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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의 김병종 화백, 알제리에서 카뮈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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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 독자에게 더 반가운 소식은 북아프리카를 다룬 5번째 책(이번 개정판에서는 이전에 나온 『김병종의 모노레터』와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을 묶어 4번째 권이 되었다. 그래서 북아프리카편이 5번째 권이다)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화첩기행』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저자인 김병종 화백의 출중한 능력 덕분이다. 그는 화가이면서 작가다. 대학에서는 동양화를 전공하면서도, 대학 시절에 이미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등 글솜씨를 뽐냈다. 그가 거쳐 간 공간은 글과 그림으로 예술작품이 되었다. 『화첩기행』은 그래서 색다른 독서 경험을 준다. 마치 문학관과 미술관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걷고 있는 느낌말이다.

 

『화첩기행 5』에서도 그 느낌을 접할 수 있다. 해가 지는 서쪽이라는 뜻의 마그레브(Maghreb). 지는 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실제로 마그레브 지역은 유럽사람들의 휴양지로 인기가 많다. 그렇지만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 가기는 쉽지 않다. 알려진 정보도 아시아나 유럽 그리고 북미에 비해서는 많지 않다. 이런 마그레브 지역을 찾기로 한 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어떤 여름. 원래 혼자 떠나려 했지만 아내와 아들 그리고 전문 사진가 겸 가이드 이렇게 4명이 떠났다. 목적지는 알제리와 튀니지, 모로코 그리고 몰타. 책에는 몰타가 빠지고 이집트를 넣었다. 몰타를 북아프리카로 보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았고, 북아프리카를 논하면서 이집트를 뺄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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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 15년, 카뮈를 만나러 북아프리카에 가다

 

『화첩기행 5』를 내면서 이전에 낸 책도 모두 개정했다. 책을 새로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

 

1권을 낸 뒤로 햇수로 15년 정도 지났다. 그러다 보니 그때 살아 있던 분 중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고, 없던 시설물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국내 편을 손볼 수밖에 없었다.

 

남미를 다룬 『화첩기행 4』에는 헤밍웨이를 비중 있게 서술했다. 『화첩기행 5』에서는 카뮈를 서술한 부분이 많다. 카뮈는 인생에 어떤 의미였나.

 

카뮈는 문학적 향수의 기점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방인』을 읽었다. 제임스 딘이 나오는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체 게베라도 그렇지만 카뮈도 미남에, 열혈남아다. 이런 작품의 외적인 요인과 함께 문학적 아우라가 어우러지면서 카뮈를 많이 좋아했다.

 

알제리 출신의 카뮈가 정작 알제리에서는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다던데?

 

깜짝 놀랐다. 카뮈에 관한 유적이 있을 거로 생각했고, 거기에 가는 방법을 안내하는 표시도 흔하리라 예상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오히려 현지에서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하고 놀라더라. 세계적인 작가에 왜 소홀할까, 의문이 생겼다. 그 의문은 여행 막바지에 어느 정도 풀렸다. 알베르 카뮈가 알제리 태생으로 소년 시절을 보냈으나, 알제리를 식민지로 하고 있었던 프랑스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알제리 독립전쟁에 반대했다. 지금 알제리가 인민공화국이다.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봤을 때는 카뮈가 자본주의적인 작가로 비쳤거나, 알제리 독립전쟁을 반대했으니 카뮈를 알제리적 정체성으로 내세울 수 없겠구나, 싶더라.

 

튀니지의 카페 데나트,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북아프리카에서 인상적인 곳은 어디였나?

 

알제리의 티파사. 고대 로마의 유적지가 있는 한적한 바닷가다. 로마가 알제리를 점령했을 때 주둔했던 바다 도시인데 여기에 카뮈의 문학 비석이 외롭게 서 있다. 청정한 지역에 역사의 아우라가 어려 있는 곳이다.  그리고 튀니지의 카페 데나트. 튀니지안 블루라는 색이 있다. 블루 중에서도 색이 깊고 신기한 푸른색이다. 카페 데나트는 이 튀니지언 블루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바다에 위치한 문인 카페다.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시몬 드 보부아르, 모파상 등이 즐겨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이 튀니지언 블루의 바다를 보며 문학과 예술을 논했다. 신비한 푸른색의 바다와 흰 색의 집들 그리고 고혹적인 색깔의 꽃들이 어우러지며 색채의 향연을 느꼈다.

 

5권에는 그린 작품의 수가 적다. 의도적으로 안 그리려고 했나?

 

독자 중에서 사진도 좀 넣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다. 사진 자료를 넣다 보니 그림은 좀 빠졌다.

 

마그레브 지역이 이슬람 문화권이다. 이슬람을 접한 인상은 어땠나.

