편집장한테 고맙다고 했어요.
“인생이 좋은가 나쁜가의 문제는 결정의 시점을 어디서 잘라 바라볼까의 문제일 뿐이다”, “어느 시점에서 돌아보느냐에 따라 삶의 색깔이 바뀌는 것이다”라는 말씀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렇지 않아요? 회사에서 나한테 그만두라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더 좋은 회사로 가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 회사에서 나를 잘라주길 잘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죽을 때 ‘이게 뭐야,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어’ 하고 죽기는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잘 죽네’ 하면서 죽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오늘이 너무 소중한 거죠. 선물처럼 공짜로 주어지는 오늘 하루를 잘 지내면 어제 있었던 일도 다 오늘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퇴비가 되는 거예요.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야, 혹시 오늘 저녁에 내가 죽더라도, 나의 인생은 멋진 것이 되는 거잖아요. 요즘 그렇게 생각하고 사니까 하루하루가 소중해요. 이렇게 극한 공격을 받는 저도 이렇게 행복한데, 안 행복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웃음).
“나는 스스로 죽어도 될 이유를 30가지도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라고 쓰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헤아려보셨어요?
1번은 아이들이었어요. 저는 주변에 부모님이 자살한 친구들이 있어서 그게 얼마나 큰 배신감인지 알아요. 상처가 보통 큰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 부모가 돼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 같은 게 있었어요. 두 번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결백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힘이 있었어요. 세 번째는 신앙의 힘 같은 게 있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죽음을 되게 많이 생각했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어떻게 죽는가가 결국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패배하고 상처 받아서 쫓기듯이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것 또한 자긍심이었겠죠.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예전에 SNS를 할 때 30~40대 친구들이 저한테 힘든 이야기를 하고는 했어요. 그때도 제가 항상 했던 말이 ‘넌 지금 이러이러한 걸 다 갖고 있잖아, 그리고 젊잖아, 이게 얼마나 행복한 건데 그런 불행한 몇 가지에 매달려 있어, 그러지 마’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일단 오늘만 너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대접해 봐’라고 지령을 내렸어요(웃음). 평생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면 힘드니까 매일매일 ‘오늘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기를 원해서 이 책을 쓴 거예요. 그리고 저한테 전화해서 ‘언니, 죽지 마’, ‘언니, 죽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나 안 죽어, 나 너무 행복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는 때도 있었는데 그때 늘 하고 싶었던 말이 이 책이에요. 이런 과정들을 거쳐 왔고, 그러고 나서 지금은 웬만하면 흔들리지 않고. 그리고 조금 더 미움 받고 조금 더 가난해져도 더 편할 수도 있는 거고 행복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을 정말 소중하고 예쁘게 채색하고 싶다’는 게 저의 생각이에요.
*공지영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89년 첫 장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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