 

경외감이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종교가 자본의 욕망 속에 용해되거나 자본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 경우를 많이 봤다. 그렇게 종교가 쇠퇴하는 경우를 서구 유럽이나 미국을 여행할 때 체험했다. 이번에도 그렇지만 시리아, 요르단, 이란 등을 여행하면서도 느낀 점인데, 이슬람은 종교적 영향력이 현실 속에 대단히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라져가는 경건이 이슬람에는 건재한다. 특히 나는 아잔 소리가 좋더라. 우아하고 낭랑한 그 소리. 종교의 육성을 듣는 것 같았다.

 

이번 책을 쓰면서 문장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1권과 비교해서 5권에서는 어떻게 쓰려고 했나.

 

아무래도 나이 영향도 있을 테다. 과거에 쓰던 문장은 수사적인 데 치중했다. 현란한 문체에 마음이 끌렸고. 이번에는 그런 수사적 현란함보다는 내면을 성찰하려고 했다. 내면에 집중하면서도 외부의 풍경과 어울리는 문장을 지향했다. 물론 지금도 컴퓨터가 아니라 원고지에 직접 쓴다.

 

『화첩기행』도 그렇지만 이전의 『바보 예수』에서도 종교와 예술이 주요 주제로 등장한다. 종교와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

 

분리할 수 없다. 두 개가 하나가 되는 지점을 느낀다. 종교의 궁극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둘 다 왜 절대적 아름다움이 소멸하는가에 관심을 둔다. 이게 종교의 생성 원리와도 만난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아오악’이라고 할 만한 풍경을 만난다. 아, 아름답다고 하는 풍경. 오, 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는 풍경. 악, 하는 비명에 가까운 감탄을 한 뒤 더는 말문이 안 열리는 아름다움. 천국이 현실에서 나타난 게 악 하는 비명을 지르게 하는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렇듯 종교와 예술은 분리할 수 없다. 한 지점에서 궁극으로 만난다. 다만, 그 아름다움에 대해 예술은 집착하게 하고 종교는 떠날 것을 요구한다. 예술은 영원히 머무르기를 바라면서 한순간을 그림과 글로 잡아내지만 종교는 그것이 소멸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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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것, 화첩기행이 앞으로 갈 곳

 

4권에서도 그랬고, 5권에서도 물질적 풍요와 가난에 관해 다뤘다. 다른 세계를 접하면 우리 사회를 돌아다보기도 할 텐데, 대한민국은 어떤 곳인가?

 

그동안 다른 사회를 통해 우리를 비춰볼 거울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여행이 우리를 돌아다볼 계기였다. 가난하면 불행하다는 공식이 있는데, 쿠바처럼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행해 보이지 않더라. 행복하게까지 느껴졌다. 여행자의 피상적인 시선일 수 있긴 하다. 자본주의가 지고지선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최대의 가치다. 지금 4만 불을 목표로 했는데, 1인당 국민소득 4만 불에 이르면 우리가 행복할까? 물질적인 결여가 많아도 행복할 수 있다.

 

서울대 미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예전 학생과 비교하면 요즘 청춘은 어떤가?

 

지금 청춘이 더 힘들다. 우리 때는 자본주의가 숙성하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만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숙성 단계에서는 기회가 많았다. 현재는 경쟁이 심하다. 경쟁이 느슨했던 우리 때보다 요즘 젊은 사람이 힘들겠더라. 나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는데, 4학년 때까지 반에서 상당수가 한글을 못 읽었다. 농번기 때는 공부하지 않고 농사일을 도와줬다. 지금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영어는 다 하지 않나. 어수룩한 사람을 보기도 어렵다. 이런 사회에서 과도 경쟁에 내몰렸는데, IT 강국으로써 정보 통신 쪽에서 엄청난 속도감을 발휘하면서 인문적 가치는 결여했다. 경쟁사회에 치이는 사람이 많이 생겼는데 패자부활전이 있는 사회도 아니다.


김병종 화백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화첩기행 6』의 행선지 궁금하다.

 

일본과 중국, 이 두 곳을 가려고 한다. 먼 곳으로 갔다 가까운 곳으로 오는 셈인데 이슬람, 아프리카보다는 잘 안다고 생각해서 아껴뒀다. 일본 속에 스러져간 한국 예인들의 이야기를 다음에 해 볼 생각이다. 심수관, 이삼평 등과 같은 한국의 예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힘든 삶을 영위했으며 그런 고난 속에서도 아름다운 예술이 꽃피웠는지를 큐슈로부터 홋카이도를 돌면서 다룰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예술 관련 양상을 훑어볼까 해서 중국도 갈 것이다.

 

올해는 김병종 화백에게 화가 인생으로써 30년이 되는 해다. 이를 맞아 전북도립미술관에서는 ‘김병종 30년, 생명을 그리다’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 전시는 2월 16일까지 이어진다. 한편, 이보다 앞서 시작한 『화첩기행』삽화전은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교동아트센터에서 열려 2월 2일에 전시를 끝낸다. 화백의 작품을 책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독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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